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놀라게 해서..." 

 이미 문자로 받은 말이다.  

"그리고 당신을 좋아한다는 건 진심이었어요." 

 그 역시 문자로 받았다. 이 사람은 문자로 쓴 말을 되풀이 함으로 아까운 나의 시간을 좀먹고 있다. 그러나 그 여자가 놀란 것은 자신이 이토록 아닌 것에 대해 냉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제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그 여자가 그의 얼굴을 보자 송우현은 멋적은 듯 웃었다.  

 "그거 알아요? 전 학교에서 나름 킹카 축에 속한답니다. " 

 그 여자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여자들과 만난 첫날 키스했구요. " 

 그 여자는 잠시나마 그에게 호감을 느꼈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몰랐다.  

 "차는 건 제 쪽이었지, 여자 쪽이 아니었거든요. " 

지금 송우현이라는 이 남자는 자신의 전적을 자랑하러 온 것일까 아니면 그런 그를 거절한 자신을 책망하러 온 것일까? 

 "누구한테 차인 거, 당신이 처음 입니다. " 

 송우현의 눈이 빛났다.  

 "그래서....당신을 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 

 그 여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당신의 매력, 가까이 보고 싶네요. 저랑...정식으로 사귀어 보실래요?" 

 그 여자는 그제서야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이 남자가 자신의 시간을 전부 써가면서 한다는 말은 다시 그 집착의 언어이다.  

 "아니요....." 

 그 여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현씨....당신은 당신 말처럼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좋은 사람 만나세요. " 

 그 여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를 등진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한 낮의 열기가 식은 사막의 밤이 차가워질 즈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어갔다. 땡볕에 이동하고 움직인 터라 몹시 피곤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담요 한 장을 의지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막의 하늘에 뜬 별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심이었으나 애석하게도 달이 환하게 밝은 그 즈음 하늘에는 별 대신 얼마 안되는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자신이 너무 감상적이었나 싶어 그 남자는 피식 헛웃음을 웃었다. 그러나 사막의 밤 하늘, 별이 아닌 달이 뜬 밤도 그닥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짐이었다.  

 "그러는 너는?" 

 그 남자는 이 짐이라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이 밤에 그와 있게 된 것도 말할 수 없는 반가움이었다.  

 "잘 거야. 조금 있다가.... 내 코고는 소리에 모두 날 샐까봐 다들 잔 다음에나 들어가 자려구." 

 그 남자가 웃자 짐도 따라 웃었다. 둘은 그렇게 말없이 밤 하늘을 보았다.  

 "달을 보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지?" 

 뜬금없는 짐의 물음에 그 남자는 생각에 잠겼다.  

 "난 달을 보면서 내 여자친구를 생각하기로 했어." 

 "여자 친구가 있었어?" 

 짐이 그 남자를 지긋이 보았다.  

 "응...있었지...너 처럼 한국인...." 

 "정말?지금 어디 있는데? 미국에?" 

 짐은 잠시 달을 올려다 본다.  

 "죽었어...." 

 "뭐?" 

 그 남자가 놀라자 짐은 손을 흔든다.  

 "이미 3년도 더 된 일이야." 

짐은 지갑을 꺼내더니 사진 한장을 꺼내보인다.  

 "누구야?" 

 짐의 얼굴에 쓸쓸함이 깃든다.  

 "내 아들, 제임스..."   

 머리조차 노란 짐과는 달리 사진 속의 아이는 검은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하고 있다.  

 "그럼 이 아이가..." 

 또다시 짐의 얼굴에 쓸쓸함이 깃든다.  

 "그녀는.....이 아이를 낳고 죽었어...." 

 그 남자는, 심한 입덧이라 생각한 여자친구가 결국 8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수술로 낳은 뒤, 위암 말기라는 절망적인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을만큼 힘들었던 그녀의 병은 인큐베이터의 아들조차 신경쓸수 없을 만큼 그를 슬프게 했었다. 그러나 수술 후 이틀을 자고 깬 그녀는 짐을 안심시켰다. 외려 그녀의 빈 자리를 사랑으로 낳은 아들이 채울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그를 위로했다. 크리스천인 그녀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 많아졌고, 기운 없고 힘들 때라도 아기를 매일 보러 갔으며, 인큐베이터에서 아기가 회복되어 나온 날에는 손수 젖병을 들어 우유를 먹이기도 했다. 모유를 못먹이는 아쉬움을 달래면서...아기가 50일 쯤 되고 함께 가족 사진을 찍기로 한 날, 짐은 자는 듯 죽어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오열했다. 그렇게 그와 그녀의 사랑은 끝이 났었다.  

 "나는 라자스탄 사막에 매 해 오지. 처음에는 혼자 였다가 일행이 생기길래 같이 오는 것이고..." 

 짐은 아이의 사진을 쓰다듬었다.  

 "왜?" 

"왜냐하면, 지금의 너처럼, 여행중에 혼자 다니는 한국인이 있었는데, 그게  그녀였거든.  "  

 짐은 두 친구와 인도 여행을 온 후, 소개받은 가이드와 같이 오는 한국인 여자와 일행이 되었는데, 그게 그 둘의 인연이 됬었다.   

 "그녀를 기리기 위해 난 여기에 오는 거야. " 

그 남자는 짐의 사연에 할 말이 없었다. 이 멋있는 남자가 그런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줄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봐.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너에게 하는 줄 알아?" 

 짐이 담요를 단단히 움켜쥐며 그 남자를 보았다.  

 "이 사막에 너만의 파티마를 만날 거란 너의 허황된 꿈, 그만 잊어버리도록 해." 

 "왜지?" 

 "만남이 극적이면, 그 끝도 그럴 수 있으니까. 나처럼..." 

 그 남자는 할 말을 잃어버린다.  

 "그냥...평범한 사랑이 나을 수 있어....오다 가다 만난 인연과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그렇게 서로 살아가면서 늙어가는 거야...그게...덜 로맨틱하더라도... 외롭지 않을 테니까..." 

짐은 아이의 사진에 오래 입을 맞추고 텐트로 들어가버렸다. 그 남자는 그렇게 오래 앉아있으면서 하염없이 달을 보았다. 슬며시 부는 바람에 모래가 피부를 때렸다. 달도 별도 없던 습한 밤, 나뭇가지 소리가 스산한 그 밤의 적막함을 온 몸으로 받으며 혼자 보초를 서던 군대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다른 사병들은 헛것이 보인다던 그 때, 그를 휘감았던 것은 진한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이 짐의 것과 겹쳐 그를 감싼 것 같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ftd montreal 2010-07-30 0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밌네여

간서치 2010-07-30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ed 2011-08-2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음화 없나요? 너무 재미있어요

간서치 2011-09-19 01:00   좋아요 0 | URL
댓글 주신 것 인제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는 분이 있다는 걸 알고 며칠동안 열심히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