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제주다 - 고희범의 제주 깊이보기
고희범 지음 / 단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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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지 않았던 먼 옛날에 한 할머니가 살았다. 하지만 그 키가 어찌나 크고, 힘은 또 얼마나 센지,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바다 한가운데 섬 하나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치마폭에 흙을 쌓아 나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옮기다 치마에서 떨어진 흙부스러기들은 '오름'이 되었고, 높게 쌓여진 흙덩이들은 '한라산'이 되었다. 하지만 '한라산'이 너무 높다 생각한 할머니는 한라산 봉우리를 꺾어 던졌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산이 바로 '산방산'이다.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봄 직한 '설문대 할망' 이야기다. 돌이 많고 바람이 많고 여자가 많다 하여 삼다(三多)의 섬으로 불리는 제주도,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풍경으로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관광지이자 유네스코에 등재된 평화의 섬 제주도는 현재 내가 사는 제2의 고향이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지도 10년이 훌쩍 넘었으나, 그동안 제주도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내가 생각한 제주도는 어디를 가도 바다와 오름이 있고 수많은 야자수(당종려 나무)가 많은 곳. 어디를 가도 풍경이 되고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그러던 중 내가 사는 이 땅에 대해 너무나도 모른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고, 아무리 역사에 대해 모른다 해도 제주도만큼은 알고 싶었기에 최근 들어 제주도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던 찰나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민주당 제주도당 위원장이신 고희범 님이 제주도에 관한 책을 펴내신 것을 알고 바로 구매하여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뉘는데 첫 번째로는, 제주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모슬포에서 일어난 제주 4.3 사건과 일제 강점기 당시 제주의 잠녀(해녀는 일본식 표현)들이 받았던 고통, 전쟁 요새가 되어 큰 아픔을 겪었던 제주 도민들의 이야기, 유배를 왔던 위인들이 지은 학교와 제주도에 말이 많아진 이유까지 사실을 근거한 역사 이야기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게 풀이해주고 있다. 평소 4.3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일제 시절 제주도가 받았던 고통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몰랐었는데, 역사 편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고 제주의 역사를 배우면서 과거 도민들이 외부인에게 받았던 고통과 그 심각성이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되었다.


두 번째 문화 편에서는, 제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문화 관광지를 소개하고 있다. 산지천을 시작으로 기적의 도서관, 삼성혈, 오현단, 한짓골, 베릿내 마을, 한담 마을, 성읍, 가파도, 체 오름, 신흥리 바닷가, 죽성 마을을 차례대로 소개하고 있고, 문화재인 동자복, 서자복, 화천사 석상, 원당사지 5층 석탑과 화북 포구, 별방진, 수산 진성을 소개하고 있다. 그 외에 관광지인 돌하르방 공원, 금능 식물원, 제주 현대 미술관, 뮤지엄 석石, 수水, 風, 카사 델 아구아, 방주 교회, 소라의 성 등 평소에 몰랐던 문화재와 관광지에 대한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문화 편에서는 평소에 내가 가보지 못하거나 알지도 못했던 문화재와 관광지에 대해 보면서 "아직도 이렇게 갈 곳이 많은 곳이구나!"라는 것을 느꼈고, 서쪽에서만 살았던 나에게 있어 동쪽 지역으로 많은 관광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세 번째 생태 편에서는, 제주도에 있는 대표적인 오름과 산을 소개하는데 동검은이 오름부터 문석이 오름, 좌보미 오름, 따라비 오름, 동백 동산, 먼물깍, 선흘 꽃밭, 무릉 곶자왈, 성산 일출봉, 수월봉, 하논, 비양도를 소개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한라산에 있는 생태 동물과 식물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평소 오름에 관해 관심도 없고 가지도 않았던 나에게 있어 이렇게나 다양하고 수많은 오름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신기했고, 기회가 있다면 꼭 올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책 속에서는 오름에 대한 신화와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이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가는 길에 보였었던 비양도와 수월봉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어 추억에 떠오르기도 하였다.


