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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도망치다 - 폭력에 내몰린 여성들과 나눈 오랜 대화와 기록
우에마 요코 지음, 양지연 옮김 / 마티 / 2018년 7월
평점 :
우에마 요코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오키나와에 가 몇 년 간 그곳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여성들은 청소년-가정폭력 피해자-성판매 여성-미혼모, 그러니까 여성으로서 주변부로 밀려날 때 떠맡게 되는 그 모든 '소수자'의 명칭을 지닌다. 그렇다면 우에마는 무얼 했나. 우에마는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쩔 수 없이 그들 삶에 휘말려 임신중절 수술의 보호자가 되기도 하고 남편이나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할 때 그들을 구해내기도 하며. 다만 철저히 거리를 유지한 채. 그러나 여기서의 거리는 우에마가 구성하였다기보다는 구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에마는 그녀들에게 결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남성들로부터 폭력을 당한 것에는 절대 당신들의 잘못이 없다고 수 번 말하지만 그들은 우에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는(하지만 이때의 우리는 어떤 우리이고 얼마 만큼의 우리를 포함하는 걸까), 소수자들이, 피해자들이 지닌,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이질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다만 이때의 이질성은 우리를 향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녀들에게 당신들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 발화는 동시에 그녀들을 오직 피해자로서만 호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들은 온갖 폭력과 피해상황 안에서도 크게 웃고 화도 내며 (폭력의 '증거'인) 아이를 낳기도 한다. 그녀들의 행위성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 우에마의 말처럼 "나 또한 그녀들과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아마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208쪽)"는 것.
<맨발로 도망치다>의 소재들은 분명 너무 괴롭고 끔찍하고 마주하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우에마 요코와 그녀들의 대화들을 읽다보면 무언가 웃기고 즐겁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우리가 소수자의 삶을 하나의 텍스트로서 읽어내고자 하거나, 나아가 그들 삶에 개입하고자 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오키나와 여성들의 삶에서 배웠듯-그녀들의 (폭력과의) 공모성이다. 그것을 단지 가스라이팅이라 칭하며 그녀들을 구출하고 구원하겠다고 다짐할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피해상황 안에서 소수자들이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그들에게 가해지는 권력을 저버리기도 하고 비틀거나 전유하기도 하며, 심지어 그것과 '결탁'하기도 하는 그녀들의 행위성을 섬세히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