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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작가/출판사/발간일
나의 한국 현대사(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돌베개, 2014년 7월 10일
작가 소개
유시민, 1959년 7월 하순 경상북도 경주시 북부동 낡은 기와집에서 태어났다. 눈을 뜨고 보니 누나 셋과 형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2년 뒤 막내인 여동생이 뒤따라왔다. 어릴 적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에게 이순신, 김유신, 제갈공명, 나폴레옹 등 뛰어난 역사 인물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걸출한 개인을 흠모하는 성향이 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남에게 무언가를 시키는 것도 왠지 편하지 않다. 돈이나 권력보다는 지성과 지식을 가진 이를 우러러보며 내가 남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한, 사회든 국가든 그 누구든 내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고등학교 시절 출세라는 것을 하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공부보다 정부와 싸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야학에서 같은 연배의 노동자들을 가르쳤으며 학생회 임원을 맡았다가 감옥 구경을 하기도 했다. 스물 여섯 살 이후에는 주로 글 쓰는 일을 밥벌이로 했으며, 30대 중반에 독일로 유학을 가서 경제학을 더 공부했다. 40대에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다가 정치에 입문해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잠시 공직사회를 경험했다. "프리부르주아 계층의 대구, 경북 출신 지식 엘리트로서 젊은 나이에 이름을 알리고 출세를 했지만 결국 정치에 실패한 후 몬필업으로 달아온 자유주의자" 나는 나를 그렇게 규정한다.
책을 읽게 된 동기
우연히 인터넷 도서 쇼핑몰을 통해 알게 된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잘 알지 못했던 나에게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책을 구매하게 됐다.
줄거리
1959년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4.19 혁명부터 5.16 쿠데타, 한강의 기적,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한국형 경제성장, 외환위기, 10월 유신, 10.26 사태, 전태일, 장성택, 이석기, 간첩 등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한 사람(유시민)의 시선을 통해 그당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소감
학창시절, 역사에 대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독서를 하면서 역사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고 우연히 '나의 한국 현대사'라는 책을 접할 수 있었다. 평소 TV나 미디어를 통해 보았던 내용들도 있었지만 이 외에 내 자신이 관심이 없었거나 기회가 없어 자세히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됐다. 나에게 자유를 안겨준 우리의 아버지가 있기 때문에 현재 내가 자유롭게 독서를 하고 서평을 쓰며 나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는 게 아닐까?과연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그들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데모를 하고 시위를 할 수 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여러 생각이 교차됐다.
구절
- 거듭 말하지만 역사는 주관적인 기록이다. 누가 쓴 어떤 역사도 과거를 '원래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현재'는 가상적인 개념일 뿐이다. 현재의 모든 사실은 발생과 동시에 과거가 된다. 과거는 거대한 임시수용소와 같다. 흐르는 시간에 실려와 퇴적된 모든 사실이 그곳에서 망각과 소멸의 운명을 기다린다. 어떤 역사가가 내민 구원의 손길을 잡은 소수의 사실만이 요행히 그 운명의 집행을 잠시 유예받는 '역사적 사실'이 된다. 사실 자체에는 선택할 권리가 없다. 그것이 역사가의 몫이다. 그래서 같은 시대에 대해 100명의 역사가는 100가지의 서로 다른 역사를 쓸 수 있다. 하나의 시대에 대해 같은 사람이 서로 다른 역사를 쓸 수 있다. - p.28
- 나는 대한민국현대사를 만든 힘이 욕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욕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인지 사람들은 욕구라는 말을 선호한다. 하지만 뭐라 부르든 상관없다.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든 힘은 국민이 개별적, 집단적으로 분출한 욕망이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의 행동이며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욕망이다. 사람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안고 산다. 만약 모든 욕망을 다 채워서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다면 더는 행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새로운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 p.52
- 민주주의는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삼는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욕망을 표출하고 추구할 문제를 무제한 인정한다. 물론 그런 헌법을 채택했다고 해서 실제로 그런 나라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 누구나 국가에 대해 자유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제도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배적 사고방식의 산물이지만 외부에서 어떤 제도가 '이식'되는 경우에는 거꾸로 제도가 그에 맞는 사고방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현실성이 있든 없든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다. 4.19 혁명을 일으킨 최초의 주역이 고등학생들이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제헌헌법은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가진 나라들이 지구촌의 주도권을 움켜쥔 20세기 문명사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혁명을 한 적이 없다. 봉건왕정을 지키려고 막아선 왕과 귀족의 목을 자른 적도 없다. 그런데도 민주공화국에 살게 되었으니 실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p.60
- 공산화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통일국가로 가는 길과 북한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주고 남한에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길이 있었다. 이런 경우에도 분단을 거부한 민족주의자는 전자를 선택했지만 철저한 반공주의자들은 차라리 후자가 낫다고 판단했다. 그 대표자가 바로 이승만 박사였다. 분단국가를 세우는 것이 그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독재, 부패,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수많은 시민을 살상했지만 그는 분단국가를 세움으로써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확실하게 막았다. 온갖 비판을 무시하고 국회에 동상을 세운 국회의원들은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 p.75
