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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 전2권 세트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남의 컴퓨터 OS를 다시 깔기 위해 밤을 지새야 했던 우울한 한 여름 밤, 단순 작업의 무료함을 달래려 집어든 책 2권은 그런 밤을 심심치 않게 보내게 해주었다. 2천년을 숨겨왔다는 한 기독교 야사를 중심으로, 이름만으로도 뭔가 있어 보이는 온갖 종교 단체와 비밀 결사 우두머리들의 음모가 소용돌이치는 바닥 없는 냄비 안에 던져진 주인공/여주인공의 모험에 괴짜 귀족, 알비노 수도사 등의캐릭터들이 양념처럼 가세하니 속된 말로 '뜨지' 않고는 견딜수 없을 것 같은 얘기긴 하다. 근데 딱 그것뿐. 이런 게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너무 의식하고 쓰는 미국적 베스트셀러 소설의 한계라고 할까?
많은 서평에서 보듯 기존 교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듯한 배교적인 아이디어, 더없이 희한하고 불행한 가족사를 지닌 여성 캐릭터, 다빈치의 발명품을 활용한 비주얼한 트릭 같은 것은 더없이 흥미로운 소재긴 하지만, 미디어 광고에서처럼 에코와의 비교는 거의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엮어가는 방대한 지식이 진지하고 흐뭇한 종교적 역설로 연결되지 못하고 그저 '인터넷 지식 검색' 같은 피상적인 나열에 그친다는 점이나, 주인공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기호와 상징들이 점장이 썰 수준의 얄팍함을 못 벗어난다는 점, 유서 깊은 단체들을 동원해 놓고도 흥미로운 역사적 고찰이 아닌 사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설정으로만 써먹는다는 문제 탓이다. 이 작품도 처녀작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재미있을 것 같은 소재의 범람 내지는 쾌속한 진행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밀려 개연성과 완성도는 저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인류의 지고한 미를 상징하는 온갖 소재에 대한 비주얼한 묘사가 빈약하다는 것은 영화화를 너무 의식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더욱 강화시킨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면 유럽 여행을 가든가, 언젠가는 만들어질 영화를 보란 뜻인가? 책에는 책 고유의 템포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마치 영화의 편집처럼 회상 장면으로 자주 돌아가는 것도 거슬리고... 외국인 캐릭터에 대한 묘사에 이르면 끔찍한 수준이다. 미국인들은 영국 귀족, 하면 레몬 넣은 홍차에 목매고 상스런 말을 서슴없이 뱉는 속물 정도를 연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우습기 그지없었다.
미디어의 소개를 읽고 기대했던 것과 달리 주인공 랭던의 캐릭터가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도 별점을 깎는 데 한몫. 그에게 붙은 온갖 팬시한 직위와 유명세의 뚜껑을 열어보면 무슨 검색 엔진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히치콕 류의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 무고한 시민의 이미지를 가지면서 동시에 당면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언밸런스함이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오히려 흥미를 끌고 얘기에 탄력을 불어넣어준 이는 불행한 가족사라는 후광에 감싸인 소피와 박물관장, 그리고 중반에 조력자로 가세하는 괴짜 영국인 티빙 경이라는 사실을 말해 두자. 불쌍한 사일러스도 빼놓지 말고...
그래도 다른 베스트셀러 스릴러랑 차별되는 미덕이 있기는 하다. 로빈 쿡이나 그리샴처럼 소설의 절반쯤에서 뜬금없이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급진전되는 서비스 씬 같은 게 없고 아주 얌전하게 진행된다는 점. :-)
남들이 에코의 두 걸작에 빗대어 격찬한 것과는 별개로,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움베르트 에코의 [푸코의 진자]를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롯의 헛점을 교묘한 상징 놀이로 엮어가는 음모론의 소용돌이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다가 문득 이 모든 것이 애들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신비주의의 형성과 그 실체를 통렬하게 풍자한 진짜 기호학 교수의 관점에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