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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컴퓨터를 켜서 업무를 보다가도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게 도서 쇼핑몰 탐방이다. 2010년부터 이래왔으니 어느새 9년차가 됐다. 누군가는 '책 중독자'가 아니냐 하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책 구매 중독자'라 할 수 있다.
언젠가 '책 중독'과 관련된 에세이를 읽었다. 그 책에 나온 저자는 자신을 '책 중독자'라 칭하며 집에 있는 모든 가구를 빼고 책으로 탑을 쌓는다고 하는데 심지어 샀던 책을 또 사기도 한단다.
나 역시 그랬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은 꼭 책을 구매하는데 1권이 아니라 보통 3~4권씩 산다. 왜냐하면 온라인 도서 쇼핑몰에서 5만 원 이상 사야 사은품과 함께 적립금 2,000원을 더 주기 때문이다.
매달 3~4권 이상 책을 구매하지만 그 3~4권을 다 읽지는 않기에 책장에 쌓여간다. 그러다 언제였을까, 샀던 책을 또 사게 되면서 그 이후로는 책을 살 때 먼저 체크해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몇 년 동안 책을 구매하다보면 '사서 오래 둘 책'과 '사서 한 번만 읽을 책'으로 나눠진다. 특히 그 시대의 이슈나 사건을 다룬 책이나 일상 에세이에 관한 책은 한 번 읽으면 또 읽게 되지 않아 잘 구매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4월에 출간해 현재까지도 에세이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처음 봤을 때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껏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좋은 말이긴 하지만 무언가 얻는 듯한 느낌도 없었고 바쁘게 살아야 하는 시대에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말이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어느날 온라인 도서 쇼핑몰에 위 책이 계속해서 에세이 부분 베스트셀러로 오르더니 심지어 '크리스마스 에디션'까지 나온 것을 보고 책 속의 내용이 무척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출간한지 1년이 다 되가는 에세이 책이 2019년 2월 기준 네이버 한달 검색량이 20,000이라니, 대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오랜만에 에세이를 펼쳤다.
에세이 베스트셀러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쓴 저자 하완은 현재의 나처럼 회사를 다니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투잡을 뛰었다.
그러다 어느날 대책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됐지만 일이 들어오지 않아 백수 생활을 하다가 현재는 그림책을 내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보통 자기관리나 인생 에세이라고 하면 '남들도 다 열심히',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반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에서는 그와 반대로 '포기하고 살면 편하다'고 말한다.
인생은 노력하는 만큼 보장을 받지 못한다며, 노력은 항상 배신한다는 저자의 말에 처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재의 내 삶은 일을 하는 만큼 들어오는 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며칠을 두고 퇴근 후 집에서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에 있었던 불신(?)이 1부에서 2부, 2부에서 3부, 3부에서 4부로 넘어가면서 저자의 말에 공감이 됐다.
무엇보다 이 책을 만나기 전만 하더라도 일상 에세이가 베스트셀러라고 한들 읽어도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흐르는 문장과 중간 중간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 그림에 빠지게 되면서 어느새 책 속 내용에 공감을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에세이 베스트셀러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 제목처럼 저자는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이 시대에 조금이 아닌 완전 천천히 걸어도 된다며 위로해준다.
그러면서 남들이 추천해준 식당에 가거나 영화를 보는 게 아닌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간 술집이나 영화를 보러가는 소소한 행복을 권장한다.
그러고 보면 20대 초반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맛집을 가려고 인터넷으로 찾아보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위해 며칠 전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어떤 영화를 하는지도 모른 채 영화관에 가서 볼 영화를 고르던 추억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타인의 추천이 아닌 내가 직접 골랐던 영화가 더 재밌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딘가 가려면 미리 사전조사를 해야 하고 심지어 남들이 주관적으로 적은 평가에 휘둘려 가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지금의 내 삶은 나를 위한 것일까, 남들을 위한 것일까?
