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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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책 디자인은 저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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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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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강, 채식주의자, 맨부커상, 인터넷 포털을 탐색하는 도중 국내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을 받은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알게 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한강이라는 작가가 누군지도 몰랐고, 그녀가 쓴 채식주의자 역시 읽어보지 않았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을 만큼 대단한 이야기가 담겨 있겠느냐는 생각과 함께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책을 결제했다.


난이도가 꽤 높을 책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기 전 채식주의자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읽는 동안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하고 정교한 내용이 이 소설 속엔 다른 소설에서 느껴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까지는 3개의 단편 소설이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몽고반점의 중간쯤 세 개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전체적인 스토리가 대강 이해됐다. 나무 불꽃에서는 채식주의자 주인공인 김영혜의 언니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녀의 생각과 뜻을 100% 이해하긴 어려웠으나 한 사람의 일생 동안 겪었던 상처, 후회에 대해서는 공감이 갔다.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 김영혜와 그녀의 언니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을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읽을만한 소설책을 알고 싶다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 봤던 얼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설명할 수 없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생생하고 이상한, 끄찍하게 이상한 느낌을 - 19


이해할 수 없겠지. 예전부터 난, 누군가가 도마에 칼질을 하는 걸 보면 무서웠어. 그게 언니라 해도, 아니, 엄마라 해도, 왠지는 설명 못해. 그냥 못 견디게 싫은 느낌이라고밖엔,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들한테 다정하게 굴곤 했지. 그렇다고 이제 꿈에 죽거나 죽인 사람이 엄마나 언니였다는 건 아니야. 다만 그 비슷한 느낌, 오싹하고, 더럽고, 끔찍하고 잔인한 느낌만이 남아 있어.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인 느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살해한 느낌, 겪어보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한, 단호하고, 환멸스러운, 덜 식은 피처럼 미지근한 - 37


꿈에 누군가의 목을 자를 때, 끝까지 잘리지 않아 덜렁거리는 머리채를 잡고 마저 칼질을 할 때, 미끌미끌한 안구를 손바닥에 올려놓을 때, 그러다 깨어날 때, 생시에, 뒤뚱거리며 내 앞을 걸어 가는 비둘기를 죽이고 싶어질 때, 오래 지켜보았던 이웃집 고양이를 목조르고 싶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맺힐 때,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때,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솟구쳐올라와 나를 먹어버린 때, 그때, 입 안에 침이 고여. 정육점 앞을 지날 때 나는 입을 막아. 혀뿌리부터 차올라 입술을 적시는 침 때문에, 입술 사이로 새어나와 흘러내리려는 침 때문에 - 42


다섯 바퀴째 돌자 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어. 줄에 걸린 목에서 피가 흘러. 목이 아파 낑낑대며, 개는 질질 끌리며 달려. 여섯 바퀴째, 개는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 목에서도, 입에서도 피가 흘러. 거품 섞인 피, 번쩍이는 두 눈을 나는 꼿꼿이 서서 지켜봐, 일곱 바퀴째 나타날 녀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축 늘어진 녀석을 오토바이 뒤에 실은 아버지가 보여. 녀석의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핏물이 고인 눈을 나는 보고 있어 - 53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 61


그 이미지만 아니었다면 이 모든 조바심, 불편함, 불안, 고통스러운 의심과 자기검열을 겪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의 선택으로 인한 발걸음 한번에 그가 이뤄온 모든 것을, 가정마저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경험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이다. 많은 것들이 그의 안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은 정상적인 인간인가, 또는 제법 도덕적인 인간인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인가. 확고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의 답을 그는 더이상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 75


사십년 가까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찬란한 희열이, 몸속 알 수 없는 곳에서 조용히 흘러나와 자신의 붓끝에 고이는 것을 그는 침묵 속에서 느꼈다. 가능한 한 오래 그 희열을 지속시키고 싶었다. 목까지만 조명을 받아 캄캄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으나, 허벅지 안쪽을 붓끝이 스쳐갈 때 떨림이 전해져오는 것으로 미루어 예민하게 깨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가 어떤 성스러운 것, 사람이라고도, 그렇다고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식물이며 동물이며 인간, 혹은 그 중간쯤에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다 - 107


