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꾼의 아들 1
샘 포이어바흐 지음, 이희승 옮김 / 글루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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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장꾼의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봐서는 전혀 감이 오지만 어딘지 '고딕'스러운 표지와 그림을 보니 내가 기대하던 이야기가 얼른 읽어달라고 보채는 것 같았다. 1권을 다 읽은 지금 다시 표지를 보니 왼쪽에는 까마귀인 듯 보이는 새가 삽 위에 올라앉아있고 오른쪽에는 십자가(=묘지)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이 매장꾼의 아들 파린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듯 싶다.


   이야기의 주요 주인공은 매장꾼의 아들 파린이다. 매장꾼은 누군가가 죽으면 시체를 가져다 장례를 치르기 전에 씻기고 닦고 치장하여 죽은 이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장례식에서 땅을 파고 시체를 묻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매장꾼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파린 역시 그 일을 하기 때문인데 매장꾼은 마을에서 지나가는 개보다 더 천한 대접을 받았고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고 기피하는 천민이다. 하지만 파린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어떤 시체를 대하더라도 그들의 마지막을 최대한 보기좋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파린이 특별한 이유는 '호기심'이다. 아버지는 '죽음은 죽음일 뿐이야. 의문은 장사를 망치지'라면서 모든 시체의 죽음의 원인은 심정지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파린은 시체를 마주할 때마다 왜 죽었는지 궁금해하며 시체의 염을 하면서 어떻게 죽었는지 스토리를 만들어보는 걸 참을 수 없다. 바로 이 '호기심'이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파린을 새로운 운명으로 이끌게 된다.


   파린의 이야기가 쭉 계속될 줄 알았더니 오! 웬걸. 다른 시대의 다른 인물들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아원에서 학대받는 아이, 스스로를 쥐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아로스의 이야기가 나오고 노르트 왕국의 제1기사이자 만인의 영웅인 피고의 이야기가 평행을 달린다. 내가 좋아하는 구조이다. 완전히 서로 다른 이야기가 쭉쭉 내달리면 이들이 어떻게 서로 이어지게 될 지 궁금해지는 법. 작가는 진짜 이야기꾼인 듯 하다. 이야기 하나로 사람을 이렇게 안달나게 만들 수 있다니 그거야 말로 놀라운 능력이다. 총 4권인 작품이라 1권에서 떡밥만 뿌리다 끝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1권에서도 어느 정도는 수확의 즐거움이 있었다. 이야기의 속도 역시 딱 내 취향이다.


   맘 같아서는 조잘조잘 더 떠들고 싶지만 읽지 않은 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그만두기로 한다. 한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파린은 '뼈를 보는 자'가 된다. 그러니까 시체를 염습하면서 갈고 닦은 기술에 호기심이 더해져 오늘날로 말하자면 일종의 법의학자가 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파린의 몸 속에는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걸로 확신되는 존재가 들어앉아 있다. 마법, 마녀, 악령, 주술, 기사, 모험 같은 단어에 자석처럼 끌리는 독자라면 푹 빠질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들어있다. 2018년 독일 판타지 소설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당연하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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