모두가 재밌다고 했던 영화를 보러 갔는데 이상하게 나만 재미없어 혼란스러운 적도 있었기에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에 공감되어 요즘엔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우연히 발견한 식당이나 카페를 찾는 편이다.
또한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꿩 대신 치킨'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인생을 사는 데 있어 꼭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게 아닌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말고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한 행복을 찾는 게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에세이는 에세이일 뿐, 그 내용이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냐 반문하는 분들이라면 아래 적어 놓은 에세이 베스트셀러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구절을 천천히 읽어보자. 분명 공감되는 내용이 있을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노력해라! 최선을 다해라! 인내해라!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시키는 대로 살았다.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이 진리라 생각했고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어째 점점 더 불행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그야말로 기분 탓일까?
꼭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아니, 후회하리보단 억울함이다. 10분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라고 해서 참고 올랐는데, 10분이 지나도 정상은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진짜 지금부터 딱 10분, 그 말에 속고, 또 속고, 그렇게 40년 동안 산을 오르고 있는 기분이다. 그야말로 환장할 기분이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조금만 더 올라가 볼 수도 있다. 계속 열심히 살다 보면 뭔가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지쳤다.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이다. 에라, 더는 못 해 먹겠다. 그렇다. 마흔은 한창 삐뚫어질 나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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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반드시 '이만큼'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괴로움의 시작이다. 보상은 언제나 노력한 양과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노력한 것보다 작게 혹은 더 크게 주어진다. 어쩌면 아예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노력한 것에 비해 큰 성과를 얻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비난하지 말고 그 성과를 인정해주자. 그것은 나 역시 노력에 비해 큰 성과를 얻을 수도, 노력하지 않았는데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 질투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 행운을 인정하면 더 많은 행운이 찾아온다나 어쩐다나, 믿거나 말거나,
이처럼 노력은 항상 우리를 배신하기 때문에 노력하면 할수록 자꾸 억울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여자처럼 말이다. 하루키는 억울해하는 우리의 마음을 이상한 방식으로 위로한다. "원래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노력으로 다 된다는 말도 거짓말이지. 알겠어? 네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야"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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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경주'에 참가했었는데 지금은 그 경주를 기권한 기분이다. 경주에 참여하지 않으니 당연히 승리도 패배도 없다. 그런데 궁금한 건 그 경주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경주의 타이틀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돈 더 많이 버나' 대회? '누가 먼저 내 집 장만하나? 대회? '누가 먼저 성공하나' 대회?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열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만두길 잘했다. 지금의 나는 성적을 낼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경주 바깥의 사람이니까. 사람들도 그걸 눈치챘는지 그다지 내 성적표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경쟁자가 아닌 것이다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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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에 열정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고민인데, 나는 이런 고민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눈앞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앉혀놓고 "저는 왜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거죠?"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무리 애를 써도 어떤 일에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 거다. 열정은 애정을 기반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니 당연히 열정도 없다. 열정 콘텐츠로 반짝 의욕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로 만들어진 열정은 대게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가 많다.
열정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지 절대 강요로 만들어질 수 없다. 열정은 사랑이다. 그 일을 사랑하는 것에서 열정은 시작된다. 물론 사랑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내 생각엔 열정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 열정 같은 거 없어도 우리는 일만 잘한다.
정말 좋아서 하는 일도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거기에 열정까지 요구하는 건 좀 너무하다 싶다. 안 생기는 열정을 억지로 마드는 건 스트레스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하던 일을 하면 된다. 언젠가 열정은 저절로 생긴다. 지금 하는 일일 수도 있고, 다른 일일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때 열정을 쏟으면 된다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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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강요하고 그 열정을 약점 잡아 이용하고 착취한다. 그래서 열정을 함부로 드러내는 건 위험하다. 이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열정이 없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열정은 좋은 거다. 나를 위해 쓰기만 한다면 말이다.