이 책은 특히 제주도에 사는 도민들에게 있어 더욱 친숙하게 읽힐 수 있다. 우리가 평소에 걷던 이 길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배우기 때문에 다른 나라 및 지역에 대해 배우는 것과는 다르게 더욱 쉽게 읽히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과거 제주를 지키기 위해 희생했던 도민들과 위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주도가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제주의 생태를 파괴하는 무분별한 개발과 발전을 막고, 제주도에 오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땅을 더욱 자세히 설명하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제주 도민이나 제주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을 꼭 정독하시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잠녀들은 세화리 연두막 동산에 집결하여 세화 오일장으로 행진한 뒤 집회를 열고, 각 리의 잠녀 대표들의 연설에 이어 도사에게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도사는 잠녀들의 시위에 굴복해 5일 이내에 요구 조건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은 목포에 있는 응원 경찰까지 파견하면서 구좌면과 정의면 일대에서 관련자들의 검거에 나섰다. 잠녀들은 검거에 나선 경찰에 맞서 호송차를 습격하기도 하고, 우도에서는 청년들을 검거하려는 경차르이 배를 둘러싸고 저지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 p.24


가마 오름 동굴 진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노역을 하던 사람이 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당하면 치료 기간이 일주일로 한정돼 있었다. 그 기간 내에 치료를 받고 회복되지 않으면, 그대로 화장해버렸다. 심지어 움직일 수 있는 사람마저 화장해 묻었다는 증언은 믿기 힘들 정도다. - p.45


유배형의 종류로는 자신의 거처를 정하도록 해 격리하는 부처와 죄인의 고향으로 보내는 본향안치, 외딴 섬에 격리하는 절도안치, 적거지 담장을 가시나무로 둘러 격리하는 위리안치 등이 있다. 제주도 유배는 절도안치에 위리안치를 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유배인에 대한 감시 책임은 관내 수령에게 있었기 때문에, 수령이 성격이나 재량에 따라 위리안치는 형식에 그치는 때가 많았다. - p.53


간옹 이익은 김진용(1605~63), 고홍진(1602~82), 문영후(1629~84) 등 걸출한 인물들을 문하에 배출했다. 이 가운데 김진용은 제주 유림의 거물로서, 제자들이 명도암이라는 호를 바치고 그 호를 딴 마음이 생겨날 만큼 대학자였다. 이후 김진용은 제주 고등고육의 온상인 귤림서원을 설립하게 된다. 한말 지식인 김윤식은 당시 제주에 유배돼 있던 인물들과 제주의 토호 세력을들 모아 '귤원'이라는 시회를 조직하고, 제주도의 이른바 '문화 운동'을 이끌었다. - p.56


마을 주변 초지에서 방목으로 말을 기르던 제주에 처음으로 목장이 만들어진 것은 몽골의 영향력 아래 있던 13세기 말이다. 삼별초 항쟁이 여몽 연합군에 의해 진압당한 뒤, 몽골이 1276년부터 말 160필과 목축 전문가들인 목호들을 불러들여 성산읍 수산리 수산평 일대에 '탐라' 목장'을 설치한 것이 그 시작이다. - p.61


사람이 살지 않던 아주 아득한 옛날, 세 사람의 신인이 한라산 북녘 기슭의 땅으로부터 솟아났다. 이들은 모흥굴, 지금의 삼성혈에서 솟아났는데, 맏이를 고을나, 그다음을 양을나, 셋째를 부을나라 하였다. 그들은 용모가 의젓하고 기품과 도량이 넉넉하고 활달하여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가죽옷을 입고 육식을 했으며 사냥을 업으로 삼았으나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 - p.79


