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업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 저자


'픽업'을 쓴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는 1955년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 다수의 소설과 여행기를 출간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런던, 파리, 베를린, 몰타 섬을 오가며 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더글라스 케네디는 특히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으며 프랑스 문화원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상받았고, 지난 2009년에는 프랑스 유명 신문 '피가로'에서 그랑프리상을 받았다. 그가 쓴 작품으로는 '빅 피처', '비트레이얼', '빅 퀘스천',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파이브 데이즈', '더 잡', '리빙 더 월드', '템테이션', '행복의 추구', '파리5구의 여인', '모멘트', '위험한 관계' 등이 있다.



# 책을 읽은 이유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간 '픽업'을 읽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더글라스 케네디가 쓴 대부분의 작품을 읽었기에 이번에 나온 '픽업' 역시 출간하자마자 구매해 읽게 됐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작가인 기욤 뮈소와 함께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는 더글라스 케네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팬이라 자부한다. 더글라스가 쓴 책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구매해 읽을 것이다.



# 줄거리


프로 사기꾼이 한 눈에 반한 여성으로 인해 불행해지는 이야기를 담은 '픽업', 이혼한 남편이 자신의 결혼 반지를 어떻게든 가지려고 하는 내용이 담긴 '크리스마스 반지', 옛 연인을 잃지 못해 지금의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여름 소나타', 외도한 여자가 아이가 생겼다고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리려고 하는 내용의 '전화', 결벽증이 있는 남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아내의 내용이 담긴 '당신 문제가 뭔지 알아?',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싸움을 전쟁으로 비유한 '냉전', 과거 연인이었던 상대를 50년이 지나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담긴 '그리고 그 다음에는?', 현재의 아내와의 권태기에 새로운 연인과 사귀는 상상을 하는 내용의 '가능성', 자신을 진정으로 좋아해 주는 상대를 만났지만 그 상대가 다혈질 성격에 감당 못 할 존재로 변하는 내용의 '실수', 


오랫동안 살았던 남편과의 냉전으로 결국 이혼하게 되는 내용의 '괜찮겠지', 무료한 삶을 버린 채 오로지 도박에만 몰두하며 사는 주인공이 나오는 '도박', 자신의 꿈인 베스트셀러 작가를 위해 직업과 가족을 포기하고 오로지 책만 쓰는 남성이 출연하는 '각성'이 이 책의 줄거리다.



# 느낀 점


기존 장편소설을 주로 쓴 더글라스 케네디는 이번 '픽업'을 통해 총 열두 가지의 단편 소설을 독자들에게 보여줬다. '픽업'을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반지', '여름 소나타', '전화', '당신 문제가 뭔지 알아?', '냉전', '그리고 그 다음에는?', '가능성', '실수', '괜찮겠지', '도박', '각성'은 모두 남녀의 관계와 갈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열두 가지 단편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대부분 나이가 있고 대학 교수이거나 변호사로 어느 정도 직업을 갖춘 만큼 지혜와 판단이 있다. 하지만 내면의 갈등이 생기거나 눈 앞에 보이는 이익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지거나 인생을 망치는 주인공의 모습들이 나온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인생이 절망과 실패로 점철될 때 그 원인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이만 탓한다. 책 속에 담긴 단편 소설에는 그동안 더글라스 케네디가 여러 작품을 통해 이야기했던 주제들이 다시 구성되는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자신이 보는 것만 보고 싶기에 저지르는 실수가 아닐까 싶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사기꾼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순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세상은 부도덕하지 않은가? 부도덕한 세상에서 살아가니까 부도덕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사회에서라면 오히려 사기를 쳐야 순수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 16


'실존적 순수'라는 말이었다. 현실에 충실하고,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책임지며, '이 잔인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사람은 누구나 혼자다'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살아가는 게 내 방식이었다. 나를 떠난 아내는 언젠가 나에게 '윤리 나침반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했었다. '횡령을 하든지 사기를 치든지 타인의 재산을 빼앗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 17


내가 지금껏 주워섬긴 말을 들은 사람이라면 이미 간파했겠지만 나는 인간과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시스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 여기에서 '취하다'는 말이 중요하다. '취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다'라는 뜻이 나온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무엇 혹은 다른 누구를 취한다.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 할 수 있다. '나는 등친다, 고로 존재한다' - 18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고함을 지르고, 스트레스를 받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 한편 우리는 누구나 욕망, 야망,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저마다 덧없는 욕망으로 가득 찬 존재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우리는 자신만만한 척하고, 모르는 게 없는 척하길 좋아한다. 아무리 가면을 쓰고 있어도 우리는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미래가 걱정되는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가 내면에서 어떤 심각한 갈등상황을 겪고 있든지 시간은 잔인할 만큼 빨리 흘러간다. 시간은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앞으로 50년 아니 60년이 지나면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새로운 인물이 내 자리를 대신 채우게 된다. 인생사의 똑같은 시나리오로 연기할 새로운 인물이 다시 등장한다 - 54


