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자랑
박근호 지음 / 히읏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누군가의 삶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에세이를 읽을 때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 같이 반가움이 들곤 한다. 특히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남성 작가가 쓴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데 비슷한 나이에 동시간대 살아간다면 더욱 공감을 가진다.


평소 책을 대여하는 것보다 직접 구매해서 읽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동안 온라인 도서 쇼핑몰을 이용해 독서를 했다. 이전만 하더라도 에세이보단 소설을 더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타인의 생각을 듣고 싶어 새로 나오는 신간을 자주 찾아보곤 한다.


남들에게 추천받지 않고 목차도 보지 못하는 책을 고를 때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표지 디자인과 부제다. 쇼핑몰에서 에세이 카테고리를 살펴보다가 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노란색 표지가 눈에 구매하게 된 '당신이라는 자랑'은 "사랑하면 어디 가서 자랑하잖아, 어디 가서 자랑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거고"라는 부제 하나만으로 끌리게 돼 바로 구매해서 읽었다.


에세이 베스트셀러 '당신이라는 자랑'을 쓴 박근호 작가는 친구가 추천해준 음악 한 곡을 듣고 작가의 삶에 접어들게 됐으며, 지난 2017년 '비밀편지'를 시작으로 2018년 '전부였던 사람이 떠나갔을 때 태연히 밥을 먹기도 했다', 2019년 '우리가 행복ㄷ해질 시간은 지금이야', 2020년 '미친 이별'을 발간했다.


더는 내려갈 수 없을 만큼 삶의 끝까지 내려가서 겨우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누군가의 자랑이라는 것.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건 아닐까 싶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자랑이야, 라는 말을 듣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어떻게 그 사실을 전달하면 좋을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생활하면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을 여러 길이의 글과 다양한 형식으로 전달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조금씩 마음을 건드리다가 마침내 책을 덮었을 때 어떤 따뜻함이 느껴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한 개인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됐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 10


'당신이라는 자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을 겪은 이후 힘겹게 살아간 저자가 상처를 극복하게 된 이야기를 총 네 가지 주제로 풀어쓴 에세이로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받았던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불안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했던 결론은 그렇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잘 살고 있다는 뜻이다. 시간 낭비하는 사람과 생각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속에서 잠 못 들면서까지 그런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르긴 몰라도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많이 가졌든 많이 가지지 못했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세상에 정말 많을 것이다.


불안은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림자 같은 거니까. 이 결론에 도달한 뒤로는 불안하다는 감정이 크게 다가올 때면 내가 열심히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오십 분이나 넘게 통화를 했던 동생도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만약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전화를 걸었던 동생과 비슷한 마음이라면 이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프도록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열심히 살아가면서 세상에 기대하는 것만큼 삶은 언제나 불안정할 테지만 누구보다 멋있게 잘 살고 싶은 우리들은 늘 해답을 찾을 것이다 - 33


박근호 작가는 에세이 베스트셀러 '당신이라는 자랑'에서 상처받았던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직접 겪었던 일을 통해 느끼게 된 여러 교훈도 함께 말해주고 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고 성장하면서 느꼈던 불안, 내가 현재 잘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은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며 그것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잘 살고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부분에서 공감과 함께 용기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도 비슷하다. 만약 당신이 좋아하는 게 있다면 꼭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것과 혹여나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대하고 사랑하고 열심히 했던 만큼 상처받고 슬플 뿐, 인생은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게 삶일 텐데 미리 스스로를 패배자처럼 대하지 않았으면 해서 이 글을 썼다.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또 있지 않을까 해서, 한 명만 말해주면 괜찮을 텐데, 그 한 명이 내가 되어주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 73


사람이 살다 보면 매번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지만 단기간이 아닌 오랫동안 단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다가 결국 이루지 못한다면 누구나 좌절할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아무리 힘들더라도 인생은 쉽게 망하지 않는다면서 이후 또다른 기회가 생길 수 있으니 낙담하지 말라고 응원해주는데, 주변에서 힘들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이었다.


"괜찮아, 내가 조금 빨리 겪은 것일 뿐이야" 실제로 그건 내가 늘 하던 생각이었다. 사람은 자기에게 슬픈 일이 일어나면 그것에 빠져 지내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지내다가 슬픔을 거대하게 바라보는 일이 건강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는 슬픔을 객관화하려고 노력했다.


그중 하나가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 때 그 일이 마치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조금 빨리 겪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 92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들 순간이 찾아온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으로 오랜 시간 힘들었었는데 에세이 베스트셀러 '당신이라는 자랑'에서 저자가 말한것처럼 남들보다 조금 빨리 겪었을 뿐이라는 말을 조금 일찍 들었더라면 상처를 빨리 치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사람이 있어. 잠깐 시간을 함께 보냈을 뿐인데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해주는 사람, 내가 무엇을 가졌든 내가 어떤 일을 겪었든 내가 어떤 위치에 있든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보통 힘내, 괜찮아, 잘할 거라는 말과 함께 눈빛, 말투 모든 것으로 나를 응원해줘.


