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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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도서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에세이에 훨씬 무게가 실린 글이다. 빈센트가 누구이던 무슨 일을 하던 나는 무조건 빈센트 편이야!라고 선언한다고나 할까. '빈센트 반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떠났던 10년의 여행과 글쓰기'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이 책은 기승전 빈센트에 대한 오마주이자 그리움이자 간절함이다. 빈센트에 대한 10년의 기록이라고 해서, 사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객관적이고 디테일이 담긴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그보다는 빈센트의 그림이나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빈센트의 삶을 저자의 언어로 다시금 해석한 글에 가까웠다. 그래서 빈센트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확신이 바탕이 되어서인지 빈센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왜 빈센트에게 더 친절하지 않았고 왜 빈센트를 더 도와주지 못했고 왜 빈센트를 더 사랑하지 않았느냐는 질책이 반복적으로 등장해서 조금의 거부감이 들기는 했지만 빈센트에 대한 과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렇더라도 조금의 반론을 해보자면, 빈센트가 가족들 특히 부모님께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빈센트의 좋은 면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빈센트의 생애 내내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기차에서 내리다 부상을 당했을 때 빈센트가 보여준 간호에 대해서 아버지는 크게 고마워하면서 빈센트가 '큰 꿈을 품고 드로잉과 회화 작업도 매우 열심히 하고 있다'고 테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고 빈센트의 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테오는 요에게 프로포즈 하기 전 자신과 형과의 관계를 분명히 해두고 싶다고 하고 요는 그런 테오를 이해하고 자신들의 아이에게 빈센트라는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한다. 빈센트가 빈곤했고 사회에 적응도 못하고 그의 그림은 죽을때까지 인정받지 못했으며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도 잘라버리고 결국 37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라고, 그래서 그의 삶은 불행했고 비극적이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빈센트 자신이 자기 입으로 자신은 불행하다고 한적이 있었던가? 물론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불행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평생을 가족과의 편지 교류를 통해 가족간의 유대를 끊지 않고 살아갔으며 테오 덕분에 다른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림도 많이 그렸고 후대에까지 그 그림들의 대부분이 보전되었다. 게다가 사람의 본성과 자질을 구성하는 것의 많은 부분은 그의 생애 전반을 통해서 완성된다. 그런 인생을 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빈센트가 있을지 없을지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책에 담긴 빈센트의 그림들과 그 그림들의 배경이 된 사진들 덕분에 저자의 간절함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인생에서 한번쯤은 빈센트를 만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그 여정의 첫걸음을 뗄 수 있게 도와주는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 저자의 빈센트 앓이라고 조심스레 부제를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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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의 설계자들 -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 메디치 WEA 총서 8
하세가와 쓰요시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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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전쟁과 일본을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과하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정부를 향한 분노와 울분, 그리고 마침내 해방이 되었음에 대한 감격 때문에 1945년이라는 해를 우리나라가 없는 미,영,중,소 그리고 일본만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어려운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유럽에서 독일군이 패전하고 극동 지역에서 여전히 일본이 동아시아 지배에 대한 야욕을 멈추지 않은 채 전쟁 중이긴 했지만 일본 역시 패전이 감지되던 1944년말부터 일본이 항복문서에 사인을 하고 마침내 태평양전쟁이 종결되는 1945년 9월까지 연합국 특히 미국과 소련이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두발의 원자 폭탄이 일본의 항복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원자 폭탄이 일본의 항복에 끼친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수용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원자 폭탄이 아니라 바로 일소 중립조약을 파기한 소련의 전쟁 참전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 항복을 위해 소련의 전쟁 참전이 필요했고 소련은 전쟁 참전을 댓가로 남사할린과 쿠릴열도 반환 등을 주요골자로 하는 얄타밀약을 맺게 된다. 밀약을 맺을 당시에는 미국의 원자 폭탄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을 때라 소련의 참전이 절대적이었지만 이후 원자 폭탄 개발이 완료되고 미국에게 소련의 참전은 더 이상 필요조건이 아니게 된다. 반면 소련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참전하기 전 일본이 항복을 하게 되면 얄타밀약에서 약속받은 것들을 모두 잃게 되기 때문에 일본의 항복을 최대한 늦추어 참전할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으로 응수한다. 일본은 황실의 안태와 국체의 호지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분에 매달린 나머지 좀 더 빨리 전쟁을 종결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선택에서 멀어지게 된다. 심지어 소련이 참전하기 전까지는 온 나라와 국민이 멸망하더라도 마지막 한사람까지 싸워야한다는 미친 논리를 들이대다가 나중에는 국민 보호 운운하면서 자기 한 몸 희생하겠다는 피해자 코스프레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더라. 미국과 소련은 전쟁 후 자신들이 얻게 될 이익과 전후 질서에서 패권을 장악할 생각에 집착한 나머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희생된 다른 나라들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본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였던 조선을 자기들 마음대로 반토막내어 신탁통치 아래 두겠다는 결정은 도대체 누구의 허락을 받았단 말인가. 그리고 미국과 영국에서 천황의 명예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결국 전쟁의 책임을 천황과 황족들에 지우지 않고 전쟁을 종결한 이들 역시 연합국이었다는 점은 적군과 아군의 경계와 배신과 협력의 거리는 멀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일본이 저지른 온갖 악행과 잔인한 학살의 잘못됨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행위에 대해 일본인들이 져야 할 도덕적 책임이 미국의 원자 폭탄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상쇄시키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하지만 자신들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 침묵하고 자신들의 야욕에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해 죄책감이 갖지 않는 나라가 다른 나라의 책임을 운운하는 것 자체는 모순이 아닐까.