-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중흥을 이룩한 위대한 지도자' 또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하나의 역사인물이 이처럼 극단적인 호오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는 복잡하고 상충되는 특성을 가진 사람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면서 커다란 선과 지독한 악을 행했다. 어떤 면을 중시하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94
- 4.19와 5.16 모두 일정한 성공을 이루었다. 4.19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5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점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10년으로 끝나버린 진보세력의 집권과 심각하게 흔들리지 않는 오늘의 민주주의는 4.19의 승리가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5.16도 성공했다. 박정희 장군은 18년 동안이나 권력을 누렸으며 그 후예인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12년 더 집권했다. 서거 33년이 지난 시점에 딸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으며, 이유가 무엇이든 그는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세계사에서 이만큼 성공한 군사쿠데타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좋아하는 시민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대상은 사실 그의 인격과 행위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시민들 자신이 쏟았던 열정과 이루었던 성취, 자기 자신의 인생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 p.99
- 추세츠 공대MIT 교수이자 뛰어난 통계분석 전문가였던 로스토(1916~2013)는 어떤 나라든 적절한 정책을 쓰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산업화는 비행기를 하늘에 띄우는 것과 비슷하다.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사회는 변화가 느리고 성장률이 낫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갑자기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한다. 이것이 '이륙'이다. 일단 이륙에 성공한 국민경제는 성숙 단계를 거쳐 높은 수준의 대중소비 단계로 나아간다. 유럽의 산업국들은 산업혁명 기간에 이륙했다. 이륙기에는 투자율이 높은 수준에서 계속 상승하고 제조업과 광공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농업의 생산성도 함께 올라간다. 이 이론 전체의 핵심은 '이륙'이다. - p.114
- 한국 경제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가치가 있는 사건은 두 가지다. 경제성장과 관련해서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이고 소득분배와 관련해서는 IMF 경제위기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소비재 경공업뿐만 아니라 철강, 자동차, 금속, 석유화학, 조선 등 전통적 중화학공업과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터, 반도체, 이동통신기기 등 첨단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수출업을 합친 금액이 국내총생산과 맞먹을 정도로 무역의존도가 높다. 주요 산업을 거의 모든 소수의 재벌이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재벌 대기업과 수출 중심 경제구조의 원형이 바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에 탄생했다. - p.120
-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나 부정부패가 있다.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를 하는 독재국가일수록 더 심하다.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서 감시와 견제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법의 구속을 벗어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의 사유화' 현상이 생긴다. 부당한 권력 행사를 비판하고 싸우는 사람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이 그에 적응하거나 편승해 자기의 이익을 도모한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남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그것이 산업화시대 대한민국의 현실이었으며 그런 현실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 p.147
- 한국 경제의 기체결함은 '죽기에는 너무 큰' 재벌이 국민경제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삼성, 현대, LG, 대우, SK 같은 대형 재벌그룹이 망하면 수많은 협력업체와 자금을 대출한 금융기관이 망하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는 실업자가 된다. 재벌 총수들이 회사를 잘못 운영해 망할 위기에 빠져도 국민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회사를 살려주어야 한다.재벌 입장에서는 위험한 투자를 해서 돈을 벌면 자기 것이 되고 방만한 경영을 해서 문제가 생기면 국가와 국민에게 짐을 떠넘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는 행동을 경제학 전문용어로 '도덕적 해이'라고 한다. 재벌 대기업은 보험료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도 국가를 파산에 대비한 최후의 보험자로 써먹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국가안전망'이 있기 때문에 재벌들은 두려움 없이 위험하고 방만한 차입경영을 할 수 있었다. - p.157
- 이승만 정부 시절 어떤 외국 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기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미국 장성은 한국 국민이 강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쥐떼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쓰레기통이 아니었으며 국민은 쥐떼가 아니었다. 세계인이 주시하는 가운데 우리는 보란 듯이 자유를 쟁취하고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평화적 권력 교체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그에 맞는 시민의식과 행동양식을 발전시켰다. 우리의 민주화 역사는 자유에 대한 욕망과 꿈, 정의를 향한 열정과 헌신, 존엄을 지키기 위한 분투와 희생으로 점철된 고난과 영광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길을 다 걷지 않았다. 어지러운 오늘의 현실은 민주화의 역사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 p.190
-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 성공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생물학적 생명을 빼앗은 것은 총탄이었지만 정치적 생명을 앗아간 곳은 그 자신이 이룬 성공이었다. 그는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대중의 욕망을 무제한 분출시키고 그 탁류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했다. 그런데 산업화의 성공으로 절대빈곤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대중은 다른 욕망에 끌리기 시작했다. 자유, 정의, 민주주의, 인간적 존엄성을 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 욕망을 존중하지 않자 많은 국민이 마음으로 그를 버렸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 하여금 방아쇠를 당기게 한 것은 그와 같은 민심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10.26 사건을 그렇게 이해한다. - p.221
