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과 물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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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아는 나에게 독서의 시작점 같은 무엇인데 독서에 대한 욕망은 있었으나 취향은 없던 때에, 그러니까 독서에 대한 자의식이 부재했던 나에게 어떤 상을 형성하게 해준 가장 처음의 것이었다. 올빼미의 없음을 시작으로 과거 그녀의 소설들, 그녀가 번역한 에세이들과 소설들을 한 권씩 읽어나가며 나의 취향은 확고해지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며 어쨌든 지금의 독서취향과 그것의 피드백으로 구성되는 나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북쪽 거실정말 좋다). 물론 점차-원래 우리의 시간이 그렇듯-변하고 배수아의 소설을 멀리하게 되었지만(누구의 강요도 없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번 단편집 뱀과 물을 읽으며 여전히 나는 배수아의 매혹을 간편히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단편집에는 어린 소녀들이 서사를 이끌며 돌아다닌다. 그들이 이끄는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어떤 이미지-어리숙하면서도 뭔가를 알고 있는 것도 같고, 그것에 무관심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떤 시간을 앞에 둔 초기의 잠재적인 무언가를 품은, 그것을 의식하는-가 옅은 분위기로 문장들에 스며들어있다. 소녀라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소녀일 때 어떠하였는지를 어휘로써 구성하고 명명할 수 없지만, 나아가 그것을 소녀라고 간단히 칭하는 것이 옳지 않다면, 사람 각자가 지닌 긴 시간의 초기에 해당하는, 아직 사회의 언어와 규범으로부터 먼 상태로 기거하던 이들이, 또한 사회적으로 소녀들에게 부여된 시선들과 부딪히며(그것은 분명 소녀들을 희롱하고 그녀들에게 추접하게 추파를 던지는 어른-남성들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배수아의 소설들은 그러한 폭력을 가벼이 하여 스스로 제 풀에 스러지게 한다) 형성되는 그녀들의 자의식과 이미지가 있다. 간단하게 명명할 수 없고 그녀들을 읽어내려는 독자의 획일적이고 규범적인 시선을 독자는 분명 의식하며 그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어떤 책임과, 배수아의 서사가 이끄는 낯섦과 이미지들의 반복들이 이상한 독서의 무드를 제공한다. 색다른 독서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1979, 94)

 

  나는 그중에서도 도둑 자매가 가장 좋았는데 나에게는 이 소설이 앞선 단편들의 무드가 응축되어 가장 정밀하면서도 따뜻한 소설로 느껴졌다. 어둡고 탈색된 세상에서 아이러니하게 행복해보이는 도둑 자매의 모습들을 보며 기분이 너무 좋아져버렸기 때문이다. 서사는 아리송하며 내가 네 언니야.”라고 반복해서 말하던 그 소녀는 정말로 있었던 것인지, 납치당한 소녀는 누구에게 납치당했고 도대체 도둑은 누구이며, 산속에 파묻힌 이는 유방암에 걸린 언니 소녀의 어머니는 맞는지, 언니 소녀의 어머니는 맞는지 모든 것들은 불명확한데 나는 두 소녀가 손을 잡고 시장에서 먹을 것들을 먹고 얼굴에 침을 발라주고 자신의 원피스로 얼굴을 덮어주고 철로를 가고 바다에 가 그 누구도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았다.”는 문장을 적는 그들이 너무 행복해보여 나까지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강지희 평론가는 해설 영원한 샤먼의 노래에서 이렇게 적는다.

 

오이디푸스 이래로 인간은 결국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기 위해 글을 써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사가 눈먼 인간의 도취적인 어리석음과 절망을 그리는 데 바쳐져왔다면, 배수아의 소설은 눈먼 거울을 향한다. 눈먼 거울에는 나르시시즘이 없으므로 절망도 없다. 눈먼 거울 속을 홀로 지나가는 유령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져가는 사물의 감각일 것이다.(275)

 

  그리고 여기에 반복되는 배수아의 문장들을 병치해 보자.

 

왜냐하면 거울이 한번 비춘 것이 다시 세상으로 반사되지 못하므로, 일어나기로 약속된 일들은 그냥 약속으로 남고, 도둑도 없고, 따라서 강아지도 없고, 강아지는 그냥 거울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 저절로 있다가, 언젠가 그레이하운드를 타러 가게 될 것이라고, 한번 소리내어진 말들은 그렇게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에게 대답했다. (도둑자매, 152)

 

나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시라고는 평생 한 편도 써본 적이 없었지만, 그리고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내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것을 잘 알았지만,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고, 오직 직관에 기대서 슬픔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 238)

 

  시간을 보내다보면 명확해지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지속이 지속함으로써 우리가 이끌려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능동성과 주체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꿈의 세계를 통해 타인들과 육체 없이 뒤섞이기 시작했다(273)”는 강지희 평론가의 언급처럼 본래 나와 뒤섞인 타인이 문제일 수 있고 우리의 인식 상의 불완전함일 수 있고, 그러나 그게 무엇이었든 중요한 것은 우리는 삶에 대한 이러한 어려움을 그저 애도하고 애틋해하며 감성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져있기에는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일 온전함, 타인과의 완벽한 합일 그런 것들이 불가능하다면-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에너지를 빼앗아가지만-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제 어떻게 무엇을 해나갈 것이냐겠다. 이 지점에서 배수아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탐색하기도 하고, 물론 곧바로 그런 어린 시절은 없다고 하며, 쉽게 슬픔에 빠지지 않은 채, 그러면서도 이상한 분위기의 동화를 적어가는 배수아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의 화자가 자신 할머니의 죽음을 예상한 바로 그 시기에 여러 사람들 앞에서 슬픔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238)”는 것은 또 어떤 지점을 짚고 있는 걸까.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 느낄 어떤 감정 혹은 기분과 아니, 알고 싶지 않아요. 고맙지만, 이미 말했듯이 지금 나에게는 편지 내용이 뭐든 상관이 없으니까요(266).”라는 발언들. 언제나 문제는 그 다음, 의 것인데 어쨌든 배수아는 무언가를 하고 있고 그 무언가는 매혹적이며 나는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독서는 행복했다. 뱀과 물의 다음의 물음과 함께. “그렇다면 어디로?(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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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8-09-0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상하게 한국소설은 난해하더군요 ㅎㅎ 저도 읽어 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