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은둔의 역사 -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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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로 인해 의도되지 않은 일상 중 하나는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좋던 싫던 가족 구성원들과 복닥거리며 살아야만 했고 혼자인 사람들은 더더욱 혼자가 되어 마치 고립된 듯 한 느낌으로 지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다 이 강요된 시간에 익숙해지면서 누군가는 간절하게 혼자이기를 바랬을 수도 있고 혼자인 것이 너무 체질이라는 걸 발견하여 기존의 별 의미없던 인간관계들을 이 기회에 단절하게 된 걸 기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반면 혼자인 삶을 견디지 못해 디지털 세상에 더욱 몰입하게 된 이들도 있을 지 모르겠다.


   사실 '혼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독거 노인'의 모습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혼자'라는 개념의 역사는 꽤나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혼자 외딴 곳에 틀혀박혀 세상을 등지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는 '은자'의 존재는 실제했으니 말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은둔의 역사에도 시대의 흐름이 있고 일종의 유행이 있음을 사회적 배경과 문학작품에 대한 고찰로 증명하고 있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대부분 18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로 특정되어 있다. 아마도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급격히 발전하고 서로 얼굴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되기 시작한 이후로 인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소망하기 시작했을 지도 모르겠다(물론 그 이전에도 혼자냐 집단이냐 하는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문은 스위스의 철학자인 요한 게오르그 치머만이 18세기 후반에 출간한 <고독에 관하여>라는 책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집단의 치열한 경쟁이나 소란한 도시의 소음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자발적 은둔의 형태로 나타나고 혼자 있기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택한 일시적 은둔이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다. 가장 흔한 형태는 바로 '산책'이었는데 19세기에는 어찌나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이들이 많았는지 도심 거리의 통행 속도가 방해를 받자 영국 당국은 '뚜렷한 목적 없이 배회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만들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단다. 그리하여 혼자 걸을 때 부랑자로 의심받지 않기 위한 해결책은 동물을 동반한 산책이었다고 하니 도심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던 듯 하다.


   어떻게 보면 무해할 것 같은 '산책'의 행위가 사회적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 사회생활을 해야 할 시간(아마도 과거 남성들이 클럽 같은 것을 만들어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그런 관습을 이야기 하는 듯. 지금으로 보자면 일요일 조기 축구같은 모임에 나가는 대신 난 혼자 등산을 가겠소 뭐 이런건가?)에 무책임하게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집단 관례에 민폐를 끼친다 이유였다고 하는데 혼자 있고자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이 이처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한 수단도 꾸준히 진화한다. 산책이 도저히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가정 환경에서 선택한 방법이었다면 집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아마도 주로 그 당시에는 여성이었지 않았을까) 이들이 택한 방법은 집안에서의 여가 활동이었다. 1인 카드 게임이나 자수를 비롯해 우표 수집 같은 혼자 집중해야 하는 취미들이 유행했고 이러한 취미 생활이 밖으로 이어져 원예나 낚시같은 활동은 이와 관련된 실용서들의 폭발적인 출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은둔의 역사는 종교적 행위로 연결되기도 했다. 책에서는 수도원이나 수녀원 같은 종교적 공동체 시설이나 감옥의 독방과 관련된 논란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은둔의 역사'에 감옥까지 포함되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못했던터라 의아했는데 사실 '비자발적 고립'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종교적 시설이나 감옥이 꽤나 비슷하다는 것을 볼 때 이 두 가지가 하나의 장에 포함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현대의 우리로 넘어온다. 혼자 있는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더 이상 혼자 있기 위해 어딘가로 갈 필요는 없게 되었다. 흥미로운 건 '고독과 외로움'의 정의이다. 고독은 비교적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책에서 인용해 보자면 고독은 '집단 속에 있지 않으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의 상태'라고 한다. 스스로 원하거나 통제 가능한 상황이라면 고독으로 그렇지 않다면 외로움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7장은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변화에 관한 것이다. 디지털로 인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연결된 고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먼 미래에 '연결된 고독'을 어떻게 평가하게 될 지는 모르겠으나 물리적으로 혼자일지라도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와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은둔의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진화했지만 요한 치머만이 1791년에 내린 고독은 '자기 회복과 자유롭고자 하는 경향'이라는 정의는 인간의 혼자 있고자 하는 욕망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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