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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평점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제목을 보고 느낀 건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라오스 여행 에세이를 냈구나" 싶었다. 평소 하루키 씨의 책이라면
무엇이든 읽을 정도로 팬이기에 사실 라오스든 어디든 상관은 없었다. 막상 책을 펼쳐 보니 이 책은 라오스뿐만 아니라 하루키 씨가
최근 20여 년 간 방문한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자
신이 한때 거주했던 보스턴부터 온천이 유명한 아이슬란드, 다양한 맛집이 있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와 메인 주 포틀랜드, '노르웨이의
숲'을 썼던 그리스 스페체스 섬과 미코노스 섬, 유명한 재즈 클럽이 있는 뉴욕, 시벨리우스와 카우리스매키를 찾아 떠난 핀란드,
메콩 강이 있는 라오스, 붉은 와인이 유명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소세키의 집과 구마몬이 있는 구마모토 현까지의 이야기다.
하
루키 씨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함께 추억을 회상하며 직접 그 나라를 방문할 독자들을 위한 팁을 공유한다. 무엇보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읽어보니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와 탁발에 나선 승려들을 만날 수 있는 라오스
루아프라방에 가보고 싶었다. 내가 살아왔던 세계와는 다른 소리, 냄새, 감촉을 느낄 수 있는 그곳에 가보면 무슨 느낌이 날지 자못
궁금해졌다.
하
루키 씨는 이 책을 통해 라오스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라오스에는 라오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듯이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든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놀라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게 바로 여행이라며 하루키 씨의 말을
기억해야겠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 온천
블루 라군(55), 포틀랜드 다운타운 히스먼 호텔 레스토랑(69), 포틀랜드 필버트 레스토랑(71), 포틀랜드 다운타운 포어
스트리트 레스토랑(79), 포틀랜드 스트리트 앤드 컴퍼니(79), 포틀랜드 휴고스(80), 그리스 스페체스 섬 파트랄리스
가게(101)
- 그리스 스페체스 섬(노르웨이의 숲), 로마(노르웨이의 숲, 댄스 댄스 댄스), 뉴욕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124), 뉴욕 재즈 클럽 버드랜드(129), 뉴욕 센트럴파크 재즈 클럽 스모크-오기스 재즈바(130)
강
수면은 나날이 미묘하게 변화하며 빛깔과 물결의 모양과 흐르는 속도를 바꾼다. 그리고 계절은 그것을 에워싼 동식물의 모습을 한
단계씩 확실하게 변모시킨다. 온갖 크기와 모양의 구름이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사라지고, 강은 하얀 햇살의 움직임을 선명하게,
때로는 흐릿하게 수면에 비춘다. 계절에 따라 마치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그 촉감과 냄새와 방향으로 우리는
계절의 추이가 새기는 눈금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런 실감나는 흐름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모자이크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낀다. 마치 북한의 화려한 매스게임 속 한 사람처럼. 비유의 온당함은 제쳐두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 14
퍼핀 어미는 새끼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이제 네 힘으로 살아봐" 하듯이
쌩하니 바다로 날아가버린다. 그리고 아직 세상물정 잘 모르는 새끼들만 남겨진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새끼들은 자기가 부모에게
버림받았음을 알아챈다. 이제 아무도 먹이를 물어다주지 않는다. 한동안은 "밥때 아직 멀었나?" 하며 얌전히 기다리지만, 아무리
있어봐도 어미는 돌아오지 않고 배는 점점 고파지니 결국 떠밀리듯 둥지를 벗어나게 된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날개를 퍼덕여 바다에
가서 스스로 먹잇감을 잡는다. 먹잇감을 잘 못 잡는 새끼 퍼핀은 그대로 죽어간다. 지극히 단순한 세계다. 인간이라면 이렇게
못하겠죠. 부모에게 버림받는다면 설령 어찌어찌 살아남더라도 트라우마가 생겨서 남은 인생에 지장이 올 것이다. 그러나 바로 어제까지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새끼에게 먹이를 날라주던 어미 퍼핀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젠 나도 모르겠다"며 태도를 백팔십도 바꿔서
어딘가로 떠나버리는 클리어한 인생관에는 눈여겨볼 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37
렌터카
로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려는 사람에게 드리는 현실적인 조언 하나, 아이슬란드 시골에 가면 거의 모든 주유소가 무인 시스템이다. 직접
급유를 해야 하고, 신용카드로만 지불 가능한 기계가 많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루기가 엄청나게 힘들 수도 있다. 기계 시스템이
저마다 다르고, 영어 표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사용법을 물어보고 싶어도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쨌거나
한산한 나라니까. 그러니 여행을 떠나기 전에 기름 넣는 방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예습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안 그러면 자동차 탱크가
텅텅 빈 채 무인 주유소 펌프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처량한 신세가 될 수 있거든요. 나처럼. 참고로 아이슬란드 주유소의
휘발유는 매우 비싸다 - 46
그곳의 아름다움은 사진의 프레임에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너른 대지와, 거의 영원에 가닿을 듯한 정적과, 깊은 바다 내음과, 거칠 것 없는
지표면을 휩쓰는 바람과, 그곳에 흐르는 독특한 시간성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진 것이다. 그곳의 빛깔은 고대부터 줄곧 비바람을
맞아오면서 완성된 것이다. 그곳은 또한 날씨의 변화나 조수 간만, 태양의 이동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번역해버리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되리라. 그곳에 있던 마음 같은 것이 거의 사라져버리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 오래 제
눈으로 바라보고, 뇌리 깊숙이 새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덧없는 기억의 서랍에 담아 직접 어딘가로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
53