내가 어떤 열정을 쏟고 있다면 그 열정이 나를 위한 것인지, 남을 위한 것인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알기론 열정이라는 것은 그렇게 자주 생기는 것도, 오래가는 것도 아니다. 열정을 막 쥐어짜 내서도, 아무 데나 쏟아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 언젠가는 열정을 쏟을 일이 찾아올 테고 그때를 위해서 열정을 아껴야 한다. 그러니까 억지로 열정을 가지려 애쓰지 말자. 그리고 내 열정은 내가 알아서 하게 가만 놔뒀으면 좋겠다. 걍요하지 말고, 뺏어 가지 좀 마라. 좀!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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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길들이 있는데,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하나,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그 길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보면 그 길이 자신이 원하던 길이 아닌 경우도 많다.
나는 "절대 포기하자 마라'라는 말을 싫어한다. 목숨 빼곤 다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쉽게 포기하며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노력도 하고,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그렇게 두세 번 도전했는데도 안 되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맞다. 나처럼 4년 혹은 그 이상 매달리는 것은 집착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처럼 잔혹한 말은 없다. 그 목표를 절대 포기할 수 없어서 자신의 목숨을 끊다니 이런 비극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어떤 기을 고집한다는 것은 나머지 갈등을 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이미 많은 것을 포기했으니 그것 또한 포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너무 괴롭거든 포기해라. 포기해도 괜찮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니까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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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필요한 것이지만 분명한 답도 없고, 답을 얻었다 한들 그 방향대로 일이 잘 돌아가지는 않는다. 만약 잘 돌아가더라도 꼭 좋은 선택이라는 법도 없다. 내가 한 선택이 당장은 맞는 것 같아도 세월이 흘러 잘못된 결과를 낳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인생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통제가 안 된다. 자칫 허무주의로 흐를 수 있는 이 사실 앞에 나는 묘하게 위로를 받는다. 아, 모든 게 내 탓으 아니구나.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를 덜 힘들게 했을까?
나이가 들어서도 고민과 불안함은 계속되지만 뜨겁게 열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까지 고민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것까지 고민하기엔 내 체력이 버티지 못한다.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도 젊을 때나 가능한 모양이다. 늙어서 좋은 점도 있네. 응? 이거 좋은 거 맞아? 청춘의 열병은 지나갔다. 이젠 중년의 위기가 올 차례인가? 인생은 지루할 틈이 없다. 이런 열병! -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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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걸 배우게 된다. 명분은 나중에 만들어도 된다는 것 말이다. 명분이 없어도 원하면 일을 꾸민다. 윗사람끼리 만나 술을 마시고, 사우나도 같이 가고, 뭐 그렇게 말을 맞춰놓고 남들 보기에 괜찮은 명분을 만들어서 내세운다. "이런 이런 이유로 이 회사에 일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명분이 확실하니 다들 불만 없죠?" 참 좋은 걸 배웠다. 어른들의 세계에선 명분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아무튼.
욕망에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놀고 싶으면 놀아야지. 명분은 그다음에 찾자. 그렇게 놀면서 찾은 두 번째 명분은 바로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한 잠깐의 방황'이었다. 명분이 좋다. 그래,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설득력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고민하니까. 어쩌면 지금 내 방황의 이유는 모두 놀기 위한 명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놀고 싶은 거다 -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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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월급과 이별했다. 가끔 그녀(월급)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곤 하는데, 그럴 때면 그녀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있다. 그녀가 주던 안정감, 하지만 그녀는 나를 너무 구속했다. 이미 헤어진 여자를 떠올리면 뭐 하랴, 지금 나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 그녀의 이름은 '자유'다. 가끔은 날 불안하게 만들지만 구속하지 않아서 좋다.
