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클래식 추리 소설 완전 내 취향이다. 저자는 애거사 크리스티와 동시대 사람인데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이다. 1000여편이 넘는 단편과 몇 편의 장편을 썼다고 하는데 일찍 세상을 등지는 바람에 그대로 묻혀버린 작가라고 한다.
한적한 미국 소도시의 고만고만한 레지던스 호텔인 리슐리외 호텔에는 장기 투숙객들이 몇 년째 같은 객실에서 묵고 있다. 직원들도 호텔 커피숍의 종업원들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 호텔의 오랜 식구들이다. 장기 투숙객들은 서로가 서로를 잘 알(혹은 안다고 생각)고 과도한 사생활의 간섭 없이 그럭저럭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호텔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주일정도 호텔에 묵고 있던 한 남자가 호텔의 장기 투숙객인 미스 애덤스의 방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경찰은 즉각 호텔의 장기 투숙객들을 용의자로 한정하고 그들을 상대로 취조를 시작한다. 한정된 공간에 갇힌 채 받는 경찰의 취조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닮았다. 아무런 문제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무언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 하고 어딘지 수상하게 생각된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의심한다. 역시 사람들의 관계란 위기가 닥쳤을 때 재정립되게 되어있다.
여기서 화자는 의도치 않게 자꾸 사건과 엮이게 되는 50대 정도의 독신녀, 애들레이드 애덤스이다. 스마트하지도 않고 덩치도 우람한데다 관절염까지 있어 날쌔지도 못한 그녀의 활약이 매력적이다. 본 사건도 사건이지만 본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투숙객 저마다의 비밀이 서로의 관계를 옭아매고 결국 본 사건과 연결되는 방식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1930년대의 작품이다보니 현대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건 감안하고 읽으면 좋겠다. 특히 저자가 남부출신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엉클 톰스 캐빈>을 비하하는 대목에선 약간 뜨악하게 된다. 애거사 크리스트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