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아직 제대로 취업을 못해봤는데, 벌써 친구들은 이직을 고민한다. 추석 연휴에 만난 친구도 음식점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어떤 음식이 최근 먹었던 음식들과 겹치지 않는지, 오늘은 어떤 영양소를 뱃속에 넣어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내게 불쑥 사표 얘기를 꺼냈다. 아직 메뉴도 정하지 못했는데, 친구 말에 보일 반응까지 생각해야 했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떤 결정을 먼저 해야 할지 망설였다면 거짓말일까.
남들이 부러워하고 보수가 짭짤하고 몇 백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하는 그 직업을 갖기 위해 그는 2년 가까이 애를 썼다. 주변인들은 그가 남들에 비해 그다지 노력이란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 직업을 손끝에서 놓쳤을 때 그의 얼굴을 봤다면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깨는 물론, 눈 꼬리, 입 꼬리, 심지어 볼에 난 여드름까지 축 쳐져 있었다. 마치 소금에 절인 배추 같았다. 그랬던 그가 일을 시작한지 8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 한 것이다. 그것도 추석 연휴에!!
변화. 그가 변화를 생각한 건 그 직업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체적 특성과 맞지 않아서다. 애초에 그걸 모르고 입사했던 건 아니다. 현실은 예상보다 가혹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도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무엇보다, 그가 키우고 싶은 자질은 곁가지로 물러나고 그 직업에서 필요한 자질은 그가 발휘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한 마디로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탔던 거다. 이런 결론에 이르면 더는 회사를 참고 다닐 필요가 없다. 원하는 치즈가 없는데 맛없는 치즈를 고수하며 창고에 남아 뭣 하겠는가.
하지만 다음 날 다시 만난 친구는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그러나 변화가 두려워서 고민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치즈가 정말 그 치즈인지 왜 지금 가진 치즈로는 만족을 못하는지, 내린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그것에 책임 질 수 있을지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사라진 치즈의 망령을 쫓고 있는 게 아니라, 눈앞에 아주 먹음직스런 치즈를 두고 다른 치즈를 찾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굶어죽을 수 있다. 더 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변화를 찾아 나서야 할까?
‘내 치즈를 누가 옮겼을까?’에서 헴은 치즈가 사라졌다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상황이 변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니 자신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헴과 달리 허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 모험에 나선다. 계속 있다간 굶어 죽을 지경이다. 헴과 허처럼 주변 상황이 급격히 변했을 때 우리는 현실을 인정하고 변화하려고 하기보다 그대로 주저앉고 싶어진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교훈을 이용할 일이 잘 없다. 왜냐하면 상황은 늘 복잡, 다양하고, 생각은 이보다 한층 더 꼬여있기 때문이다. 치즈가 있는지 없는지 현실을 보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어떤 치즈를 찾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으며, 무엇보다 입맛이 수시로 변하기도 한다!!
자기 계발서의 문제점이 바로 이거다. 현실을 무 자르듯 잘라 ‘요렇게 하면 이렇게 됩니다.’고 얘기하는데, 엄밀히 따져 요렇게 하면 반드시 이렇게 되는 게 아니라 요렇게 해서 이렇게 되는 경우가 있는 거다. 사람들에게 열 가지 규칙만 잘 지키면 행복해질 거라고, 성공할 거라고 하는 데 이것은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고, 안도감을 주어 판매 부수를 늘이려는 수작이다.
인생은 복잡하다. 잘 살려면 심사숙고해야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나쁘지 않다. 결국 그만큼 자신의 인생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