연애를 하려면 데이트 비용이 든다. 전 여자 친구와의 연애에선 자유를 비용으로 냈고, 현 여자 친구와의 연애에선 돈을 비용으로 낸다. 어떤 연애가 더 낫다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현재 애인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더 내가 가진 자유를 사랑해야겠다 -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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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뇌의 95퍼센트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쓴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는 현재를 살지만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 고작 5퍼센트의 뇌로 현재를 살고 있으니 금방 방전될 수밖에 없다. 방전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하는 게 아니라 '덜' 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좀 덜 하고, 노력도 좀 덜 하고, 후회도 좀 덜 하면 좋겠다. 그것이 방전되지 않는 지혜가 아닐까? 그럼, 다시 나는 아무것도 안 하러 가야겠다 -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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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포스터만 보고 마음을 설레어 무작정 극장에 들어가 관람했던 영화들, 낯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수수하고 단정한 간판이 마음에 들어 들어갔던 선술집, 작가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는데 단순히 표지가 마음에 들어 집어 든 책.
그런 것들은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음에도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그런 선택에는 무모하고 위험한 매혹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과 그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용기가 있다. 당연히 실패할 확률도 높지만 성공했을 때 가지는 성취감도 크다. 그건 누구의 것도 아닌 오롯이 내 것이 된다 -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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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검색을 한다.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다. 나에게 딱 맞는 것을 찾아 도전하고 위험에 무릎쓰기보단 실패하지 않을 검증된 '중간 이상'을 택한다. 그렇게 점점 내 생각이나 감각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리고 퇴하하여 어느새 나의 선택을 믿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해서 더는 '나'의 취향이나 감을 믿지 못하고 선택권을 '남'에게 넘겨버린 지금의 우리, 고작 식당 하나, 영화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실패할까 봐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니 인생은 오죽할까, 안전하다고 유혹하는 '남'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선택은 어쩌면 '고독한 실패가'의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을 가면 적어도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사는 '남'의 인생을 살게 되진 않는다.
모두가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갈 때 용기 있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의 인생을 살게 된다. 실패해도 좋다. 실패했을 땐 후회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남의 말만 듣고 우르르 몰려갔던 사람들 대부분도 후회하긴 마찬가지다. 안 그런가? 실패를 두려워 말자. 고독한 실패가가 되자 -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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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미래는 어둡고, 현실은 궁핍했던 나의 20대, 꿈이니 사랑이니 하는 말들도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팍팍한 나날들과 앞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주는 중압감과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안개처럼 깊게 깔렸던 젊은 날, 방황과 불안으로 지새웠던 숱한 밤들, 술은 또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돌이켜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이이기도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고민이 많았다. 내가 좀 더 용기가 있거나 무모한 사람이었다면 고민할 시간에 많은 일을 시도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됐을까? 지금 내 모습이 싫은 건 아니지만 궁금하다. 상상 속 다른 모습의 내가,
내가 선택하고 한 일들에 대해선 결과가 좋든 나쁘든 잘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일들은 왜 이리 후회가 되는지 모르겠다. 너무 쉽게 놓아버린 꿈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했던 사랑, 아, 나는 좀 더 저질렀어야 했다. 망하더라도 말이다.
인생은 후회로 가득하다. 내일이 되면 또 오늘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후회해도 후회하지 않아도 인생은 굴러간다. 오늘도, 그래, 아아, 우린 슬픈 거다 -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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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와 같다. 파도 위에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잘 잡으려면 꼿꼿해선 안 된다. 유연해야 한다. 힘을 빼고 이리저리 휘둘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파도에 맞춰 무게중심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쉴 새 없이 옮겨야 넘어지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면 마치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보면 열심히 균혀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내 삶이 매우 불안해 보일지라도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이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타는 것이니까. 그런데 가만, 이제 슬슬 멈출 때도 됐는데, 멀미가 날 것 같다. 어떻게 파도가 끝이 없냐! 아휴, 지겨워! -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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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 때문에 내가 자유롭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돈 때문에 회사를 다니고, 돈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했으니 내 모든 의무는 그놈의 돈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언제나 '더 많은 돈'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벌면 자유로워질 거야. 충분히 돈을 모으기 전에 자유롭게 살 수 없어.
