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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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10분 만에 읽었지만 힐링되는 그림 작품이 너무 따뜻하고 예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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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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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이 방영되기 전부터 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면서 나름 김영하 작가의 팬이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슷한 느낌에 술술 읽히는 그의 문장에 매료됐었는데 '알쓸신잡'에서 보여줬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본받고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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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도서 쇼핑몰을 둘러보다 신간 에세이인 '여행의 이유'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곧바로 결제를 진행했는데 아쉽게도 초판이 아니었다. 초판 1쇄에 한 해 양장본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았는데 미리 구매하지 못해 아쉬웠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출간되자마자 온라인 도서 쇼핑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책에서는 저자가 그동안의 여행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내용을 9개의 주제로 풀어내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기도 했다.


'여행의 이유'를 읽는 동안 김영하 작가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경험에 대한 공감보다는 블로그를 통해 제주도 관광지나 명소를 소개할 때 어떤 식으로 작성해야 읽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에 대해 김영하 작가는 '완벽한 계획으로 세워진 여행'이 아닌 '이런저런 실패담이 구성된 이야기'가 재밌을 것이라고 말했다. SNS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지 않는 완벽한 여행'을 추구하면서 핫플레이스만을 찾아가지만, 저자의 말대로 여행이란 우연히 만난 행운과 경험이 있어야 기억에 더욱 오래 남지 않을까?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어린 시절부터 한 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여러 지역으로 이사를 다녔음을 밝히면서 그렇기에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어릴 적에 제주도로 이주한 후 7~8번이나 집을 옮겨다녔고 여행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작가와의 공통점을 발견한 것 같아 책을 읽는 동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책에서는 자신이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인 '알쓸신잡'에 대한 부분에서는 일인칭이 아닌 삼인칭 시점에서 바라본 여행 모습에 대한 생각을 언급한다.


평소 블로그에 쓸 주제를 찾기 위해 제주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도 정작 내 모습이 아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풍경만을 카메라에 담곤 하는데 진정한 여행기를 남기려면 그 콘텐츠에 주인공인 나 자신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베스트셀러 '여행의 이유'에서는 저자 김영하 작가가 지난 2005년 글을 쓰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푸둥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고 추방당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이 다녔던 여러 나라에서의 에피소드를 단순히 글로 풀어낸 게 아니라 고전문학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여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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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기 위해서라면 무엇보다 많은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다시 한 번 느꼈는데 이외에도 평소 여행을 좋아하거나 혹은 나와 같이 블로그를 통해 여행기를 작성하는 분들이라면 아래 글귀를 참고해 현 베스트셀러 1위인 '여행의 이유'를 읽어보자.



※기억하고 싶은 구절



게이트에서 도착한 우리는 그후로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흔치는 않겠지만, 겪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의외로 최악의 기분은 아니었다. 여행은 아무 소득 없이 하루 만에 끝나고, 한 번 더 중국을 왕복하고도 남을 항공권 값을 추가로 지불했으며, 선불로 송금해버린 숙박비와 식비는 아마도 날리게 될 것이 뻔했지만, 난생처음으로 추방자가 되어 대합실에 앉아 있는 것은 매우 진귀한 경험인 만큼, 소설가인 나로서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너무 고심하지 않는 편이다. 운 좋게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된다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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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주문에서 실패를 줄이고 싶다면 모든 분류의 가장 위에서부터 고르면 되고, 재료로는 닭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겉에 뭐가 발라져 있든, 무엇에 재웠든, 속에는 우리가 아는 그 닭고기가 있다. 그러나 자기 여행을 소재로 뭔가를 쓰고 싶다면 밑에서부터 주문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떄론 동행 중에서 따라 시키는 사람이 생기고, 그 인상적인 실패 경험에 대해 두고두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그걸 글로 쓸 것이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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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의 플롯'으로 구축된 이야기들에는 대부분 두 가지 충위의 목표가 있다. 주인공이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것(외면적 목표)과 주인공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것(내면적 목표),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추구의 플롯'에 따라 잘 쓰인 이야기는 주인공이 외면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간절히 원하던 것을 달성하도록 하고, 그런 이야기가 관객에게도 깊은 만족감을 준다.


'추구의 플롯'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대체로 주인공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는 것은 거꾸로 여행기가 '추구의 플롯'으로 쓰일 수 있고, 쓰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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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렵지만 1987년까지는 50세 이상만 관광용 단수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후 40세, 30세로 연령이 낮아지다가 1989년에 이르러서야 연령제한이 폐지되었다.


1989년까지는 일가족의 여권 신청도 제한을 받았는데, '해외 도피 우려'가 그 이유였다. 나는 군 미필자여서 아버지 친구 중의 한 분이 신원 보증을 서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귀국하여 입대하지 않으면 그분이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된다고 했다.


소양 교육이라는 것도 이수해야 했다. 한국자유총연맹의 전신인 한국반공연맹이나 한국관광공사에 가서 '공산권 주민 접촉시 주의사항' 같은 주제의 교육을 받았다. 주된 내용은 해외에서 북한 사람을 만나면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간다, 북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남한을 비판하는 동포들도 조심해야 하는데, 그들도 실은 북한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식이었다(이 소양 교육은 1992년에야 폐지되었다)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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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둥공항에서 추방되던 그 순간에 나는 자연스럽게 처음 상하이에 도착했던 스물세 살 무렵을 떠올렸고, 그때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가를 생각했고, 몇몇 기업가와 정치가가 구상했던 그 우스꽝스런 '사회주의 제대로 알기' 패키지여행이, 어떻게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내 인생을 바꾸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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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나라 중국에 가서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하겠다던 우리 둘의 생각은 '추구의 플롯'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른바 '외면적 목표'였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위한 공식적인 이유, 프로도의 절대반지 같은 것, 그렇다면 우리 둘에게 숨겨진 '내면적 목표'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천안문 사태가 인민해방군의 탱크로 진압되는 것도 보았다. 불과 십 년 전에 광주 시민의 항거가 바로 그런 식으로 짓밟혔던 것을 아는 우리로서는 여행 전에 이미 중국에 대한 희망을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여행은 주식투자자의 손질매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대기업에 취업하고,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 나의 평생의 업이 되었다 -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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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찾은 중국에서 추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오히려 안온함을 느꼈다. 그는 비로소 오래 미루던 소설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아내는 집 밖으로 절대 나가선 안 된다고 다짐을 두엇는데 그것이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이었다.


비밀의 벽장을 열고 자신만의 세계로 내려가는 나니아처럼 그 역시 자신만의 열어젖힐 수 있는 문을 열고 오랫동안 중단했던 소설 속으로, 매번 낯설지만 끝내는 그를 환대해주는 비자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 그 나라로 빨려들어갔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과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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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스프레드시트로 표를 하나 만들어 소설을 쓸 때마다 사용한다.


