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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복음서 - Q 복음과 기독교의 기원
버튼 맥 / 한국기독교연구소 / 1999년 6월
평점 :
품절
결국Q 관련 서적을 읽었다. 금서를 본다는 스릴외에는 리처드 도킨스나 도올 같은 넘들 볼때의 무한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저자가 돈이 필요했는지 대중을 상대로 제법 알기 쉽게 Q자료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틀림없다”, “치밀한 연구”, “비로서 해결”, “절대로”, “사실이다” 등등의 용어남용이 학자로서의 양심을 심히 의심케 한다. 혹시 Q자료 전문가들의 업적(?)을 낼름 대중화 시켜 돈을 벌려는 넘은 아닌지. 게다가 구체적인 각주없는 짜증나는 (실제로 읽어나 봤는지 의심가는) 참고문헌의 나열. Q 내용보다는 Q 추출과정에 관심이 있던 내가 책의 거의 끝 무렵에 읽은 “기본적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 들에게는 잘 설명할 수 없다”는 부분에선 돈 생각에 부들부들.
어쨋든 세상학문에 눈먼넘들이 케리그마의 예수와 달리 실존하는 예수에 대한 자료를 마가와 누가를 중심으로 조사하다보니 예수의 격언집 Q를 추측하게 된다. 당연 여기엔 이적과 기사에 대한 내용, 후대에 첨부되었을 케리그마적인 요소등이 빠지고 매우 인간적인 예수의 모습이 남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일고 있는 복음서는 모두 “설화”복음서라고 주장한다. 세상 참 좋아졌다. 꾸란이 설화라든지 환자의 환상 이야기라고 주장해도 당당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려면 중세암흑기 만큼의 시간이 또 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면에선 왜 도킨스 같은 또라이가 종교에 대해 흥분하는지 이해도 간다.
예수운동을 당시 유행했던 견유학파의 한 젊은 청년의 격언집에서 시작 되었다고 보는 이 책은 Q자료의 발전 과정을 다음 4단계로 설명한다.
1단계: Q1의 견유학파의 경구집/ 재치있고 공적인 담화 형태/ 견유학파의 매력에 이끌려 개개인들이 친목단체를 결성하는 단계
2단계: Q1의 본격적인 한 그룹의 장으로서의 예수/ 단순 경구가 법적인 격언집으로 변하다
3단계: Q1과Q2의 중간단계. 본격적 예수운동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에서 오는 보다 강경하고 경고적인 선생에서 예언자로 변하는 단계
4단계: Q2 예수운동을 위한 본격적인 기원신화 만들기 단계
5단계: Q3 전쟁후에 예수운동의 초점이 다시 개인적 도덕성과 성실성으로 회귀
(참고로 Q1: 지혜의 아들 프로필--> Q2: 묵시종말론적 프로필-->Q3: 프로필자체가 전쟁 후유증으로 희미해지다)
이어서 각자의 상황과 신앙관으로 “성격이 풍기는 연설”이 유행하던 당시 시대상에 따라 복음서 저자들이 설화로 썰을 풀어 오늘날의 “설화복음서” 완성.
수긍하기 싫어서 막무가내로 동의할 수 없는 마당에 딴지나 걸고 싶은 항목들.
1. 복음서 연대는 마가를 예루살렘 함락 직후인70년이라고 하지만 그 이전의 네로 박해때인 64-67년으로도 본다는 소수의견은 언급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Q자료 형성 시기와 맞추어야 함으로. 학자에 따라 요한복음의 저작시기를 50-70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럼 이보다 이른 마가복음은 거의 부활승천 시기에 가깝다고 주장가능. Q자료의 또다른 증거로 삼은 외경인 도마복음서의 연대기가 정확한 것인지. 발견된 종이들은 130-250년으로 저작시기를 60-140년으로 추정. 이에 비해 요한복음은 발견된 종이가 125년에 저작시기는 90-100. 이상하지??
