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화를 사랑해요
구로다 다카코 지음, 정은지 옮김, 이시바시 후지코 그림 / 초록개구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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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화를 사랑해요」는 동화책도 아닌, 아주 얇은 정보책이다. 이 책의 첫인상은 “이렇게 얇은데 무슨 내용이 있겠어? 챕터도 짤막짤막하니 보나마나 또 했던 얘기겠네. 주제도 ‘평화’이고.”였다.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해요」는 일본사람이 쓴 전쟁에 관한 얘기, 평화에 관한 얘기다. 하지만 이 글에서 자신들이 피해자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어린이들이 있다.

<우리 손으로 연 731부대 전시회>. 일본 어린이들이 ‘731부대 전시회’를 보러간다. 731부대는 페스트나 콜레라 따위의 세균을 가지고 무기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한 부대다. 중국인들 러시아인들을 이용해 끔찍한 생체실험도 했다. 아이들은 전시를 보고 무시무시하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왜 인간이 그렇게 잔인한 일을 했는지 생각한다. (잠깐 딴 길로 새면, 우리는 잔인한 범죄가 일어났을 때도, 욕을 하거나 소름끼쳐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한다. 하지만 왜 그들이 그렇게 잔인한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 같다.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어린이들 스스로 의견을 모아 문화제날 731 건물 모형을 만들고, 더 많은 것을 조사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분명 이것은 자기의 조상들이 한 일이지만, 누구에게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고, 오히려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이런 면에서 어른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여기서 일어났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그런 작은 일들을 통해 왜 평화가 절실히 필요한 것인지도 말해준다. 그리고 종군 위안부 문제도 나왔다. 이 책에서는 ‘종군 위안부’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고,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성 노예’라는 말이 본질에 가깝다한다.(이런 부분은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김학순 할머니, 강덕경 할머니(변영주 ‘낮은 목소리’ 다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가 어릴 때 일본 군인에게 잡힌 끔찍한 얘기도 나온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에 그런 일을 당했다니 너무 놀라워. 강덕경 할머니는 일본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인생을 망치고 말았잖아.”

“이 이야기를 듣는 것이 괴롭긴 하지만,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거라고 생각해. 일본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수업 시간에 성에 대해 배웠잖아. 성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생명과 관련이 있어. 지금 전 세계에는 가난한 아이들이 성을 사고파는 매춘에 끌려 나와 희생되고 있어. 이것도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싶어.

 

아이들이 딱딱하고, 바른 소리만 해서 어색하기도 했지만, 사실 아이들을 잘 뜯어보면 술 먹고 농담이나 신소리만 하는 어른들보다 훨씬 진지한 면도 바른 면(바르다는 걸 어른들처럼 어색하지 않아 한다)도 많다. 그리고 그 생각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지금도 피해 받고 있는 또래 어린이들을 걱정하게 한다.

 이 책의 각각 다른 내용의 챕터들은 고작 2-3페이지 남짓하다. 아주 간결하게 쓴 내용인데도, 전할 내용을 군더더기 없이 전한다는데 놀랐다. 이 책을 얕보았던 내가 부끄러웠으니까.

이 책은 큰 전쟁에만 한하지 않고, 뒷부분에는 지금 현실의 문제를 언급한다. 한 학급 안에 있는 여러 나라 아이들 얘기부터, 교실 안에서 어린이나 청소년이 ‘어린이의 목소리를 국제연합에 전달하는 모임’을 만들어, 교칙, 시험, 체벌, 어른과의 관계를 놓고 저마다의 견을 내놓기도 하는 일, 시부야에서 벌어지는 평화 행진 등등.

“얼마 전에 숙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는데, 전쟁은 얼마나 많은 슬픔을 낳을까요? 저는 전쟁을 절대 반대합니다. 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전쟁은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했고, 그런 전쟁은 아직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 우리 주변도 평화롭지 않다.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의 터전에서 추방당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용산 참사),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려다 갇힌 사람들(PD수첩) 또 눈에 안 보이는 폭력은 얼마나 많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오히려 낫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현실에서 나서야 할 어른들은 자신들의 주변만 돌보느라 정작 본질적으로 필요한 ‘평화’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책에도 나왔듯이, 커다란 남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할 듯하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 책에 나온 일본 아이들처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과거를 가르치는 일이야 말로, 앞으로 아이들이 미래를 어떻게 바로 바라보느냐를 잡아 줄 것이다.

그리고 여러 평화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인식과 시도,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 우선 20분이면 읽을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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