비중이 있는 인물이면 그의 외모부터 습관, 취향까지 다양한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해본다. 마치 앙케트조사와 비슷하다. 역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인물의 내면이다. 윤리적 태도, 성에 대한 관념, 정치적 성향 등, 십여 개의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다보면 인물에 대해 좀더 뚜렷한 윤관이 그려진다.


그런데 인물의 내면 부분에서 내가 제일 고민하게 되는 항목은 '프로그램'이다. 노아 루크먼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은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니는 신념보다 자기도 모르는 믿음에 더 좌우된다.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된다.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 같은 고정관념도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종차별주의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백인은 어쩌다 뛰어난 지적 성취를 이룬 흑인을 만나면 '흑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대사를 칭찬이랍시고 치게 된다. 작가가 미리 생각해둔 프로그램이 인물의 대사가 되어 배우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간, 관객은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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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히말라야의 팔천 미터급 고봉에 올라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안전하게 귀환하는 것을 반복하듯이,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지 않고 안전함을 느끼는 순간을 그리워하는데, 그 경험은 호텔이라는 장소로 표상되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프로그램의 근원도 이제는 알 것만 같다. 나의 유년은 잦은 이주로 점철되었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하여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원경험들이 쌓여, 그것이 프로그램으로 내 안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때 경험하는 안도감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인데, 그 달콤함을 얻으려면 고통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안의 프로그램은 어서 이 편안한 집을 떠나 그 고생을 다시 겪으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어디로든 떠나게 되고, 그 여정에서 내가 최초로 맛보게 되는 달콤한 순간은 바로 예약된 호텔의 문을 들어설 때이다.

벨맨이 가방을 받아주고 리셉션의 직원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나는 다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은 안전하다' 평생토록 나는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1)낯선 곳에 도착한다. 두렵다. 2)그런데 받아들여진다. 3)다행이다. 크게 안도한다. 4)그러나 곧 또다른 어딘가로 떠난다 -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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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고대그리스의 소피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철학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 이를테면 사상은 옥수수 같은 곡물과 달리 안정적인 수학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곳에 머물기 어렵다는 것, 인맥이나 터전에 얽매인 직업, 대표적으로 정치인이나 농민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발상은 무게가 없다. 지혜도 그렇다. 기술도 마찬가지, 그래서 이런 무형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어딘가에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먹고 살기에도 유리했다. 마찬가지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도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찾아 천하를 유랑했다 -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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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라는 질문은 작가라면 한 번쯤 받아보는 것이다.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기억이 나는 거의 없다. 영감이라는 게 있다면 언제나 나의 모국어로, 주로 집에 누워 있을 때 왔다. '작가라 좋으시겠어요. 세계 어디에서도 쓸 수 있잖아요?' 같은 말도 자주 듣는다.


물론 세계 어디에서든 쓸 수는 있다. '검은 꽃'은 과테말라의 안티구아에서 앞부분을 썼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뉴욕에서 시작해 거기서 끝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나는 많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했고, 때론 한곳에서 몇 년 동안 머무리도 했지만, 지금까지 낸 스무 권이 넘는 책들 중에서 단 두 권만 이 모국어의 영토 밖에서 쓰였다.


심지어 여행기도 집으로 돌아와 썼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마침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모국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언어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 발화자의 숨은 의도를 너무 잘 감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와 안식을 누리기 어려워줬다. 모국어를 다루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그렇다고 늘 편안하다는 뜻은 아니다.


'당신의 나무'처럼 여행에서 겪을 일을 쓰기로 마음먹을 때도 있다. 그런 '영감'조차 집에 돌아왔을 때에야 떠오른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모든 게 현재시제로 서술된다. 과적 픽업트럭에 실려 이동하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유적의 규모와 그 유적을 부수어버릴 듯 맹렬히 자라고 있는 나무의 위용에 압도된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라는 주체가 있지만, 그 주체를 초월하는 생생한 현재가 바로 눈앞에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범속한 인간이 초월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유통되지 않고 재고로 남은 기억은 창고 깊숙한 곳에 묻혀 잊혀진다. 고대 그리스와 달리 이제는 생각을 들고 몸소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것은 책으로 묶어 도매상과 서점을 통해 스스로 돌아다닌다 -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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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으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이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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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광기구 통계에 따르면 인터넷이 아직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1995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5억 2천만 명이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났으나 2016년이 되면 12억 4천만 명으로 두 배가 넘게 늘어났다.


전 세계 항공 승객은 1995년에는 13억 명가량이었는데 2017년에는 39억 명으로 세 배나 폭증했다. 인류는 여행을 포기할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더 많이 이동하고자 한다는 것을 통계는 보여준다.


VR이니 AR이니 하는 가상현실 기술이 여행을 데체하리라는 얘기도 어디선가 벌써 하고 있을 것 같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아볼 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 호모 비아토르는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 곳곳에서 짐을 꾸리고 길을 떠나고 있다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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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와 마찬가지로 운전자는 일인칭이다. 자동차는 그렇게 설계돼 있다. 운전을 하는 자기 모습을 보는 것보다 차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멋진 곳에 가서 놀라운 것을 경험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일인칭의 경험이다.


그런 아쉬움에 셀카를 찍어보지만, 셀카는 기본적으로 일인칭의 거울상으로 나타난다. 내가 렌즈를 보면 렌즈가 나를 찍는 것, 완벽한 삼인칭이 되지는 못한다. 그런데 '알쓸신잡' 같은 여행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되면 나는 '여행을 하는 나'를 삼인칭 시점으로 보게 된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나를 찍기 때문에 그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열여덞 시간 동안 했던 말과 행동 중에서 일부가 적나라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나는 조금은 부끄러운 기분이 되어서 화면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거울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장 종하나느 각도로 얼굴을 돌린다고 한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로 찍힌 스냅 사진을 볼 때 그게 자기 모습이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열여덞 시간을 동영상으로 찍힌다면?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찍힌 자기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화면 속의 나는 여행 중이다. 제작진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거나 뭔가를 그들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별 의미없는 말을 하거나 오리배의 페달을 밟거나 연락선 갑판에 누워있기도 한다. 그런 모습으로 여행 중인 나의 모습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 자신이 보게 되는 것이다 -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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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접근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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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는 'armchair traveler'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방구석 여행자'쯤 될 것이다. 편안한 자기 집 소파에 앉아 남극이나 에베레스트, 타클라마칸사막을 탐험하는 여행자를 조금은 비꼬는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모두 '방구석 여행자'이다. 우리는 여행 에세이나 여행 다큐멘터리 등을 보고 어떤 여행지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그곳을 다녀온다. 그러나 일인칭으로 수행한 이 '진짜' 여행은 시간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그곳을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우리는 또다른 여행서나 TV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이미 다녀온 곳을 그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읽거나 보게 된다. 나와는 다른 그들의 느낌과 경험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내 여행의 경험에 얹힌다.


