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호텔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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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에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폰지 사기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폰지 사기란 실제 돈을 굴려서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정상적인 투자가 아니라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일종의 다단계 금융 사기이다. 실제로는 그 어디에도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돈 넣고 돈 먹기 같은 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허황된 소망을 가진 이들의 심리를 이용한 사기 수법인데 그 원조가 미국의 '찰스 폰지'라는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폰지 사기라고 불리운다. 2008년에 있었던 사건은 한때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까지 역임할 정도였던 인물이었다고 하니 돈과 명성이라는 것의 가면이 주는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은 듯 하다.


   그런데 이 소설은 단순히 폰지 사기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폰지 사기는 그저 소설의 배경이 되었을 뿐 폰지 사기에 당한 이들의 절박함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기꾼들의 돈잔치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의 삶이란 것이 한 끗 차이로 어떻게 180도 달라질 수 있는지에 관한 다소 복잡한 이야기랄까.


   제목인 '글래스 호텔'은 호텔의 이름이 아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이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엮이게 되는 장소는 바로 캐나다 밴쿠버섬 북단에 있는 황무지에 세워진 오성급의 카이에트라는 호텔이다. 휴대폰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이 곳은 주로 부유한 이들이 휴식을 위해 머물다 가는 곳으로 오로지 호텔에서 제공하는 수상택시로만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바다와 숲으로만 둘러싸인 황무지에 찾아오는 이들은 정작 황무지로 들어가는 건 원하지 않는다. 황무지가 시작되는 곳인 카이에트호텔의 로비에 앉아 통유리를 통해 안쪽에서 황무지를 바라볼 뿐이다. '글래스 호텔'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듯 한데, 유리라는 것이 주는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유리를 통해 보는 세상은 왜곡되어 보일 수도 있고 삶의 이 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선이면서도 쉽게 깨지는 속성으로 인해 위태위태한 삶의 이중적인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 중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고 안정된 삶을 살아온 이들은 없다. '깨진 유리조각을 삼킨' 이들의 삶은 마치 폴이 작곡한 실험음악처럼 기괴한 불협화음을 내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기괴함과 예측 불가능한 삶의 변덕에 끊임없이 꼬임을 당한다.


   결국 폰지 사기 주동자들은 그에 맞는 형량을 살고 나오거나 감옥에서 삶을 마쳤지만 사기를 당한 이들의 삶과 주변 인물들은 그 충격을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수십년이 지난 이후에는 그저 파티의 안줏거리로 전락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헛된 욕망을 꿈꾸고 가지지 않은 것을 탐한다. 그렇게 삶은 지치지도 않고 깨진 유리창을 원복시키면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전진할 것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나니 갑자기 이게 뭔가 싶다. 특별히 재미있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소설인데,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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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 작은 뜰을 거니는
프레드 베르나르 지음, 배유선 옮김 / 콤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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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정원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지만(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살아본 적 있음) 남의 집 정원 구경은 언제나 설렌다. 타샤 할머니의 정원부터 시작해서 정원을 주제로 한 책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유럽에서는 큰 쇼핑몰에 가면 어디에나 원예용품을 파는 코너가 큼지막하게 자리잡고 있는 걸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자연은 인간에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선사한다.


제목은 '작은 뜰'이라고 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그건 좀 겸손인 것 같다. 그냥 단순히 앞마당 뒷마당의 작은 텃밭 수준이 아니라 계절별로 다양한 나무와 꽃, 식물들을 볼 수 있고 새와 곤충들은 물론이고 야생 동물들도 관찰되는 약 700제곱미터 그러니까 이해하기 편하게 환산을 해보자면 약 200여평 정도의 정원이다. 게다가 프랑스 브르고뉴! 라니. 부러워서 눈 튀어나올 지경이다. 원래는 일년 살이만 해보자고 했었는데 어느 새 십오년을 별장으로 이용하며 정원이 주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아름다운 정원의 사계절(정확히 말하면 2월부터 이듬 해 5월까지)을 일러스트 그림과 설명으로 가득채운 멋진 그림책이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색감이 어찌나 예쁜지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을 선사한다. 책장에 꽂아놓고 괜시리 우울할 때 꺼내보면 바로 힐링될 것 같은 자연의 모습이 수채화의 물감으로 채워져 있다. 정원은 가꿔야 한다. 새로운 식물도 심고 가지치기도 해야 하며 물도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저자의 정원은 어떤 인위적인 모습을 지닌 잘 가꾸어진 정원이라기 보다는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면서 정원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생태계를 보존하는 듯한 모양새다. '정원 여행자'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 곳을 거니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한 가이드북 같은 느낌을 선사할 듯 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풍스런 도시 부르고뉴의 아름다운 주변 장소들과 중간중간 수록된 정원의 모습과 찰떡궁합을 이루는 여러 작가들의 아름다운 시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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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생각하기 - 생각의 그릇을 키우는 42가지 과학 이야기
임두원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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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었는데 이상하게 과학만큼은 좋아했었다(주의 : 좋아했다 = 잘했다 아님). 그래서인지 지금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 과학서를 좋아한다. 특히 요즘은 정말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운 교양과학서들이 많이 출간되는데, 내가 학생 시절에 이런 도서들이 나왔더라면 아마도 싫어하는 수학을 무릅쓰고서라도 이과를 선택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정말?).