섬을 떠날 때는, 그것이 어떤 섬이든, 늘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스페체스처럼 그립고
따뜻한 기억으로 가득한 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파도에 흔들리는 불안정한 트랩을 건너 배에 오르고 비닐시트 좌석에 앉으면 이윽고
엔진 소리가 울려퍼진다. 배가 서서히 방향을 바꾸어 난바다로 뱃머리를 돌리고 느릿느릿 부두를 벗어난다. 부둣가에 서서 배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멀어진다. 검은 개 한 마리가 부두 끝에 서서 빨간 혀를 내밀고는 떠나는 배를 가만히 지켜본다. 그것이 그 개의
습관일지 모른다. 떠나는 배를 매번 배웅하고 싶어하는 개일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그런 습관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그러나 곧 그
개도 작아져 시야에서 사라진다.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사라진다 - 113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좋은 질문이다. 아마도. 하지만 내게는 아직 대답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 라오스까지 가려는 것이니까.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 159
라
오스는 동남아시아 유일의 내륙국으로 바다에 면한 부분이 없다. 아마 서퍼 인구도 적을 것이다. 그 대신 메콩 강이라는 큰 강이
국토를 가로지르며 남북으로 흐른다. 강은 그 자체로 미얀마와 태국 등 이웃나라와의 국경을 이룬다. 국토 면적은 일본의 약 3분의
2, 인구는 일본의 20분의 1, 나라 전체 GOP는 돗토리 현 경제 규모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IMF에서는
후발발전도상국으로 분류한다. 국민의 78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한다…라고 말해도 어떤 곳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가죠. 나 역시 그렇다.
그러니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다 - 160
루아프라방의 사원을 느긋하게 도보로 돌아보면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즉 '평소 우리는 그렇게 주의깊게 사물을 보지 않는구나'란 사실이다. 우리는 물론 매일같이 여러 가지를
보지만, 그것을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지. 정말로 보고 싶어서는 아닐 때가 많다. 전철이나 차에서 창밖으로 잇따라
흘러가는 경치를 멍하니 눈으로 좇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언가 한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기에는 우리 생황이 너무나 바쁘다. 진정한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차츰 잊어가고 있다 - 174
라오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사원에 조각상을 봉납하는 모양이다. 부자들은 크고 근사한 상을 바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작고 소박한 상을
바친다. 그것이 이 나라에서는 신앙심의 발로인 듯하다. 그렇다보니 매우 많은 수의 불상과 조각상이 사원에 모여든다. 그리고 잘
찾아보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중에 나와 개인적으로 이어져 있는 조각상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나
자신의 파편 같은 것을 조금씩 주워모을 수 있다. 왠지 신기한 기분이다. 세상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넓은 가운데, 동시에 또한 내
발로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아담한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 177
'종교'라는 것을
정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고유한 '이야기성'이 세계 인식의 틀로 가능하게 하는 것도 종교에 주어진 하나의 기본
역할이라 할 수 있으리라. 당연한 얘기지만 이야기가 없는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목적이나 중개자의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수한 이야기여야 한다. 왜냐하면 종교란 규범과 사범의 원천인 동시에, 아니 그 이전에, 이야기의 공유행위로서
자생적으로 존재해왔을 테니까. 요컨대 그것이 자연스럽게, 무조건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것이 영혼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 179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 181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구마몬에 대해 좋은 인상도 나쁜 인상도
없다.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딱히 내 손으로 구마몬 상품을 사지는 않고, 구마몬 무늬
바지를 입거나 구마몬 무늬 도요타 프리우스를 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배제하거나 거부하려는 생각도 없다.
다만 이번 여행중 가는 곳마다 구마몬이 넘쳐나는 풍경에는 솔직히 식상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만약 이 상태가 멈추지 않고 이어져
구마몬 상품이 전 세계에 넘쳐나고 구마몬이라는 캐릭터가 '인구에 회자' 된다면, 구마모토 현이라는 존재 자체까지 '인구에 회자'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만약 양산된 구마몬의 이미지가 진부해진다면, 그에 따라 구마모토 현의 이미지까지 진부해져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점이 조금 걱정되는 것이다 - 252
구마몬이 앞으로 '키티'나 사자에 씨'처럼 보편적인
인기 캐릭터로 정착할지, 아니면 '인구에 화자' 되다가 서서히 진부해질지 일개 소설가인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
어찌되든 현재 구마몬은 맹렬하고 힘차게 중식하고 있고, 그럴수록 구마모토 현이라는 본래의 뿌리 내지 토양에서 점점 멀어져갈
것이다. 마치 '미키마우스'가 보편화되면서 본래의 '쥐 성'을 상실한 것처럼. 그렇다. 우리는 너무도 복잡한 시스템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이미지가 아주 큰 의미를 지니며, 실질은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간다 - 256
그
러고 보니 정말 라오스에 뭐가 있다는 걸까? 그런데 막상 가보니 라오스에는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연한 소리죠.
여행이란 이런 겁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면, 아무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행을 가진 않을 겁니다. 몇 번
가본 곳이라도 갈 때마다 '오오 이런 게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행입니다.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 - 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