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은 발굴된 것들과 함께 학교 연구실로 돌아왔다. 함박사는 혹시라도 더 남아있는 것들이 있을지 모른다며 체류를 고집했고, 정은수는 진영의 조사를 돕기 위해 자진 하산(?)했다.

"두개골 좌측에 미세한 금이 가있는데, 생존 전후에 바로 생긴 건 아닌 것 같고 시간이 많이 지난 탓에 일어난 수축에 잔여물의 이동시 얕은 충돌로 생긴 것 같다."

 한 손에는 녹음기를 들고 상황을 계속 녹음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뼈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시간의 풍화작용으로 유골이 많이 건조하고 수축되기는 했으나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갈비펴와 어깨뼈의 크기가 왜소하고 골반 쪽의 공간이 남자의 것에 비해 넓은 편이라 여자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에이~ 교수님도 참~"

진영의 옆에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어대던 정은수가 딴지를 걸었다.

"여자가 맞다니까요~. 함박사님도 그러셨잖아요."

진영은 말없이 한숨을 쉬더니,

"정조교, 사진이나 찍지."

하고 면박을 준다. 그리고는 문제의 발 부분의 잔해로 남은 뼈로 시선을 옮겼다.

"발은..."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던 진영은 운을 떼려다 결국 녹음기를 내려놓았다.

"왜요?"

정은수가 그런 진영의 행동에 의아한 듯 물었으나 진영은 그 뼈들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교수님?"

정은수가 다시 묻자 진영은 외려 그 뼈들에게 바짝 다가갔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

밑도 끝도 없이 물어놓고는 또다시 말이 없는 진영의 태도에 은수는 한숨을 쉬고는 주먹으로 가슴을 친다. 늘 이런 식이었다. 진영은 그 '이상하지 않아?'를 정말 이상하다는 듯 은수에게 묻고는 더 얘기하지 않았고,은수는 그에 대한 답답함을 그런 식으로 호소했다.

"... 발 관절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스친 듯 긁힌 자국이 있다. "

"네? 어디요?"

진영의 말에 놀란 듯 은수는 진영의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진영은 말없이 뼈 중 한 조각을 들어 은수에게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흙만 털어 바로 가져온 유골에 긁힌 자국이라뇨?"

 은수의 말에도 진영은 침착하게 그 뼈조각만 훑어볼 뿐이다.

오랫동안 땅에 묻혀있던 뼈, 그것도 바다를 타고 그 위로 지층이 얹혔던 뼈에 긁힌 자국.

두개골 처럼 건조와 축소현상으로 작은 돌에라도 부딪혀 생긴 금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선명하고 골이 깊은 편이야."

"그렇다면, 이건..."

진영은 뼈조각을 내려놓았다.

"이 뼈의 주인이 살아있을 때 생긴 상처로 인해 생긴 거라는 거지."

두 사람은 말없이 그 유골을 내려다 보았다. 무언가 싸한 기운이 뒤통수를 훑고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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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진영의 부르는 소리에 함승현 박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오~. 권 교수. 어서 와."

진영은 정은수에게서 조사용 장갑을 받아 끼고 그의 곁으로 갔다.

"오면서 정조교에게 들었어요. 여자 같다면서요?"

 박사는 토시를 낀 한 팔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응... 여길 봐."

진영은 그가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보았다.

 "시간이 많이 지난 상태라 뼈에 수축현상이 일어나긴 했는데~, 골반으로 예상되는 뼈들을 대충 조합해본 결과, 생식기의 위치를 감안할 때 남자의 것을 담기에는  공간이 넓고 둥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남자의 것'이라는 말에 정은수는 '풋'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진영은 함박사의 의견에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 연하거나 소화하기 쉬운 음식들이 그 당시에 있었던 건 아니었을 테니까, 선이 얇고 작달만한 턱뼈를 보고 또 여자라고 확신하신 거구요?"

함박사는 '그렇지~'하면서 만면에 웃음을 띄었다. 잘 키운 제자 하나 열 자식 부럽지 않다고 입이 닳도록 말하던 그다. 진영의 눈부시다 할만한 성장에 함박사는 늘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큼 뿌듯해졌다.

