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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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를 떠나보내며'라는 제목과 '상자에게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라는 부제만 보면 저자가 3만5천여권의 장서를 보관했던 프랑스 시골 집을 떠나 맨하탄의 방 한칸짜리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책들을 책장에서 상자로 옮겨야만 했던 (애서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마음 아픈 사건에 대한 회고록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보니, 그 엄청난 사건을 빌어 현재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장인 저자가 보내는 보르헤스(아..보르헤스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와 (종이)책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를 나타낸 글이다.  

 

" 나는 언어의 구체적 물질성, 책의 단단한 현존, 그 형체, 크기, 질감을 원한다. 나는 전자책의 간편함과 그게 21세기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이해한다. 그러나 전자책은 플라토닉한 관계의 특성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나는 내 양손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종이책의 상실을 아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믿으려면 먼저 만져봐야 한다는 도마같은 사람이다."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을 보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듯, 저자는 자신의 '영혼의 진료실'이었던 책들을 상자 속에 담았던 비극적 사건을 통해 책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떠올린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책 싸기는 망각을 연습하는 행위이고 책 풀기는 책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의식인 것이다.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릴 때면 그렇듯이 저자의 책에 대한 기억도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저자의 기억 여기저기를 관통한다. 우리는 3세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도 갔다가 저자가 어렸을 때 다녔던 공공도서관으로도 소환된다. 에드거 앨런 포우의 갈까마귀 텍스트 속에서 돈키호테의 꿈 속으로 순간이동을 하기도 한다. 작가들의 다락방에 초대받기도 하고 저자가 눈이 먼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던 그 서점에 가 있기도 한다. 저자에 의해 여기저기 끌려다니다 보니 약간은 정리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책 읽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나의 기억에 또렷이 각인된 한가지가 있다면 고대 그리스 역사가였던 디오도루스 시쿨루스가 폐허가 된 고대 이집트의 도서관의 입구에서 발견한 이 단어가 아닐까.

 

 

"영혼의 진료실"

 

   나의 (빈약한) 서재에도 적어놓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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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임승수의 마르크스 엥겔스 공산당 선언 원전 강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시리즈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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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하나가 유럽을 떠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

 

   책을 읽으면서 첫 문장을 유심히 본다. 첫문장이 좋으면 대체적으로 그 책은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내가 감동받은 첫 문장을 지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학교 다닐 때 운동권 선배들한테 귀동냥으로 들었던 그 유명한 정치 선언문을 이제서야 제대로 읽어보았다. 어렸을 때 세뇌당한 영향이 크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쳐야 했고, 공산당 = 빨갱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고 진짜 그렇다고 생각했다. 시시 때때로 간첩단 사건이 발발하고 정부의 의견에 단 하나라도 반기를 들면 좌빨이니, 북한 첩자니 하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그런 현실을 마주하면서 어느 새 '공산당'이라는 단어는 금기어처럼 여겨졌다. 이는 이미 <공산당 선언>에서 지적하고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현실이었다. 

 

