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과 조선건국사 - 드라마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고려멸망과 조선 건국에 관한 얽히고설킨 흥미진진한 이야기
조열태 지음 / 이북이십사(ebook24)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평소에 드라마와 같은 TV 방송을 자주 보지 않는다. 드라마에 낭비되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딱히 큰 재미나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최근에 본 드라마라고 하면 아마 2~3년 전의 드라마를 떠올리는 나에게 있어 주위 사람들은 언제 적에 한 거냐고 되묻는다. 그러한 나에게 우연히 정도전이라는 KBS 사극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학창 시절 역사에 대해 공부했을 때 당시 사대부와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배우긴 했었지만, 시간이 흘러 머릿속에 잊혔던 인물들을 드라마로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또한, 그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고 이건 대작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조재현, 유동근, 박영규, 서인석 등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사극 인물들이기에 드라마에 더욱 관심이 갔다.


정도전이라고 하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는데 가장 일등공신을 한 인물이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잘 몰랐던 나에게 있어 이 책 '정도전과 조선건국사'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공민왕 시대인 1351년부터 그동안에 있었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필자인 조열태님은 역사에 남겨졌던 일들에 대해 의혹이 있는 부분들도 설명을 해주기에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우리가 학창 시절부터 배웠던 고려의 역사는 고려를 무너뜨린 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고(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고려가 비정상적인 나라였고 부득이 새로운 나라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쳐야 하므로 필자는 이긴 자의 관점에서 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글을 풀이했다. 공민왕 시대에 일어났던 쌍성총관부 탈환, 요동 공략, 홍건적 침입, 나하추 침입, 신돈의 등장과 우왕 시대에 일어났던 명 사신 채빈 살해 사건, 왜구 침범, 임견미 전성시대,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 이인임의 종말, 위화도 회군과 창왕 시대의 전제 개혁 태동, 김저 사건, 마지막으로 공양왕 시대의 우왕과 창왕의 죽음, 과전법, 군신 동맹, 고려 멸망까지 고려 말기의 역사를 책 한 권으로 풀이한 필자의 책을 통해 고려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드라마를 시청하는 입장에서 사극 정도전에 나오지 않았던 중요한 사건들도 포함되기 때문에 고려 말기의 역사를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극 정도전의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한 분들과 고려 말기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면 궁금증을 풀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정도전이라는 드라마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벌써 기대가 된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1355년 11월 11일, 21세의 이자춘은 차남 이성계를 낳았다. 장남은 이원계로서 첩의 자식이라고 한다. 정실에서 나온 맏아들이 이성계인 것이고, 전주 이씨 시조 이한의 21세손이 된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 이인에서 이양무로 이어지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으며, 전주에서 삼척으로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의혹이 없지 않아 있다. 만약 이성계가 여진족 출신이라면 그 가능성을 어떨까? 가능성은 있다. 당시 북쪽 지역에서는 고려인, 여진족, 몽고족들이 섞어서 살았으니까 이성계도 여진족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부하들 중에 여진족도 많았음이 이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사실, 조선을 건국하고 기반을 닦아 나가는 과정에서 정통성 확보를 위해 이성계의 족보를 전주 이씨로 조작했다는 이론을 제시하는 학자들이 있다. - p.15


공민왕은 실로 100년 만에 쌍성총관부를 다시 고려 땅으로 편입하는 데 성공했다. 원나라로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순식간에 당한 일이었다. 고려가 너무 재빠르게 행동을 취했고 또 홍건적의 봉기로 나라가 혼란한 지경이라 쌍성총관부까지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아마 이때 이인임은 이성계를 처음 봤을 것이다. 이인임은 40대의 원숙한 나이였고 이성계는 팔팔한 22세였다. 모습이며, 옷차림이며, 말투며, 행동거지며, 이성계에게서 풍기는 모든 것들이 이인임의 눈에 영락없는 촌놈의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것도 보통 촌놈이 아니다. 항상 멸시해 왔던 여진족 촌놈, 그러나 이때만 하더라도 이인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훗날 그가 그를 내칠 것이며, 결국 고려를 무너뜨리라는 것을. 그가 그와 사돈이 되리라는 것을. - p.27