삼성혈, 고을나 부양을나, 부을나 삼신인이 솟아났다는 곳, 가죽옷을 입고 사냥한 고기를 먹으며 살다가 오곡종자와 송아지, 망아지를 갖고 온 벽랑국 세 공주와 혼인해 농경 생활을 시작했다는 탐라국 개국 신화의 시발점이다. - p.104


풍수지리에서 기본은 산과 물이다. 산은 정지해 있는 것이어서 '음'이고 물은 흘러 움직이는 것이어서 '양'이다. '정靜'인 여자는 '음'이고 '동動'인 남자는 '양이다. 음의 여자와 양인 남자가 만나 자손을 얻듯이, 산의 음과 물의 양이 조화를 이루어 혈穴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삼라만상이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맥략이다. 풍수지리는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정리한 학문으로, 천지 운행의 기본 법칙을 파악해 인체의 생명 활동과 자연계 변화의 법칙을 찾아가는 것이다. '풍수'라는 말은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다(장풍득수)는 말에서 유래했다. 사람의 기를 받아야 하는데, 이 '기'라는 것은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추는 것이어서,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음으로써 기를 받기 위한 도구가 곧 풍수라는 뜻이다. - p.139


수맥이 흐르는 땅은 좋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개는 수맥 위에서는 절대로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한다. 수맥 위에 집을 지을 경우 건물에 세로로 금이 생기고, 인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단백질 합성을 막아 항암 기능을 떨어뜨리고, 칼슘 합성을 방해해 골다공증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은 건강한 땅이었다 해도 수맥이 생기게 된다. 흐르는 물이 물길을 바꾸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포장 도로를 걸을 때는 바퀴 자국이 생긴 곳을 피해 걷는 것이 좋다. 바퀴가 지나다닌 자리에 수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바퀴 자국은 비가 내리면 진창길이 돼 당연히 피하게 되지만, 땅이 말랐더라도 수맥 위인 것은 마찬가지다. - p.144


자연의 일부로 자연 속에 살아온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을 마땅한 일로 여겼다. 거친 자연환경으로부터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한 지혜도 자연에 기대어 체득했다. 풍수지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어려운 용어와 이론은 접어두고라도 느낌으로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생기 넘치는 오름을 찾아 오르며 건강한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제주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 p.147


돌은 제주 사람들의 삶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농업에서부터 건축, 어업, 축산, 통신, 신앙, 예술, 안보, 죽음에 이르기까지, 돌은 제주의 바람처럼 늘 제주 사람들과 함께해온 제주의 상징이다. 제주의 돌은 제주의 자연이자 역사이며 문화, 그 자체였다. - p.158


'뮤지엄 석, 수, 풍'은 세계적인 건출 미술가로 제주 영어 교육도시 건축 총과를 맡았던 재일 한국인 이타미 준(1937~2011)의 작품이다. 그는 일본 무사시 공대 건축하과를 졸업한 뒤 건축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던 31살 때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모국의 자연 풍광과 한국 민가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 p.174


용암의 온도, 가스 함량, 용얌이 흘러가는 지표면의 경사, 용암 분출량과 지속 시간에 따라, '파호이호이'가 되느냐 '아아'가 되느냐가 결정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용암은 가스가 많이 빠져나가다 가스 햠유량이 적다. 이 용암이 경사가 급한 곳을 흘러갈 때 흔히 '아아'가 형성된다. 반대로 적은 양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화구를 흘러넘칠 때 용암은 상대적으로 가스를 많이 함유하게 되고, 그런 용암이 완만한 지형을 천천히 흘러가게 되면 '파호이호이'를 형성하게 된다. - p.207


조선 시대 진상품의 생산지, 일제의 마지막 결전을 위한 기지, 4.3 때는 피신과 학살의 현장이던 한라산, 제주의 비극적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한라산은 동시에 제주 사람들의 삶을 지켜오기도 했다. 한라산이 그 장엄한 형상 속에 품고 있는 미래 가치는 또한 얼마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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