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슐리외 호텔 살인 클래식 추리소설의 잃어버린 보석, 잊혀진 미스터리 작가 시리즈 1
아니타 블랙몬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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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클래식 추리 소설 완전 내 취향이다. 저자는 애거사 크리스티와 동시대 사람인데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이다. 1000여편이 넘는 단편과 몇 편의 장편을 썼다고 하는데 일찍 세상을 등지는 바람에 그대로 묻혀버린 작가라고 한다.


   한적한 미국 소도시의 고만고만한 레지던스 호텔인 리슐리외 호텔에는 장기 투숙객들이 몇 년째 같은 객실에서 묵고 있다. 직원들도 호텔 커피숍의 종업원들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 호텔의 오랜 식구들이다. 장기 투숙객들은 서로가 서로를 잘 알(혹은 안다고 생각)고 과도한 사생활의 간섭 없이 그럭저럭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호텔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주일정도 호텔에 묵고 있던 한 남자가 호텔의 장기 투숙객인 미스 애덤스의 방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경찰은 즉각 호텔의 장기 투숙객들을 용의자로 한정하고 그들을 상대로 취조를 시작한다. 한정된 공간에 갇힌 채 받는 경찰의 취조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닮았다. 아무런 문제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무언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 하고 어딘지 수상하게 생각된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의심한다. 역시 사람들의 관계란 위기가 닥쳤을 때 재정립되게 되어있다.


   여기서 화자는 의도치 않게 자꾸 사건과 엮이게 되는 50대 정도의 독신녀, 애들레이드 애덤스이다. 스마트하지도 않고 덩치도 우람한데다 관절염까지 있어 날쌔지도 못한 그녀의 활약이 매력적이다. 본 사건도 사건이지만 본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투숙객 저마다의 비밀이 서로의 관계를 옭아매고 결국 본 사건과 연결되는 방식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1930년대의 작품이다보니 현대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건 감안하고 읽으면 좋겠다. 특히 저자가 남부출신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엉클 톰스 캐빈>을 비하하는 대목에선 약간 뜨악하게 된다. 애거사 크리스트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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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 하늘의 신비를 찾아서 - 사진과 함께 즐기는 경이로운 천체의 향연
헬가 판 루어.호버트 실링 지음, 이성한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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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읽은 소설을 가장한 과학서인 쬐끔은 유치했던 <구름 왕자>가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낮과 밤에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다룬 책인데 그 중에서도 구름에 관한 이야기가 분량이 꽤 된다. 역시 이래서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으면 좋다는 당연한 생각을 또 잠깐 해본다. 요즘 하늘 볼 일이 있나? 일단 집밖을 거의 나가질 않으니 하늘 볼 일이 별로 없고 내 책상 위치가 창을 마주보고 있기는 하지만 집이 동남향이라 오전에는 해가 정면으로 비추어서 늘 커튼을 닫아놓고 살다보니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하늘을 안보고 산다. 하지만 파랗게 맑은 하늘을 보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하얗고 뭉글뭉글한 구름이 보조 출연해주면 더 좋고.


   책은 네덜란드 기상학자와 네덜란드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아마추어 천문학자가 공동 집필한 것인데(오! 아마추어 천문학자 분은 소행성 중 하나에 자신의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0986 호버트!), 우리가 하늘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천체 현상을 아름다운 컬러 사진들을 가득가득 담아서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 매우 중요하다. 사진이 없었다면 문체가 좀 딱딱한 편이라 엄청 지루한 과학서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진짜 낮과 밤 하늘에서 일어나고 관찰되는 모든 현상이 담겨있다! 태양, 구름, 달, 무지개, 바람, 천둥, 번개, 비, 별, 오로라, 혜성, 유성 등이 주인공들이고 그들이 하늘에서 펼치는 공연을 총 망라하여 소개한다. 게다가 이 모든 공연이 과학적으로 설명가능한 것들이라니! 과학은 정말 아름다운 학문이다.


   구름의 종류가 그렇게 많다는 걸, 공장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나 비행기가 배출하는 배기가스, 혹은 산불이 만들어내는 구름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왜 하늘이 파란지, 일출이나 석양 때는 왜 붉은 지 같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현상들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아마도 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을 수도 있겠으나 기억엔 없음). 엄청 깊게 들어가는 전문서가 아니고 대부분이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물론 우리나라에서 관측되는 천체 현상은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현상들이라 생활밀착형 지식들이라 할 수 있다. 왜 왜 왜라고 물어보는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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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맨 - 속삭이는 살인자
알렉스 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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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심장 쫄깃해지는 소설을 읽었다. 특히 소설의 중반부까지 각 등장인물의 생각과 사연을 중심으로 클라이막스까지 올려놓는 작가의 재주가 아주 비범하다. 영화 속에서 공포가 최고조에 달할 때 들려올 법한 음악이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청각적이다. 이야기의 서사는 전형적인 스릴러물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마을에서 20년전에 일어난 어린 소년들을 상대로 했던 연쇄살인마 사건, 5명의 아이들이 희생되었는데 그 중 한명의 유해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은 잡혔고 현재 복역중이지만 범인을 잡은 형사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유해를 지금도 찾아다니며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아이들은 납치되기 전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고 해서 범인은 위스퍼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현재, 그 마을에서 위스퍼맨 사건을 모방한 범죄가 일어난다. 그리고 한 남자가 아내와 사별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그 마을로 이사를 온다. 남자와 아이는 그다지 친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고 터놓고 이야기하거나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아이는 자꾸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절대 알 리 없는 존재를 그림으로 그린다. 그리고 아이가 납치된다. 원조 위스퍼맨과 모방범과는 뭔가 관계가 있어보이지만 실마리가 쉽사리 잡히진 않는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동안 보았던 범죄 스릴러 영화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만큼 독창적인 서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의 흡입력 덕분에 몰입도가 좋은 편이다. 루소 형제(조 루소, 안소니 루소)가 영화화하기로 했다는 말도 있는데 제대로만 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중반부까지 심장 쫄깃하게 잘 올라간 클라이맥스가 후반부로 이어지면서는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긴 한데 아마도 범죄에 방점이 찍히기 보다는 서로 서로의 관계에 중점을 둔 이유인 것 같다. 각기 다른 네 종류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쥐고 끌어나간다.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아마도 영화의 흥행이 결정될 듯. 물론 음악이나 음향은 무조건 중요하다.