그는 그녀의 몸을 앞으로 돌렸다. 눈을 찌르는 빛이 그녀의 상체에서부터 비쳐 그는 그녀의 가슴 윗부분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벌렸는데, 그녀가 잠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허벅지의 낭창낭창한 탄력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을 때, 짓무른 잎사귀에서 흐르는 것 같은 초록빛 즙이 그녀의 음부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향긋하면서도 씁쓸한 풀냄새가 점점 아릿해져 그는 숨을 쉬기 어려웠다. 절정의 직전에 가까스로 몸을 빼냈을 때, 그는 자신의 성기가 온통 푸르죽죽하게 물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것인지 그의 것인지 모를 싱그러운 즙으로 그의 아랫도리와 허벅지까지 시퍼런 풀물이 들어 있었다 - 117


죽었으면 좋겠어. 죽었으면 좋겠어. 그럼 죽어. 죽어 버려. 왜 눈물이 흘러내리는지 모르는 채 그는 운전대를 거머쥐고. 몇번이고 와이퍼를 작동시키다가 부연 것은 유리창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라는 것을 깨닫곤 했다.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왜 주문처럼 머리 안쪽으로 쉴새없이 터져나오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마치 자신 안에 있던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답하듯, 그럼 죽어.라는 대답이 쉴새없이 몰아쳐오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흡사 타인들의 대화 같은 그 말들만이 그의 덜덜 떨리는 몸을 주문처럼 진정시키는 까닭도 알 수 없었다. 가슴이, 아니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그는 양쪽 유리창을 활짝 열었다. 밤바람과 차들의 굉음 속에 그는 어두운 간선 도로를 질주했다. 떨림은 손에서부터 시작해 온몸으로 번져, 숫제 이를 부딪치며 그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속도계를 볼 때마다 흠칫 놀라며, 경련하는 손가락으로 눈자위를 물질렀다 - 132


그녀는 천천히 그들에게서 몸을 돌려 베란다 쪽으로 다가갔다. 미닫이문을 열어 찬바람이 임시에 밀려들어오도록 했다. 그는 그녀의 언둣빛 몽고반점을 보았고, 거기 수액처럼 말라붙은 그의 타액과 정액의 흔적을 보았다. 갑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겪어버렸다고, 늙어버렸다고, 지금 죽는다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가도 느꼈다. 그녀는 베란다 난간 너머로 번쩍이는 황금빛 젖가슴을 내밀고, 주황빛 꽃잎이 분분히 막힌 가랑이를 활짝 열었다. 흡사 햇빛이나 바람과 교접하려는 것 같았다. 가까워진 앨뷸런스의 사이렌, 터져나오는 비명과 탄성, 아이들의 고함, 골목 앞으로 모여드는 웅성거리는 소리들을 그는 들었다. 여러개의 급한 발소리들이 층계를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베란다고 달려가, 그녀가 기대서 있는 난간을 뛰어넘어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삼층 아래로 떨어져 머리를 박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못박혀 서서, 삶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인 듯, 활활 타오르는 꽃 같은 그녀의 육체, 밤사이 그가 찍은 어떤 장면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번쩍이는 육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 147


막을 수 없었을까. 두고두고 그녀는 의문했다. 그날 아버지의 손을 막을 수 없었을까. 영혜의 칼을 막을 수 없었을까. 남편이 피흘리는 영혜를 업고 병원까지 달려간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정신병원에서 돌아온 영혜를 제부가 냉정히 버린 것을 말릴 수 없었을까. 그리고 남편이 영혜에게 저지른 일을, 이제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값싼 추문이 되어버린 그 일을 돌이킬 수 없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 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이 모래산처럼 허물어져버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 166


시간이 훌쩍 흐른 뒤에야 그녀는 그때의 영혜를 이해했다. 아버지의 손찌검은 유독 영혜를 향한 것이었다. 영호야 맞은 만큼 동네 아이들을 패주고 다니는 녀석이었으니 괴로움이 덜했을 것이고, 그녀 자신은 지친 어머니 대신 술국을 끓여주는 맏딸이었으니 아버지도 알게모르게 그녀에게만은 조심스러워 했다. 온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 191


그 저녁, 영혜의 말대로 그들이 영영 집을 떠났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까. 그날의 가족모임에서, 아버지가 영혜의 뺨을 치기 전에는 그녀가 더 세게 팔을 붙자았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까. 영혜가 처음 제부를 인사시키려 데려왔을 때, 어쩐지 인상이 차가워 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육감대로 그 결혼은 그녀가 만류했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까. 그렇게 그녀의 영혜의 운명에 작용했을 변수들을 불러내는 일에 골몰할 때가 있었다. 동생의 삶에 놓인 바둑돌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헤아리는 일은 부질없었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은 멈출 수가 없었다. 만일 그녀가 그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마침내 거기에 생각이 이를 때, 그녀의 머리는 둔중히 마비되곤 했다 - 192