"낡은 유럽의 모든 세력,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경찰이 이 유령을 퇴치하기 위해 신성한 동맹을 맺고 몰이사냥에 나섰다. 정권을 잡은 상대로부터 공산주의적이라고 매도당하지 않은 반대당이 어디 있으며, 자기보다 더 진보적인 반대파 뿐만 아니라 반동적인 정적에게 공산주의라는 낙인을 찍으며 비난하지 않은 반대당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금은 인터넷에 <공산당 선언> 전문이 한국어를 포함 여러 나라 언어로 올라와 있고 관련 책들이 출판될 정도로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공산당 선언>은 '공산주의자 동맹' 조직의 출범 선언문으로 1848년 2월에 발표되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치 선언문이라는 타이틀을 지금도 굳건히 지키고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동조를 얻은 선언문이다. 아마 지금이라면 '좋아요'를 압도적으로 획득한 인기 포스팅이 되었을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사실 그리 어려운 글은 아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백하고 간결하여 더 이상의 요점 정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쓰여진 글이다. 다만, 노예제나 봉건제의 시대를 지나 산업혁명에서 어떻게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토대가 탄생했는지, 그리고 평소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탄생과 투쟁의 역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독자라면  이 <공산당 선언>이 왜 그토록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임승수 저자님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시리즈는 바로 그런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표지의 설명처럼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임승수표 '홈스쿨링'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읽다보면 어쩜 이렇게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1848년에 쓰여진 선언문이지만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도 틀린 말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다만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면 부르주아 계급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착취도 극에 달하고 결국 성숙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부르주아 계급으로부터 모든 자본을 빼앗고 모든 생산도구를 국가의 손안에 집중시키고 나면 이후에 계급은 사라지고 '사적 소유'의 개념이 없는 이상향이 실현될 것이라는 그들의 선언은 부르주아 계급에 착취당하던 다수의 프롤레타리아들을 열광하게 했고 일부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계급이 없어질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그 안에서 새로운 계급이 탄생하고 계급 투쟁이 일어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아무래도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를 너무 단순하게만 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이론은 완벽했으나 그것을 적용할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선언>은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선언문 한 단락, 설명 한 단락, 이런 식으로 아주 친절하게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학교에 이런 선생님만 계신다면 사교육이 필요 없을텐데라는 씁쓸한 생각을 해본다.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도 첫 문장만큼 유명하고 강렬하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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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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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처음이다. 약 십여년 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떠들썩했을 때에도 어쩐지 무겁게 가라앉은 듯한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편견으로 쉽사리 들게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소설집은 표제작 <19호실로 가다>를 포함하여 레싱의 1960년대 단편소설 총 1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작품에는 당시의 여성들에게 당연하게 덧씌워졌던 가면들에 대한 분노와, 한쪽으로 치우친 남녀관계의 시소에서 어떻게든 관계균형을 바로잡아보려고 애쓰는 여성들과 그런 그녀들에 대한 노골적 불편함을 느끼는 남성들이 다양한 배경과 방식으로 등장한다.  자신이 성장해 온 아프리카에서의 인종적, 성적 차별을 직접 목격하고  1960년대에 유럽과 미국에서 탄생한 급진적 페미니즘인 '여성해방운동'의 영향을 주고 받았으리라 짐작되는 그녀의 작품들 대부분이 강도 높은 페미니즘을 표출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11편의 단편들은 의외의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의 여성들이 어떤 대승적인 권리를 주장하면서 여성 해방 운동을 강력하게 주창한다기 보다는 여성들의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일탈과 작은 반항으로 남성들을 쪼잔하게 보이게끔 하는 굴욕감을 안겨주는 식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에서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한 여성을 강제로 점령하려는 남자에게, 여자는 강하게 반항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굴복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고 결국 목적 달성을 하지 못한 남자가 다음 날 그녀의 일터까지 바래다 주면서 그 주변의 사람들이 그녀와 그의 관계를 궁금해하거나 그녀가 그와 함께 밤을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기를 바라는데, 거기 있는 그 누구도 그의 저질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무시로 일관할 뿐이다. 그녀의 완승이다. <옥상 위의 여자>에서는 옥상에서 작업을 해야하는 인부 중 한명인 스탠리는 바로 옆의 다른 옥상에서 매일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하는 여성을 발견하고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휘파람을 불어대고 고함을 지른다. 그의 이런 싸구려 관심에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그녀에게 분노를 표출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그녀가 일광욕을 하지 못하도록 비가 오길 바라는 쪼잔한 오기까지 부린다.

   반면 여성 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영국 대 영국>에서 찰리의 엄마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게 되면 반나절의 쉬는 시간이 생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간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거나, 일주일에 두세번씩 과자 공장에서 과자 포장하는 일을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는 일로 여긴다.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는 광고 회사의 재능있는 직원이었던 수전의 행복한 결혼 생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전은 결혼 후 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는데, 수년이 지난 후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여 낮동안은 충분히 개인적 자유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잠시 쉬었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음엔 어떤 집안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자신만의 생활로 돌아오지 못한다.

 

"남자와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왜 여자라는 성(性)을 잃어버리는지는 하느님만 아실 거에요"

- <남자와 남자 사이>

 

   11편의 모든 작품이 공감되지는 않았지만 당연시 되던 여성의 일상이 페미니즘 소설로 탈바꿈 할 수 있었던 건 그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필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맨 뒤에 첨부된 그녀의 연보를 보면 꽤나 다작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중,단편이 많았는데 (심지어 SF 시리즈물도 있다!) 그녀의 풍자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시선이 담긴 다른 작품들도 지금이라면 피하지 않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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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도시, 런던
엘로이즈 밀러 외 지음, 이정아 옮김 / 올댓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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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런던'은 늘 가고 싶은 곳이다. 아무리 비가 많이 오고 안개가 자욱해도, 아무리 지하철이 제멋대로 운행을 멈추어도, 아무리 음식이 맛이 없어도, 아무리 물가가 터무니 없이 비싸도, 그저 가고 싶은 도시이다. 내 마음 속 런던은 실재하는 장소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도시이다. 비오는 음침한 골목을 걸을 때면 셜록 홈즈만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사건이 벌어질 것 같고, 패딩턴 역에서 기차를 탈 때면 뜨개질감을 들고 얌전히 앉아 있는 미스 마플을 만날 것 같다.  오셀로를 만나 질투에 눈이 멀지 말라고 말해주고도 싶고 스크루지 영감에게 돈을 영리하게 쓰라고 충고도 해주고 싶다. 저 멀리 하늘에서 우산을 쓴 메리 포핀스가 침침체리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기를 기다리거나 당장 킹스크로스역의 9 3/4 승강장으로 달려가 호그와트 행 기차를 타려는 해리포터를 만나는 건 어떨까? 이 외에도 오스카 와일드, 버지니아 울프, 샬럿 브론테 등, 내 부족한 문학적 배경만으로도 아직도 많은 작가들과 그들이 그려낸 런던이라는 장소를 한참은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훨씬 더 극적인 애정과 (증오를 포함한) 관심을 받은 장소로서의 런던을 담아내고 있다.  21가지의 주제 혹은 장르로 구분하여 문인들이 어떻게 런던의 수시로 바뀌는 얼굴을 기록했는지를 탐색하는 여행으로 독자들을 모객한다. 요즘 유행하는 테마 여행처럼 말이다.

