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여차저차하다 읽을 책이 동났다. 시간은 남고 할 일은 없어 혹시 읽지 않은 책이 있나 책장을 둘러 보았다.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이렇게 2년 만에 먼지를 벗었다.   

이 책은 2년 전 어떤 강사가 준 것이다. 한 학기동안 조교 일하느라 수고했다는 뜻에서다. 책을 받는 순간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훑어보았다. 읽을 일이 없겠구나라는 생각과 내가 아니라 강사에게 필요한 책이 아닌가라는 조롱조의 생각을 했다. 그 교수는 한 학기 내내 수강생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얘기했다. 지나가면서 얼핏 듣기에 그의 고통은 물질적이라기보다 정신적인 것이었다. 그런 상처를 가볍게 보는 건 아니지만 용돈을 마련하려고 조교일을 하는 내게 바바리코트 입은 그의 과거 슬픔은 아이의 칭얼거림처럼 들렸다. 더 싫었던 건 자신이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가봤기에 그 문제들을 푸는 열쇠 또한 쥐고 있다는 듯한 그 말투였다. 그런 사람이 내게 이런 책을 줬다는 건, "학생, 그렇게 하지말고 이렇게 해봐."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는 거였다.   

그럼에도 책을 집어 든건, 읽을 책이 없기도 했고 공지영씨에게 호기심이 생겨서다. 경향신문에서 공지영씨가 연재하는 '지리산 이야기'가 꽤 괜찮았던 거다. 이 책 또한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니 '지리산 이야기'같이 풋풋하지 않을까 싶었다.  

괜찮았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거나, 자신을 변명하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일을 겪었거든.'이 아니라 '나는 이러고 놀아'가 끝이라서 거부감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런거 이래서야.'가 아니라 '나는 이래.'여서 깔끔했다. 그저 보여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책, 판단하고 싶음 하고 말면 마는 책. 그래서 읽는 내내 편안했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서 실망하는 이도 있겠다. 공지영이라는 상품성있는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 보고싶은 독자의 관음증을 타깃으로 나온 상품이라 비판하는 이도 있겠다. 하지만 에세이가 꼭 탁월한 통찰력을 갖추어야 하는 건 아니다. 공지영씨는 '사소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주변에 쏟아내고 그 쏟아냄에 변명하는지를 생각해보라. '풀잎, 감나무, 라디오 프로그램, 반찬, 세금' 같은 이야기로 독자에게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다면 이 책의 가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욱이 몇 몇 에피소드는 유쾌하기 까지했다. 하나 소개하자면

   
  내 친구는 결혼 초기에 아이가 막 걸음마를 할 때,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는데 아이 우는 소리에 달려와보니 아이가 넘어져 입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했다. 야구 중계를 보던 남편에게 "애 하나 안 본다."하고 잔소리를 하자 남편이 "내가 안 밀었어."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지금도 웃는다.  
   

  유머도 각자 취향이 있겠지만 나는 이 부분이 우스웠다.  

문득 책을 읽으면서 화를 내거나, 우는 게 아니라 유쾌하게 웃어본 적이 있는지 생각했다. 늘 심각한 책, 영화, 뉴스, 수다에 싸여 자지러지게 웃은 기억이 없다. 학부때는 술에 취해 무단횡단이라도 하면서 베시시 웃었는데  이제 그럴 일이 없다. 어쩌면 그 때 그 강사는 표정 없는 내 표정을 보고 내 일상이 어떤지 눈치 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서야 그 강사가 준 호의를 누릴 여유를 가졌고 덕분에 지난 밤 간만에 웃어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