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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로제의 이해와 치료
이동식 지음 / 일지사 / 1974년 8월
평점 :
품절
나의 첫 기억은 서너 살 쯤인가 달밤 아래의 혼자인 것이다.
물론 아무도 없었고 어린 나는 뭔가의 설움 속에서 혼자 우리 집 앞에 있는
고구마 밭 앞에 걸어 나온 것이다. 집에서 멀지는 않지만 생전 처음 나온 것이다.
나를 슬프게 한 사람이 엄마인지 누나들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내가 이렇게 슬픈 첫 기억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부터 기억나지는 않았고
정신치료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억이 났던 것이다.
슬프게 한 사람은 잘 모르지만 엄마가 그 어린 나를 보살펴 주지 않은 상태임에는 분명하다.
나는 그날 밤 달빛 아래에서 슬픔 속에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 슬픔 속에서 분노가 생겼고 그 분노는 달밤 아래의 세상전체를
나 자신이 떠밀어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달밤은 나에게 <낯선 세상>으로 나에게 쇼크를 준 것이다.
난 처음으로 겁먹음을 경험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겁을 먹으면 그 <낯선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 <낯선 세상>은 환청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본다.
아마 겁먹음이 신경증을 유발시켜 생기는 비정상적인 정신 현상이라고 본다.
<안고 싶은 어린마음>을 제대로 처리를 못했다.
일단 이런 마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일단 이런 <어린 마음>을 충족시킬려는 생각을 잘 받아들여야 된다.
마음만 이해 해주어면 된다.이런 마음을 인정해주어야 된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충족시키려는 생각을 참고 포기해야 된다.
참고 포기하는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니체와 들뢰즈와 데리다와 같은 사람의 변증법은 긍정의 변증법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부정의 변증법-이분법이다.
부정이기에 oui/non 이라는 반대항의 변증법이다.
니체는 역사를 긍정한다. 사물의 이치와 초인사상도 결국 차이-발전이다.
무한의 존재계가 oui/oui--뭐든지 고맙다로 진행된다.
사물의 이치와 초인사상도 결국 차이-발전이다.
상대차이발전이다. 무한의 존재계가 oui/oui 로 발전된다.
저는 이 책이 출간되는 날 바로 구매해서 단숨에 한번 읽었습니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을 둔 제게 좀더 와닿는 부분은
다시 꼼꼼히 읽어보려고도 합니다.
문장이 아주 간결하고 쉽게 표현되어 읽어내려가기가 쉬웠습니다.
이 책에서는,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 또한 치료받을 대상자라는 메세지를 남겨 주고 있어
환자를 두고 있는 보호자 입장에서도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하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결국, 환자가 치료된다는 것은 환자 자신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 보고 병의 원인을 이해.
자각해서 마침내 현실로 받아들여서
새로운 힘을 내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환자나 보호자는 이러한 바탕 위에서 치료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부모는 환자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해도 치료자는 환자를 결코 포기하면 안된다는 문장이 있는데,
이 표현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들에겐 큰 힘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끝으로, 환자 보호자들에게 유익한 책을 발간해 주신
저자에게 감사드립니다.
프로이드는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좌우한다고 한다.
융과 아들러는 현재가 정신병의 원인이라고 한다.
허선생님은 아무래도 프로이드와 가깝게 가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자기이해는 3살 무렵 고구마밭에 나가서 길을 잃어 버렸다.
그 때는 창공과 달빛이 나를 덥쳐왔다.
그래서 그 이후로 세상은 나를 배척하는 것이었다.
그 환경에서 나오는 쇼크가 나를 남에게 의존하겠끔 됐다.
그 의존심이 적개심을 가지게 됐다. 그 적개심이 열등감을 낳게 했다.
그 열등감이 <무언가 잘나보려는 의식>을 지니게 됐다.
나는 그 때부터 먼세상과 낯선 세상이 되고 나는 <팽개쳐졌다>.
그런 어린마음이 성인이 될 때까지 연장됐다.
잘나보려는 의식이 적개심을 준동하게 되었다.
적개심과 이에 따르는 의존심이 건강한 성인으로 발전될 때까지 자각을 놓치고 살았다.
중요한 것은 의존심을 포기하면서 받아들여야 된다.
요즘와서야 의존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건강한 어른이 되고 있다. 건강한 어른은 인내력을 견디고 인정하고 살아야 된다.
조금씩 건강해지면서 <소꿉놀이>를 이해하면서 엄마감정이 이제는 새로워지는 것 같다.
요새는 어린마음의 그 쇼크가 오히려 존재계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선생님과 함께 한 30년이 나를 불꽃같은 의지로 살면서 세상이 긍정되고 낙관되게 해주었다.
오로지 견디면서 포기하면서 받아들인다.
<이러면 안되는데...>라는 회의 보다는 <이래도 되는데...>라는 긍정이 더좋다.
회의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러면 안되는데...> 회의를 자꾸 포기해야 된다.
<이러면 안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