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진영의 부르는 소리에 함승현 박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오~. 권 교수. 어서 와."
진영은 정은수에게서 조사용 장갑을 받아 끼고 그의 곁으로 갔다.
"오면서 정조교에게 들었어요. 여자 같다면서요?"
박사는 토시를 낀 한 팔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응... 여길 봐."
진영은 그가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보았다.
"시간이 많이 지난 상태라 뼈에 수축현상이 일어나긴 했는데~, 골반으로 예상되는 뼈들을 대충 조합해본 결과, 생식기의 위치를 감안할 때 남자의 것을 담기에는 공간이 넓고 둥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남자의 것'이라는 말에 정은수는 '풋'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진영은 함박사의 의견에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 연하거나 소화하기 쉬운 음식들이 그 당시에 있었던 건 아니었을 테니까, 선이 얇고 작달만한 턱뼈를 보고 또 여자라고 확신하신 거구요?"
함박사는 '그렇지~'하면서 만면에 웃음을 띄었다. 잘 키운 제자 하나 열 자식 부럽지 않다고 입이 닳도록 말하던 그다. 진영의 눈부시다 할만한 성장에 함박사는 늘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큼 뿌듯해졌다.
"그런데... 저 뼈들은 뭐예요?"
머리부터 전체를 샅샅이 둘러보던 진영의 눈에 잘게 부서진 듯한 뼈들이 눈에 띄었다.
"생긴 거로 봤을 때는 발 쪽인 거 같아 밑 부분에 두긴 했는데, 아직 모르지. 척추 쪽에서 어긋난 뼈일 수도 있는 거고..."
뼈들은 다 발굴되지 않은 듯 했다.
"매장된 시체였을까요?"
진영의 질문에 함박사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다시 한번 토시로 땀이 흐르는 얼굴을 닦았다.
"그랬을지도 모르지."
진영은 함박사에 굳어진 주름들을 주시했다.
"뭔가 석연찮은 게 있으시군요?"
진영의 말에 함박사는 그녀를 힐끗 보았다.
"오면서 뭐 본 거 없나?"
진영이 대꾸없이 그의 답을 기다리자 그는 한 숨을 뱉어냈다.
"정 군, 자네는 뭐 본 거 없나?"
곁에서 말없이 앉아있던 정은수는 토끼 눈이 된다.
"네? 아, 저... 여기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게 가장 빨랐습니다."
말없이 두 사람은 그만 보았다. 서해안 고속도로라니...
"허허허허허-."
함박사는 크게 웃었다. 진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맞네. 정 군이 저래 뵈도 똑똑한 친구란 말일세."
"네?"
진영이 되물어도 함박사는 웃기만 했다.
"십대 때 학교 다니면서 안 배웠나? 한국 지리 말일세."
진영은 잠시 이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나 생각하다 퍼뜩 생각나는 게 있어 뼈와 주변의 땅의 질을 확인했다.
"그럼, 혹시..."
함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이 뼈의 주인공은 사실 바다에서 죽었고, 그 위로 침식 작용이 일어나 깊이 묻혀있다가 지층이 밑에서부터 바뀌면서 이 위로 솟아 오른 듯 하네. "
진영은 다시금 뼈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이 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글쎄, 나도 궁금하네.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바다에 수장됬는지..."
함박사도 진영처럼 뼈들을 내려다 보았다. 진영은 일순간의 모든 피로가 녹아나고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에 없던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