   아..여기서는 조연 정도의 역할인 어맨다 벡 경위가 나오는데 이분이 주연이 되는 후속작인 <THE SHADOW>도 출간되었다고 하니 번역이 얼른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것까지 읽게 되면 어느 정도 작가의 신간 알림을 신청해도 될런지 감이 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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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은둔의 역사 -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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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로 인해 의도되지 않은 일상 중 하나는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좋던 싫던 가족 구성원들과 복닥거리며 살아야만 했고 혼자인 사람들은 더더욱 혼자가 되어 마치 고립된 듯 한 느낌으로 지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다 이 강요된 시간에 익숙해지면서 누군가는 간절하게 혼자이기를 바랬을 수도 있고 혼자인 것이 너무 체질이라는 걸 발견하여 기존의 별 의미없던 인간관계들을 이 기회에 단절하게 된 걸 기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반면 혼자인 삶을 견디지 못해 디지털 세상에 더욱 몰입하게 된 이들도 있을 지 모르겠다.


   사실 '혼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독거 노인'의 모습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혼자'라는 개념의 역사는 꽤나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혼자 외딴 곳에 틀혀박혀 세상을 등지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는 '은자'의 존재는 실제했으니 말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은둔의 역사에도 시대의 흐름이 있고 일종의 유행이 있음을 사회적 배경과 문학작품에 대한 고찰로 증명하고 있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대부분 18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로 특정되어 있다. 아마도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급격히 발전하고 서로 얼굴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되기 시작한 이후로 인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소망하기 시작했을 지도 모르겠다(물론 그 이전에도 혼자냐 집단이냐 하는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문은 스위스의 철학자인 요한 게오르그 치머만이 18세기 후반에 출간한 <고독에 관하여>라는 책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집단의 치열한 경쟁이나 소란한 도시의 소음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자발적 은둔의 형태로 나타나고 혼자 있기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택한 일시적 은둔이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다. 가장 흔한 형태는 바로 '산책'이었는데 19세기에는 어찌나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이들이 많았는지 도심 거리의 통행 속도가 방해를 받자 영국 당국은 '뚜렷한 목적 없이 배회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만들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단다. 그리하여 혼자 걸을 때 부랑자로 의심받지 않기 위한 해결책은 동물을 동반한 산책이었다고 하니 도심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던 듯 하다.


   어떻게 보면 무해할 것 같은 '산책'의 행위가 사회적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 사회생활을 해야 할 시간(아마도 과거 남성들이 클럽 같은 것을 만들어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그런 관습을 이야기 하는 듯. 지금으로 보자면 일요일 조기 축구같은 모임에 나가는 대신 난 혼자 등산을 가겠소 뭐 이런건가?)에 무책임하게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집단 관례에 민폐를 끼친다 이유였다고 하는데 혼자 있고자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이 이처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한 수단도 꾸준히 진화한다. 산책이 도저히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가정 환경에서 선택한 방법이었다면 집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아마도 주로 그 당시에는 여성이었지 않았을까) 이들이 택한 방법은 집안에서의 여가 활동이었다. 1인 카드 게임이나 자수를 비롯해 우표 수집 같은 혼자 집중해야 하는 취미들이 유행했고 이러한 취미 생활이 밖으로 이어져 원예나 낚시같은 활동은 이와 관련된 실용서들의 폭발적인 출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은둔의 역사는 종교적 행위로 연결되기도 했다. 책에서는 수도원이나 수녀원 같은 종교적 공동체 시설이나 감옥의 독방과 관련된 논란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은둔의 역사'에 감옥까지 포함되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못했던터라 의아했는데 사실 '비자발적 고립'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종교적 시설이나 감옥이 꽤나 비슷하다는 것을 볼 때 이 두 가지가 하나의 장에 포함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현대의 우리로 넘어온다. 혼자 있는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더 이상 혼자 있기 위해 어딘가로 갈 필요는 없게 되었다. 흥미로운 건 '고독과 외로움'의 정의이다. 고독은 비교적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책에서 인용해 보자면 고독은 '집단 속에 있지 않으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의 상태'라고 한다. 스스로 원하거나 통제 가능한 상황이라면 고독으로 그렇지 않다면 외로움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7장은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변화에 관한 것이다. 디지털로 인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연결된 고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먼 미래에 '연결된 고독'을 어떻게 평가하게 될 지는 모르겠으나 물리적으로 혼자일지라도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와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은둔의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진화했지만 요한 치머만이 1791년에 내린 고독은 '자기 회복과 자유롭고자 하는 경향'이라는 정의는 인간의 혼자 있고자 하는 욕망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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