   <과학으로 생각하기>는 제목 그대로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한번쯤 의문을 가졌던 것들이나 혹은 혼자만 속으로 해 본 엉뚱한 상상 같은 것들이 의외로 과학의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음을 알게 해 준 재미있는 책이다. 심지어 그저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주제라고 생각했던 인간의 생사나 마음과 관련된 질문 역시 과학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게다가 이렇게 친절한 과학자라니. 조금이라도 어려운 주제가 나올라치면 아주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니 마치 내가 여기서 이해하기가 어렵겠구나라는 걸 귀신같이 아는 듯 해서 뜨끔하기까지.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죽느냐 사느냐, 과학으로 고민하기]는 인간의 삶과 죽음 같은 철학적인 주제를 과학의 시선으로 풀어내었고 2부 [일상의 태도, 과학으로 생각하기]는 우리가 살면서 별로 의문을 갖지 않는 당연한 것들, 예를 들자면, 눈은 왜 두 개일까, 높이 오르면 왜 더 멀리 보일까, 눈이 녹으면 왜 물이 되는가처럼 삶을 어느 정도 산 사람이라면 별로 의문을 갖지 않을 일상이 사실은 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3부는 [이상한 호기심, 과학으로 해결하기]인데,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다. 특히 연금술이나 제논의 아킬레우스 역설, 별과 빛에 관한 이야기는 나만 알고 싶은 지적 호기심 같은 것이 충족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4부는 [존재의 비밀, 과학으로 상상하기]로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 많은 우주를 다룬다. 과학과 상상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과학 역시 우리가 직접 관찰이 불가하거나 해 볼 수 없는 경우 사고 실험이라는 것을 한다. 이렇게 보면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학을 좋아하는 것은 순리일지도 ㅎㅎ.


   이 정도 되면 과학은 나와 멀고 먼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일상이면서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 수록된 42가지의 질문을 주변 사람들에게 던져 보고 대답을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과연 '과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내 주변엔 얼마나 있을까. 저자의 다른 책으로 <튀김의 발견>이 있던데 책 소개를 봤더니 이번에는 아주 맛있는 과학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과학자이면서 철학, 문학, 영화, 거기에 요리까지 두루두루 섭렵한 저자의 팬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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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라의 비밀 약방
사라 페너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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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8-19세기, 공간적 배경은 영국. 왜인지 모르겠으나 이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에 자석처럼 끌린다. 산업혁명의 시대로 발전을 구가하면서도 그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도시의 환경이 극도로 황폐해졌으며 여성과 어린이들에 대한 착취가 심했던 시절. 산업혁명과 본격적인 식민지 시대의 시작으로 나라는 부강해졌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은 없는 이들이 다 떠안았던 시절.


   <넬라의 비밀 약방>은 그 시대를 살던 한 약제사의 이야기이다. 여자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던 엄마의 약방을 물려받은 넬라. 엄마의 약방은 보살핌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제대로 된 치료나 조언을 제공해 주지 못하던 음탕한 남자 의사들만 득실대던 런던에서 그들에게 안전하고 안락한 피난처이자 치유의 공간을 기꺼이 내주던 곳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 넬라는 큰 상처를 입고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입은 여자들의 기꺼운 복수를 위해 독약을 제조하는 약방을 비밀스레 운영하게 된다.