두려움은 무력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감정이었다. 상대가 자기 자신보다 강하다고 판단될 때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있다. 한 번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할 경우 빠른 시일 내의 회복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 반면 분노는 상대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 - 65


협상의 첫 번째 원칙이 뭔지 알지? 설명은 본질을 흐릴 뿐이야 - 86


과연 복을 스스로 차버리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나밖에 없을까? 물론 나만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행복을 마다하고 결국 아무런 기쁨도 주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된다. 우리의 생은 미리 써놓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니까 - 110


일을 하는데 그런 사치품들이 왜 필요할까? 혹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두려움과 허무감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그런 두려움과 허무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세계도처를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 협상하고, 밤새도록 서류를 붙잡고 씨름하는 일들이 사실은 그저 겉만 그럴싸하게 포장돼 있을 뿐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우리가 판매하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었고, '성공'이라는 글자는 웨하스처럼 쉽게 바스러질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과자는 맛이 없으면 언제라도 쉽게 버려질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두렵고 허무할 수밖에 - 136


산다는 건 늘 이런 것일까? 소유하지 않은 걸 바라고, 바라지 않았던 걸 소유하는 것. 저 멀리 어딘가에 다른 삶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현재의 삶을 잃을까 봐 두려워 하는 것. 무엇을 찾아야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모르는 것 - 159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그때 그 장면이 오래된 기억의 창고를 벗어나 생생하게 떠오를 때가 많았다. 얼굴에 살짝 번져 있던 미소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리던 모습, 그때 그 여자아이가 남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이 미래에 전개될 내 연애에 대한 예언의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일찍이 얻은, 사랑의 현혹에 대한 교훈 - 183

아버지는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을 통해 당시 일곱 살짜리 꼬마였던 내게 어떤 감명을 주고 싶었을까? 인생은 끝없는 혼란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우리는 아무리 애써도 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길 바랐을까? - 191


두 사람이 함께 게임을 펼쳐나가는 경우 한쪽의 배신은 필연적이었다. 배신당한 쪽이라고 해서 결백을 주장할 수는 없다. 사랑하던 사이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면 그 책임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있다. 그 과정에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 204


바로 그 순간, 25년의 세월이 사라졌다. 25년 전, 우리는 이 카페에 앉아 있었다. 인생의 처절한 굴곡을 겪지 않았기에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결혼해 운명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그 순간, 찬란한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반짝이던 그 순간에는 이 세상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전혀 없었다 - 209


우리의 이해와 오해, 만남과 이별, 갈망과 거부, 사랑과 결명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우리는 왜 우리의 삶에 깃든 모든 좌절과 실패의 원인이 사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받아들이려하지 않을까? 우리는 자주 상처받았다고 여기지만 사실 상처를 입힌 당사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왜 받아들이지 못할까? - 210


누구나 어딘가로 떠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꿈군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 우리가 스스로 가두어버린 굴레에서 벗어나 단지 한 발짝만 앞으로 내디디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무엇이 두려워 옴짝달싹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 225


기분 좋은 섹스가 있고, 기분이 별로인 섹스가 있다. 일반적인 섹스가 있고, 특별한 섹스가 있다. 격렬한 섹스, 지루한 섹스, 마지못해 하는 섹스, 쭈뼛쭈뼛 머뭇거리는 섹스도 있다. 초월적인 섹스도 있다. 연인 사이 최고의 소통 수단으로 서로 완벽하게 통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섹스가 바로 초월적인 섹스라 할 수 있다. 둘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상대와 완전히 합일을 이루는 느낌을 주는 섹스이다. 서로에 대해 넘치는 사랑을 더없이 충만하게 표현해주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해주는 섹스이다. 절절한 사랑에 마음을 담아 육체적으로 표현해주는 섹스이다. 차의 계기판에 빗대 사랑을 수치화한다면 초월적 섹스야말로 최고치 눈금을 가리킨다 - 245


인생은 혼란의 연속이다. 그러하기에 우리 모두는 너무나 외로운 존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아프게 찔러왔다 - 279


우리는 스스로가 만든 궁지로 자기 자신을 밀어 넣으며 위안삼아 이야기한다 - 320


우리의 삶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순간을 만나기란 힘들다. 사랑에 빠지거나 베스트셀러를 내거나 자기 분야의 연구 업적으로 찬사를 받거나 노벨상을 받거나 전혀 상관 없었다. 우리는 모든 인간 존재에 드리워져 있는 불확실성의 그림자를 거두어낼 수 없다. 설령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암시를 보낸다고 해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솟는 의심을 완벽하게 벗어던질 수는 없다 -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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