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자주 마시다보면 질릴 때가 있다. 각성효과는 필요한데 커피는 쳐다보기도 싫을 때 에너지음료를 마시곤 한다. 카페인함유량이 더 많아서인지 각성효과는 확실히 에너지음료가 더 낫다. 하지만 특유의 가공한 듯한 맛과 왠지모르게 몸에 해로울 것 같은 느낌때문에 즐겨마시지는 않는다. 지난주는 아침마다 커피대신 '핫식스'를 마셨다. 실제로 능률이 얼마나 더 올랐겠냐마는 정신바짝차리고 오전을 보내고나면 뭔가 알찬 시간을 보냈다는 뿌듯함이 드는 건 사실이다. 커피든 에너지음료든 카페인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긴 각성제가 없다고해서 나만 능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어쩌면 없는게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능력자의 하루는 오래간다!"
만약 카페인이 비싸서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음료가 아니라면 카페인을 구입할 여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능률이 달라질테고 그렇다면 카페인을 손에 쥔 사람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더 길어질 것이다. 그가 바로 능력자다. 일의 능률을 올려줄 물질을 구입할 여력이 있는 사람, 돈을 쥔 사람말이다. 그들의 하루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길다. 집에 가사도우미를 둘 여력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낼 확률이 높다. 비지니스석을 타고 출장을 가는 사람이 이코노미석을 타고 출장가는 사람보다 덜 피곤하기에 일의 성과도 좋다.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보다 길에서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더 크다. 하지만 운전기사를 쓰는 사람은 주차를 하거나 차를 빼는 시간조차 절약한다. 이건희회장이 회의에 늦으면 임원들은 그를 기다리고 회장이 일찍 회의를 시작하면 늦은 임원들은 중요한 시간을 놓치는 것 처럼 능력자는 일분일초도 낭비하지 않는다.
마이클 샌댈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그는 오늘날 시장에서 돈으로 서비스와 재화만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까지 매매의 대상이 된다고 꼬집고 있다. 대리모를 돈으로 사거나 놀이동산에서 긴 줄을 서는 대신 돈으로 합법적인 새치기를 하는 것이 예다. 모임에서 지각이나 결석에 벌금을 부과하면 지각자가 '벌금'으로 자신의 과오를 상쇄했다고 양심의 가책을 덜 느껴 지각자가 속출한단다. 돈으로 양심을 사는 것이다. '합법'화 하는 것이 법의 테두리안에서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면죄부를 받은 양 비도덕적인 행위를 양산하고 그런 행위에 거리낌이 없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능력자와 보통인의 격차는 이미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그들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48시간인데 이를 따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갖는다고 해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조선시대에 농민들도 과거시험을 볼 수 있었다. 단지 먹고살기 바빠 공부할 여력이 없었을 뿐. 가진 자들이 도덕과 양심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가난'과 '질병', '무지',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특히 둘을 연결해주는 '인간'이라는 바탕, 거기서 나오는 '도덕'이라는 양심이 상실된 사회는 전제 군주제, 절대 왕정때와 다를 게 없다.
사회계약서를 다시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