기적처럼 고통이 멈추는 순간은 웃고 난 다음이다. 지우가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그녀를 웃기고, 그녀는 문득 멍해진다. 어떨 때는 자신이 웃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더 웃기도 했다. 그럴 때 그녀의 웃음은 즐거움이라기보다 혼돈에 가까울 테지만, 지우는 그렇게 그녀가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 - 204


그녀는 알 수 없다. 그것들의 물결이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그 새벽 좁다란 산길의 끝에서 그녀가 보았던, 박명 속에서 일제히 푸른 불길처럼 일어서던 나무들은 또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은 결코 따뜻한 말이 아니었다. 위안을 주며 그녀를 일으키는 말도 아니었다. 오히려 무자비한, 무서울 만큼 서늘한 생명의 말이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받아줄 나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어떤 나무도 그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마치 살아 있는 거대한 짐승들처럼, 완강하고 삼엄하게 온몸을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 206


그냥 꿈이야. 그날의 지우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가 소리내어 내뱉는 말이다.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 그녀는 두 눈을 흡뜨고 황황히 좌우를  살핀다. 구급차는 비탈진 도로를 여전히 빠르게 달려내려가고 있다. 오래 손질하지 못한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그녀의 손이 눈에 보이게 떨린다. 그녀는 설명할 수 없다. 어떻게 자신이 그렇게 쉽게 아이를 버리려 할 수 있었는지, 자신에게도 납득시킬 수 없을 잔인한 무책임의 죄였으므로, 누군가에게 고백할 수도, 용서를 구할 수도 없다. 다만 소름끼칠 만큼 담담한 진실의 감각으로 느낄 뿐이다. 그와 영혜가 그렇게 경계를 뚫고 달려나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모래산처럼 허물어뜨리지 않았다면, 무너졌을 사람은 바로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 무너졌다면 돌아오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오늘 영혜가 토한 피는 그녀의 가슴에서 터져나왔어야 할 피일까 - 219


조용히, 그녀는 숨을 들이마신다.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무수한 짐승들처럼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끌질기다 -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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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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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제목을 보고 느낀 건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라오스 여행 에세이를 냈구나" 싶었다. 평소 하루키 씨의 책이라면 무엇이든 읽을 정도로 팬이기에 사실 라오스든 어디든 상관은 없었다. 막상 책을 펼쳐 보니 이 책은 라오스뿐만 아니라 하루키 씨가 최근 20여 년 간 방문한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자 신이 한때 거주했던 보스턴부터 온천이 유명한 아이슬란드, 다양한 맛집이 있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와 메인 주 포틀랜드, '노르웨이의 숲'을 썼던 그리스 스페체스 섬과 미코노스 섬, 유명한 재즈 클럽이 있는 뉴욕, 시벨리우스와 카우리스매키를 찾아 떠난 핀란드, 메콩 강이 있는 라오스, 붉은 와인이 유명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소세키의 집과 구마몬이 있는 구마모토 현까지의 이야기다.


하 루키 씨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함께 추억을 회상하며 직접 그 나라를 방문할 독자들을 위한 팁을 공유한다. 무엇보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읽어보니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와 탁발에 나선 승려들을 만날 수 있는 라오스 루아프라방에 가보고 싶었다. 내가 살아왔던 세계와는 다른 소리, 냄새, 감촉을 느낄 수 있는 그곳에 가보면 무슨 느낌이 날지 자못 궁금해졌다.


하 루키 씨는 이 책을 통해 라오스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라오스에는 라오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듯이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든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놀라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게 바로 여행이라며 하루키 씨의 말을 기억해야겠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 온천 블루 라군(55), 포틀랜드 다운타운 히스먼 호텔 레스토랑(69), 포틀랜드 필버트 레스토랑(71), 포틀랜드 다운타운 포어 스트리트 레스토랑(79), 포틀랜드 스트리트 앤드 컴퍼니(79), 포틀랜드 휴고스(80), 그리스 스페체스 섬 파트랄리스 가게(101)