나는 돈에 얽매여 있었다. 그렇게 평생을 돈을 좇으며 살았는데 그럴수록 돈이 도망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돈 버는 능력이 좀 모자란 탓도 있겠지만 신기하게 돈은 벌어도 벌어도 부족했다. 200만 원 벌던 사람이 500만 원을 번다고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연봉이 1억을 넘어도 돈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나라고 다를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런 식으론 아마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돈 때문에 자유를 계속 미루기만 하다간 한 번도 자유롭지 못한 채 늙어 죽게 생겼다는 위기감이 덮쳐왔다. 이봐,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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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면 아마도 뒤처진 게 맞을 거다. 하지만 뒤쫓을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속도와 길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느린 건 창피한 게 아니다. 인정하자. 우린 뒤처졌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뻔뻔함이 너무 좋다.
이왕 늦은 거 천천히 가면 어떨까? 인생도 더 길어졌는데 빨리 가서 뭐 하려고 그러나, 나 혼자 느릿느릿 가려니 외로워서 그런다. 같이 천천히 가자. 만약 모두가 합심해서 뛰지 않는다면 이 지긋지긋한 경쟁 사회도 달라질지 모른다. 정말이라니까 -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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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꿈꾸는 모습이 있다. 몇몇 사람은 그 모습을 이루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꿩' 대신 주어진 '닭' 같은 삶인 것이다.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는 닭을 앞에 두고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누군가는 닭을 꿩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누군가는 마지못해 닭을 먹는다. 또 누군가는 이게 아니라며 닭을 아예 외면해버린다.
내 삶을 고통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꿈꾸던 것들을 잡으려 애를 썼지만 잡히지 않고 자꾸 멀어져만 갔다. 꿈을 이루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하지만 계속 불행했다. 그랬던 내가 최근 몇 년간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상황이 더 나아져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부정하며 노력하는 대신 지금의 나를 좋아해주고 인정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삶도 꽤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겨우 이런 것에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노력해서 꿈꾸던 모습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단, 열심히 노력하는 중에도 삶은 이어진다. 아직 꿈꾸던 모습이 되지 못한 삶을 보며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대에 못 미치는 지금의 내 모습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꿈을 이뤄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꿈이 뭐라고, 꿈을 이룬다면 정말 좋겠지만 이루지 못해도 그만이다. '에이, 아쉽다' 정도로 훌훌 털고 지금 주어진 삶에서 행복을 찾아 누리기에도 짧은 생이다. 꿈꾸던 대로 되지 못했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실패한 인생이란 없다.
누군가는 루저들이나 하는 '자기 위로', '자기합리화'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고 다그치겠지,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자기위로'나 '자기합리화'가 나쁜 것일까? 자기 삻을 긍정하고 사랑하려 스스로 위로하고 합리화하는 게 잘못된 것일까?
나는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몇 천 번이라도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 생각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내 인생을 사랑해준단 말인가. 꿈꾸던 대로 되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 삶을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관점의 차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면 뭔거 덜 좋은 걸 얻은 것 같지만 '꿩 대신 치킨'이라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치킨은 사랑이니까. 당장이라도 맥주 캔을 따고 싶을 만큼 흥분된다. 지금 우리의 삶은 닭이 아니라 치킨이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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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 명언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다. 꼭 누굴 이기고 싶어서 즐기는 건 아니다.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은 거다. 누굴 이기는 게 목적이 되는 순간 절대로 즐길 수 없을걸? 아무튼.
이제 열심히 사는 인생은 끝이다. 견디는 삶은 충분히 살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결과를 위해 견디는 삶이어서는 안 된다.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뿅 하고 건너뛰고 싶은 시간이 아닌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어느덧 잊고 있던 재미가 살아난다. 이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빨리 완성하고 싶은 조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귀찮기만 했던 바느질이 좀 더 길게 계속되길 바라는 지금의 나, 아직 아무것도 완성한 것은 없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지금 제대로 즐기고 있다. 휴, 아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