 

   항복문서에 천황이 직접 서명을 해야하는가 아니면 천황에게 그런 모욕을 줄 순 없고 대리인이 하게끔 해야하는가에 대해 미국과 영국은 대리로 서명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에 대해 다른 연합국들인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 합의를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 다른 연합국들이 보인 반응에 격하게 동의하면서 그 부분을 인용해보겠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로서는 천황을 직접 항복문서에 서명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안도, 영국의 논평도 일본이 내건 조건에 내표돼 있는 가장 중요한 점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얘기하는 천황의 특권이란 천황의 전쟁책임 소추를 면제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침략 전쟁을 시작하고 그 전쟁에 뒤따르는 잔혹행위를 저지른 데는 천황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본에 대한 회답에는 누구든 전쟁범죄에 관련된 자는 벌을 받아야 하는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 연합국 중에 천황의 명예를 보전하는 것을 도우려 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런 사고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연합국 정부들은 연합군의 태평양 작전에서 일본군이 어떤 잔혹 행위를 저질렀는지 충분히 모르거나 인식하지 않고 있다. 천황의 명령하에 야만인 취급을 당한 전쟁포로들의 운명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됐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하에서 천황과 그 대리자들의 면책 요구에는 굴복할 수 없으며 천황을 법정에 세우고 또 항복 뒤에는 그로부터 모든 통치권을 박탈해야 한다. (p460-461)

 

   역사에는 가정이 없고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끊임없이 역사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설계하고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것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갖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를 최대한 객관적이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다. 1945년의 진실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객관적 진실에 충실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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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2019-04-22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하세가와 쓰요시의 책과 관련된 도서인 『8월의 폭풍』의 역자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357299

하세가와의 책이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둘러싼 당시의 국제정치적 상황을 심도 있게 고찰하고 있다면, 『8월의 폭풍』은 하세가와 책이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서 소련군이 수행한 군사작전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8월의 폭풍』은『종전의 설계자들』의 참고문헌이기도 합니다.

『8월의 폭풍』을 『종전의 설계자들』과 같이 읽으신다면 더 많은 도움이 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번역한 『8월의 폭풍』도 언젠가 소개해주시고 서평을 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에곤 실레를 사랑한다면, 한번쯤은 체스키크룸로프
김해선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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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스키크룸로프는 에곤 실레의 어머니의 고향이자 에곤 실레의 뮤즈였던 발리 노이즐과 함께 살았던 마을이다. 마을을 둘러싸며 흐르는 블타바강은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름으로 부르자면 몰다우강인데 이 블타바강이 마을 옆을 유유히 흐르는 풍경을 담은 그림 몇점은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드'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다. 나도 실제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그의 풍경을 그린 그림들을 보고 그가 이런 그림도 그렸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그 곳이 바로 저자가 에곤 실레의 발자취를 따라 머무르게 된 체스키크룸로프였다.

 