 "그런데... 저 뼈들은 뭐예요?"

머리부터 전체를 샅샅이 둘러보던 진영의 눈에 잘게 부서진 듯한 뼈들이 눈에 띄었다.

"생긴 거로 봤을 때는 발 쪽인 거 같아 밑 부분에 두긴 했는데, 아직 모르지. 척추 쪽에서 어긋난 뼈일 수도 있는 거고..."

뼈들은 다 발굴되지 않은 듯 했다.

"매장된 시체였을까요?"

진영의 질문에 함박사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다시 한번 토시로 땀이 흐르는 얼굴을 닦았다.

"그랬을지도 모르지."

진영은 함박사에 굳어진 주름들을 주시했다.

"뭔가 석연찮은 게 있으시군요?"

진영의 말에 함박사는 그녀를 힐끗 보았다.

"오면서 뭐 본 거 없나?"

진영이 대꾸없이 그의 답을 기다리자 그는 한 숨을 뱉어냈다.

"정 군, 자네는 뭐 본 거 없나?"

곁에서 말없이 앉아있던 정은수는 토끼 눈이 된다. 

"네? 아, 저... 여기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게 가장 빨랐습니다."

말없이 두 사람은 그만 보았다. 서해안 고속도로라니...

"허허허허허-."

함박사는 크게 웃었다. 진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맞네. 정 군이 저래 뵈도 똑똑한 친구란 말일세."

"네?"

진영이 되물어도 함박사는 웃기만 했다. 

"십대 때 학교 다니면서 안 배웠나? 한국 지리 말일세."

진영은 잠시 이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나 생각하다 퍼뜩 생각나는 게 있어 뼈와 주변의 땅의 질을 확인했다. 

"그럼, 혹시..."

함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이 뼈의 주인공은 사실 바다에서 죽었고, 그 위로 침식 작용이 일어나 깊이 묻혀있다가 지층이 밑에서부터 바뀌면서 이 위로 솟아 오른 듯 하네. "

진영은 다시금 뼈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이 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글쎄, 나도 궁금하네.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바다에 수장됬는지..."

함박사도 진영처럼 뼈들을 내려다 보았다. 진영은 일순간의 모든 피로가 녹아나고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에 없던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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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소리의 장단이 가팔라지고 있었다.

 처녀는 우악스런 마을 아제들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처녀가 그럴수록 아제들의 손에는 더욱더 힘이 들어갔다. 그녀를 데려가는 아제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지만, 그녀가 제물이 되지 않으면 자기들의 딸이 제물이 될 지도 모른다.

 "해신님은 처녀를 원하신다! 처녀가 우리의 염원을 담아 해신님께 가지 않는다면 마을 전체에 저주가 내려 너희들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무녀는 칼 위에서 너울 너울 춤을 추며 흰자위 가득한 눈으로 우렁 우렁 거친 소리를 냈다.

"아제! 아제!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죽기 싫단 말이에요!"

자신이 이번 해상제의 제물이 되기 전, 길에서 만나면 한 번씩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아제들이었다. 때때로 며느리감으로 이만한 아이 없다며 자기 아들과 연분을 맺어준다고 법석을 떨었던 그 아제들이었다.

"시끄럽다! 너 하나 살리자고 마을 사람들 다 죽일 참이야?"

그 자상하던 아제들은 이제 15살 어린 처녀의 피로 자기들 목숨을 건사하려는 괴물들이 되어있었다.

"처녀를 어서 바치거라아아!!!"

칼 위에서 두 눈이 뻘겋게 충혈된 무녀가 그들에게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 서슬에 놀라 아제들은 그녀를 절벽에서 내쳐 던져버렸다.

"어무이이이이이~~~!!!"

성난 파도에 빠져들기 전 처녀가 외쳤던 외마디 비명이었다.

 

 ㅡ8년 전.

 한 손은 핸들을 쥐고 한 손으로는 계속 휴대폰을 든 채로 진영은 차를 몰았다.

"어디라고? 어. 어..."