그동안 공민왕이 겪었던 여정을 요약해 보자. 22세에 왕위에 올라 개혁을 시도했지만 약 5년간은 기철에게 눌려 허송세월을 보내다시피 했다. 이후 기철을 제거하고 쌍성총관부를 탈환하는 등 신바람을 냈다. 허나 홍건적의 칩입으로 개경을 적에게 내주고 1년 이상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 이어 나하추를 격퇴하기가 바쁘게 덕흥군 때문에 또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 무장들의 죽음과 홍왕사의 변까지 겪었다. 공민왕이 추구하고자 하는 개혁의 길을 멀고도 험난했다. - p.82


정도전은 영주에서 부모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던 터라 아직은 성균관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부지런히 학문 증진에 몰두했다. 이때 그가 탐독한 책이 정몽주가 보내 준 맹자였다. 하루 한쪽 또는 반 쪽을 넘기지 않을 정도로 숙독했다. 왕도 정치와 민본 사상을 본위로 하는 맹자에는 임금이 백성을 덕으로 다스리지 않고 폭정을 휘두르면 역성혁명도 가능하다고 기술되어 있다. 어쩌면 훗날 정도전의 역성혁명을 일으키는 사상적 기반을 맹자가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정도전의 역성혁명에 맹자 하나만 갖다 붙이는 것은 속단이다. 그가 유학뿐 아니라 역사, 병법, 불교, 수학, 의학 등 다방면에 걸친 책을 두루 섭렵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스운 사실은 고려를 정도전이 뒤집어엎게 될 줄도 모르고 정몽주가 맹자를 보낸 것이다. - p.112


공민왕의 영전 공사는 계속되었다. 백성들의 고통도 계속되었다. 4월에 농사를 위해서 공사 인부 5.000명을 일시 귀가시키기도 하지만 영전 공사에 대한 공민왕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5월에 비가 내릴 때 영전 공사에 방해가 될까 염려해서 비를 그쳐 달라고 불당에서 기도를 했다. 왕의 기도는 백성들의 억장을 무너뜨렸다. 농사철인 5월에는 비가 내려야 백성들이 살 수 있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살 수 없으면 영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여간에 공민왕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 p.131


최영이 10월에 개경으로 돌아왔을 때 공민왕은 죽고 없었고, 우왕이 즉위해 있었다. 때문에 제주도가 없었다면 조선도 없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전한다. 최영이 개경에 머물렀더라면 공민왕 살해 사건도 없었을 거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 p.168


이인임은 이성계를 경계하라고 말했다. 또한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가 모름지기 나라의 주인이 될 거라고 말한 이인임이 정말 옳았다."고 최영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선 이인임의 눈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p.266


국가의 안위가 걸려 있는 막중대사를 눈앞에 두고 우왕과 최영은 움츠렸다. 이는 실수로 덮어질 수 있는 행태가 아니다. 잔인한 말 같지만 만약 다른 속셈이 없었다면 그들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고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최영이 군 지휘권을 넘겨 버린 것이다. 이 장면에서는 조선 학자들의 왜곡이 어쩌고저쩌고 말할 바가 못 된다. 왜곡할 필요가 없는 일이니까. - p.278


4월에 이색은 빈손으로 귀국해야 했다. 그는 바닷길을 이용했다. 오는 길에 발해만을 경유했고, 여기서 객선 두 척과 동행하게 되었다. 일행이 반양산에 도착했을 때쯤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서 두 객선이 모두 침몰되고, 동행했던 이방원이 탄 배도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하마터면 익사할 뻔했던 이방원은 겨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만약 이때 사고가 생겼더라면 세종과 한글이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 p.308


1392년 7월 12일, 34대 고양왕을 끝으로 고려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태조 왕건이 개국한 지 474년 만이었다. 공양왕이 쫓겨난 뒤 5일간 고려에는 주인이 없었다. 신하들이 이성계를 추대했으나 그가 사양했기 때문이다. 관례상 바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으므로 형식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신하들의 거듭된 요청에 이성계는 수창궁에서 드디어 왕위를 받아들였다. 1392년 7월 17일이었다. 시골 무사 이성계가 드디어 태조 이성계가 되는 순간이었다. - p.377


의외로 조선이 잘못 들어섰다는 소리를 필자는 가끔씩 듣는다. 조선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필자가 어떻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각자의 의견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필자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만약 고려가 계속 유지되었다면 1418년에 우왕이 54세가 되고 창왕은 39세가 된다. 즉 54세의 우왕이 통치하는 고려가 되었을 것이다. 단, 우왕의 수명이 짧았을 경우 39세의 창왕이 통치하는 고려가 된다. 가정의 역사는 이렇지만 실제 역사는 세종과 한글을 탄생시켰다. 과연 우왕아 창왕이 그만했을까?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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