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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의 기술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7년 10월
평점 :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100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어디에 몰두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 모든 관심과 상황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경끄기의 기술' 저자 마크 맨슨의 말처럼 우리는 신경을 안 쓰는 것조차 신경을 쓰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잘 신경을 써야할까? 그에 관한 이야기가 '신경끄기의 기술'에 나온다. 책에서는 미국에서 2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파워블로거인 저자가 겪어온 일을 이야기해주며 어떻게 해야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에 다가설 수 있는지 말해준다.
'신경 끄기의 기술' 저자 마크 맨슨은 학창 시절 마약 문제로 퇴학까지 당했으며, 사회에 나온 이후에도 친구네 집 소파에 전전긍긍하던 백수였다. 그랬던 그가 현재는 50개국 이상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삶과 행복에 관해 설파하고 있다. "어떻게?"라고 묻는다면 그는 신경 써야 할 것을 잘 신경 쓰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동안 국내 베스트셀러 순위에 계속 올랐던 '신경 끄기의 기술'은 우리가 흔히 보는 "~하라", "~해야 한다"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살면서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될 수 있고 반박하기 힘든 생각을 이야기해주기에 여태껏 살았던 인생을 되짚어준다.
단순히 '신경 끄기의 기술'만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개인이 원하고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고통과 시련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우리 모두가 틀리고 실수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 역시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자신이 감수해야 하는 것라고 얘기한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지나가는 게 아닌 책을 통해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내가 여태껏 어떻게 살았는지, 혹시 나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타인을 탓한 게 아니었는지, 그랬기에 놓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머릿 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신경 쓸 게 많은 세상이다. 직장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관심사를 하기에도 하루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을 놓치진 싫다. 그렇다면 무엇에 신경을 쓰고 어떻게 신경을 잘 써야 할까 고민된다면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어보자. 문제와 해결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 있다.
* 기억하고 싶은 글귀
내 경험에 따르면, 소위 '인생의 목적'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뭘 포기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다 - 10
모든 걸 가지려는 사람, 즉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모두 채우려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 인생을 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어떤 부족함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 모든 걸 가져야 한다는 믿음이 인생을 '지옥의 무한궤도'에 빠지게 만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경 끄기의 기술'이다. 이 기술은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게 해주는 단순한 방법이다. 이 능력을 발달시키면, 이른바 '실용적 깨달음'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 11
인생에 관해 사람들이 흔히 떠들어 대는 조언은 사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조언은 개개인이 이미 자신의 결점과 실패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을 파고들어, 그것에 몰두하게 한다. 우리가 부자가 되는 비법을 배우는 건, 나는 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울 앞에 서서 나는 예쁘다고 주문을 거는 건, 내가 못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연애와 인간관게에 관한 조언을 따르는 건, 사람들이 날 싫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공하기 위해 웃기지도 않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건, 내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여기기 떄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최고와 최상을 부르짖다 보면, 우리는 반대되는 것들만을 떠오르게 된다.나와 어긋나는 것, 내게 없는 것, 내가 이루지 못한 것, 이런 일들만 머릿속으로 무한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거울 앞에 서서 '난 행복하다'고 되뇌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행복한데 뭐하러 그런 행동을 하겠는가? - 20
우리에겐 신경 끄기가 필수다. 신경 끄기야말로 세상을 구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이 엉망진창이라는 것'과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면 세상은 여태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더러운 기분에 신경을 쓰면, 지옥의 무한궤도를 끊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기분이 더럽군.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면 신기하게도 더는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된다 - 24
행복은 문제를 먹고 자란다. 기쁨은 땅에서 데이지가 솟아나고 하늘에서 무지개가 피어나듯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성취감은 자신만의 투쟁을 선택해 감내함으로써 얻어야 한다. 당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불안이나 외로움 또는 강박장애건, 아니면 매일 당신이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을 엉망으로 만드는 상사건 간에, 해법은 그런 부정적 경험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피하거나 구원을 바라서는 안 된다 - 40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을 애써 밀어내려는, 온실 속 화초와 같은 사회는 위험하다. 그런 사회의 사람들은 유익한 고통을 통해 이익을 얻을 기회를 잃고, 그 결과로 현실감마저 잃는다. 영원한 행복과 끊임없는 연민으로 가득 찬, 문제라곤 전혀 없는 삶을 기대하며 몽상에 빠져 있는 이가 아직도 있는가? 꿈 깨라. 지구에서 '문제'가 사라질 일은 없다. 장난이 아니다. 문제에는 끝이 없다 - 46