아까부터 곱창처럼 구불구불한 시골길 헤매기를 여러 번, 어젯밤 강의 후 프로젝트까지 끝마친 터라 교수실에서 밤을 새다가 앉아서 잔 잠시의 수면이 전부였던 진영은 피곤이 극에 달해 있었다.

"뭐야... 여기 무슨 농가가 한 채 있는데... 아, 거기라고? 어, 알았어."

굵직한 프로그램을 금방 끝낸 터라, 진영은 계획했던 휴가를 가기만 하면 되었었다.

"정 조교!"

 농가 앞에 차를 대놓고 진영은 농가 뒤의 터로 향했다.

"오셨어요!"

 그러나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다 끝나기도 전 새로운 사건이 진영을 찾아왔다.

"어제 밤 새신 거 아니세요? 안 피곤해요?"

정 은수 조교는 꼼꼼한 성격에 사려깊은 청년이었다. 자료를 조사해서 모으고 정리하는 데는 탁월했지만, 전공 특성상-뼈와 DNA등을 다루기 때문-희한한 억측을 결론이랍시고 내는 엉뚱한 사람이기도 했다.

"피곤해."

진영은 단 한마디로 정은수의 질문을 일축해버렸다.

"뭐 나온 건 좀 있어?"

정은수의 손에서 파일을 건네받고 진영은 형식적으로 물었다. 사실 정은수는 파일 정리 실력이 뛰어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거의 파일을 외운 거나 다름 없었다.(그러니 안 물어도 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물어봐준다. 그래야 정은수가 좋아하기 때문이다.ㅋㅋ)

"대략 300년 전 유골이에요. 뭐 조사를 해봐야 제대로 알겠지만... 골반이나 머릿뼈등을 볼 때, 여성 같답니다."

앞서 조사를 시작하고 있던 오래된 경력의 인류학 권위자, 함승현 박사의 결론일 것이다. 진영은 아버지없이 자란 자신에게 아버지 노릇에 이 계통으로 진로를 이끌어준 멘토인 함승현 박사의 뒷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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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이 이 팀들을 받아들여서 인류학 프로젝트에 가담할 지 아니면 손을 떼고 이전처럼 조용히 어머니의 투병생활을 지지해야할 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아침이 밝았다. 사실, 그동안 모은 돈을 털어 이 산장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주인 없이 3년 동안 방치됬던 터라 손을 볼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당연히 손님이 있을 리 없었지만, 혹여라도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핑계라도 될까 싶어 손님있는 산장으로 보이려고 애를 쓰긴 했었다. 그러니 보일러를 돌려 방방마다 온기가 돌게 하는 데만 여러 시간이 걸렸다.

 깍-.깍-.깍-.

"눈치 빠르네. 맞아. 우리 산장에 손님들이 무더기로 왔거든."

산장 앞 높다란 잣나무에 앉은 까치가 울어대자, 진영이 대꾸하듯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아직 자고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보일러를 돌려서야 방이 따뜻해졌고, 온수도 쓸 수 있어 느지막이 씻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새벽까지 함께 했던지라 진영은 각 사람들의 신상을 알 수 있었는데, 다친 고라니를 치료했던 김재원은 현직 의사로 제3국가 의료봉사활동을 하다가 2년 전 귀국해 법의학을 재전공하는 사람이었다.

"법의학은 왜?"

진영의 물음에 그저 미소짓던 그, 씁쓸한 맛이 느껴지던 그의 미소에 진영은 더 묻지 않았다.

진영의 조교로 막 임명됬었다던 조희곤은, 사실 임명은 됬었는데 진영의 하차로 다른 인류학 교수의 조교직을 맡아야만 했었다.

"그 때 교수님 진짜 너무 하셨어요."

희곤은 비빔 국수를 다른 사람 두 배나 먹으면서 눈물을 질금 거렸는데, 그게 매워서 우는 건지, 진영의 야박함에 서러워 그런 건지 진영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 팀은 어떻게 온 거야?"

맨 처음 서로 안면만 익혔던 사이라 고민했지만, 진영은 나이차를 핑계로 말을 낮추고 있었다. 그 덕분에 희곤은 더 여유로워진 느낌이었다.

