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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 공화국 ㅣ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3월
평점 :
인도에서였다. 가게에 앉아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차려입은 인도 여자가 지나갔다. 사리로 몸을 두르고- 정확히 말하자면 허리에- 위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망사를 입고 있었다. 금색 액세서리를 팔과 목, 귀에 주렁주렁 단 모양새는 영락없는 인도여자지만 머리에는 터번 같은 걸 쓰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턱 아래 툭 튀어 나온 목젖이 보였다. 너무 뚫어져라 보고 있었는지 주인이 "He's a man"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말도 들었다. 인도 여성은 가부장적인 문화 탓에 자유롭지 못하다. 교육, 직업, 결혼 등 여성의 삶은 남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니 여자는 결혼하기 전까지 아버지의 관리아래 집안에서 주로 생활한다. 그 사이 남자들은 자신의 욕구를 채울 다른 방법을 찾는다. 다른 남성. 그래서 인도에는 게이가 많단다. 서두가 길었다. 이 이야기를 꺼낸 건 과연 문화를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룸살롱 공화국'에서 강준만은 룸살롱을 보면 한국 사회가 보인다고 한다. 해방정국부터 2010년까지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이 룸살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석했다. 해방이후 정치인들은 국정을 논의하기 위해 요정에 드나들었다. 당시 유명한 요정들은 청와대 근처 종로구에 있었다. 70년대, 경제가 발전하면서 졸부들이 생겼다. 요정은 졸부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룸살롱으로 탈바꿈한다. 작은 룸은 폐쇄적이고 저렴해서 접대하기 좋다. 접대를 받는 남성, 접대를 하는 남성, 접대를 하는 여성이 드나들기 시작한다. 정치인, 폭력배, 사장을 거쳐 경찰, 검사, 판사, 연예인, 언론사 등 각종 권력기관이 룸살롱을 이용, 한국 여성의 취업률을 높이고 경제 발전에 일조한다.
비단 권력기관만이 아니다. 지방 작은 동네에 가보면 다방, 단란주점이 슈퍼보다 많다. 중국집은 문을 열면 파리 날리기 일쑤라 금방 문을 닫는데 다방은 매년 리모델링하느라 공사가 끊이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우리 동네가 전국에서 다방이 두 번째로 많다는 기사를 봤었다. 농부들이 가을 추수로 번 돈을 겨울 내 다방에다 쓰느라 평생 목돈을 만지지지 못한다나.
그럼 왜? 남자들은 룸살롱에 가는가. '아이폰과 룸살롱'이라는 칼럼에서 김정운 명지대 교수는 남성들이 터치를 원하는데 아무도 만져주지 않아서, 만져지고 싶어서 룸살롱에 간다고 한다. 최재현은 한국사회의 패거리주의 때문이라고 본다. 강준만은 최재현에 가깝다. 뛰어난 개인은 없는 것 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사회. '조직의, 조직에 의한, 조직을 위한' 조직의 공동체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 물론 조직의 단합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조직원들이 공동체를 지키려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한다.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경찰 한 명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면 전 경찰이 보호하고 나선다. 지난 달 추락한 아시아나 항공기 사건도 그렇다. 죽기 몇 주일 전 수 십 억 원대의 보험에 든 것을 두고 기장이 고의로 사고를 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파일럿 단체는 그건 자신들을 모욕한 것이라며 즉각 대응했다. 파일럿의 연봉이 몇 억인데 그깟 보험금 때문에 사고를 냈겠냐는 것이다. 이처럼 당은 당끼리, 직업군은 직업군끼리, 회사는 회사끼리 내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 잘못은 일단 덮어두고 위로가 먼저다. 한 식구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패거리 없는 사람 혹은 공동체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김용철 변호사처럼)은 영원히 비주류다. 주류인 남자들은 '우리끼리' 문화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인 룸살롱을 찾는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남자들은 조직의 공동체화를 위해 룸살롱을 찾는다. 이 문화는 어디서 왔는가. 아무래도 가족공동체와 충, 효를 중시하는 유교에서 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 개인보다 조직을 중시하는 문화권의 남자들은 주로 룸살롱에서 일을 하나? 공금을 횡령하고, 아부를 하고, 성을 돈으로 사는가?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의 성이 억압적인 문화권에 동성애자가 더 많은가? 조선시대 여성들은 퍽이나 개방적이라서 우리나라는 동성애자가 적은건가.
요는 이렇다. 문화의 변천사를 어떻게 인과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겠냐는 거다. 그것보다 '룸살롱 공화국'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가 가진 다양한 병폐를 다시 한 번 생각했고, 그 원인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먼저, 성을 돈 주고 사는 행위는 여성에게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는 것, 여성이 함께 참여할 수 없는 룸살롱에서 업무를 한다는 점에서 여성을 제 2의 성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 술-돈으로 성과 의리를 산다는 점에서 감정노동에 약하다는 것, 비리를 저지르고도 동료를 감싸는 것은 도덕적 양심이 없으며, 스스로 의리 있다고 착각하는 공동체 주의자라는 것, 혹은 비주류가 되기 싫어 남들 하는 짓 따라하는 겁쟁이라는 것, 접대 받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지 음미하는 나르시스트라는 점, 돈과 권력에 목숨 거는 한탕주의자라는 점, 이런 것들이 오늘날 한국을 룸살롱 비리 공화국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