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미술 - 현대 예술과 문화 1950~2000
휘트니미술관 기획, 리사 필립스 외 지음, 송미숙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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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나에겐 '미술'이라는 단어는 유럽을 떠올리게 한다. 르네상스의 중심지었던 이탈리아, 고대 로마와 그리스를 재현한 작품들, 이후 바로크 로코코 그리고 인상주의와 사실주의까지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주도권을 갖게 된다. 예술과 낭만의 도시하면 저절로 파리가 떠오르고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그림에 미국이 설 자리는 부족하다. 하지만 세계 제1, 2차 대전은 미술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오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오랜 전쟁으로 유럽은 피폐해지고 예술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다.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망명하고 전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미국의 자유와 부에 힘입어 미국의 예술과 예술가들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이 책은 1950년 이후 전후 미국 미술계의 도약을 시작으로 2000년까지 20세기 미국미술을 담았다. 특히 휘트니 미술관이 기획하고 전시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을 포함하였는데 각 시대별 미국을 대표했던 이념과 그 이념의 다른 쪽에서 바라본 미국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한 미술의 자취를 담아낸 엄청난 작업의 결과물이다. 각 시대를 관통하는 미술뿐만 아니라 건축, 음악, 연극, 영화 등 예술의 다른 영역들은 어떻게 시대를 반영했는지에 대한 통찰도 포함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국 대열에 입성한 미국의 예술가들이 유럽 전위미술가들의 영향을 받아 발전시킨 추상표현주의부터 시작해 냉전의 시기를 거치면서 검열의 대상이 되었던 시기, 겉으로는 아메리칸 드림을 외치지만 정작 드림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소외된 계층이 발산하던 반항의 정신이 이룩한 문화 혁명의 시기, 풍요로운 베이비 붐 세대의 십대들이 중요한 물질적 문화적 소비계층으로 떠오르면서 로큰롤과 비트 그리고 스윙과 재즈가 질주하던 1950년대. 규범이 붕괴되고 사회적 가치가 도전을 받고 베트남전으로 인한 반전 시위가 확대되면서 페미니즘으로 여성미술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미니멀리즘이 탄생하는 1960,70년대. 사진과 영화의 등장으로 새롭게 예술의 개념이 정립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는 1980년대, 그리고 밀레니엄을 앞두고 전 세계의 미국화가 가져온 글로벌 문화의 소비와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1990년대의 예술까지 총 망라한 어마어마한 책이다. '현대 미술'하면 왜 유럽이 아니라 미국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지, 20세기를 왜 '미국의 세기'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대답이 책 속에 들어있다. '현대 미술의 파노라마'라는 표현이 완벽하게 어울리는 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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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알면 역사가 보인다 - 그림으로 보는 세계 신화 보물전
최희성 엮음 / 아이템비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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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었던 세계신화를 다룬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신화란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너무나 인간적인 방법"이라고. 이번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이 말에 동감하게 되었다. 신화란 그저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황당무게한 이야기일뿐이거나 단순히 재미있으라고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각 나라 혹은 시대의 신화가 문명을 만들어내는데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역사에는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 바로 신화이다. 특히 이 책은 세계의 신화를 그냥 싣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각 나라 신화의 중요한 모티브가 무엇이었으며 어떠한 역사적 배경에서 이런 신화들이 탄생했고 또 반대로 이런 신화들을 이용하여 어떤 역사들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준다.

 

