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산장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지만....

 진영은 고민해야 했다.

 이 정체 불명의 사람을 데리고 집에 갈 수는 없다...아닌가?..가도 상관 없는 건가?..

 어차피 이 사람은 다친 고라니를 데리고 탄 것 뿐이지, 이상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도데체 그 귀신 이야기는 왜 한 거야?

 진영이 수십 가지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산장 팻말을 지나쳐갔다.

 "어? 저기 산장 팻말 나왔는데요."

 참, 친절도 하셔라... 손님이 찾아오기 쉽게 팻말을 만들어 꽂아둔 자신이 순간 원망스러웠다.

"와~ 저기 인가봐요. 불도 다 꺼져 있고... 정말 귀곡산장(근 20여년 전 티비에서 방영된 코미디 프로에 귀신 이야기를 가미한 프로가 있었음) 분위기인데요."

젠장할.. 아까부터 정말!

 "뭐,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진영은 억지로 미소를 한 번 지어 보였다.

 곧 산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말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청년은 자리에서 내리더니 뒷문을 열어 고라니를 빼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네?"

 소스라친 듯 다시 그를 본다. 피투성이 고라니를 둘러멘 그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뭐야, 이 놈... 사이코 패스인가?'

 차의 엔진 소리만 들렸고, 진영은 그를 하염없이 보고만 있었다. 그제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안 가세요?"

 우리 집이다 이놈아! 진영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자신을 꼭 눌러 참고 주머니의 휴대폰을 꼭 쥐었다.

 "아, 네... 가, 가야죠..."

 그는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가 돌아서려 할 때였다.

 "권진영 교수님?"

 진영은 놀란 눈으로 소리 난 쪽을 보았다. 차창 쪽에 등산복 차림을 한 일대의 무리가 그를 보고 있었다. 진영이 보자 그 중 한 사람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교수님 조교로 막 임명됬었던 조희곤입니다."

 그제야 진영은 유리문을 내렸다.

 "아~. 어쩐 일로..."

 무리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인사하자 진영은 더더욱 놀란 눈을 했다.

 "소식 들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희 인류학 프로젝트 조사팀입니다."

 아~. 그 팀. 진영은 낮의 일을 떠올렸다.

 "김재원 교수님도 도착하셨네요."

 조교가 인사하는 곳을 돌아본 진영은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바로 그가 고라니를 메고 있던 그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권진영 교수님이셨어요?"

 그는 진영을 보더니 산장을 돌아보고 다시 진영을 보았다.

 "여기...권 교수님 산장이란 말이죠?"

 그를 보던 진영의 얼굴이 벌게졌다. 진영은 그저 차 시동을 껐다.

 

 밤이 한참 늦었지만 진영의 어머니는 사람들과 일일히 인사하고 음식을 대접했다. 오랜만에 부엌에 들어간 어머니가 염려스러웠지만, 진영조차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진영 자신이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었고, 또 그 즈음에는 숙소에 보일러를 돌리고 사람들 별로 배정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영아."

거실에 들일 장작 더미를 옮기던 진영을 어머니가 불렀다.

"이거 가지고 들어가서 난로에 좀 넣어둬라. 겨울에는 군고구마만한 게 없지."

고구마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건네자 진영은,

"됬으니까 어머니는 이제 그만 들어가서 쉬세요. 그러다 저혈압 와요."

하며 염려섞인 말과 함께 바구니를 받았다.

"오냐, 고구마랑 같이 먹을 동치미나 내놓고 가마."

진영이 뭐라 더 말하려고 할 즈음 어머니는 이미 부엌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오래 불을 떼지 않은 방들이라 보일러가 돌아가서 온기를 채우려면 시간이 좀 걸렸다. 난로에 늘상 올려놓은 주전자의 둥글레 차를 따라 거실에 모여앉은 팀원들에게 돌렸다.

 "교수님 학교에서 뵐 때랑은 또 느낌이 다른데요."

은박지에 고구마를 하나하나 싸는 걸 도와주며 조교 희곤이 말했다.

 "어떤데?"

 진영이 묻자, 다른 조사팀원들조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 했다.

 "학교에서는 분야가 그래서 그런건지, 교수님이 꼭 '마녀'같았거든요."

다른 팀원들이 덩달아 웃는다. 진영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마녀 같은'게 아니라, 학교 내에서 불리는 그녀의 별명이 '마녀'였다. 포악스럽고 지독하게 생긴 그런 마귀 할멈의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녀가 한 번 맡았었던 프로젝트가 하필 옛날 무속인 발굴이었고, 문헌과 오래된 사체의 상태를 비교분석하여 그 당시에는 신의 노여움으로만 알고 있었던 죽음을 진영이 해석해 놓은 논문으로 인해 생긴 별명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소문은 들었어."

 김재원, 그였다. 진영은 그를 보자 창피함에 얼굴을 붉혔다.

 '저런 멀쩡한 사람을  나혼자서 '싸이코 패스'로 오해했으니..'

 진영은 말없이 다시 고구마를 은박지에 싸기 시작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굉장한 사건이었다며? 무속인의 무덤을 까보는 것조차 특이한 일인데..."

 고라니는 그의 보살핌으로 원기를 회복하는 듯 했다. 아직 꿰메놓은 상처의 상태를 보기 위해 풀어놓아 주지는 않았다.

"그게 말이죠..."

희곤은 신이 난 듯 이야기 하려고 했다.

"조 조교"

 진영의 부름에 희곤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 어머니한 테 가서 동치미 좀 받아올래요?"

희곤은 '네'하고 기운없이 말하더니 부엌으로 향했다. 진영은 은박지에 다 싼 고구마를 난로 속에 풍덩풍덩 던져 넣었다.

 "도와드려요?"

 재원이었다.

"아! 아닙니다. 다 했습니다."

 진영은 당황해서 들고 있던 고구마를 우르르 넣었다. 그 때 불꽃 하나가 튀더니 불씨가 진영의 손에 내려앉았다.

"앗,뜨거!"

진영이 불씨를 떨어내자 그 부분의 피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리 와봐요."

재원은 진영을 데리고 부엌으로 갔다. 어머니와 희곤이 국수를 비비고 있었다.

"진영아, 왜 그러니?"

어머니의 말보다 찬물 속에 진영의 손을 박아 놓은 재원의 조치가 더 빨랐다.

"불씨에 손등이 좀 데었어요. 괜찮을 거예요."

재원은 수돗물의 흐름을 조금 낮추더니 그대로 진영이 손을 고정하게 두었다.

"얜, 조심하지 않고..."

고추장이 묻은 손을 씻을 생각도 않고 어머니가 다가왔다.

"괜찮아요."

진영은 애써 웃음지었다. 어머니나 진영이나 그 곳의 누구도 서로 말이 없었다.

"음~. 국수 맛있는데요."

침묵을 깬 건 재원이었다.

"그쵸? 완전 짱이죠?"

희곤이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재원은 아예 손가락으로 비벼놓은 국수를 집어먹고 있었다.

"체해요. 따뜻한 데서 먹어."

어머니는 그제야 그릇 하나하나에 국수를 나누어 담았다. 진영은 웬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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