- 인류 역사는 숱한 반란, 봉기, 내전, 혁명,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사태의 원인과 계기, 전개과정과 결과는 저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같은 게 있었다.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을 덮친 것이 혼돈이었다는 사실이다. 무리를 지어 폭력으로 부딪치는 격동의 순간에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동기와 지향에 따라 제각기 활동한다. 모두에게 익숙한 일상의 소통방식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냉철한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충동이 행동을 지배한다. 어디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누구도 전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역사가들이 사태의 전모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해석한다. 그때에야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 대한민국 현대사도 예외가 아니다. 제주 4.3 사건, 6.26 전쟁, 4.19 혁명, 5.16 쿠데타, 5.18 광주민중항쟁, 6.10 민주항쟁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들이 본 것은 혼돈이었다. - p.227
- 우리 한법은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하고 군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했다. 제10조부터 37조까지 신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노동3권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시민의 기본권을 명확하게 보장했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와 사법부의 권한을 대폭 확대해 권력의 분산과 상호견제를 강화했다.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부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높였으며 헌법재판소를 설치했다. 최저임금제를 명시하고 성장, 안정, 적정한 소득분배, 독과점 폐해 방지, 경제민주화 를 위해 국가가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었다. 시각에 따라 비판할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 선진국의 헌법에 견주어 크게 손색이 없는 훌륭한 헌법이 되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헌법에 투영된 6월 민주항쟁의 성과라고 본다. - p.262
- 누가 하는 어떤 것이든 민주주의와 관련한 헌법의 규정을 실현하려는 활동은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대통령에 대해서든, 정치에 대해서든, 통일문제에 대해서든, 혁명에 대해서든, 그 무엇에 대해서는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 헌법이 우리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정부가 또는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위한 것이 아니다. 대다수 국민이 터무니없다고 판단하는 견해까지도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 비록 진리가 아닌 견해라 할지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그것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이며 민주주의 기본원리다. 노태우 정부는 남북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대학생과 시민들의 의사표현을 탄압했다. - p.271
- 우리는 단군 아래 한 번도 없었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상층 시민은 조선시대 정승판서 못지않게 잘 먹고 잘 입는다. 더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고 더 시원하게 여름을 지낸다. 미국과 유럽의 도시와 명소를 여행한다. 아프리카를 탐험하며 아시아 오지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회사가 만든 명품 옷과 가방을 들고 다닌다. 3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정보통신혁명의 과실을 향유한다. 젊은이들은 유럽 축구 강국의 프리미어리그와 분데스리가, 라리가의 빅 게임을 생중계로 관전한다. 미국과 유럽 대중음악 차트를 석권한 히트곡을 다운로드한다. 우리나라 가수들도 유튜브를 통해 순식간에 지구촌 스타로 등극한다. 우리는 또한 인류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자유를 누리며 자신의 욕망과 개성을 망설임 없이 표현하며 산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시장과 도지사, 지방의회 의원들을 우리 손으로 선출한다. 스스로 정당을 만들 수 있으며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정부가 하는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온, 오프라인 어디서든 거리낌 없이 비판할 수 있다. 우리는 신체와 자유,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를 누린다.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자격이 있다. 누가 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뜻과 힘으로 많은 고통을 견디고 시련을 이겨내어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를 완전하게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외가 하나 있다. 북한과 국가보안법이라는 냉전시대의 유산이다. 이것은 광장 한 귀퉁이에 있는 '출입금지구역'이다. 이 금지구역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대한민국은 아직 완전히 자유로운 광장이 되지는 못했다. - p.351
- 북한 주민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다. 신체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 등 기본권을 다 누리게 된다. 우리 정부가 그들의 남하를 막을 헌법적 근거는 없다.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생계비 지급 청구권과 의료급여 청구권 등 사회권적 기본권을 유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이 없다. 교육청은 북한에서 온 아이들을 학교에 받아주어야 한다. 서울 거리는 집 없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노동시장은 임금 폭락의 해일에 휩쓸릴 것이다. 우리에게 이런 사태를 의연하게 견디고 극복할 능력이 있을까?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감당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p.402
-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다. 미래는 우리들 각자의 머리와 가슴에 이미 들어와 있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각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된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욕망과 의지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좋을 것을 쌓아야 한다.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우리가 만든 대한민국 현대사의 갈피마다 누군가의 땀과 눈물, 야망과 좌절, 희망과 성공, 번민과 헌신, 어리석은 악행과 억울한 죽음이 묻어 있다. 그 55년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나는 그 모든 것에 공명하고 싶어하는 동시대의 벗들에게 말하고 싶다. 미래는 우리 안에 이 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