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인가. 미식가 친구를 따라 압구정 현대백화점을 찾았다. 푸드코트 음식치고 맛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별 기대 안했다. 대기번호 오백번인가를 받고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고나서야 소문난 '팥빙수'를 먹을 수 있었다. '맛'만 놓고 본다면, 이탈리아 화덕 피자와 냉동피자의 차이라고할까나. 몸에 좋을 건 없지만 달달한 맛으로 먹는 팥빙수가 아니라 영양을 골고루 갖춘 건강 음식같았다. 밍밍한 '웰빙'이 아니라 구수한 '옛맛' 말이다. 맛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 시간을 기다려서 8000원을 주고 먹을 맛은 아니었다.) 비결은 '팥'에 있는데 친구말인 즉 팥을 전라도 어디에서 공수해와서 백화점 지하에서 직접 쑨단다. 장사가 하도 잘돼서 체인하나를 더 내기로 했다는데, 차라리 바퀴베네처럼 전국체인을 만들지 싶었다. 그런데 백화점 입점도 주인을 겨우 설득했다나.
요즘 백화점들이 '맛집'을 입점시키려고 이태원, 홍대, 가로수길 등등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는 모양이다. 어떤 가게는 백화점 직원이 몇 년을 설득해서 겨우 입점시켰다고 한다. 대게 가게 주인들은 백화점 입점을 꺼리는데 그들은 양질의 음식을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싶지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체인을하면 음식의 질이 떨어져 가게 이미지도 상하고 관리하기도 힘들어서 섣불리 입점하지 않는다. 이렇게 소문난 맛집들이 맛의 '비법'을 쥐고 혈육에게만 전수하는 사이 우리들은 대기표를 쥐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주인장들은 누구를 위해 그 맛을 독점하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독점'을 깨는 데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질' 저하다. 프로야구 10구단 창단을 반대하는 이유도 질저하였다. 실제 로스쿨 도입으로 새내기 법조인의 수가 배로 늘자 이들이 갈 곳이 없어 6급직에도 지원자가 속출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로스쿨 졸업자들끼리 아무리 취업자리가 없어도 질떨어지는 곳에는 지원을 말자는 결의를 하고 실제 6급에 붙은 사람은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진실유포죄'에서 박경신은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법조인의 숫자는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낮고, 이들이 사회적으로 누리는 독점이윤은 지대하다... 로스쿨 정원 제한을 하루빨리 폐지하거나 획기적으로 늘이고 변호사 시험은 완전한 절대평가로 만들어야 한다. .. 법률소비자 보호를 목표로 하지 않는 모든 진입 규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고 한다. 검찰과 법원의 친정권적인 행동이 '특권층으로서의 정체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보고 법조인의 수를 늘려 그 정체성을 없애자는 것이다. 법조인의 수가 많아지면 변호가 필요한 기업이나 사람들이 더 쉽게 그들의 지식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일반인의 생활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만큼 법조인이 필요할 때가 많다. 그런다고 '능력주의'적 사고 방식이 딴 데 가는 것도 아니고 게 중에 엘리트는 중수부에가거나 김엔장에서 스카웃해갈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일부 의대생을 따로 뽑아 정부 장학금으로 교육을 시키고 5년동안 의료취약 지역에서 의무 근무하게하는 장학의사제도도 같은 맥락이다. 초보 의사인 군의관을 지방 보건소에 보내는 것보다 훨씬 전문적일뿐더러 진료를 받기 힘든 지방사람들에게 병원 접근성을 높히는 것이 실력 뛰어난 대도시 병원 의사를 찾아가는 것보다 더 큰 의료혜택이다.
"이윤추구, 출세주의가 질서를 이루는 사회에서는 전문가는 과학의 기술을 독점함으로써 노동자나 농민의 전문적 향상을 저지하여 전문가들은 그 권위주의와 신비주의에 올라타고 특권적 지위를 영속화하려 한다."
문화대혁명을 이끌었던 모택동 일파의 말이다. 그들은 특권층의 지위를 없애고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려고 했다. (공과를 따지려는게 아니라) 이들은 의학의 대중화를 추구했는데 " 의학이란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50세로 죽을 것을 51세까지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고귀한 두뇌와 거액의 돈을 쓸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 어쩌면 51세까지 살지도 모를 생명을 50세에서 버려야 하는 가난한 대중의 전반적 치료와 보건을 위한 인간의 기술"이라고 했다. 즉 희귀병치료보다 말라리아같은 대중을 위한 치료를 우선한다는 말이다.
우리야 북쪽에 희귀한 공산국가와 60년째 총부리를 겨누고 있어 '공산주의'하면 잡혀가기도 하지만 사실, 민주주의의 정치이념인 '국민주권'-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니까 국민의 인간적인 삶을 국가가 도모해주는 것이 사회주의나 민주주의 둘 다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좋은 질의 서비스를 모두가 누릴 수 없다면 아니 그런 서비스는 바라지도 않으니 어느정도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최저 생활'의 질을 조금 높여주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 한쪽에 쏠린 독점을 푸는 것이 첫 걸음이라 할 수 있겠다.
국민이 아닌 '자본'과 '개인의 능력'에서 나온 권력이 권력을 독점하는 요즘, 그리고 무더위에 팥빙수가 그리워지는 요즘, 현대백화점 푸드코트에 있는 팥빙수 가게 사장님이 '비법'을 창업자들에게 전수해 대중들이 싼 값에 맛난 팥빙수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셨음 하는 바람이다. 한 오천원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