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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이윤 리 지음, 정혜윤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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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들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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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지대 - 2018 호주 총리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9
제럴드 머네인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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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기억과 스쳐지났던 타인, 머릿속 이미지들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굉장히 사색적인 글. 외부 대상을 마음속에 들여 그 면면을 조용히, 지긋이 살피는데 이 의지 자체로 근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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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이 핵심인 겁니다. 두 개의 계율이 아니라 단 하나의 계율입니다. 저는 이게 최고도로 혁명적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중 계율의 핑퐁 게임이 어느 쪽에서 끝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이 딜레마가 그리스도교 전통의 근원적인 상황에 속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꽤 확실합니다. 그리고 바울 역시 이 딜레마를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논쟁적인 공식을 내세운 겁니다. "이것[이웃사랑]만 있으면 된다. 이것만이 타당한 계율이다." - P128

아무튼 사랑은 그런 게 아닙니다. 사랑은 나의 결핍을 고백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군요. 하느님의 왕국이 도래해서 모든 사람이 부활했는데, 어째서 여전히 사랑이 필요한 걸까요? 그때는 우리 모두가 완전해져 있을 텐데 말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천재성을 보게 됩니다. 완전한 상태가 되어서도 [개별적인, 다시 말해 홀로 자족할 수 있는] ‘내‘가 아니라 [항상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동의] ‘우리‘로 존재할 거라는 겁니다. 이건 그러니까, 결핍은 완전함 자체 안에도 존재할 거라는 뜻이죠. 「고린도후서」에 이렇게 쓰여져 있듯이 말입니다. "너의 힘은 너의 약함 속에서 작용한다." 텔로스, 즉 완성이란 개념은 신비주의에서, 신비주의자들의 언어에서, 그리고 물리학에서 나온 겁니다. 여기서 핵심은 엔 아스테이네이아, 약함 속에서라는 표현이죠. - P133

이제 아시겠지요? 무슨 종합이니 타협, 세속화에 대한 긍정적 평가 따위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반대지요. 그리스도와 바라바 사이에서는 무슨 조사위원회 같은 걸로는 도무지 한 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는 겁니다. 토론하는 계급이라는 말로써 도노소 코르테스는 부르주아들의 자유주의적 문화 프로테스탄티즘을, 물론 전체를 파악한 건 아닙니다만, 핵심적인 부분을 파악해 낸 것입니다. 부버나 UN의 고층 빌딩에 있는 함머스쾰트를 생각해 보세요. 이 사람들이 [끝없이] 얘기만 주고받는다고, 마치 그런 영원한 대화 속에서 평화로 가는 길이 뚫릴 거라는 듯이 얘기만 주고받는다고 생각해 보시란 거죠! 이런 것은 지금 실제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권력의 발끝도 건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 P160

독일 관념론의 할아버지가 오든, 노발리스 등이 말하는 내면의 깊이로 향하는 여정이든 뭐가 됐든 말입니다. 당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게 결론이니까요. 하느님이 [그런] 하느님이라면, 그렇다면 그 하느님은 우리의 영혼을 살짝이나마 건드릴 수조차 없을 겁니다. 이런 게 선험성, 그러니까 아 프리오리 어쩌고 하는 겁니다. 건너편에서 무슨 일인가가 먼저 일어나야만, 그런 다음 우리가 그걸 볼 수 있습니다. 별빛이 우리 눈을 찌른 뒤에야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 봅니다. 안 그러면 우리는 계속해서 올라갈 겁니다. 내일이고 모레고 계속 노력할 것이고요. 아도르노, 이 사람은 도무지 손을 놓질 못합니다. 바로 그래서 미학자인 것이지요. 그러나 벤야민이나 칼 바르트는 그런 식의 나이브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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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자율 구역 ㅣ KRITIK 1
정지돈 지음 / 온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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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오랜만 역시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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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는 반성적으로 우리의 왜곡을 결코 제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는 순수하고 독립적인 현실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문제도 아니다. 문제는 그보다 심오하고 훨씬 더 근본적이다. 즉, 우리 자신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현실은 주체인 "우리에게 의존할 때라야만" 나타나거나 가시화된다. 그것은 존재가 우리에 의해 야기되고 구성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실 자체가 갖고 있는 내재적 부정성/모순이 이런 현실의 부분으로서 주체의 형식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사물들과는 달리) 주체는 현실의 모순의 객관적인 구현이다. 이점이야말로 라캉 유물론의 핵심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나 자신은 나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물에 의해서 주체로서 결정된다. 하지만 주체의 위치 혹은 주체화는 사물들이 나를 결정하는 구체적이고 특이한 방식일 뿐만 아니라, 또한 동시에 나를 결정하는 바로 그 사물들에 연루된 역설/모순의 주체화이기도 하다. - P235

사랑(의 조우)은 단순히 모든 것이 꼭 맞는 장소에 들어간다[필연적이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조우는 서로 다른 두 병증 사이의 우연한 만남에 관한 것도, "서로에게 작동하는" 것을 조우하기에 충분히 운이 좋은 두 개별자들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 사랑은 그것을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한다. 그것은 욕망의 원인이 연인에게 굴복하고 연인과 동시발생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것의 정동은 놀라움surprise이다--단순히 열병이 아닌 오직 이 놀라움, 이것이 사랑 고유의 기호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주체의, 주관적 형상의 기호인 것이다. 그것은 "그게 너였어!"라고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가 그것이라니 정말 놀라워!", 혹은 사랑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더 단순한 공식인 "너가 너라니 정말 놀라워!"라고 말하는 것이다. - P262

존재의 보통 과정(반복)이 실상 불가능을 필연과 연접conjunction시키는 것이라면(그것이 "쓰이지 않기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사건은 그것이 쓰이지 않기를 중단할 때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사건과 더불어 발생하는 것은 (존재의 중립성이라기보다는) 존재의 우연성에 있는 존재를 긍정하는 이접disjuction일 것이다. 라캉은 사랑의 사건과 관련하여 이 정의를 들여오고 있다. 사랑의 조우는 "성적 관계가 쓰이지 않기를 중단함"을 결과로서 지닌다. 존재는 이미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당신"과 동시에 발생한다. "그게 당신이군요!" "내게 항상 결여된 존재가 당신이군요!" - P260

그러나 이 점을 지적한 후, 라캉은 다음과 같이 비관적인 결론을 내린다. 비-관계의 (시간적) 중지suspension 너머에서, 사랑의 조우는 자신의 우연성에 있는 이런 중지를 유지할 수단이 없고, 그러므로 그것은 자신의 필연성을 행사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오직 ‘쓰이지 않기를 중단하기‘라는 기반 위에서 연명하는 모든 사랑은, 이 부정을 다른 부정, 즉 ‘쓰이기를 중단하지 않기doesn‘t stop being written‘, 멈추지 않기로 변경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때 이것은 우연으로부터 "사랑의 드라마뿐만 아니라 운명도 구성하는" 필연으로의 이동인 것이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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