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그리고 테오 - 반 고흐 형제 이야기
데보라 하일리그먼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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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빈센트가 처음 화가의 길로 들어섰을 때만 해도 아니 그 이후에 죽을 때까지도 그를 위대한 화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빈센트 반 고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의 유명세만큼 그가 동생인 테오와 주고받았던 '영혼의 편지들' 역시 유명하다. 동생 테오가 빈센트에게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런데 이 책 <빈센트 그리고 테오>는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빈센트와 그의 가족들, 그의 인생과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객관적 사실과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마치 일기처럼 시간순으로 기록했는데,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를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몰입하여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흥미롭다. 특히 빈센트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와 다른 기록들을 근거로 재구성한 형제의 관계는 그동안 테오가 형에게 일방적으로 물질적 지원과 도움을 준 것으로만 기억하는 나의 잘못된 편견을 확실히 바로잡아 주었다.

 

 

   또한 이 책에서는 빈센트와 테오 사이의 편지 뿐만 아니라 빈센트나 테오가 다른 가족들 및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편지 내용도 접할 수 있는데 특히 테오가 사랑하는 여자(후에 그의 아내가 될 여자인) 요에게 쓴 첫번째 편지의 내용이 너무 짠하고 감동적이라 울컥해버렸다. 테오는 그녀에게 이렇게 쓴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에게는 형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갓 사회에 나왔을 때 그는 나를 보살펴 주었고 내가 예술을 사랑하게 된 것도 모두 그의 덕입니다. 나는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수년동안 우리들은 그 누구보다도 더욱 가깝게 지내왔습니다.. (중략)..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형 이야기를 꺼내는게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특히 내 마음을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주제가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형과 이토록 많은 것을 함께 해오고 인생의 가치관을 나누어 온 나로서는 처음부터 당신에게 그와의 관계를 정확히 밝혀 두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에게 나의 중요한 부분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습니다 (p306-307)

 

 

    이처럼 테오 역시 빈센트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하고 있었으며 그래서인지 빈센트가 죽은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테오 역시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빈센트가 없는 자신의 삶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일까. 사랑하는 남자가 어떻게 보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형에게 집착하고 과도하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거나 적어도 무관심할 수도 있었지만 요는 테오가 가장 사랑하는 형을 같은 감정으로 존중하고 자신과 테오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빈센트로 짓기까지 한다. 게다가 테오마저 그렇게 죽은 후, 요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빈센트는 아마도 오늘날 이렇게까지 명성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요는 위트레흐트에 장사지냈던 테오의 유해를 나중에 오베르로 옮겨 빈센트의 바로 옆 자리에 같이 묻어주기까지 한다.

 

   그동안 읽어왔던 빈센트에 관한 여러 책들도 물론 모두 좋지만 이 책은 더 특별하게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속의 빈센트는 마냥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비록 그의 생애 전체가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해했고 그 누구보다도 테오에게 의지하고 또 테오에게 의지가 되어 주었으며 살아생전 자신이 유명해지는 걸 보지는 못했지만 죽기 전 자신이 화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다른 책들에서는 천재적이었으나 성격이 괴팍한 빈센트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이 책에서는 자신보다 늘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었던 츤데레 빈센트를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과장되지 않았으면서도 생생하고 감동적이다. 요 덕분에 '머리를 맞대고 나란히 누운 두 형제'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것 같아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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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
크리스틴 페레플뢰리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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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순전히 제목에 낚여 장바구니에 덜컥 넣어버린 책이다. 왜 그런거 있잖은가, 오..나도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인데, 어딘지 나를 대변하는 책일 것 같고 좋건 나쁘건 소설 속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것 같고 하는 그런 친밀감말이다.