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된다. 한 층에 간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 경험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다른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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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에 의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신생아는 자기가 도착한 나라의 말을 모른다. 부모와 친척들이 참을성을 가지고 몇 년을 도와야 비로소 기초적인 언어를 익힐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될 때까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충분히 성장하면 인간은 지구에 새로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대함으써 자신의 받은 것을 갚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갈 때, 남아 있는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을 환송한다. 자구상의 거의 모든 문명은, 마치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자를 배웅하듯이 망자를 대한다. 관 속에 노잣돈이나 길동무 인형을 넣어준다. 철처한 무신론자조차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면 그들이 다음 세상에서 평안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한다 -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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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으맂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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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행 기차의 컴파트먼트에서 나는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역할을 그대로 했다. 숨쉬는 마네킹이 되었던 것이다. 간간이 빈자리를 찾는 승객들이 컴파트먼트 문을 열었다가 세 명이 모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문을 닫았다. 내가 문을 지키고 있었기에 두 여자는 안쪽에서 편안히 누워 갈 수 있었다. 밤새 아무도 우리 컴파트먼트로 들어오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 우리는 밝게 웃으며 헤어졌다. 그들은 한국인이 쌀을 주식으로 한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내가 백인 여성들이 아무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자신들 옆에 재울 수 있는 존재로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닌 자'인 것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였지만, 조금 달랐다.


젊은 날의 나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의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특별하게' 분류되고, 일단 분류된 이후에는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경험은 그전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somebody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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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키클롭스의 섬에 도착한 오디세우스 같은 상황이 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무도 모르는 곳, 니하오마와 곤니치와의 시험을 통과해 겨우 한국인임을 알리는 데 성공하더라도 너의 코리아는 노스냐 사우스냐를 묻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모국에서 가지고 있던 복잡한 정체성은 남한 출신의 여행자라는 간단한 스테레오타입으로 대체된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느낀 유혹, 키클롭스라는 타자를 향해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느냐가 성숙한 여행의 관건이다.


그러나 젊은 날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이들에게 내가 작가라고 알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물었다. 주로 어떤 글을 쓰시나요? 나는 소설이라고 대답했고 그러면 대화는 그쯤에서 끊긴다. 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는 '주로 어떤 글을 쓰'는지를 굳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는 이들, 즉 그 글을 읽은, 다시 말해 독자에게만 작가라는 것을 -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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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뱅 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론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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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에서 우리의 힘은 약해진다. 약해지기 때문에 더더욱 자기 존재를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고 싶어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들의 환대와 인정, 선물이 필요하다. 물론 자본주의는 이런 습격을 부드러운 거래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 거래로 모두가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어서 누군가를 동굴로 돌아옵 키클롭스의 마음으로 외부인을 적대하거나 무시한다.


그럴 때 여행자는 더 큰 불안과 좌절을 겪고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행은 습격이 되고 여행자는 침입자가 된다. 그 결과는 불필요한 고난으로 여행자 자신에게로 돌아오곤 한다.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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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 휴대전화 전원은 꺼졌다. 한동안은 누군가가 불쑥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승객은 안전벨트를 맨 체 자기 자리에 착석해 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지러운 일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떨어지는 순간이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쯤이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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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뒤에 나도 길냥이 두 마리를 집에 들였다. 방울이는 아홉 살에 죽었다. 깐돌이는 아직 건강하지만 열다섯 살을 넘겼으니 오래지 않아 방울이 뒤를 따를 것이다.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닲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나에게 녀석들은 반려가 아니라 여행자에 가깝다. 세미와 이슬이도, 방울이와 깐돌이도 잠시 우리집에 왔다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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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쓸 기회가 많았지만 여행은 그렇지를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기억 깊은 곳에서 딸려 올라왔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게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게속될 것이다 -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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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준 - 정규앨범 장범준 3집
장범준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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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 이어 일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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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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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켜서 업무를 보다가도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게 도서 쇼핑몰 탐방이다. 2010년부터 이래왔으니 어느새 9년차가 됐다. 누군가는 '책 중독자'가 아니냐 하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책 구매 중독자'라 할 수 있다.

언젠가 '책 중독'과 관련된 에세이를 읽었다. 그 책에 나온 저자는 자신을 '책 중독자'라 칭하며 집에 있는 모든 가구를 빼고 책으로 탑을 쌓는다고 하는데 심지어 샀던 책을 또 사기도 한단다.

나 역시 그랬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은 꼭 책을 구매하는데 1권이 아니라 보통 3~4권씩 산다. 왜냐하면 온라인 도서 쇼핑몰에서 5만 원 이상 사야 사은품과 함께 적립금 2,000원을 더 주기 때문이다.

매달 3~4권 이상 책을 구매하지만 그 3~4권을 다 읽지는 않기에 책장에 쌓여간다. 그러다 언제였을까, 샀던 책을 또 사게 되면서 그 이후로는 책을 살 때 먼저 체크해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몇 년 동안 책을 구매하다보면 '사서 오래 둘 책'과 '사서 한 번만 읽을 책'으로 나눠진다. 특히 그 시대의 이슈나 사건을 다룬 책이나 일상 에세이에 관한 책은 한 번 읽으면 또 읽게 되지 않아 잘 구매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4월에 출간해 현재까지도 에세이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처음 봤을 때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껏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좋은 말이긴 하지만 무언가 얻는 듯한 느낌도 없었고 바쁘게 살아야 하는 시대에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말이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어느날 온라인 도서 쇼핑몰에 위 책이 계속해서 에세이 부분 베스트셀러로 오르더니 심지어 '크리스마스 에디션'까지 나온 것을 보고 책 속의 내용이 무척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출간한지 1년이 다 되가는 에세이 책이 2019년 2월 기준 네이버 한달 검색량이 20,000이라니, 대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오랜만에 에세이를 펼쳤다.

에세이 베스트셀러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쓴 저자 하완은 현재의 나처럼 회사를 다니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투잡을 뛰었다.

그러다 어느날 대책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됐지만 일이 들어오지 않아 백수 생활을 하다가 현재는 그림책을 내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보통 자기관리나 인생 에세이라고 하면 '남들도 다 열심히',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반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에서는 그와 반대로 '포기하고 살면 편하다'고 말한다.

