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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복거일 지음 / 알음(들린아침)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한테 이런 질문을 한 적 있다. 만약 1945년 해방 후에 살고 있었다면 북한과 남한 중 어디에서 살았을 것 같으냐고. 내가 만약 그 때 학생이었다면 나는 아마 ‘사회주의’사상에 끌려 북한으로 이사를 갔을 것이다. 뭘 잘 몰랐어도 ‘자유’보다 ‘평등’이 더 귀에 솔깃했으리라. 북한으로 넘어간 ‘가상’의 나는 북한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전제 군주제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잘못된 선택을 후회했을 것 같다. 그건 내가 원한 게 아니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는 북한을 ‘악’으로 규정했기에 나는 ‘악’의 편을 선택한 값을 톡톡히 치르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히틀러처럼 역사의 흐름에 큰 ‘획’을 긋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태어난 곳에서 어른들이 가르치는 전통과 관습을 몸에 익히고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개인의 일반적인 삶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과거가 되면 후대의 사람들은 역사를 만들어 평가를 내리는데 이에 따라 ‘미개인’이라 불릴 수도 있고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중요한건 정작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으로 역사가 진행될지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며 이런 것보다 자신의 안위와 공동체의 평화를 더 걱정하기 마련이란 점이다.
이런 시각으로 역사를 본다면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2003년, 들린아침)에서 저자 복거일이 한 말에 수긍이 간다. 일제강점기에 공무직을 수행했던 경찰이나 교사, 공무원을 모두 친일파로 처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단 그들의 행위는 ‘친일’이라기보다 ‘친체제’적이다. 오랜 기간 계속된 식민통치와 막강한 힘을 가진 일본, 식민통치가 일반적인 제국주의시대를 살아야했던 그들이 ‘독립’을 꿈꾸기보다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야했던 그 사람들에 대해 지금 우리가 그들을 비난할 도덕적 근거나 권위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누가 친일이고 누구를 처벌해야 하는 걸까. 저자는 학살과 같은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친일’행위가 어떤 것이냐다. ‘조선이나 조선 사람의 이익보다 일본이나 일본 사람들의 이익을 앞세우는 행위’ 혹은 ‘식민통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사람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으로 분류해볼 수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한 사람의 행위를 무 자르듯 나누기가 불가능하다. 조선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일본에게 이득을 준 행위, 조선총독부의 고위 관료였으나 조선인들의 권리 향상에 힘 쓴 행위, 이런 것들을 형평성에 맞게 처벌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법적인 문제도 들고 있다. 친일 행위가 그 당시의 법을 어기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처벌하는 것은 소급 입법이다. 그리고 단심제를 적용했다는 것도 문제다. 피해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처벌을 어렵게 한다. 이에 더해 저자는 친일파청산이 우리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효용성의 측면에서 반대한다. 친일파로 지목된 사람들은 보통 조선총독부 산하의 기관에서 일하던 관료들인데 이들을 모두 처벌하면 국가 운영이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했다고 평가받는 북한은 관료조직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근거를 갖고 조목조목 검토하는 저자의 증명 방식과 그 내용에 상당부분 공감한다. 궁극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인 ‘증오의 물살을 낮추자’는 것도 한일 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단, 두 가지 사실만은 지적하고자 한다. 일제강점기에 대해 저자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 즉 가장 큰 전제이자 책의 논리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이다.
“식민통치 시대 말기엔 거의 모든 조선인들이 일본의 통치를 당연하고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일본인이라 여기게 되었다."
친일파 처벌이 법을 소급적용하는 것이란 주장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법을 긍정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반민족처벌법에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건 식민통치 시절의 법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제국주의의 법을 긍정하는 데에는 조선인들이 일본 통치를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일본인이라 생각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물론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백보 양보해서 아무리 독립운동의 역사가 마치 박정희 정권의 ‘이순신 발굴하기’처럼 애국, 민족주의를 위해 발굴된 역사고 대다수 사람들은 독립운동에 가담하지 않고 현실에 맞춰 살았다고 해도 그들이 일본의 통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주장은 수긍하기 힘들다. ‘존엄성’, ‘자유’, ‘인권’같은 이념들이 널리 퍼져 일본인과 조선인이 평등한 기회를 제공받고 조선인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은 게 아닌 이상 말이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를 700년간 받아 언어도 잃었지만 결국 독립했다. 유대인들은 이 천년이나 떠돌아다녔지만 ‘유대인’이란 민족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통치 하에서 억압받고 억울한 일을 겪는 조선인이 있는 이상 그 상황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 살아남기 위해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체제에 순응하는 것과 체제를 당연시하는 것은 별개의 얘기다. 거기다 고작 35년에 자신을 ‘일본인’이라 생각했다는 것은 너무 큰 무리수가 아닌가 싶다.
두 번째는 식민지근대화론인데, 저자는 일본의 조선 식민 통치가 조선 근대화의 초석을 닦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유럽 제국들의 식민통치와 달리 일본의 식민 통치는 조선을 ‘채취적 사회’가 아닌 ‘정착적 사회’로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오히려 조선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 정책의 본질이 동화를 통한 제국 확장이었으므로 일본은 식민지들을 영구적으로 소유한다는 전제 아래 통치했다.” 근거는 법 체계 도입, 재산권 보호, 철도 건설로 사회의 결집력을 높이고, 상업 장려로 대외무역이 증가, 학교 교육과 직업 훈련으로 노동력의 질이 향상됐다는 점이다. 조선 말 정체 돼 있던 인구증가율이 식민통치기에 급격히 늘어난 것이 바로 조선인의 생활이 안정적이고 살만 했다는 걸 방증한다고 한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일본의 조선 식민 통치가 결과적으로 놓고 봤을 때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식민 통치가 없었다면 조선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못했거나 늦어졌으며, 고로 조선인들은 열등하다.’ 는 주장을 펴는 일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있는데 이는 단지 조선의 경제가 일제강점기동안 성장했다고 해서 참이 되는 명제가 아니다. 사실 이는 ‘가정’에 의한 결론으로 증명될 수 없는 명제이기도 하다. 다른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것은 사실이니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렇더라도 강제적 식민통치가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 발 물러선 이들의 주장은 이런 의문을 남긴다. ‘경제는 성장했다. 통치는 잘 못 됐다.’라는 말을 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그래서 일본에게 고마워하자는 건가? 새로운 견해가 없지 않은가.
설령 일본의 통치가 조선의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식민통치는 눈곱만큼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일본은 일본을 위해 식민지를 건설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이 희생됐다. 결과적으로 조선인이 성장했다고 그 폭력이 덜 나빠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식민통치 때문에 우리사회가 안고 살아가야할 상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것이다.
육이오 전쟁은 지난한 전쟁이었다고 한다. 군인들이 와르르 내려왔다 와르르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늦은 밤 군인들이 느닷없이 쳐들어와 “국군이요? 인민군이요?”라고 물으면 50% 확률로 생과 사를 넘나들어야 했다. 나였다면 아마도 “당신과 같은 편이요.”라고 했을 것 같다. 이념도 중요하지만 이념 없이 사는 이들에게 이념을 강요하고 다른 이념을 지녔다고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돌프 아이히만이 아니라면, 오늘날의 잣대로 그 때 그들을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썩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