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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도시, 런던
엘로이즈 밀러 외 지음, 이정아 옮김 / 올댓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나에게 '런던'은 늘 가고 싶은 곳이다. 아무리 비가 많이 오고 안개가 자욱해도, 아무리 지하철이 제멋대로 운행을 멈추어도, 아무리 음식이 맛이 없어도, 아무리 물가가 터무니 없이 비싸도, 그저 가고 싶은 도시이다. 내 마음 속 런던은 실재하는 장소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도시이다. 비오는 음침한 골목을 걸을 때면 셜록 홈즈만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사건이 벌어질 것 같고, 패딩턴 역에서 기차를 탈 때면 뜨개질감을 들고 얌전히 앉아 있는 미스 마플을 만날 것 같다. 오셀로를 만나 질투에 눈이 멀지 말라고 말해주고도 싶고 스크루지 영감에게 돈을 영리하게 쓰라고 충고도 해주고 싶다. 저 멀리 하늘에서 우산을 쓴 메리 포핀스가 침침체리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기를 기다리거나 당장 킹스크로스역의 9 3/4 승강장으로 달려가 호그와트 행 기차를 타려는 해리포터를 만나는 건 어떨까? 이 외에도 오스카 와일드, 버지니아 울프, 샬럿 브론테 등, 내 부족한 문학적 배경만으로도 아직도 많은 작가들과 그들이 그려낸 런던이라는 장소를 한참은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훨씬 더 극적인 애정과 (증오를 포함한) 관심을 받은 장소로서의 런던을 담아내고 있다. 21가지의 주제 혹은 장르로 구분하여 문인들이 어떻게 런던의 수시로 바뀌는 얼굴을 기록했는지를 탐색하는 여행으로 독자들을 모객한다. 요즘 유행하는 테마 여행처럼 말이다.
몇 년 전, 조용준님의 <런던의 펍 스토리>라는 책을 읽고, 영국의 역사와 늘 함께 했던 펍들에 관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껴 책 속에 소개된 펍 순례를 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 본 <햄스테드>라는 영화 속에서는 라파엘전파였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가 하이게이트 묘지에 아내를 묻으면서 미출간된 자신의 시들을 함께 넣었다가 나중에 돈이 궁해지자, 허가를 받고 다시 묘지를 파헤쳐 시들을 꺼내 출간하여 가난을 면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단편집을 읽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바로 이 책, <문학의 도시, 런던>에 등장한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런던이 문학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런던이 지겨워진 사람은 인생이 지겨워진 사람이다 - 새뮤얼 존슨"
이 책을 한번만 읽고서는 제대로 된 여행을 했다고 볼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과 문학 작품과 등장인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누가 실존인물이고 누가 작품 속 인물인지 헷갈릴 때쯤 정리를 해가며 다시 한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 친절하게도 책에서 언급된 주요 장소와 작가와 작품들이 각 챕터마다 예쁘게 정리되어 있는데다 꼭 가보고 싶을만한 장소들을 콕 집어서 지도까지 그려주는 센스를 발휘한 저자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다시 한번 문학의 도시, 런던을 탐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진짜, 런던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면 이 책은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