인생은 노력하는 만큼 보장을 받지 못한다며, 노력은 항상 배신한다는 저자의 말에 처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재의 내 삶은 일을 하는 만큼 들어오는 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며칠을 두고 퇴근 후 집에서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에 있었던 불신(?)이 1부에서 2부, 2부에서 3부, 3부에서 4부로 넘어가면서 저자의 말에 공감이 됐다.

무엇보다 이 책을 만나기 전만 하더라도 일상 에세이가 베스트셀러라고 한들 읽어도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흐르는 문장과 중간 중간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 그림에 빠지게 되면서 어느새 책 속 내용에 공감을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에세이 베스트셀러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 제목처럼 저자는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이 시대에 조금이 아닌 완전 천천히 걸어도 된다며 위로해준다.

그러면서 남들이 추천해준 식당에 가거나 영화를 보는 게 아닌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간 술집이나 영화를 보러가는 소소한 행복을 권장한다.

그러고 보면 20대 초반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맛집을 가려고 인터넷으로 찾아보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위해 며칠 전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어떤 영화를 하는지도 모른 채 영화관에 가서 볼 영화를 고르던 추억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타인의 추천이 아닌 내가 직접 골랐던 영화가 더 재밌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딘가 가려면 미리 사전조사를 해야 하고 심지어 남들이 주관적으로 적은 평가에 휘둘려 가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지금의 내 삶은 나를 위한 것일까, 남들을 위한 것일까?

모두가 재밌다고 했던 영화를 보러 갔는데 이상하게 나만 재미없어 혼란스러운 적도 있었기에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에 공감되어 요즘엔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우연히 발견한 식당이나 카페를 찾는 편이다.

또한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꿩 대신 치킨'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인생을 사는 데 있어 꼭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게 아닌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말고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한 행복을 찾는 게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에세이는 에세이일 뿐, 그 내용이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냐 반문하는 분들이라면 아래 적어 놓은 에세이 베스트셀러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구절을 천천히 읽어보자. 분명 공감되는 내용이 있을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노력해라! 최선을 다해라! 인내해라!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시키는 대로 살았다.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이 진리라 생각했고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어째 점점 더 불행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그야말로 기분 탓일까?

꼭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아니, 후회하리보단 억울함이다. 10분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라고 해서 참고 올랐는데, 10분이 지나도 정상은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진짜 지금부터 딱 10분, 그 말에 속고, 또 속고, 그렇게 40년 동안 산을 오르고 있는 기분이다. 그야말로 환장할 기분이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조금만 더 올라가 볼 수도 있다. 계속 열심히 살다 보면 뭔가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지쳤다.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이다. 에라, 더는 못 해 먹겠다. 그렇다. 마흔은 한창 삐뚫어질 나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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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반드시 '이만큼'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괴로움의 시작이다. 보상은 언제나 노력한 양과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노력한 것보다 작게 혹은 더 크게 주어진다. 어쩌면 아예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노력한 것에 비해 큰 성과를 얻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비난하지 말고 그 성과를 인정해주자. 그것은 나 역시 노력에 비해 큰 성과를 얻을 수도, 노력하지 않았는데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 질투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 행운을 인정하면 더 많은 행운이 찾아온다나 어쩐다나, 믿거나 말거나,

이처럼 노력은 항상 우리를 배신하기 때문에 노력하면 할수록 자꾸 억울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여자처럼 말이다. 하루키는 억울해하는 우리의 마음을 이상한 방식으로 위로한다. "원래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노력으로 다 된다는 말도 거짓말이지. 알겠어? 네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야"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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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경주'에 참가했었는데 지금은 그 경주를 기권한 기분이다. 경주에 참여하지 않으니 당연히 승리도 패배도 없다. 그런데 궁금한 건 그 경주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경주의 타이틀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돈 더 많이 버나' 대회? '누가 먼저 내 집 장만하나? 대회? '누가 먼저 성공하나' 대회?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열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만두길 잘했다. 지금의 나는 성적을 낼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경주 바깥의 사람이니까. 사람들도 그걸 눈치챘는지 그다지 내 성적표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경쟁자가 아닌 것이다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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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에 열정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고민인데, 나는 이런 고민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눈앞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앉혀놓고 "저는 왜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거죠?"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무리 애를 써도 어떤 일에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 거다. 열정은 애정을 기반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니 당연히 열정도 없다. 열정 콘텐츠로 반짝 의욕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로 만들어진 열정은 대게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가 많다.

열정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지 절대 강요로 만들어질 수 없다. 열정은 사랑이다. 그 일을 사랑하는 것에서 열정은 시작된다. 물론 사랑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내 생각엔 열정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 열정 같은 거 없어도 우리는 일만 잘한다.

정말 좋아서 하는 일도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거기에 열정까지 요구하는 건 좀 너무하다 싶다. 안 생기는 열정을 억지로 마드는 건 스트레스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하던 일을 하면 된다. 언젠가 열정은 저절로 생긴다. 지금 하는 일일 수도 있고, 다른 일일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때 열정을 쏟으면 된다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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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강요하고 그 열정을 약점 잡아 이용하고 착취한다. 그래서 열정을 함부로 드러내는 건 위험하다. 이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열정이 없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열정은 좋은 거다. 나를 위해 쓰기만 한다면 말이다.

내가 어떤 열정을 쏟고 있다면 그 열정이 나를 위한 것인지, 남을 위한 것인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알기론 열정이라는 것은 그렇게 자주 생기는 것도, 오래가는 것도 아니다. 열정을 막 쥐어짜 내서도, 아무 데나 쏟아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 언젠가는 열정을 쏟을 일이 찾아올 테고 그때를 위해서 열정을 아껴야 한다. 그러니까 억지로 열정을 가지려 애쓰지 말자. 그리고 내 열정은 내가 알아서 하게 가만 놔뒀으면 좋겠다. 걍요하지 말고, 뺏어 가지 좀 마라. 좀!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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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길들이 있는데,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하나,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그 길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보면 그 길이 자신이 원하던 길이 아닌 경우도 많다.

