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소리의 장단이 가팔라지고 있었다.

 처녀는 우악스런 마을 아제들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처녀가 그럴수록 아제들의 손에는 더욱더 힘이 들어갔다. 그녀를 데려가는 아제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지만, 그녀가 제물이 되지 않으면 자기들의 딸이 제물이 될 지도 모른다.

 "해신님은 처녀를 원하신다! 처녀가 우리의 염원을 담아 해신님께 가지 않는다면 마을 전체에 저주가 내려 너희들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무녀는 칼 위에서 너울 너울 춤을 추며 흰자위 가득한 눈으로 우렁 우렁 거친 소리를 냈다.

"아제! 아제!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죽기 싫단 말이에요!"

자신이 이번 해상제의 제물이 되기 전, 길에서 만나면 한 번씩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아제들이었다. 때때로 며느리감으로 이만한 아이 없다며 자기 아들과 연분을 맺어준다고 법석을 떨었던 그 아제들이었다.

"시끄럽다! 너 하나 살리자고 마을 사람들 다 죽일 참이야?"

그 자상하던 아제들은 이제 15살 어린 처녀의 피로 자기들 목숨을 건사하려는 괴물들이 되어있었다.

"처녀를 어서 바치거라아아!!!"

칼 위에서 두 눈이 뻘겋게 충혈된 무녀가 그들에게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 서슬에 놀라 아제들은 그녀를 절벽에서 내쳐 던져버렸다.

"어무이이이이이~~~!!!"

성난 파도에 빠져들기 전 처녀가 외쳤던 외마디 비명이었다.

 

 ㅡ8년 전.

 한 손은 핸들을 쥐고 한 손으로는 계속 휴대폰을 든 채로 진영은 차를 몰았다.

"어디라고? 어. 어..."

아까부터 곱창처럼 구불구불한 시골길 헤매기를 여러 번, 어젯밤 강의 후 프로젝트까지 끝마친 터라 교수실에서 밤을 새다가 앉아서 잔 잠시의 수면이 전부였던 진영은 피곤이 극에 달해 있었다.

"뭐야... 여기 무슨 농가가 한 채 있는데... 아, 거기라고? 어, 알았어."

굵직한 프로그램을 금방 끝낸 터라, 진영은 계획했던 휴가를 가기만 하면 되었었다.

"정 조교!"

 농가 앞에 차를 대놓고 진영은 농가 뒤의 터로 향했다.

"오셨어요!"

 그러나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다 끝나기도 전 새로운 사건이 진영을 찾아왔다.

"어제 밤 새신 거 아니세요? 안 피곤해요?"

정 은수 조교는 꼼꼼한 성격에 사려깊은 청년이었다. 자료를 조사해서 모으고 정리하는 데는 탁월했지만, 전공 특성상-뼈와 DNA등을 다루기 때문-희한한 억측을 결론이랍시고 내는 엉뚱한 사람이기도 했다.

"피곤해."

진영은 단 한마디로 정은수의 질문을 일축해버렸다.

"뭐 나온 건 좀 있어?"

정은수의 손에서 파일을 건네받고 진영은 형식적으로 물었다. 사실 정은수는 파일 정리 실력이 뛰어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거의 파일을 외운 거나 다름 없었다.(그러니 안 물어도 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물어봐준다. 그래야 정은수가 좋아하기 때문이다.ㅋㅋ)

"대략 300년 전 유골이에요. 뭐 조사를 해봐야 제대로 알겠지만... 골반이나 머릿뼈등을 볼 때, 여성 같답니다."

앞서 조사를 시작하고 있던 오래된 경력의 인류학 권위자, 함승현 박사의 결론일 것이다. 진영은 아버지없이 자란 자신에게 아버지 노릇에 이 계통으로 진로를 이끌어준 멘토인 함승현 박사의 뒷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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