- 그리스 스페체스 섬(노르웨이의 숲), 로마(노르웨이의 숲, 댄스 댄스 댄스), 뉴욕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124), 뉴욕 재즈 클럽 버드랜드(129), 뉴욕 센트럴파크 재즈 클럽 스모크-오기스 재즈바(130)


강 수면은 나날이 미묘하게 변화하며 빛깔과 물결의 모양과 흐르는 속도를 바꾼다. 그리고 계절은 그것을 에워싼 동식물의 모습을 한 단계씩 확실하게 변모시킨다. 온갖 크기와 모양의 구름이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사라지고, 강은 하얀 햇살의 움직임을 선명하게, 때로는 흐릿하게 수면에 비춘다. 계절에 따라 마치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그 촉감과 냄새와 방향으로 우리는 계절의 추이가 새기는 눈금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런 실감나는 흐름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모자이크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낀다. 마치 북한의 화려한 매스게임 속 한 사람처럼. 비유의 온당함은 제쳐두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 14


퍼핀 어미는 새끼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이제 네 힘으로 살아봐" 하듯이 쌩하니 바다로 날아가버린다. 그리고 아직 세상물정 잘 모르는 새끼들만 남겨진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새끼들은 자기가 부모에게 버림받았음을 알아챈다. 이제 아무도 먹이를 물어다주지 않는다. 한동안은 "밥때 아직 멀었나?" 하며 얌전히 기다리지만, 아무리 있어봐도 어미는 돌아오지 않고 배는 점점 고파지니 결국 떠밀리듯 둥지를 벗어나게 된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날개를 퍼덕여 바다에 가서 스스로 먹잇감을 잡는다. 먹잇감을 잘 못 잡는 새끼 퍼핀은 그대로 죽어간다. 지극히 단순한 세계다. 인간이라면 이렇게 못하겠죠. 부모에게 버림받는다면 설령 어찌어찌 살아남더라도 트라우마가 생겨서 남은 인생에 지장이 올 것이다. 그러나 바로 어제까지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새끼에게 먹이를 날라주던 어미 퍼핀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젠 나도 모르겠다"며 태도를 백팔십도 바꿔서 어딘가로 떠나버리는 클리어한 인생관에는 눈여겨볼 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37


렌터카 로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려는 사람에게 드리는 현실적인 조언 하나, 아이슬란드 시골에 가면 거의 모든 주유소가 무인 시스템이다. 직접 급유를 해야 하고, 신용카드로만 지불 가능한 기계가 많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루기가 엄청나게 힘들 수도 있다. 기계 시스템이 저마다 다르고, 영어 표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사용법을 물어보고 싶어도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쨌거나 한산한 나라니까. 그러니 여행을 떠나기 전에 기름 넣는 방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예습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안 그러면 자동차 탱크가 텅텅 빈 채 무인 주유소 펌프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처량한 신세가 될 수 있거든요. 나처럼. 참고로 아이슬란드 주유소의 휘발유는 매우 비싸다 - 46


그곳의 아름다움은 사진의 프레임에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너른 대지와, 거의 영원에 가닿을 듯한 정적과, 깊은 바다 내음과, 거칠 것 없는 지표면을 휩쓰는 바람과, 그곳에 흐르는 독특한 시간성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진 것이다. 그곳의 빛깔은 고대부터 줄곧 비바람을 맞아오면서 완성된 것이다. 그곳은 또한 날씨의 변화나 조수 간만, 태양의 이동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번역해버리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되리라. 그곳에 있던 마음 같은 것이 거의 사라져버리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 오래 제 눈으로 바라보고, 뇌리 깊숙이 새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덧없는 기억의 서랍에 담아 직접 어딘가로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 53


섬을 떠날 때는, 그것이 어떤 섬이든, 늘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스페체스처럼 그립고 따뜻한 기억으로 가득한 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파도에 흔들리는 불안정한 트랩을 건너 배에 오르고 비닐시트 좌석에 앉으면 이윽고 엔진 소리가 울려퍼진다. 배가 서서히 방향을 바꾸어 난바다로 뱃머리를 돌리고 느릿느릿 부두를 벗어난다. 부둣가에 서서 배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멀어진다. 검은 개 한 마리가 부두 끝에 서서 빨간 혀를 내밀고는 떠나는 배를 가만히 지켜본다. 그것이 그 개의 습관일지 모른다. 떠나는 배를 매번 배웅하고 싶어하는 개일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그런 습관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그러나 곧 그 개도 작아져 시야에서 사라진다.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사라진다 - 113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좋은 질문이다. 아마도. 하지만 내게는 아직 대답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 라오스까지 가려는 것이니까.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 159