나는 "절대 포기하자 마라'라는 말을 싫어한다. 목숨 빼곤 다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쉽게 포기하며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노력도 하고,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그렇게 두세 번 도전했는데도 안 되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맞다. 나처럼 4년 혹은 그 이상 매달리는 것은 집착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처럼 잔혹한 말은 없다. 그 목표를 절대 포기할 수 없어서 자신의 목숨을 끊다니 이런 비극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어떤 기을 고집한다는 것은 나머지 갈등을 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이미 많은 것을 포기했으니 그것 또한 포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너무 괴롭거든 포기해라. 포기해도 괜찮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니까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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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필요한 것이지만 분명한 답도 없고, 답을 얻었다 한들 그 방향대로 일이 잘 돌아가지는 않는다. 만약 잘 돌아가더라도 꼭 좋은 선택이라는 법도 없다. 내가 한 선택이 당장은 맞는 것 같아도 세월이 흘러 잘못된 결과를 낳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인생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통제가 안 된다. 자칫 허무주의로 흐를 수 있는 이 사실 앞에 나는 묘하게 위로를 받는다. 아, 모든 게 내 탓으 아니구나.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를 덜 힘들게 했을까?

나이가 들어서도 고민과 불안함은 계속되지만 뜨겁게 열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까지 고민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것까지 고민하기엔 내 체력이 버티지 못한다.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도 젊을 때나 가능한 모양이다. 늙어서 좋은 점도 있네. 응? 이거 좋은 거 맞아? 청춘의 열병은 지나갔다. 이젠 중년의 위기가 올 차례인가? 인생은 지루할 틈이 없다. 이런 열병! -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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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걸 배우게 된다. 명분은 나중에 만들어도 된다는 것 말이다. 명분이 없어도 원하면 일을 꾸민다. 윗사람끼리 만나 술을 마시고, 사우나도 같이 가고, 뭐 그렇게 말을 맞춰놓고 남들 보기에 괜찮은 명분을 만들어서 내세운다. "이런 이런 이유로 이 회사에 일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명분이 확실하니 다들 불만 없죠?" 참 좋은 걸 배웠다. 어른들의 세계에선 명분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아무튼.

욕망에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놀고 싶으면 놀아야지. 명분은 그다음에 찾자. 그렇게 놀면서 찾은 두 번째 명분은 바로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한 잠깐의 방황'이었다. 명분이 좋다. 그래,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설득력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고민하니까. 어쩌면 지금 내 방황의 이유는 모두 놀기 위한 명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놀고 싶은 거다 -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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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월급과 이별했다. 가끔 그녀(월급)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곤 하는데, 그럴 때면 그녀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있다. 그녀가 주던 안정감, 하지만 그녀는 나를 너무 구속했다. 이미 헤어진 여자를 떠올리면 뭐 하랴, 지금 나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 그녀의 이름은 '자유'다. 가끔은 날 불안하게 만들지만 구속하지 않아서 좋다.

연애를 하려면 데이트 비용이 든다. 전 여자 친구와의 연애에선 자유를 비용으로 냈고, 현 여자 친구와의 연애에선 돈을 비용으로 낸다. 어떤 연애가 더 낫다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현재 애인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더 내가 가진 자유를 사랑해야겠다 -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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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뇌의 95퍼센트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쓴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는 현재를 살지만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 고작 5퍼센트의 뇌로 현재를 살고 있으니 금방 방전될 수밖에 없다. 방전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하는 게 아니라 '덜' 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좀 덜 하고, 노력도 좀 덜 하고, 후회도 좀 덜 하면 좋겠다. 그것이 방전되지 않는 지혜가 아닐까? 그럼, 다시 나는 아무것도 안 하러 가야겠다 -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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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포스터만 보고 마음을 설레어 무작정 극장에 들어가 관람했던 영화들, 낯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수수하고 단정한 간판이 마음에 들어 들어갔던 선술집, 작가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는데 단순히 표지가 마음에 들어 집어 든 책.

그런 것들은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음에도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그런 선택에는 무모하고 위험한 매혹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과 그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용기가 있다. 당연히 실패할 확률도 높지만 성공했을 때 가지는 성취감도 크다. 그건 누구의 것도 아닌 오롯이 내 것이 된다 -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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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검색을 한다.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다. 나에게 딱 맞는 것을 찾아 도전하고 위험에 무릎쓰기보단 실패하지 않을 검증된 '중간 이상'을 택한다. 그렇게 점점 내 생각이나 감각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리고 퇴하하여 어느새 나의 선택을 믿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해서 더는 '나'의 취향이나 감을 믿지 못하고 선택권을 '남'에게 넘겨버린 지금의 우리, 고작 식당 하나, 영화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실패할까 봐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니 인생은 오죽할까, 안전하다고 유혹하는 '남'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선택은 어쩌면 '고독한 실패가'의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을 가면 적어도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사는 '남'의 인생을 살게 되진 않는다.

모두가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갈 때 용기 있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의 인생을 살게 된다. 실패해도 좋다. 실패했을 땐 후회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남의 말만 듣고 우르르 몰려갔던 사람들 대부분도 후회하긴 마찬가지다. 안 그런가? 실패를 두려워 말자. 고독한 실패가가 되자 -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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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미래는 어둡고, 현실은 궁핍했던 나의 20대, 꿈이니 사랑이니 하는 말들도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팍팍한 나날들과 앞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주는 중압감과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안개처럼 깊게 깔렸던 젊은 날, 방황과 불안으로 지새웠던 숱한 밤들, 술은 또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돌이켜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이이기도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고민이 많았다. 내가 좀 더 용기가 있거나 무모한 사람이었다면 고민할 시간에 많은 일을 시도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됐을까? 지금 내 모습이 싫은 건 아니지만 궁금하다. 상상 속 다른 모습의 내가,

내가 선택하고 한 일들에 대해선 결과가 좋든 나쁘든 잘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일들은 왜 이리 후회가 되는지 모르겠다. 너무 쉽게 놓아버린 꿈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했던 사랑, 아, 나는 좀 더 저질렀어야 했다. 망하더라도 말이다.

인생은 후회로 가득하다. 내일이 되면 또 오늘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후회해도 후회하지 않아도 인생은 굴러간다. 오늘도, 그래, 아아, 우린 슬픈 거다 -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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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와 같다. 파도 위에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잘 잡으려면 꼿꼿해선 안 된다. 유연해야 한다. 힘을 빼고 이리저리 휘둘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파도에 맞춰 무게중심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쉴 새 없이 옮겨야 넘어지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면 마치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보면 열심히 균혀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내 삶이 매우 불안해 보일지라도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이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타는 것이니까. 그런데 가만, 이제 슬슬 멈출 때도 됐는데, 멀미가 날 것 같다. 어떻게 파도가 끝이 없냐! 아휴, 지겨워! -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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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 때문에 내가 자유롭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돈 때문에 회사를 다니고, 돈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했으니 내 모든 의무는 그놈의 돈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언제나 '더 많은 돈'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벌면 자유로워질 거야. 충분히 돈을 모으기 전에 자유롭게 살 수 없어.