"제가 눈치가 좀 있는 사람입니다. 인류학과 사무실 전체에 이 프로젝트 담당교수를 권교수님께 선임 한다고 그래서 제가 자원했습니다. 어차피 전 권교수님 조교 였으니까요."

참 당돌하기 그지 없는 청년이었지만, 그 깐깐하기로 소문난 전체 인류학과 교수들을 설득해서 여기까지 온 정도라면 보통 내기는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인류학과 마지막 학년으로 졸업논문의 일환으로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3명의 남, 녀가 있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소리 나는 쪽을 보자 재원이 해맑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아, 예... 안녕히 주무셨어요?"

진영은 어색하게 인사하더니 다시 장작을 쪼갰다. 처음에는 무겁고 힘만 들던 도끼라 어쩔 줄 모르다가 이제는 제법 장작도 팰만한 요령이 생겼다.

"제가 할까요?"

어느 새 재원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아, 아니에요. 좀 쉬세요."

진영은 고개를 흔들었으나 이미 도끼는 재원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상하게 그는 눈치채기도 전에 그런 일을 곧잘 했다. 어제도 손을 데었을 때 알아차리기도 전에 덴 손을 찬 물에 넣더니만, 지금은 도끼를 낚아채 쥐고 있는 것이다.

"제가 나무 좀 패요. 비켜 서 계세요. "

진영은 정말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재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무를 좀 패는 정도가 아니었다. 도끼를 휘두르는 솜씨가 굉장히 능숙했다. 4등분으로 쪼개진 장작이 한 쪽 구석에 한가득 쌓이자 진영은 그만 해도 된다고 말렸다.

"감사합니다."

진영은 주머니에서 작은 수건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아닙니다."

재원은 그 수건을 받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진영은 장작을 한아름 집어들었다.

"저기..."

자리를 뜨려던 진영이 재원을 돌아보았다.

"여기 혹시 노루가 먹을만한 게 있을까요? 저 녀석 아무래도 오늘까지는 경과를 봐야 할 듯 싶어서요."

노루가 먹을 것-.

"여기는 없고, 마을 쪽으로 내려가면 우사가 있어요. 거기서 제가 짚이며 사료를 좀 얻어올게요."

여기는 인적도 드문 곳이지 않겠는가.

"아,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재원은 다시 깍듯이 인사를 한다.

난로에 장작을 더 넣어서 불을 살린 후 아침 겸 점심 준비를 하기위해 진영은 부엌으로 들어왔다.

부엌 창으로 보이는 뒤 뜰, 그 곳에 노루가 묶여 있었고,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한 노루의 머리를 재원이 쓰다듬고 있었다. 노루는 놀란 듯 그러나 싫지 않은 듯 가만히 그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일어나셨네요."

희곤이었다.

"어, 더 안자고 일어난거야?"

진영의 말에 희곤은 또 씨익 웃었다.

"일어나야죠. 할 일이 많은데..."

잡곡 섞어 쌀을 씻고 밥솥에 앉힌 후에 진영은 머그 컵에 둥굴레 차를 따랐다.

"그게 말인데..."

차가 담긴 머그를 건네며 진영은 희곤 앞에 앉았다.

"나, 이 프로젝트... 맡을 수 없어."

희곤은 가만히 머그를 쥔 채 진영을 보았다.

"조 조교도 봐서 알다시피, 어머니가 투병 중이셔. 다시 이 일을 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학교도 안 그만뒀어."

"교수님..."

희곤은 진영의 마음을 막고 싶었다.

"이해... 해줬으면 좋겠어. 정말... 안 하고 싶어."

희곤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난 지금부터 국 끓일 거니까 조 조교는 가서 김재원 선생님께 이 차 좀 갖다줄래?"

진영이 일어서며 다른 머그컵을 내밀었다. 희곤은 머그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재원은 고라니에게 붕대를 새로 갈아주고 있었다.

"교수님!"

희곤은 재원에게 머그를 건넸다.

"고마워요."

재원은 한 손으로 컵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한 쪽에 내려놓았다.

"뭐 하세요?"

재원은 희곤의 물음에 붕대 감던 손의 팔을 한 번 들었다 놨다.

"..아직까지 절 교수님이라고 불러요?"