라 오스는 동남아시아 유일의 내륙국으로 바다에 면한 부분이 없다. 아마 서퍼 인구도 적을 것이다. 그 대신 메콩 강이라는 큰 강이 국토를 가로지르며 남북으로 흐른다. 강은 그 자체로 미얀마와 태국 등 이웃나라와의 국경을 이룬다. 국토 면적은 일본의 약 3분의 2, 인구는 일본의 20분의 1, 나라 전체 GOP는 돗토리 현 경제 규모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IMF에서는 후발발전도상국으로 분류한다. 국민의 78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한다…라고 말해도 어떤 곳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가죠. 나 역시 그렇다. 그러니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다 - 160


루아프라방의 사원을 느긋하게 도보로 돌아보면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즉 '평소 우리는 그렇게 주의깊게 사물을 보지 않는구나'란 사실이다. 우리는 물론 매일같이 여러 가지를 보지만, 그것을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지. 정말로 보고 싶어서는 아닐 때가 많다. 전철이나 차에서 창밖으로 잇따라 흘러가는 경치를 멍하니 눈으로 좇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언가 한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기에는 우리 생황이 너무나 바쁘다. 진정한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차츰 잊어가고 있다 - 174


라오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사원에 조각상을 봉납하는 모양이다. 부자들은 크고 근사한 상을 바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작고 소박한 상을 바친다. 그것이 이 나라에서는 신앙심의 발로인 듯하다. 그렇다보니 매우 많은 수의 불상과 조각상이 사원에 모여든다. 그리고 잘 찾아보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중에 나와 개인적으로 이어져 있는 조각상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나 자신의 파편 같은 것을 조금씩 주워모을 수 있다. 왠지 신기한 기분이다. 세상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넓은 가운데, 동시에 또한 내 발로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아담한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 177


'종교'라는 것을 정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고유한 '이야기성'이 세계 인식의 틀로 가능하게 하는 것도 종교에 주어진 하나의 기본 역할이라 할 수 있으리라. 당연한 얘기지만 이야기가 없는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목적이나 중개자의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수한 이야기여야 한다. 왜냐하면 종교란 규범과 사범의 원천인 동시에, 아니 그 이전에, 이야기의 공유행위로서 자생적으로 존재해왔을 테니까. 요컨대 그것이 자연스럽게, 무조건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것이 영혼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 179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 181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구마몬에 대해 좋은 인상도 나쁜 인상도 없다.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딱히 내 손으로 구마몬 상품을 사지는 않고, 구마몬 무늬 바지를 입거나 구마몬 무늬 도요타 프리우스를 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배제하거나 거부하려는 생각도 없다. 다만 이번 여행중 가는 곳마다 구마몬이 넘쳐나는 풍경에는 솔직히 식상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만약 이 상태가 멈추지 않고 이어져 구마몬 상품이 전 세계에 넘쳐나고 구마몬이라는 캐릭터가 '인구에 회자' 된다면, 구마모토 현이라는 존재 자체까지 '인구에 회자'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만약 양산된 구마몬의 이미지가 진부해진다면, 그에 따라 구마모토 현의 이미지까지 진부해져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점이 조금 걱정되는 것이다 - 252


구마몬이 앞으로 '키티'나 사자에 씨'처럼 보편적인 인기 캐릭터로 정착할지, 아니면 '인구에 화자' 되다가 서서히 진부해질지 일개 소설가인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 어찌되든 현재 구마몬은 맹렬하고 힘차게 중식하고 있고, 그럴수록 구마모토 현이라는 본래의 뿌리 내지 토양에서 점점 멀어져갈 것이다. 마치 '미키마우스'가 보편화되면서 본래의 '쥐 성'을 상실한 것처럼. 그렇다. 우리는 너무도 복잡한 시스템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이미지가 아주 큰 의미를 지니며, 실질은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간다 - 256


그 러고 보니 정말 라오스에 뭐가 있다는 걸까? 그런데 막상 가보니 라오스에는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연한 소리죠. 여행이란 이런 겁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면, 아무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행을 가진 않을 겁니다. 몇 번 가본 곳이라도 갈 때마다 '오오 이런 게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행입니다.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 -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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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책은 도끼다를 읽으면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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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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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이라는 게 생각한 거 만큼만이라도 잘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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