나는 돈에 얽매여 있었다. 그렇게 평생을 돈을 좇으며 살았는데 그럴수록 돈이 도망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돈 버는 능력이 좀 모자란 탓도 있겠지만 신기하게 돈은 벌어도 벌어도 부족했다. 200만 원 벌던 사람이 500만 원을 번다고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연봉이 1억을 넘어도 돈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나라고 다를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런 식으론 아마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돈 때문에 자유를 계속 미루기만 하다간 한 번도 자유롭지 못한 채 늙어 죽게 생겼다는 위기감이 덮쳐왔다. 이봐,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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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면 아마도 뒤처진 게 맞을 거다. 하지만 뒤쫓을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속도와 길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느린 건 창피한 게 아니다. 인정하자. 우린 뒤처졌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뻔뻔함이 너무 좋다.

이왕 늦은 거 천천히 가면 어떨까? 인생도 더 길어졌는데 빨리 가서 뭐 하려고 그러나, 나 혼자 느릿느릿 가려니 외로워서 그런다. 같이 천천히 가자. 만약 모두가 합심해서 뛰지 않는다면 이 지긋지긋한 경쟁 사회도 달라질지 모른다. 정말이라니까 -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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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꿈꾸는 모습이 있다. 몇몇 사람은 그 모습을 이루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꿩' 대신 주어진 '닭' 같은 삶인 것이다.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는 닭을 앞에 두고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누군가는 닭을 꿩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누군가는 마지못해 닭을 먹는다. 또 누군가는 이게 아니라며 닭을 아예 외면해버린다.

내 삶을 고통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꿈꾸던 것들을 잡으려 애를 썼지만 잡히지 않고 자꾸 멀어져만 갔다. 꿈을 이루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하지만 계속 불행했다. 그랬던 내가 최근 몇 년간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상황이 더 나아져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부정하며 노력하는 대신 지금의 나를 좋아해주고 인정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삶도 꽤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겨우 이런 것에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노력해서 꿈꾸던 모습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단, 열심히 노력하는 중에도 삶은 이어진다. 아직 꿈꾸던 모습이 되지 못한 삶을 보며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대에 못 미치는 지금의 내 모습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꿈을 이뤄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꿈이 뭐라고, 꿈을 이룬다면 정말 좋겠지만 이루지 못해도 그만이다. '에이, 아쉽다' 정도로 훌훌 털고 지금 주어진 삶에서 행복을 찾아 누리기에도 짧은 생이다. 꿈꾸던 대로 되지 못했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실패한 인생이란 없다.

누군가는 루저들이나 하는 '자기 위로', '자기합리화'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고 다그치겠지,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자기위로'나 '자기합리화'가 나쁜 것일까? 자기 삻을 긍정하고 사랑하려 스스로 위로하고 합리화하는 게 잘못된 것일까?

나는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몇 천 번이라도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 생각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내 인생을 사랑해준단 말인가. 꿈꾸던 대로 되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 삶을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관점의 차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면 뭔거 덜 좋은 걸 얻은 것 같지만 '꿩 대신 치킨'이라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치킨은 사랑이니까. 당장이라도 맥주 캔을 따고 싶을 만큼 흥분된다. 지금 우리의 삶은 닭이 아니라 치킨이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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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 명언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다. 꼭 누굴 이기고 싶어서 즐기는 건 아니다.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은 거다. 누굴 이기는 게 목적이 되는 순간 절대로 즐길 수 없을걸? 아무튼.

이제 열심히 사는 인생은 끝이다. 견디는 삶은 충분히 살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결과를 위해 견디는 삶이어서는 안 된다.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뿅 하고 건너뛰고 싶은 시간이 아닌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어느덧 잊고 있던 재미가 살아난다. 이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빨리 완성하고 싶은 조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귀찮기만 했던 바느질이 좀 더 길게 계속되길 바라는 지금의 나, 아직 아무것도 완성한 것은 없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지금 제대로 즐기고 있다. 휴, 아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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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 지혜와 평온으로 가는 길
혜민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혜민스님 책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한참 독서에 빠졌을 당시 분야에 상관없이 여러 책을 읽다가 혜민 스님의 글을 보게 됐다. 당시 혜민스님의 글을 읽고 모자랐던 많은 부분을 채울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2012년 당시 다녔던 회사에서 진행된 사내 프로그램으로 태어나 처음 혜민 스님을 만났다. 마음 명상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나 자신을 위로한다는 내용의 강연을 들은 이후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당시를 떠올리며 책을 펼치곤 한다.


현재 내 책장에 있는 혜민스님 책은 총 4권으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젊은 날의 깨달음',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이 있다.


2012~2013년에는 혜민 스님과 법륜 스님 책을 많이 사서 읽었었다. 생각해보면 25살 당시의 나는 얼마나 외로웠기에 저런 내용의 책을 많이 사서 읽었을까 싶기도 했는데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2012년 사내 교육 프로그램 강연을 통해 처음으로 혜민스님을 봤을 당시 직접 받았던 싸인이다. 이 강연을 듣고 며칠 후 한라대학교에서 했던 강연도 참석했는데 아마 그때 '젊은 날의 깨달음'을 구매해 또 싸인을 받았던 것 같다.


두 번째 들었던 강연은 첫 번째와 똑같은 형식으로 진행되었기에 다시 재방송을 보는 것 같았지만 마음 명상만큼은 듣고 또 들어도 좋았다.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이라 만약 혜민스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꼭 가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바쁜 일상으로 잠시 잊고 지내다 최근 혜민스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에 이어 이번 신간명은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이었다.


고요할수록 밝아진다는 말에 명상과 관련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번 혜민스님 책에서는 생각과 생각 사이에 잠시 지나가는, 의식하지 않으면 모르고 스쳐갈 그 침묵,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동안의 혜민스님 책과 마찬가지로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에는 독자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글귀가 많다. 이와 함께 본인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에 있었던 여러 사건에 대해 얘기해주는 부분은 평소 혜민스님에 관해 관심있다면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혜민스님과 법륜스님의 책을 보면 어린시절에 있었던 여러 사건으로 인해 성인이 되고난 후 똑같이 힘들고 아파한다는 내용이 여러번 언급된다.


이번 작품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에서는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응원해주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 마음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위로의 말을 전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인생을 보내는 게 아닐까.


나 역시도 그런 친구가 있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가끔식 볼 때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보태주기에 가끔씩 볼 때면 힘을 얻곤 한다.


2019년 새해 첫 책으로 혜민스님의 책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을 읽었다. 마음이 고요할수록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혜민스님의 말처럼 현재 나의 고민과 앞으로 추구해야 할 것들을 생각할 때면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겠다.