   몇 년 전, 조용준님의 <런던의 펍 스토리>라는 책을 읽고, 영국의 역사와 늘 함께 했던 펍들에 관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껴 책 속에 소개된 펍 순례를 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 본 <햄스테드>라는 영화 속에서는 라파엘전파였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가 하이게이트 묘지에 아내를 묻으면서 미출간된 자신의 시들을 함께 넣었다가 나중에 돈이 궁해지자, 허가를 받고 다시 묘지를 파헤쳐 시들을 꺼내 출간하여 가난을 면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단편집을 읽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바로 이 책, <문학의 도시, 런던>에 등장한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런던이 문학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런던이 지겨워진 사람은 인생이 지겨워진 사람이다 - 새뮤얼 존슨"

 

   이 책을 한번만 읽고서는 제대로 된 여행을 했다고 볼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과 문학 작품과 등장인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누가 실존인물이고 누가 작품 속 인물인지 헷갈릴 때쯤 정리를 해가며 다시 한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 친절하게도 책에서 언급된 주요 장소와 작가와 작품들이 각 챕터마다 예쁘게 정리되어 있는데다 꼭 가보고 싶을만한 장소들을 콕 집어서 지도까지 그려주는 센스를 발휘한 저자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다시 한번 문학의 도시, 런던을 탐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진짜, 런던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면 이 책은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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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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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내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트로이의 전쟁'. 그 중에서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영웅, 아킬레우스. 이 작품에서는 신의 피가 흐르는 영웅으로서의 아킬레우스보다는 신이 질투하는 인간의 유한성을 지닌 '아리스토스 아카이오이(그리스의 으뜸)'으로서의 아킬레우스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호메로스의 원전에 최대한 충실하게 각색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님프인 어머니인 테티스 요정이 아킬레우스가 태어났을 때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에 아킬레우스의 몸을 담그었는데, 붙잡고 있던 발 뒤꿈치만 담그지 않아 발 뒤꿈치가 유일한 인간의 약점을 지닌 부분이라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꽤나 뒤에 첨가된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이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실수로 한 소년을 죽인 후 추방되어 프티아 왕국에서 그곳의 왕자로 태어난 아킬레우스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아킬레우스와 각별한 사이가 된다. <일리아스>에서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사랑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지만, 플라톤의 <향연>에서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사랑하는 사이로 언급된 바가 있다고 하니, 아주 예전부터 사람들은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애정 자체에는 별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알고 있던 그리스와 트로이 영웅들의 알지 못했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나에게 각인된 오디세우스의 모습의 대부분은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십년 동안의 모습인데, 여기서는 영리한 책략으로 페넬로페를 아내로 얻게 된 이야기부터 트로이 전쟁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중재적인 모습들이 인상적이었고, 천상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명예와 목숨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 등을 다루는 부분이 좋았다. 그리스군이 이야기의 중심이라 트로이 쪽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된 바가 없어서 좀 아쉽긴 했지만. 여전히 신들은 밴댕이 소갈딱지의 얄미운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어찌보면 그것이 그리스 신들의 매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을 농락하는 신들 위에 있는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킬레우스이다.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를 죽이기 위해 먼저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와 대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연히 신과 인간의 정면 대결에서의 승자는 신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인간이 신을 이기겠는가. 하지만 인간에게는 속임수가 있고 계략이 있다. 전체 이야기로 놓고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장면인데, 나는 이 부분이 아킬레우스가 인간의 목숨을 운명이네 어쩌네 하면서 자기들 멋대로 좌지우지 하려는 신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가장 통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신의 생각이 짧았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세월 동안 그의 발은 한 번도 비틀거린 적이 없었다.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부족함이라는 미끼를 던졌고 신은 그 미끼를 향해 달려들었다."

 

   와...신의 생각이 짧았다니...이렇게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표현이 있을까. 인간의 부족함, 인간의 유한함이 신에게는 미끼가 될 수 있고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이런 이야기들이 나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끊임없이 묶어두는 매력이 아닐까.

   한가지 더 짚어보자면, 이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파트로클로스가 부르는 아킬레우스에 대한 추억의 노래이다. 아킬레우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아킬레우스의 유골과 함께 묻히고 비석에 나란히 이름을 새긴 파트로클로스가 없었다면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의 전쟁에서 그의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도 존재감 없던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주를 대신 입고 그리스군을 구하러 나서는 영웅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일리아스>의 마지막을 장식하였다고 한다. 아킬레우스에 가려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신화 속 인물을 또 한명 알게 된 셈.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얼음장 같던 테티스의 감동적 한마디!

 

"가거라. 그녀가 말한다. 그 아이가 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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