 

   쥘리에트는 매일 같은 시간 지하철 6호선의 같은 칸에 타서 주변의 책 읽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지만 아직까지도 유럽에서 기차나 지하철을 타면 세월의 때가 묻은 듯한 문고판 책들에 파묻혀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지하철에서 휴대폰이 터지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뭐, 암튼, 그들이 책을 많이 보는건 사실이다. 녹색모자를 쓴 남자는 어떤 역에서 몇시에 타서 몇분 후에 어느 역에서 내리고 늘 곤충에 관한 책을 보며 어떤 노부인은 요리책만 들여다본다. 그런던 어느 날, 다른 날과 변함없는 출근길, 쥘리에트는 갑자기 평소와 다른 풍경을 보면서 출근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역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하는데 무언가에 이끌려 어떤 집 대문앞에 서게 되는데, 대문 사이에 책 한권이 끼여있고 대문에는 <무한도서협회>라는 글씨가 새겨져있다.

 

   이후 쥘리에트는 '책 전달자' 역할을 하게 된다. 일종의 '북크로싱' 운동인데, 북크로싱이 공공장소에 책 한권을 놓아두고 그걸 발견한 사람이 책을 읽고 또 다시 다른 장소에 놓아두고 하면서 독자가 책을 발견해서 선택하길 바라는 소극적 운동이라면 책 전달자들은 '책이 독자를 선택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즉 책 전달자가 책을 먼저 선택한 후 그 책에 딱 맞는 사람을 직접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쥘리에트처럼 누군가를 계속 관찰하기도 해야하고 필요하다면 그 사람을 쫓아다니기까지 해야한다는 것. 스토킹 같은 집요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암튼 여기에 등장하는 '책 전달자'의 역할이 그렇다.

 

   이야기의 소재는 흥미로운데, 어째 스토리가 너무 약하다. <무한도서협회>의 정체도, 거기에서 책 전달자들에게 책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솔리망도, 그의 딸도, 이야기의 처음에는 엄청난 역할을 할 것처럼 판이 마구 벌어지는데, 결국 그냥저냥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누가 다시 써주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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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1학년
고쿠보 다케루 지음, 소은선 옮김 / 단디(도서출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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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와인을 접하고 좋아하게 되면서 와인 일알못을 탈출하기 위해 나름 와인에 관한 이론서들을 몇권 읽었었다. 물론 읽기는 하지만 별로 와닿지 않았던 책들이 대부분이고 몇차례 그런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는 그래, 소믈리에 할 것도 아닌데 와인을 글로 배워서 어따 써먹냐라는 회의주의에 사로잡혀 그저 마시기를 반복하는 주류 인생을 이어왔다. 오호, 근데 이런 책이 눈에 확 들어오는거다. 바로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을 캐릭터화하여 와인 맛있는거 주세요!라고 밖에 할 줄 모르던 주인공이 그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 와인에 대해 알게 된다는 그런 설정으로 꽤나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만화를 접목한 작품이다.

 

   와인의 역사가 시작된 프랑스를 선두로 각 나라의 포도 품종들이 등장하는데, 한때 인기를 끌었던 와인 만화에서 주인공들이 와인을 마실 때마다 뿜어내는 화려한 미사여구들이 주는 당황스러움과는 달리, 정말 딱 마음에 와닿는 그런 표현으로 설정된 캐릭터들이 맘에 들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카베르네 쇼비뇽은 타닌이 풍부한 레드와인의 주요 캐릭터인데다 다른 포도들과의 블렌딩으로도 많이 쓰이는만큼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완벽하게 소화를 해내는 우등생'이라는 표현을 하는가하면, 부르고뉴의 대표적 품종인 피노누아는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는 것으로 구입해야 실망하지 않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쉽게 다가가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는' 캐릭터로 묘사되었을 때 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독일의 원산지 통제 명칭의 약자인 Q.b.A가 어떤 단어의 약자인지 설명할 때는 (크발리테츠바인 베쉬팀터 안바우게비테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이건 뭐 말하면서 사방팔방으로 침만 튈 뿐, 당최 뭐라고 말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막간 유머까지 챙기는 저자의 쉽고도 재미있는 와인 이야기가 왜 또 그렇게 와인을 마시고 싶게 만드는지, 음주 독서를 부추기는 훌륭한 책이다. ㅎㅎ 와인 2학년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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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젤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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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호~ 완전 내 스타일의 유머가 가득한 작품이다. 총 18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는데, 별개의 단편이 아니라 18편 모두 조지라는 사람이 작가 본인으로 추정되는 이에게 해주는 이야기로 되어있다. 그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전부 조지가 다른 세계로부터 불러내는 2센티미터짜리 악마 아자젤이 조지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생기는 에피소드인데, 작가는 그 이야기들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조지에게 밥을 사주고 약간의 돈을 삥 뜯기면서까지 매번 이야기 속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조지의 이야기에 빠지는 사람은 작가 뿐만이 아니다. 나 역시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 있다면 밥 정도는 사줘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판타지인데도, 다른 세상에서 온 2센티미터 악마가 들어주는 소원 이야기가 진짜일리 없는데도, 어찌나 논리적이고 이야기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인데 아마도 매번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조화를 이루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조화라 함은, 어떤 사람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이나 일들을 인위적으로 좋은 쪽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귀여운 아자젤이 동원되는데, 아자젤 덕분에 모든 일이 행복하게 결말지어질 것 같지만 결국은 원래 그리 되었어야 할 방향으로 귀결이 된다거나, 오히려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면서 애당초 자신의 노력 없는 행운 따위는 기대해서는 안된다라는 메세지가 공감을 불러온다는 의미이다.