이번 책에서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독자들에게 전하는 여러 좋은 글귀가 많다. 아래 정리한 구절을 보고난 후 혜민스님이 직접 겪었던 여러 사연이 궁금하다면 이번 신간을 펼쳐보자.


마지막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당시 내가 직접 촬영했던 혜민스님의 팝송 공연을 동영상으로 올려보겠다. 올해에도 혜민스님이 내가 사는 제주도에 와서 강연해주기를 바라며, 나 또한 그 고요한 침묵을 만났으면 좋겠다.


※혜민스님 책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구절 모음


어쩌면 지금 우리가 힘들다고 지친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내 삶의 고요함을 잃어버리고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디를 가도 끊임없이 나를 봐달라는 소란한 광고 소리, 시시각각 일어나는 사건사고 뉴스 소리, 여기저기서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 두드리고 부수는 공사 소리,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는 소리가 들리지요. 거기다 우리 손에 쥔 핸드폰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벨과 문자 알림 소리가 울립니다. 현대 문명은 한순간도 우리 영혼을 가만히 쉴 수 없게 하는 것 같아요 - 7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지관止觀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현대어로 풀었듯이, 이번 책으로는 옛 선사들의 경험에서 나온 적적성성寂寂惺惺이라는 지혜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고요한 마음은 아무것도 없는 심심한 상태가 아니고, 고요할수록 환하게 밝아져서 내 본래 마음과 만나게 됩니다. 부디 이 책을 읽으시는 동안만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지시고 지혜가 밝아지시고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와 쉼을 찾으시길 기원합니다 - 8


행복의 요소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바로 '삶의 주도성이 내게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지금 하는 일을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할 때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낀다. 내가 삶을 주도할 수 없을 때는 그게 아무리 남들이 재미있는 것이라 해도 힘겨운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세상 많은 사람이 그 주도성을 잃고 사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못 한다고, 할 수 없다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용기 내어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자신의 미래를 내 스스로가 아닌 옆 사람들을 보면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 19


본인의 앞길은 하나씩 하나씩 보이는 것이지 한꺼번에 쫙 보이지 않아요. 꿈은 자동판매기에서 뽑으면 나오는 완성품이 아니고 내가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하나씩 보입니다. 저는 간절히 깨닫고 싶었고 그래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승려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간절히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세요. 엄마도, 가족도, 세상도 결국엔 당신이 행복해지길 원해요. 용기를 내세요 - 29


남들의 부정적인 의견이 내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두지 마세요. 내 미래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사람들은 내 마음 버스에서 몽땅 다 내리라 하시고 내가 지금까지 온 길, 계속해서 운전해서 가시면 돼요. 자기의 꿈을 이룬 사람이나 진정으로 도전해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꿈을 쉽게 깍아내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용기 없는 사람들이 용기 있는 사람을 여러 이유로 폄하하고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합니다 - 45

팃낙한 스님의 법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음 수행이 깊어질수록 관계의 회복이 가능해진다는 말씀이었다. 흔히 '수행'이라고 하면 혼자 깊은 산속에 들어가 세상과 단절된 채 도를 닦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마음 수행이 잘되고 있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어긋났던 관계가 수행의 결과로 회복되어야 한다. 만약 가족이나 친구와 말다툼을 하거나 오해가 생겨 관계가 틀어진 경우, 수행자라면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수행을 제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 55


자기 존중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남을 똑같이 존중하고, 남에게 친절하게 대합니다. 남을 쉽게 무시하고 하찮게 대하는 것은 자라면서 제대로 존중받은 경험이 없거나 본인 스스로가 지금 하찮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살면서 성별, 고향, 외모, 학력, 돈, 나이, 종교 때문에 차별받거나 혐오적인 말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지금 우리 주변에서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어르신, 성 소수자들의 심정이 어떨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아픔이 다른 차별받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혐오 발언으로부터 보호하는 자비의 계기가 되기를 - 78


"욜로YOLO가 가고 소확행小確幸이 왔어요" 젊은 분들에게 요즘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느냐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한 번뿐인 인생, 지금을 즐기자'라는 욜로 트렌드가 과도한 소비로 연결되니 결국에는 생활이 어렵게 되어 이제는 소확행으로 전환되었단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랑겔한스섬의 오후'라는 글에서 처음 등장한다. 하루키는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놓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등으로 소확행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기존에는 행복을 먼 미래에나 도달할 수 있는, 큰 목표의 성취 이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소확행은 지금 현재 삶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작고도 확실한 행복에 집중하는 것이다 - 108


행복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감상의 개념으로 본다면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 친구와의 우정, 내 아이의 웃음소리, 음악이 선물하는 평온함,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팀 우승이 다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행복 역시 우리가 말하는 소확행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삶을 감상할 줄 아는 태도를 갖추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좋고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반대로 여유가 없으면 박보검, 공유, 이효리가 앞에 있어도 그저 내 길을 막는 장애물인 줄로만 알고 못 알아보고 지나칩니다 - 114


우리는 삶을 두 가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는 행위 doing 중심의 삶, 다른 하나는 존재 being 중심의 삶입니다. 행위 중심의 삶은 큰 무언가를 이루어냈을 때야 비로소 내 삶의 가치가 생긴다고 보는 반면, 존재 중심의 삶은 내 존재자체가 이미 성스럽고 지혜롭고 우주와 연결된 사랑 속에 있다고 봅니다. 행위 중심의 삶은 행복을 먼 미래에서 찾으려 하지만 존재 중심의 삶은 존재 자체가 주는 느낌에서 찾습니다. 연결감에서 오는 행복이나 치유, 평화, 사랑도 행위 중심이 아닌 존재 중심으로 살 때 일어납니다 - 116


하나를 이루고 난 후 다른 더 큰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행복을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찾아오는 느낌이라고만 정의를 내리면, 평소에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더불어 성취 후의 행복한 느낌이 오래가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더 크고 더 좋아 보이는 새로운 목표가 곧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그 새로운 목표를 위해 쉴 틈 없이 계속 달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발견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기 원하는 행복이나 여유, 평화로움은 계속해서 뭔가를 구하는 마음이 쉴 때 비로소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오랫동안 원했던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거나, 집이나 차를 사거나, 아름다운 옷이나 최신 전자 제품을 구입해서 행복한 것은 그 외부 대상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더 깊숙이 들여다 보면 그 대상들을 구하던 내 마음이 쉬기 되었기 때문에, 멈추고 조용해졌기 때문에 만족스럽고 평화롭다고 느끼는 것이다. 만약 그 대상들이 마음의 행복과 평화를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대상을 소유함과 동시에 영원히 행복하게 평화로워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곧 다른 새로운 대상을 구하게 되지 않는가 - 143


