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시계 - 개정판
앤 타일러 지음, 장영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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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사랑 이야기" 이자 "중년 부부가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니. 어쩜 이렇게 독자의 흥미를 팍팍 떨어뜨리는 추천 글이 다 있나. - 싶었다. 그래도 엔 타일러의 명성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 깔끔한 노란 표지 때문에 구입 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리뷰하나 읽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배경은 미국, 시대는 20세기 초, 중반. 할머니(이제 49세인데, 할머니다.) 매기와 남편 아이러. 어느 날 매기의 옛 친구 세레나의 남편이 죽는다. 매기는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아이러와 길을 나선다. 장례식 참여. 돌아오는 길에 아들(제시)과 이혼한 며느리 피오나 집에 들린다.(피오나는 딸 리로이와 함께 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불끄고 잔다. 479페이지. 이것이 전부라면 전부지만, 진짜 전부라면 설명할 필요도 읽어볼 필요도 없겠다.

거두절미하고, 심리 묘사 탁월하다. 읽는 내내 중년의 아줌마가- 발목이 두꺼우며, 플리플랍을 신고, 화려한 꽃 무늬가 있는 원피스로 거대한 엉덩이와 배를 가리고 있는-  싱크대를 닦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만약 비슷한 아줌마 몇 명 데려와도 누가 매기인지 단번에 알아낼 수 있을 만큼 케릭터가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매기와 아이러는 특이함이라고는 모르고 산, 우리 동네 슈퍼에 진열된 카스같은 사람들이다. (너나 나나) 그럼에도 그들은 튄다. 앤 타일러의 눈에 비친 그들의 삶은 말 한 마디, 동작 하나가 버릴 것이 없다. 그게 삶이다. 앤 타일러가 그 평범함을 콕 집어 냈기에 매기와 아이러는 튄다.   


선에서 조금 삐져 나온 것을 끼워맞춰서라도 제자리를 찾고 만드려는 매기. 현실을 알려주려는 아이러. 매기는 아들 제시와 며느리 세레나가 아직 서로 사랑한다고 철썩같이 믿는다. 둘이 엮일 기회만 있으면 다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것만 같다. 제시가 다른 여자를 만나도 매기는 그것이 제시가 세레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약간 거짓을 보태서라도 삐뚤어진 상황을 바로 잡으려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누려야 하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는 고치려하지 않는다. 남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고 상황을 조정하려는 매기때문에 새로운 문제만 더 생긴다. 현실은 현실이다. 맞춰야할 선이란건 없다. 삐져 나온 것이 없으니 끼워 맞출 것도 없다. 현실을 직시하면 된다.  

   
 

"예기치 않던 일이 있었어요."  매기가 말했다.

"여기서 정비공장 사이가 얼마나 된다고." 

"피오나가 라디오에 나왔어요." 

"다섯 정거장밖에 안 되잖아!, 다섯 아니면 여섯." 

"아이러, 피오나가 결혼을 한대요. " 

"피오나라니?"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매기는 끼어들고 간섭하고 아이러는 무심하다. 그렇지만 둘은 너무나 많은 것을 공유해 왔다. 열 아홉의 매기와 스물의 아이러. 결혼을 하고, 제시와 데이지를 낳고. 부모님을 잃고, 제시가 결혼을 하고, 손녀를 보고. 이제 자식들은 모두 떠나갔다. 둘만 남은 집. 수 많은 만남과 이별을, 긴 시간을 함께 했다. 단지 오래 함께 있었고, 추억을 많이 가졌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아니라 삶을 함께 나눴다. 만남과 이별 끝에 결국 두 사람만 남았다. 이제 어찌해야 할까.  

Breatihing Lessons- 종이시계의 원 제목이다. 중년은 끝이 아니다. 매기와 아이러도 한때는 청년이었다. 그때는 그때를 처음으로 살았다. 중년도 마찬가지다. 중년을 연습해본 사람은 없다. 중년으로 사는 거다. 청년과는 다르게, 하지만 처음으로 중년을 사는 것. 앤 타일러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잠들기 전 매기는 창문으로 젊은 부부가 사이좋게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아이러, 우리는 나머지 여생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가죠?" 

아이러는 매기를 자기 옆에다 앉히고, 하던 카드 게임을 계속한다. 지금껏 매일 그래왔듯이 말이다. 그 둘의 시계는 종이시계 처럼 불완전해서 곧 멈출 것이다. 하지만 매기는 안다. 아이러의 카드 게임이 '이리저리 옮겨도 무방한 처음의 간단한 단계를 지나 지금은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져 이제야말로 정말 기술다운 기술과 판단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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