   신화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이고 세계 최초 문명의 탄생지라고 알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신화 속 그 유명한 길가메시와 관련된 이야기, 메소포타미아와 이웃해 있으면서도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발전시키면서 300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화려하게 발전했던 이집트 문명과 관련된 신화, 흔히 성경 속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헤브라이 문명의 신화, 비교적 생소한 아프리카, 폴로네시아 문명의 신화, 중국 및 일본과 인도 그리고 기타 아시아 국가들의 신화, 각종 영화와 소설 등으로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북유럽 신화까지, 정말 말 그대로 세계의 신화를 집대성한 흔치 않은 기록 모음집이다. 또한 글만 빡빡하게 있으면 재미가 덜했을텐데, 페이지마다 이해를 돕는 풍부한 시각적 자료들인 그림과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어 그림만 보더라도 세계의 신화들이 얼마나 비슷하면서도 다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의 신화들이 대부분 창조신화와 대홍수 신화가 존재하고 완벽하지 않은 신들이 등장한다. 신들끼리의 불화에 인간들이 새우등 터지기도 하고 인간들의 잔꾀가 그들을 만든 창조주들을 농락하기도 한다. 신들이 인간을 질투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넘볼까봐 괜한 트집으로 쓸어버리기도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자연현상과 각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들은 신들과 인간들이 남긴 애증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신화가 존재하지 않는 문명이 있을까마는..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살지 않는 곳이 아닐까.

 

*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 : 핀란드가 북유럽 신화의 계통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 핀란드 신화는 다른 북유럽 국가들의 바이킹족 신화가 아닌 아시아계 핀족의 신화이고 핀란드어가 게르만어파가 아니라 우랄 알타이어족이란다!

* 우리나라 신화도 다루어줬으면 좋았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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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서 삶을 읽다 - 서러운 이 땅에 태어나
김경숙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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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부제는 '서러운 땅에 태어나'이다. 말 그대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나 신분에 의한 차별, 성에 의한 차별 등으로 자신의 능력과 재주를 맘껏 펼치지 못하고, 제대로 세상을 살아보지 못하고 가버린 자들의 마음에 관한 책이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이 다루는 이들의 가장 큰 상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절들을 각 장의 제목으로 내세우고 인물마다 시 두편씩을 싣고 해설을 달았다. 시도 훌륭하지만 나는 우선 저자의 마음과 능력에 감동받는다. 제목으로 뽑아 낸 구절들은 앞으로 독자들이 어떤 시들을 마주하게 될 지에 대해 시를 읽기도 전에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저자의 해설을 읽다보면 진정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1장 : 우리는 모두 실의한 사람들이라 - 뜻을 잃고 시를 얻은 서얼 문사들의 시

2장 : 이 풍진 세상을 누구와 건널까 - 조선 지식인이 걸었던 마음의 뒤안길

3장 : 새장 속 학이 하늘을 노래하네 - 상처받은 삶이 피워낸 여성 시인들의 시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장과 세번째 장의 시들이 정말 마음을 절절하게 만들었다. 조선 시대 신분제는 첩을 둘 수 있도록 했으면서도 그 첩에게서 태어난 자식들, 즉 서얼들의 후손은 영원한 서얼로 규정하고 벼슬로 나아갈 수 있는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신분으로 그들을 차별하고 그들의 능력을 매장하였다. 물론 정조 시대에 서얼들 역시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되었으나 여전히 그들이 벼슬을 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이렇게 '실의'한 세상에서 시를 위로삼아 '득의'를 했다는 표현이 어쩜 이렇게 마음을 쿵하게 만드는지. 세번째 장은 더더욱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시를 담았는데 와...특히 마지막 시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해 버렸다. 기녀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한테 인정받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어서야 고통에서 벗어난 아이를 위한 시인데 마지막 구절이 이렇다. "다음 생에선 기녀 딸 되지 말고 좋은 가문에서 좋은 남자로 태어나거라"

 

   그들의 시를 읽다보니 '희망가'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젠가는 좋은 세상을 꿈꾸었을까. 문학이 삶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면 이들 시야말로 진정한 문학이 아니고 무엇일까. 언젠가 그들 시의 전문을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앉아서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풍 중에 또 다시 꿈 같도다   <희망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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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클래식 2 - 클알못에서 벗어나 클잘알이 되기 위한 클래식 이야기 이지 클래식 2
류인하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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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음악과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조건 듣는 것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계속 들으면서 익숙해지면 흥얼거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좀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어떤 종류인지 자연스레 파악도 된다. 클래식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재즈나 랩이 왕창 들어간 노래보다는 클래식이 훨씬 접근하기가 쉽다라는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거기에 <이지 클래식> 같은 팟캐스트나 책이 더해지면 더 재미있고 신나게 클래식과 친해질 수 있다.