감정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행위가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감정은 늘 변하기 때문이다.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내일이면 아무것도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항상 지금보다 더한 것을 원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행복에 집착하는 자는 '늘 다른 것', 이를테면 새 집, 새로운 관계, 자식의 성적, 또 한 번의 연봉 인상 등을 끝없이 좇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땀 흘려 노력해봤자, 결국 섬뜩할 정도로 처음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개념을 '쾌락의 챗바퀴'라고도 부르는데, 사람들이 생활환경을 바꾸기 위해 늘 열심히 일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달라졌다고 느끼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 56
자신이 특별하다거나 남다르다는 생각은 버려라. 삶의 기준을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다시 정하라. 자신을 유망주나 재야의 천재로 보지 말라. 비참한 피해자나 형편없는 실패자로도 여기지 말라. 그보다 훨씬 평범한 정체성인 학생, 배우자, 친구, 창작자와 같은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라. 자기의 정체성을 좁고 희귀한 것으로 규정할수록, 더 많은 삶의 요소들이 위협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되도록 단순하게 일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규정하라 - 82
외부 환경이 어떠하건 간에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 책임이다.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전부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언젠가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이걸 알건 모르건 간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경험에 책임이 있다. 없을 수가 없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사건을 의식적으로 해석하지 않기로 하는 것도 사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다. 사건에 대응하지 않기로 하는 것도 일종의 대응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닌 상대방의 잘못으로 접촉사고가 난다고 해도, 거기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정하는 건 당신 책임이다 - 119
인간은 어딘가에는 신경을 쓰게 되어 있다. 어떤 것에도 신경을 안 쓰는 것도 뭔가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선택에 관한 것이다. 무엇에 신경 쓸 것인가? 어떤 가치에 따라 행동할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삶을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좋은 가치와 좋은 기준을 선택했는가? - 120
많은 사람이 '내 문제는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내 책임이 곧 내 잘못'을 의미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임과 잘못이 일반적으로 붙어 다니는 건 사실이지만, 둘은 같은 게 아니다. 가령 내가 당신 차를 들이받으면, 그건 내 잘못이고 동시에 난 법적으로 당신에게 보상할 책임이 있다. 설령 우발적 사고였다 해도 내 책임이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잘못이라는 개념은, 내가 사고를 쳤으면 내가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렇지만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아침 현관에 갓난아이가 놓여 있다면, 그 아이가 거기 있는 건 내 잘못이 아니지만, 이제 그 아이는 내 책임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어떤 행동을 선택하든, 내 선택과 관련된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나다 - 122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 홀대와 학대를 받아 온 사람, 비극이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은 사람, 심각한 질병이나 사고나 트라우마를 견뎌낸 사람을 전부 불러 모은다면, 이런 사람들을 전부 모아 한 방에 넣는다면, 아마도 모든 사람을 모아야 할 것이다. 살아가며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는 남들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진다. 어떤 이는 끔찍하지만 합법적인 방식으로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 이런 일들이 우리를 넘어뜨리고 발목을 잡겠지만, 각자의 상황을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 132
성장은 끝없는 반복 과정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 '틀린' 것에서 '옳은' 것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틀린 것에서 약간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간다. 또 다른 걸 알게 되면 약간 덜 틀린 것에서 그보다 약간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진리와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만 실제로 거기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결정적인 '정답'을 구할 게 아니라, 오늘 틀린 점을 조금 깎아내 내일은 조금 덜 틀리고자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성장은 상당히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가 받아들이는 가치가 가설이다. 즉 이런 행동을 좋고 중요하지만 저런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판단이 가설이다. 그리고 우리는 행동으로 그것을 실험한다. 다시 말해, 그 가치에 따라 행동했을 때 나타나는 감정과 사고방식이 실험 자료가 되는 것이다 - 140
확실성을 추구할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자신의 느낌과 믿음을 의심해야 한다. 확신을 추구하는 자세를 버린 뒤, 스스로 미래를 일구지 않는다면 내 앞날이 어떻게 될 지 질문해야 한다. 항상 내가 옳기만을 바랄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틀렸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 우리는 항상 틀리기 때문이다. 틀리면 변화할 수 있다. 틀리면 성장할 수 있다.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팔을 째거나 회춘하기 위해 오줌을 얼굴에 끼얹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열등'이라는 말을 채소로 오해하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 143
우리는 뭔가를 경험한다. 그리고 며칠 뒤 그걸 약간 다르게 기억한다. 귓속말을 들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 내용을 전할 때 이야기에 있는 몇몇 허점을 메우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한다. 그래야 모든 게 말이 되고 자기가 제정신인 게 되니까. 그러고는 그렇게 상상으로 채워 넣은 내용을 사실로 믿어 버린 채 그걸 다시 사람들에게 전한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사실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그러다가 1년 뒤 어느 날 밤에 술에 취해 그 이야기를 떠들 때는 급기야 내용의 3분의 1을 꾸며내고야 만다. 그런데 다음 주에 정신이 돌아왔을 때 자기가 뻔뻔한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싫다. 그래서 새로 개정되고 확장된 '술고래 버전'을 받아들인다. 5년 뒤, 하늘에 맹세코 사실인, 사실보다 더 사실이라 믿는 우리의 이야기는 기껏해야 50%만이 사실이다 - 148