 

   뭐 그런 저런 이유 필요없이 그냥 읽으면 빵빵 터지는 유머가 매력 만점인 작품이라 마지막 장을 덮기가 아쉬웠는데, 맨 뒤에 번역자인 최용준님이 기록한 '아이작 아시모프 FAQ'가 있어 읽어보니, 여기에 실리지 않은 아자젤 이야기 8편이 <매직>과 <골드>에 실려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판매가 안되고 있는 책이라 좋다가 말았다는... 책에 나온 에피소드 하나를 통째로 인용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침을 튀겨도 이 상상력과 유머가 가지는 재미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걸 조지가 알게되면 작가에게 한 말보다 더 심한 말을 퍼부을지도 모르겠다. 오..그래도 조지가 아자젤을 동원하여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그런 일은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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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100 - 알수록 다시 보는
토마스 불핀치 지음, 최희성 옮김 / 미래타임즈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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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타임즈에서 출간하는 '알수록 다시 보는' 시리즈와 '명화로 보는' 시리즈가 제법 알차다. <명화로 보는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담은 명화를 통해 다시 읽는 형식인가하면 <알수록 다시 보는 서양음악 100>의 경우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르네상스 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 총 100인의 작곡가를 통해 음악의 역사를 집약해서 정리해주는 책이었다. 이번 <알수록 다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00>은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하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총 100가지의 에피소드를 연대와 주제별로 정리하여 그림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기록이다. 시험을 앞두고 노트 정리 잘 하는 친구에게 빌린 요점정리 같은 느낌인데 방대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100가지의 에피소드로만 추려서 담다보니 어느 정도 요약본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평소에 대표 신화이야기들에서 접하기 어려운 여러 님프들의 이야기나 인간의 오만으로 가문대대로 저주와 복수가 끊기지 않은 탄탈로스와 오이디푸스 가문의 이야기를 단편적이 아닌 풀스토리로 담고 있어 흥미로웠다.

 

   유럽 문명의 탄생과 역사 그리고 그들의 예술을 접하고 이해하기 위한 기본은 바로 신화에 대한 지식에 있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신화가 지닌 가치와 힘은 대단하다. 실제 그런 일이 있느냐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나 다른 나라의 건국 신화를 들으면서 진실 여부를 따지지 않듯이 인류 문명의 기원과 지금은 수많은 종파로 갈라선 종교의 원형에 대한 이해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신화는 앎의 정도와 상관없이 접할 때마다 경외심마저 느끼게 된다. 그냥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하지만 서로 다른 시대의 다양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과 함께 하는 신화 이야기는 곱절의 즐거움을 주고도 남는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라파엘 전파 화가인 워터하우스의 그림이 꽤 많이 실려 있어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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