 

   <이지 클래식>의 가장 큰 특징은 대중 문화, 즉 영화에 흐르던 음악들로 미끼를 던진다는 점이다. 영화는 대중들이 가장 쉽게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 중 하나이고 영화의 장면들에 적시적소에 사용된 음악은 영화를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청자들에게도 그냥 듣는 것보다 쉽게 각인된다. 각 영화의 내용과 음악이 삽입된 장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이어지는 음악과 작곡가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챕터 마지막에서 하나로 통합되면서 즐거움을 선사한다. QR 코드로 삽입된 음악까지 더해지니 환상이다.

 

   클래식 음악을 매번 접할 때마다 드는 의문이지만, 그 당시에는 음악 천재가 왜 그렇게 많았을까. 어떻게 1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작곡을 시작할 생각을 하는걸까. 바이올린 하나만으로도 대단한데, 피아노도 치고 작곡도 하더니 지휘까지 한다. 물론 개인의 능력도 중요했을테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과 장려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시대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와..이 음악 좋다와 같은 단순한 감상평밖에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면 이 책 한권으로 조금은 더 업그레이드 된 기준으로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든 낯설고 익숙하지 않으면 어렵게 생각되는 법이다. <이지 클래식>으로 클잘알까지는 아니더라도 즐클할 수 있는 환경은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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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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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드라마에 이런 캐릭터가 있었다.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진심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이리저리 재면서 자신이 상처받을까, 다른 사람이 싫어할까봐 속마음을 꽁꽁 감추었던 인물이었는데 결국 그는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아야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이 소설 속의 윌라가 바로 그와 비슷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윌라의 삶을 시기별로 나누어 보여준다. 1967년 우리는 11살의 윌라를 처음 만난다. 11살 윌라의 삶은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구절을 상기시킨다. 감정이 불안한 윌라의 엄마는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화를 내고 집안의 유일한 이동수단인 차를 가지고 나가서 며칠동안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고나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들어와 그렇게 삶은 이어지고 아빠는 화를 낼 줄 모르는 온화한 성격이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묻어두는 캐릭터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 정말 윌라의 생각처럼 우리는 '모두 완벽하게 행복한 집에서 살고 있을까? 집에서 안좋은 일이 일어나는 걸 감추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까?

 

   이야기는 10년 뒤인 1977년으로 넘어가 윌라는 21살의 대학생이 되고 데릭이라는 남자친구를 만난다. 데릭은 윌라를 사랑하고 윌라와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비행기에서의 하나의 사건이 데릭이 윌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11살의 윌라가 엄마의 부당함에 저항하기는 어려웠을지라도 21살의 윌라는 충분히 자신의 생각을 데릭에게 전할 수 있었지만 말하지 않는다. 다시 20년 뒤인 41살의 윌라는 두 아들을 둔 엄마가 되고 윌라의 엄마는 돌아가신 지 오래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데릭이 세상을 떠나고 윌라는 다시 한번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고 통증에 익숙해지는 삶을 강요받는다.

 

   2017년, 이제 61살의 윌라는 피터와 함께 여전히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볼티모어의 한 여자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고 그로 인해 그녀의 단조로운 삶에 변화가 생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1997년까지의 윌라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2017년 이후의 사건들이 윌라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녀가 자신의 진짜 감정을 불러내는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너무 드라마틱하다고나 할까. 짹깍짹깍 무미건조한 윌라의 클락댄스가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회전하며' 돌아가는 새로운 클락댄스로 변화해나가는 과정에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워서일까. 사와로 선인장, 클락댄스, 비행기에서 총을 가졌다며 윌라를 위협한 남자 등 무언가 내가 깨닫지 못한 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은 오브제들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사실 피터는 무슨 죄라는 생각도 들고.. 뭐..그래도 윌라가 61살에 깨닫는 진정한 인생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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