"너 자신을 믿어",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 우리는 이런 달콤한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히려 자신을 덜 믿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마음이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더 많이 의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이란 항상 틀리기 마련이라면, 자신의 믿음과 가정을 꼼꼼히 따져가며 자신을 의심하는 것 외에 발전하기 위한 논리적인 방법이 달리 있겠는가? 무섭고 자기 파괴적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이쪽 길을 택하면 더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 - 152
인생의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검토하고 그걸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그에 앞서 반드시 현재의 가치관을 의심해봐야 한다. 심혈을 기울여 현재의 가치관을 분석하고, 그 안에 있는 오류와 편견을 들춰내고, 그것이 어째서 세상과 조화되지 않는지 밝혀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무지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걸 인정해야 한다. 왜냐면 우리의 무지가 우리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 159
대부분의 사람이 어느 시점이 되면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이 때가 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실패를 피하고 눈앞에 있는 것이나 이미 익숙한 것만을 고수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를 제한하고 억압한다. 어떤 분야에서 진짜로 성공하려면, 실패를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실패하지 않겠다는 건 성공하지 않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 174
사람들은 고통이나 분노, 슬픔을 느끼면, 만사를 제쳐두고 그런 느낌을 마비시키는 데 몰두한다. 이들의 목표는 얼른 '좋은 기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물질적인 수단을 동원하거나, 자신을 속이거나, 엉터리 가치관으로 돌아가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이 선택한 고통을 견디는 법이다. 새로운 가치관을 선택한다는 건 고통을 자신의 삶에서 들여오는 것이다. 그 고통을 즐기고 음미하라, 두 팔을 활짝 벌려 환영하라, 그리고 고통스러워도 당신이 선택한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라. 거짓말하지 않겠다. 처음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거다. 하지만 일단 해보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거다. 하지만 앞에서 이미 얘기하지 않았나.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뭔가 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자기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잃을 게 뭐가 있겠는가? - 179
'뭐라도 해' 원리를 따르면, 실패가 하찮게 느껴진다. 모든 결과가 과정의 일부라도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성공의 기준을 그저 행동하는 것이며, 자극은 전제조건이 아니라 보상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실패하고, 실패는 또다시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뭐라도 해' 원리는 우물쭈물하는 버릇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만약 당신이 실존적 똥폭풍의 한가운데 있어서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그러니까 이제껏 자신을 평가해 온 방법이 모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해 더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또는 여태 거짓꿈에 좇느라 자신을 괴롭혀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아니면 자신을 평가할 더 나은 기준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답은 같다. 뭐라도 하라. 다른 행동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라도 좋다 - 186
당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이 해결해줄 수 없다. 그런 건 꿈도 꾸지 말라. 그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당신도 다른 사람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수 없다. 이 또한 상대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 아니다. 불건전한 관계의 특징은 두 사람이 자기만족을 얻기 위해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건전한 관계의 특징은 두 사람이 상대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경계를 형성했다고 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없는 게 아니다. 연인은 서로 도와야 한다. 하지만 오직 도움을 주고받기를 선택했을 때만 그래야 한다. 의무감이나 허세 때문에 그러면 안 된다 - 203
건전한 관계가 지속되려면, 두 사람 모두가 '아니' 또는 '안 돼'라는 말을 주고받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부정이 없다면, 즉 가끔씩 거절을 하지 않는다면, 경계가 무너져서 한 사람의 문제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 갈등을 겪는 건 정상일 뿐만 아니라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 서로의 차이점에 대해 거리낌 없이 논쟁할 수 없다면, 그런 관계는 밑바탕에 감언이설과 사탕발림이 깔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서히 치명적인 관계로 치닫게 된다 - 208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주목받는 것과 성공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취급한다. 하지만 둘은 다르다. 당신은 이미 대단하다. 당신이 알건 모르건, 다른 사람이 알건 모르건 간에, 당신이 아이폰 앱을 출시했거나, 학교를 조기 졸업했거나, 멋진 보트를 샀기 때문이 아니다. 대단함은 이런 것들로 규정되지 않는다. 당신이 대단한 건, 끝없는 혼란과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어디에 신경을 쓰고 어디에 신경을 끌지를 계속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며 나름의 가치를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이미 당신을 아름답고 성공적이며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심지어 당신이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심지어 당신이 배를 곯으며 시궁창에서 자고 있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