친구의 어려움을 공감해준다고 "야, 나는 더 했어"라며 친구보다 더 힘들었던 자기 경험을 마구 이야기하는 거, 위로 안 됩니다. 지금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본인의 상태를 물어봐주고 들어주는 것이지 말할 기회를 상대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예요.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힘든 거 빨리 털어내고 일어나"라고 하는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본인도 털고 싶은데 못하니까 힘든 거잖아요. 용기를 준다고 한 말이 상대를 힘들게 하는 잔소리가 될 수 있어요. 대신 "많이 힘들었구나. 내가 너라도 힘들 것 같아"라고 공감해주세요 - 160

우리는 '그는 그런 사람이다'와 '그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이를 헷갈려 한다. 특히 본인 바람을 담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가 '그런 사람일 것이다'로 종종 인식된다. 그렇게 혼자 기대하고 또 혼자 실망한다 - 161


우리가 살면서 자신이 불행한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내 문제점만을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프레임 안으로 나를 더 견고하게 가두고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만든다. 이럴 땐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것보다 남에게 아주 작은 친절을 베풀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의 작은 도움으로 상대가 잘되는 모습을 보면 내 자존감도 올라가고 세상과의 연결감도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남을 돕는 것은 내 상황이 좋아진 후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주 작은 도움도 차일피일 미룬다. 내 코가 석 자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 상태가 완전히 좋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영영 누군가를 도울 만한 시절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면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괜찮은 상황이 와도 이것으로는 안 되고 더 괜찮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좀 아프면 아픈 대로 내 사정에 맞게 조금씩이라도 남을 돕는 실천이 결국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고 좀 더 완성된 방향으로 이끈다. 내가 그 친구를 도왔다고 생각한 그날은 어쩌면 그 친구가 나를 돕고 치유한 날이었는지 모르겠다 - 178


인도의 성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자기 성찰은 관계라는 거울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다른 사람과 어떤 부분에서 부딪칠 때 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인도의 또 다른 스승 오쇼 라즈니쉬는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우리 마음을 바위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서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반대로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대면할 용기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민감하게 느끼면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수용하고 지혜롭게 대처해나갈 때 비로소 우리 영혼은 성숙해진다 - 188


존중받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아이는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가능성을 마음껏 발휘해 삶의 꽃을 활짝 피운다. 그런 아이는 자기의 선택을 긍정하며 다른 이들의 의견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곧 회복한다. 물론 자라면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존중해주는 부모나 형제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을 찾아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인생 선배나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 혹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숙련된 심리 상담사와 같은 전문가를 찾는 것이 좋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수용하고 이해해주는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나면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고 심리적 부담감도 줄면서 나 자신을 좀 더 수용하게 될 것이다 - 197


다른 사람에게 불만이 생기거나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을 때 나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지금 내가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는가?" 화두 참구가 잘될 때는 내 마음 보기가 바쁘기 때문에 다른 사람 일에 관여하지 않게 된다.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재대로 집중하지 못했을 때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즉 다른 사람의 흠은 어떻게 보면 내 마음 거울에 비친 내 흠이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공경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초발심으로 돌아가 처음 먹었던 마음대로 흔들리지 말고 차분히 내 일을 해나가면 된다 - 237


마음속 화를 입으로 표현해버리면 업이 되어 내게 돌아오고 억누르면 병이 되어 내가 아프고 가만히 그 화의 에너지를 지켜보면 자기가 알아서 모양이 변하면서 이내 사라집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 그 괴로움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나 관찰해보세요. 그러면 그것이 내 생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원래 물 위에 쓴 글씨처럼 잠시 모양을 드러냈다가 남기지 않고 곧 사라집니다. 이내 사라질 생각을 붙잡고 되새김질하면서 괴로워하지 마세요 - 244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 부모는 이래야 하고 학생은 저래야 한다. 정치인은 이래야 하고 종교인으 저래야 한다. 우리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만들어낸 기준으로 분별한 후 그 기준에 잘 부합하면 훌륭하다고 한다 - 240


관계를 나쁘게 만들고 싶으면, 먼저 나의 기준이 상식이라고 여기면서 그 상식과 맞지 않는 언행을 하는 상대를 내 기준에서 잣대질을 한 후 그 사람보고 바꾸라고 계속 잔소리해보세요. 분명 성공하실 거예요. 내가 옳은 것만 보다가 그 옳은 것으로 인해 남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은 못 보는, 그런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 240


우리가 남을 비판하면, 상대는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보단 자신의 입장을 방어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정말로 상대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칭찬을 한 후 개선하길 바라는 점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말하세요. 그게 아니라면 남을 비판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려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내가 자주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건 내 안에 깊은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을 소중하게 여겨요 - 241


텅 빈 큰 공간에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모양 있는 의자만 의식하고 모양 없는 텅 빈 큰 공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의자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텅 빈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마음이라는 텅 빈 공간 안에 한 생각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생각만 의식하고 생각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그 텅 빈 마음 공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나쁜 생각을 좋은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생겼다 사라지는 텅 비고 고요한 마음 공간을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 248


생각이나 느낌이 일어나기 이전에도 있었고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결같이 있는 것은 바로 고요한 침묵이다. 침묵이 살아서 아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생각이나 느낌도 고요한 침묵에서 나와 그 모습을 드러냈다가 시간이 지나면 침묵으로 사라진다. 따라서 고요한 침묵은 텅 비고 의미 없는 죽은 공간이 아니라 모든 생각과 느낌을 만들어내고, 그들이 존재하도록 그 공간을 제공하고, 사라지려고 하면 품어서 소멸하게 하는 자애롭고도 살아 있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고요한 침묵의 위치를 살펴보자. 우선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고요한 침묵을 느껴보자. 이 고요함은 몸 안에만 있는가, 아니면 몸 밖에도 있는가? 몸 안에 있는 고요함과 몸 밖에 있는 고요함이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런 구분 없이 하나의 고요함으로 자리하고 있는가? 이번엔 고요한 침묵의 끝을 찾아보자. 끝에 도달할 수 있는가? 침묵 안에 한계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자. 마지막으로, 고요한 침묵을 잃어버리거나 완전히 없앨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 아무리 큰 소리가 나도 침묵은 이내 곧 회복되며 상처 입지 않은 본래의 고요한 모습으로 바로 돌아온다.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면서도 깨트릴 수도 잃어버릴 수도 없는 고요한 침묵이 끝없는 우주에 가득하다. 부디 고요 속에서 깨어 있는 투명한 침묵과 만나시길 기원한다. 깊은 평온함과 영원한 자유, 생명의 원천과 따뜻한 사랑이 또 그 안에 들어 있다 -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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