재원의 말에 희곤이 웃었다.

"한번 교수님은 영원한 교수님이시잖아요."

희곤은 사실 인류학과로 전향하기 전, 우명대의 의학부 1년을 마쳤었다. 그 때 해외봉사를 떠나기 전의 학부지도 2년차 교수로서 재원과 인연이 있었다.

"그렇게 안 불러도 되요. 뭐 어차피 난 교수도 아니거든..."

희곤은 그의 말에 그저 씨익 웃었다.

"그런데..."

붕대를 다 갈고 뒷 정리를 하면서 재원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뭐 좀 물어봐도 돼요?"

희곤이 말없이 그를 주시했다.

"여기.. 권진영 교수님... 왜 별명이 '마녀'예요? 앞서 무슨 무속인 무덤 사건이 계기가 됬다던데..."

"아~ 그거요..."

희곤은 다시 씨익 웃었다.

"그게 말이죠..."

그 사건은 당시 우명대 의학부 1학년이었던 희곤이 군제대 후 진영이 있는 학교에 재입학 시험을 치르는 계기가 되었던 8년 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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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산장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지만....

 진영은 고민해야 했다.

 이 정체 불명의 사람을 데리고 집에 갈 수는 없다...아닌가?..가도 상관 없는 건가?..

 어차피 이 사람은 다친 고라니를 데리고 탄 것 뿐이지, 이상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도데체 그 귀신 이야기는 왜 한 거야?

 진영이 수십 가지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산장 팻말을 지나쳐갔다.

 "어? 저기 산장 팻말 나왔는데요."

 참, 친절도 하셔라... 손님이 찾아오기 쉽게 팻말을 만들어 꽂아둔 자신이 순간 원망스러웠다.

"와~ 저기 인가봐요. 불도 다 꺼져 있고... 정말 귀곡산장(근 20여년 전 티비에서 방영된 코미디 프로에 귀신 이야기를 가미한 프로가 있었음) 분위기인데요."

젠장할.. 아까부터 정말!

 "뭐,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진영은 억지로 미소를 한 번 지어 보였다.

 곧 산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말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청년은 자리에서 내리더니 뒷문을 열어 고라니를 빼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네?"

 소스라친 듯 다시 그를 본다. 피투성이 고라니를 둘러멘 그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뭐야, 이 놈... 사이코 패스인가?'

 차의 엔진 소리만 들렸고, 진영은 그를 하염없이 보고만 있었다. 그제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안 가세요?"

 우리 집이다 이놈아! 진영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자신을 꼭 눌러 참고 주머니의 휴대폰을 꼭 쥐었다.

 "아, 네... 가, 가야죠..."

 그는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가 돌아서려 할 때였다.

 "권진영 교수님?"

 진영은 놀란 눈으로 소리 난 쪽을 보았다. 차창 쪽에 등산복 차림을 한 일대의 무리가 그를 보고 있었다. 진영이 보자 그 중 한 사람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교수님 조교로 막 임명됬었던 조희곤입니다."

 그제야 진영은 유리문을 내렸다.

 "아~. 어쩐 일로..."

 무리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인사하자 진영은 더더욱 놀란 눈을 했다.

 "소식 들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희 인류학 프로젝트 조사팀입니다."

 아~. 그 팀. 진영은 낮의 일을 떠올렸다.

 "김재원 교수님도 도착하셨네요."

 조교가 인사하는 곳을 돌아본 진영은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바로 그가 고라니를 메고 있던 그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권진영 교수님이셨어요?"

 그는 진영을 보더니 산장을 돌아보고 다시 진영을 보았다.

 "여기...권 교수님 산장이란 말이죠?"

 그를 보던 진영의 얼굴이 벌게졌다. 진영은 그저 차 시동을 껐다.

 

 밤이 한참 늦었지만 진영의 어머니는 사람들과 일일히 인사하고 음식을 대접했다. 오랜만에 부엌에 들어간 어머니가 염려스러웠지만, 진영조차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진영 자신이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었고, 또 그 즈음에는 숙소에 보일러를 돌리고 사람들 별로 배정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영아."

거실에 들일 장작 더미를 옮기던 진영을 어머니가 불렀다.