   저자는 스페인의 한 미술관에서 에곤 실레의 그림 한점을 보고 그 강렬하고 애틋했던 감각에 이끌려 체코의 작은 중세 도시 체스키크룸로프로 에곤 실레의 자취를 따라 오게 되는데 이 책은 그녀가 약 40여일을 머무르며 쓴 읽기 같은 작품이다. 사실 체스키크룸로프의 에곤 실레 아트센터에는 그의 그림들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그의 그림 대부분은 앞서 말한 레오폴드 미술관에 자리하고 있지만 아트센터에는 그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들과 자료들이 있고 마을에는 그의 작업실과 그가 발리 노이즐과 함께 했던 시간의 자취가 남아있으니 에곤 실레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상징성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저자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성적이라 에곤 실레와 그의 주변 사람들 혹은 체스키크룸로프라는 곳에 대한 정보성 내용은 거의 담겨있지 않다. 그냥 저자가 사랑했던 에곤 실레에게 중요한 장소였을 체스키크룸로프에서 약 40여일을 보내면서 그녀가 만난 그의 흔적들에 대한 개인적 기록이요 그녀가 처음 보았던 관 속에 들어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서 보았던 주홍빛이 보여준 생명의 온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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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 - 장미전쟁의 킹메이커
찰스 오만 지음, 이지훈.박민혜 옮김 / 필요한책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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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에 읽은 같은 저자의 <중세의 전쟁>에서 가독성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적이 있어 이 새로운 책 앞에서 좀 망설이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장미전쟁'이라는 랭커스터와 요크 가문의 왕위를 둘러싼 30여년간의 특정 전쟁을 배경으로 한데다 당시 킹메이커라 불리우던 워릭 백작인 리처드 네빌이라는 인물을 중점으로 다룬 비교적 좁은 범위의 역사라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해서 선택한 책이고 이번에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붉은 장미로 대표되는 랭커스터 가문과 흰 장미로 대표되는 요크가문이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했던 전쟁이라고 해서 장미전쟁이라고 부르는데, 두 가문이 싸우다 결국 요크가문의 승리로 끝난 전쟁이라는 단편적 결과로만 접했던 이 장미전쟁에서 사실은 워릭 백작이라는 리처드 네빌이 엄청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세의 전쟁>보다는 훨씬 나아진 가독성에도 불구하고 워릭 백작이라는 인물이 역사 속에서 등장하기까지는 꽤 많은 인물들의 등장을 인내해야 한다. 성서 속의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기나긴 인물 사전보다 더 복잡한 왕족과 귀족 가문들의 등장을 조금만 참아내면 드디어 우리의 주인공인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과 조우하게 된다.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6세가 이끄는 잉글랜드는 '잘못된 국가적 자부심'과 '지배 계급의 개인적 이익' 때문에 절망스러울 정도로 오래 지속되었던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인한 불만을 해결할만한 능력도 의지도 상실된 나라였고 당시 아이가 없던 헨리6세의 상속인이었던 요크가문은 불만 세력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란의 대의에 걸맞는 가문이었다. 결국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가 헨리6세를 몰아내고 왕으로 즉위하기까지는 그의 사촌인 워릭 백작의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후 워릭과 에드워드4세간의 갈등이 극에 달할 때까지 워릭은 요크가문에 충성을 다하게 되고 기나긴 30여년간의 전쟁에서 랭커스터와 요크 가문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동안 요크가문이 승리하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 된다.

 

   저자는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대전제로 인해 장미전쟁의 기간동안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던 워릭 백작에 대한 잘못된 오명을 바로잡고 그에 관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기록들을 복원하려는 의도로 이 책을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대의가 마지막에 사촌과 사위의 배신으로 물거품이 되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물론 이 책의 모든 내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지도 모르나 어쩔 수 없었던 변절의 순간에도 위엄을 잃지 않았던 워릭 백작에게 이 순간만큼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저 가문의 싸움이라고만 생각했던 장미전쟁의 본질과 진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안내자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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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도시 - 교류의 시작과 장소의 역사
정병설.김수영.주경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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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18세기학회라는 것이 존재하는 줄 처음 알았다. 그 아래 지부로 한국18세기학회라는 것이 있고 이 책은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스물다섯명이 '도시'를 키워드로 네이버 지식백과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출판한 책이라고 한다. 그 점을 먼저 짚고 가는 이유는 그렇지 않을 경우 서로 다른 글쓰기 스타일과 제각각의 중점을 두는 분야 때문에 소재만 18세기 도시이지 전혀 일관성 없는 글을 대하는 당혹스러움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25편의 각기 다른 단편소설 정도로 생각하고 읽는다면 큰 무리는 없겠다.

 

   18세기 하면 유럽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계몽주의가 꽃을 피웠으며 유럽열강들이 나머지 세계에 대해 식민지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시기였다. 중국은 청나라 건륭제 시절로 인계와 신계의 구분이 없는 나라가 영원할 것 같은 착각 속에 살던 시기였으며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전, 여전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로 거점을 옮기고 활동하던 때이다. 조선은 영조와 정조가 통치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18세기 각 나라의 주요 도시들에 대한 고찰을 기대하며 책을 읽어나갔는데,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글은 일부에 불과했다. 앞서 말했듯이 연재하던 글들을 모아놓은지라 당시 연재의 맥락이나 흐름을 모르고서 그냥 읽다보니 '18세기 도시'의 한 귀퉁이만 설명하다 끝나는 글들이 있어 많이 아쉬웠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에 관한 글인데 루브르 이야기만 하다 끝이 난달지, 도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그 도시에서 태어난 특정 인물에 대한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글들이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연재성 글들을 책으로 다시 출간할 때에는 그냥 복붙이 아닌 이야기의 중간중간을 이어주고 개별 이야기를 통합하는 편집이 추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최윤영님의 '베를린'과 문희경님의 '바스' 를 다룬 글들은 당시 그 도시들의 전체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만큼 인상적이어서 그분들이 언급한 참고문헌들과 번역서 그리고 저서들은 추후를 기약하며 기록해 놓았다. 넓고 얕은 지식은 나에게 잘 안맞는걸로 다시 한번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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