이건 AD 125년쯤 된거라면서 원본 저작시기는 90-100으로 본다
이건 AD 130-250 년쯤이라면서 원본 저작시기는 60-140으로 본다. 왜 요한복음을 60-140으로 보지 못하냐믄 그럼 마가복음은 훨씬 이전에 씌여진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Q자료 형성시기와 잘 아다리가 않맞는 모양이다.
2. 나사렛이란 시골 외딴 마을이 무슨 당시 철학과 사상의 경연장쯤으로 만들기 위한 무리한 역사해석. 예수운동=그리스의 견유학파+유대교의 묵시종말론+헬레니즘의 밀의 종교 란 말인데 그 근거로 “가다라”란 대도시와 걸어서 하루거리란다.
대구서 한 20km 쯤 떨어진 청도군의 1978년 새마을 운동 당시 모습은 다음과 같다.
걸어서 하룻거리면 전부 대도시와 맞먹는단 주장의 근거다.
3.나사렛과 갈릴리 지방에 대한 과대해석이 계속되는데 마치 중세의 길드같은 상인연합이라든지 그리스의 문화적 공간과 로마의 세계질서의 집합장이라든지 전쟁전부터 있었던 강력한 바리새인들의 생활공간이었다는둥이다. 무슨 88년도 올림픽 광고도 아니고.
4. 견유학파에 대한 자료는 BC 50년정도에 제한되어 있었고 사실 본격적인 유행은 로마의 흥왕과 함께한 AD100년정도인데 그렇다면 예수는 견유학파의 영향을 받은것이 아니라 견유학파의 선구자쯤이 된다. 갈릴리에서.
그니까 넘들이 생각하는 예수의 이미지는 대충 이렇다???
5. 전쟁이 빈번하던 시기에 갈릴리가 전략적 요충지, 교두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 누구도 주인이라고 주장함이 없었단다. 이상하지?
6. 견유학파는 지극히 개인적 성향이 있었음에도 예수운동의 Q 공동체는 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이상해.
7. 지혜의 아들에서 예언자적 묵시종말론으로 넘어가게 되는 시기의 구분과 순서의 당위성을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설일뿐 증거나 데이타는 없다. 나름 의미는 있겠지만 데이타는 없다, 이넘의 직업병.
8. 설명을 붙인 Q 구절들, 특히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절들의 구분들은 지극히 개인적 시각과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구절과 반문화적인 구절들을 인위적으로 구분한다. 그리고는 스스로 낸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다는 듯이 그 연결의 타당성을 이러쿵 저러쿵 (운동의 한계로 부터 오는 사회와의 격리성, 유대의 묵시 종말론적 영향등)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소설을 써라.
9. 초창기 사람들의 관심을 끌수 있었던것은 예수의 이적이 아니라 견유학파의 재치와 해학, 날카로운 시대적 격언들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정에서 기적에 관한 문구삭제에 기인한다. 즉 가정에서 기적을 제외하고는 그렇다면 인기의 원인은 격언의 스타일 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Q자료에서 기적을 제외 시킬수 있다면 이는 동의어 반복일 뿐이다.
이넘들이 주장하는 초창기 예수의 이미지
10. 어떻게 그럼 복음서 저자들은 대부분 베껴놓고 지가 쓴것처럼 했냐하믄 당시엔 저자의 “성격을 품은 연설”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 세네가가 지적했다는 “잘 알아서 현명하게 선택하라”는 말은 저자의 의도를 잘 알고 용어등을 선택하라는 말이지 표절을 정당화하거나 권면하는 분위기라는 증거로는 불충분한듯하다.
200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성격을 품은 노래"로 시비거리가 없었을 텐데?
그나마 예수님의 말씀들을 모아서 한눈에 정리에 놓은 페이지나 당시 상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일 수 있는 묘사등이 도움이 될 수 도 있다고 위안삼기를 강요하는 책이다. 하지만 견유학파 얘네들은 왠지 끌린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