"이거 가지고 들어가서 난로에 좀 넣어둬라. 겨울에는 군고구마만한 게 없지."

고구마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건네자 진영은,

"됬으니까 어머니는 이제 그만 들어가서 쉬세요. 그러다 저혈압 와요."

하며 염려섞인 말과 함께 바구니를 받았다.

"오냐, 고구마랑 같이 먹을 동치미나 내놓고 가마."

진영이 뭐라 더 말하려고 할 즈음 어머니는 이미 부엌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오래 불을 떼지 않은 방들이라 보일러가 돌아가서 온기를 채우려면 시간이 좀 걸렸다. 난로에 늘상 올려놓은 주전자의 둥글레 차를 따라 거실에 모여앉은 팀원들에게 돌렸다.

 "교수님 학교에서 뵐 때랑은 또 느낌이 다른데요."

은박지에 고구마를 하나하나 싸는 걸 도와주며 조교 희곤이 말했다.

 "어떤데?"

 진영이 묻자, 다른 조사팀원들조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 했다.

 "학교에서는 분야가 그래서 그런건지, 교수님이 꼭 '마녀'같았거든요."

다른 팀원들이 덩달아 웃는다. 진영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마녀 같은'게 아니라, 학교 내에서 불리는 그녀의 별명이 '마녀'였다. 포악스럽고 지독하게 생긴 그런 마귀 할멈의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녀가 한 번 맡았었던 프로젝트가 하필 옛날 무속인 발굴이었고, 문헌과 오래된 사체의 상태를 비교분석하여 그 당시에는 신의 노여움으로만 알고 있었던 죽음을 진영이 해석해 놓은 논문으로 인해 생긴 별명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소문은 들었어."

 김재원, 그였다. 진영은 그를 보자 창피함에 얼굴을 붉혔다.

 '저런 멀쩡한 사람을  나혼자서 '싸이코 패스'로 오해했으니..'

 진영은 말없이 다시 고구마를 은박지에 싸기 시작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굉장한 사건이었다며? 무속인의 무덤을 까보는 것조차 특이한 일인데..."

 고라니는 그의 보살핌으로 원기를 회복하는 듯 했다. 아직 꿰메놓은 상처의 상태를 보기 위해 풀어놓아 주지는 않았다.

"그게 말이죠..."

희곤은 신이 난 듯 이야기 하려고 했다.

"조 조교"

 진영의 부름에 희곤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 어머니한 테 가서 동치미 좀 받아올래요?"

희곤은 '네'하고 기운없이 말하더니 부엌으로 향했다. 진영은 은박지에 다 싼 고구마를 난로 속에 풍덩풍덩 던져 넣었다.

 "도와드려요?"

 재원이었다.

"아! 아닙니다. 다 했습니다."

 진영은 당황해서 들고 있던 고구마를 우르르 넣었다. 그 때 불꽃 하나가 튀더니 불씨가 진영의 손에 내려앉았다.

"앗,뜨거!"

진영이 불씨를 떨어내자 그 부분의 피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리 와봐요."

재원은 진영을 데리고 부엌으로 갔다. 어머니와 희곤이 국수를 비비고 있었다.

"진영아, 왜 그러니?"

어머니의 말보다 찬물 속에 진영의 손을 박아 놓은 재원의 조치가 더 빨랐다.

"불씨에 손등이 좀 데었어요. 괜찮을 거예요."

재원은 수돗물의 흐름을 조금 낮추더니 그대로 진영이 손을 고정하게 두었다.

"얜, 조심하지 않고..."

고추장이 묻은 손을 씻을 생각도 않고 어머니가 다가왔다.

"괜찮아요."

진영은 애써 웃음지었다. 어머니나 진영이나 그 곳의 누구도 서로 말이 없었다.

"음~. 국수 맛있는데요."

침묵을 깬 건 재원이었다.

"그쵸? 완전 짱이죠?"

희곤이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재원은 아예 손가락으로 비벼놓은 국수를 집어먹고 있었다.

"체해요. 따뜻한 데서 먹어."

어머니는 그제야 그릇 하나하나에 국수를 나누어 담았다. 진영은 웬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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