   주인마님의 부탁으로, 거기에 자신의 의지까지 더해 주인 어른을 위한 독약을 받기 위해 넬라의 비밀 약방 문을 두드린 열두살 소녀 엘리자.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를 책임지려고 하는 마음이 어른보다 기특하다. 넬라는 자꾸 엘리자를 위험천만한 약방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넬라와 엘리자의 이야기는 현대의 런던에 살고 있는 캐롤라인과 맞닿는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런던 여행을 계획한 캐롤라인은 여행 바로 전에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혼자 런던으로 오게 된다. 우연히 템즈강변의 진흙 속에서 옛 시대의 흔적을 발견하는 머드라킹에 참여하게 되면서 곰 형상이 새겨진 병 하나를 발견하는데 아무래도 이 병에 엄청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다! 캐롤라인은 남편의 불륜으로 인한 상실감을 떨쳐버리고자 자신의 전공을 살려 약병에 숨겨진 사연을 파헤쳐 보기로 한다.


   시대와 화자가 교차하면서 용감한 여성들의 슬프고도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쩌면 통쾌하다고 할 수도. 그 시대의 상처받은 여성들을 애도하는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시대의 약자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 수 있다면 위로가 될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촘촘한 구성은 아니고 현재의 캐롤라인의 캐릭터가 다소 식상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재미있고 매력적인 작가의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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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꾼의 아들 1
샘 포이어바흐 지음, 이희승 옮김 / 글루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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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장꾼의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봐서는 전혀 감이 오지만 어딘지 '고딕'스러운 표지와 그림을 보니 내가 기대하던 이야기가 얼른 읽어달라고 보채는 것 같았다. 1권을 다 읽은 지금 다시 표지를 보니 왼쪽에는 까마귀인 듯 보이는 새가 삽 위에 올라앉아있고 오른쪽에는 십자가(=묘지)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이 매장꾼의 아들 파린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듯 싶다.


   이야기의 주요 주인공은 매장꾼의 아들 파린이다. 매장꾼은 누군가가 죽으면 시체를 가져다 장례를 치르기 전에 씻기고 닦고 치장하여 죽은 이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장례식에서 땅을 파고 시체를 묻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매장꾼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파린 역시 그 일을 하기 때문인데 매장꾼은 마을에서 지나가는 개보다 더 천한 대접을 받았고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고 기피하는 천민이다. 하지만 파린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어떤 시체를 대하더라도 그들의 마지막을 최대한 보기좋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파린이 특별한 이유는 '호기심'이다. 아버지는 '죽음은 죽음일 뿐이야. 의문은 장사를 망치지'라면서 모든 시체의 죽음의 원인은 심정지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파린은 시체를 마주할 때마다 왜 죽었는지 궁금해하며 시체의 염을 하면서 어떻게 죽었는지 스토리를 만들어보는 걸 참을 수 없다. 바로 이 '호기심'이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파린을 새로운 운명으로 이끌게 된다.


   파린의 이야기가 쭉 계속될 줄 알았더니 오! 웬걸. 다른 시대의 다른 인물들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아원에서 학대받는 아이, 스스로를 쥐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아로스의 이야기가 나오고 노르트 왕국의 제1기사이자 만인의 영웅인 피고의 이야기가 평행을 달린다. 내가 좋아하는 구조이다. 완전히 서로 다른 이야기가 쭉쭉 내달리면 이들이 어떻게 서로 이어지게 될 지 궁금해지는 법. 작가는 진짜 이야기꾼인 듯 하다. 이야기 하나로 사람을 이렇게 안달나게 만들 수 있다니 그거야 말로 놀라운 능력이다. 총 4권인 작품이라 1권에서 떡밥만 뿌리다 끝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1권에서도 어느 정도는 수확의 즐거움이 있었다. 이야기의 속도 역시 딱 내 취향이다.


   맘 같아서는 조잘조잘 더 떠들고 싶지만 읽지 않은 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그만두기로 한다. 한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파린은 '뼈를 보는 자'가 된다. 그러니까 시체를 염습하면서 갈고 닦은 기술에 호기심이 더해져 오늘날로 말하자면 일종의 법의학자가 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파린의 몸 속에는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걸로 확신되는 존재가 들어앉아 있다. 마법, 마녀, 악령, 주술, 기사, 모험 같은 단어에 자석처럼 끌리는 독자라면 푹 빠질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들어있다. 2018년 독일 판타지 소설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당연하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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