당나귀 귀 문원 세계 청소년 화제작 3
쎄르쥬 뻬레즈 지음, 박은영 옮김, 문병성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당나귀 귀/ 쎄르쥬 뻬레즈 글/ 문병성 그림/ 박은영 옮김/ 문원(2000)
난 죽지 않을 테야/ 문병성 그림/ 김주경 옮김/ 문원(2002)
이별처럼/ 문병성 그림/ 김주경 옮김/  문원(2002)

- 쎄르쥬 뻬레즈의 연작을 읽고서

레이몽, 네가 당나귀 귀로 불렸던 건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실수도 아니지. 
진짜 선생이라면 계산 못하는 너를 그렇게 돌려보내지 말았어야지. 알게 해 줘야지.
진짜 선생이라면 너를 저능아로 취급해서 유급을 막는 대가로 네 아버지에게서
돼지 한 마리를 받지 않았겠지. 마치 거래하듯 교장 몫까지 챙기느라 돼지 한 마리를
원했지. 아버지는 비겁한 속물 덩어리 선생에 대한 화풀이를 너에게 했어. 젖은 솜에서
물이 함빡 빠지게 두들기듯 너를 때렸다. 며칠동안 방밖으로 나오지 못할 정도로 매서운
폭력을 휘둘렀어. 너무하다 싶었는지 엄마가 말렸지만, 평소 네 잘못을 보듬어주기는 커녕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엄마도 아버지한테 맞았어. 너는 어디서나 외톨이였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를 집단으로 때리고 조롱했다. 여동생도 네가 혼날 기회만 더 주었다.
여동생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도 다 레이몽 네 탓으로 돌린 부모였어. 말이 돼야 말이지.

네가 문제아가 되는 건 당연하다. 문제아가 되지 않았다면 미쳐버렸을 테지.
폭력적인 부모, 속물 덩어리 선생, 따 시키는 친구들,  하루라도 매를 피해갈 수 없는  현실에서
과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어야 말이지. 레이몽 네가 드디어 집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나는 너를 응원했다. 그래, 박차고 나가라고. 하필 상처가 조금씩 아물 무렵 아버지는 빵집
아저씨까지 꼬드겨서 너를 망보게 했고 돼지를 훔치러 갔다. 너는 그 두려움 앞에 무릎 꿇고
말았어. 도저히 아버지 삶에서 너를 탈출시킬 수 없었다. 

너는 병들었다. 그러자 지긋지긋한 울타리에서 벗어났다.
모래바람이 센 바닷가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됐다. 저마다 하나씩 아픔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었기에 너는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몸에 난 상처가 아물고 마음에 새겨진
고통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레이몽 너는 친구를 사귀게 됐고 처음 입맞춤을 나눈 여자
친구 안느도 생겼다. 네 삶은 새롭게 펼쳐졌다. 최소한의 예의만 있으면 뭐든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 폭력이 사라진 공간, 너는 그곳에서 행복을 알았고, 죽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부모님과의 거리두기도 성공했고, 냉담할 수 있게 됐어.

안느를 사랑하면서 온전한 한 인격체가 되었다. 살아야 할 이유도 생겼다.
안느는 입꼬리만 살짝 올려서 웃지. 크게 웃거나 말하는 법도 없지. 바느질만 했다.
너는 안느를 받아 들이기엔 아직 어렸다.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안느가 웃거나
말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혀 때문이란 걸 어찌 상상이나 했겠니. 혀가 잘렸기 때문이라니.
너는 결국 소리치고 말았어. 토해내고 말았어. 네 소란에 요양원은 난리가 났고 집으로
쫓겨났어.  

악몽은 현실이 되었고, 너는 계속 꿈꾸었다.
다시 몹시 아팠다. 현실과 꿈을 오가듯 높은 열에 시달렸다. 너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너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고, 너를 최대한 배려해 주는 인정있는 아버지와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골고루 해 주는 포근한 엄마와 밝은 여동생과 살았다. 두 편에 걸친
네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는 울먹해지는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만, 고열에 시달리며 꿈꾸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울고 말았다. 그래 맞아, 너는 원래 꿈에서 이룬 가족처럼 살아야
하는데 어쩌다 짓밟히는 어린 삶이고 말았니? 현실은 매정했다. 부모님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네가 맛본 요양소에서의 짧은 행복이 네 삶을 지탱해 주지도 못했다. 

레이몽 너는 선택했다. 죽음을! 
오로지 너를 편안하게 대해 주었던 빵집 아저씨를 따라갔다. 얼마나 야박한지 술에 빠져
지내는 빵집 아저씨가 네게 편안한 존재가 되었구나. 그 빵집 아저씨마저 네 곁에 없었다면
너는 숨 쉬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할 수도 없이 질식해 죽어버렸을 거다. 

레이몽,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한다.
죽음을 선택하는 건, 자살이라는 건, 종교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옳지 않은 모습이니까.
그러나 네가 너무 아파하고 악몽같은 현실을 되풀이 하는 대신 죽음을 선택한 그 자체만
생각하면, 난 얼마든 네 선택을 존중한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를 길가의 돌멩이만큼도
값지지 않게 만든 네 주변 사람들을 용서하기 힘들었겠지. 네 가족을 용서할 수 없었겠지.
용서할 힘이 뭐야, 네 차디찬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힘에 겨웠으니. 인정한다.

레이몽 너는!
똑똑한 아이다. 주변사람들의 옳지 못한 행동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강인한 아이다. 강한 아이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네가 그렇게 똑똑하고 강인한 아이였음에도 현실에 맞서 싸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네가 처절하게 맞았을 때 떠나지 못했던 것이 실수였다. 벗어났다면 넌 세상과 이별하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이 든다. 너를 너무 힘든 상황으로 몰아 세운 건 아닌지, 작가의 진정성에
의심이 가기도 한다. 네 영리함과 강인함이 현실에 굴복되고 만 것이 엉터리 같다. 내가 아는
너는 결코 그렇게 떠날 것 같지 않거든. 왜 그런 믿음이 생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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