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더스티의 마음은 다시 그 소년에게 향했다. 어쩐지 그 소년이 이 일의 열쇠를 쥐고 있을 것만 같았고, 그러면서도 소년 역시 조쉬 오빠만큼이나 찾아내기 어려운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 속에서 사라져간 발자국도 완전히 수수께끼였다.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남자에 대해서도 남자를 피하는 것과 별개로 이제 그가 어떻게 나올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는 더스티가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더스티의 발자국이 손 코티지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 이렇게 내리는 눈송이들이 두 사람의 발자국을 벌써 다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더스티는 저 앞의 승마길과 그 위로 저 멀리 눈 덮인 산꼭대기까지 쭉 뻗어 있는 새하얗고 드넓은 킬버리 무어 황무지의 빈터, 그 사이에 자랑스럽게 우뚝 솟아 있는 레이븐 산과 산기슭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더스티는 기이할 정도로 밝은 빛에 자기도 모르게 매혹되어 버렸다. 더구나 이렇게 눈까지 내리고 있으니 가뜩이나 환한 빛은 섬뜩한 느낌마저 더했다. 어쩐지 밤이 본래의 어둠을 잃고 그 어느 때보다 환해진 것만 같았다.
대기에 뭔가 이상이 생겼다는 느낌을 여전히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상이 생긴 건 바로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주 황당한 짓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스티는 죽고 싶다는 소년의 흔적을 찾으러 돌아다니던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어쩐지 소년이 아직 살아 있을 것만 같았다. 무슨 근거로 그런 확신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짚이는 증거도 그와 정반대되는 것뿐이다. 그는 분명 한 움큼의 알약을 삼켰으니까. 하지만 사라져가는 저 발자국들… 그 속에 뭔가 의미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더스티는 또다시 사일러스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혹시 뭔가 본 것이 있는지 할아버지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이번에도 역시 그만두기로 했다. 설사 할아버지가 입을 뗀다 하더라도 그래봤자 왜 자기를 성가시게 하느냐며 한바탕 잔소리만 늘어놓을 게 뻔하니까. 무엇보다도 이제는 서둘러 집으로 향해야 했다. 더스티는 스톤웰 공원에 있는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눈에 대한 더스티의 짐작은 옳았다. 조금 전 더스티의 발자국과 소년의 발자국은 방금 내린 눈에 완전히 덮여버렸고, 지금 내리는 눈송이는 아주 굵어서 지금 남기는 발자국 역시 조만간 흔적도 없이 덮이고 말 터였다. 더스티는 스톤웰 공원 정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격자무늬 창살 사이로 공원 안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공원 안에는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아무런 발자국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더스티는 다시 소년을 떠올렸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더스티가 소년에게 낮게 속삭였다.
“네가 살아 있는 거 알아. 직감으로 알 수 있어.”
더스티는 어린이 놀이터와 나무들과 운동장을 죽 훑어보았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온통 하얀 눈 천지였고 그 위에 계속해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더스티는 정문을 타고 넘어 그네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지금 이곳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다. 그네 옆에 멈춰 서서 그네를 밀었다. 그네 꼭대기에서 금속이 삐걱거리는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고, 그네의 움직임이 멈추면서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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