얼마나 아름다운 사이야. 상처주고 상처받고 지치고 아픈 인간관계 속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기분이 든다는 게,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당신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어 - 140


에세이 베스트셀러 '당신이라는 자랑'에서는 저자의 인생관과 함께 사랑을 했던 경험을 통해 느꼈던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 말해준다. 나 또한 최근 오랜만에 만났던 사람과 짧게 만났을 뿐인데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뭐든지 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서 그랬는지 해당 구절이 계속해서 눈에 밟혔다.


나는 다시 또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을 하나씩 읽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은 곧 나라는 책에 몇 페이지가 되었고 그 사람에게 나 역시 몇 장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기록을 남겼던 사람이 떠나고 나면 어느 페이지를 찢어 그 사람을 버려야 하는지 어디를 읽고 어디를 읽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제목도 없는 책을 오랫동안 들고 있고는 했다 - 153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사랑과 일상에 대한 에세이를 쓰려면 어떻게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단순히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풀어내는 게 아니라 읽는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게 자신의 생각을 무언가와 적절하게 비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거나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귀 옆에 점이 있었네, 하는 사소한 것부터 물건을 고르는 데 오래 걸리고 걸음이 좀 느리다는 것까지. 누군가와 함께 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그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애초에 사랑이란 건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길을 걷는 것이다. 네가 틀렸다, 내가 맞았다, 내가 틀렸다가 아니라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서로가 가진 본래의 모습을 바꾸려 들거나 다그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인정을 바탕으로 기다리고 이해하며 함께 하는 것, 이것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 - 180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면서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말하자면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이전보다 더 상대를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랫동안 따로 지내다가 갑자기 만난 상대를 배려해줘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고 보고, 서로가 틀린 것이 아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건 연애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진정한 비교는 나 자신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 몇 개월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나아지면 되는 게 삶이라고요. 만약 조금이라도 나아진 게 없더라도 여전히 그때처럼 열심히 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거라고요.


너무 느리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나요? 아니요. 그냥 당신만의 속도로 가고 있는 거예요. 나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나요? 아니요. 지금은 당신의 타이밍이 아닐 뿐인 거죠.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린 우리만의 속도로 충분히 잘 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 221


이전만 하더라도 직장 생활을 하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는가를 계속해서 생각했고 기준점이 필요했기에 타인과 계속 비교하는 삶을 살았었다.


하지마 아무리 비교한다 한들 경쟁자는 계속해서 생겨났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될까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에세이 베스트셀러 '당신이라는 자랑'에서는 타인과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했을 때 열심히 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괜찮다고, 느리게 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용기를 받게 됐다.


삼일장이 끝나고 정확히 이십 일 동안 단 하루 빼놓지 않고 술을 마셨다.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았으며 그냥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유서 한 장 써놓는 걸 조수석 위에 올려놓고 다녔다. 뭐가 자꾸 미련이 남는 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말했다. 빨리 선택해, 살 건지 아니면 아버지를 따라갈 건지, 어쩌면 삶의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를 그 순간에 떠오른 건 놀랍게도 글쓰기였다.


이제 그만 작업하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글쓰기가 다시 한 번 나를 또 살린 것이다. 써보고 싶은 책이 몇 개 있었는데 그게 미련으로 남아서 쉽게 떠나지 못하겠는 거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한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랑이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 - 244


저자는 이른 나이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나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유서를 작성하고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 그는 글쓰기를 통해 치유받고 그렇게 쓴 책이 '당신이라는 자랑'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책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생전 겪어본 적 없는 후회가 그날 단 하루에 모두 밀려왔다. 조카들이 깰까 봐 소리 내지도 못하고 울면서 아버지에게 받았던 사랑을 떠올렸다. 그래,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아버진 우리를 키우겠다고 안 해 보신 일이 없었지. 아버지 또래의 중년 남자들이 그렇듯 요리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던 사람이 어떤 음식이든 다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주방에 오래 계셨지.


난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요리를 해주는 버릇이 생겼지. 아버진 내가 무언가를 물어볼 때면 늘 나긋한 목소리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고는 했었지. 난 또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한테 무언가를 설명해줄 때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편이었지


부모님 두 분을 다 떠내보내고 나서야 겨우 와닿았던 자랑이라는 말, 그리고 조금이라도 알 것 같았다. 나도 아버지한테 자랑이었다는 걸. 자주 앉아 계시던 거실 옆에 내가 한 번도 드린 적이 없던 내 책이 쌓여있었으니까. 전시회 열 때 만들었던 엽서집도 있었고 그보다 더 한참 전에 전시회를 했을 때 만들었던 도룩도 가지고 계셨다.


"책은 잘 나왔니? 전시회는 잘했고? 난 네가 자랑스럽단다."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다 누군가의 자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정말 그 말 한마디로 버텼다. 세상이 너무 잔인하다고 느껴질 때도, 아버지가 몸서리치게 보고 싶을 때도,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주문처럼 그 문장을 읊조렸다.


난 아버지의 자랑이다. 아버지의 자랑이다. 포기하지 말자. 약해지지 말자. 지지 말자. 이 책을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자랑이라는 가깝고도 낯선 단어를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오늘 하루가 너무 버거웠는데 힘들다는 이야기할 곳이 마땅치 않을 때, 모두가 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 같은데 나만 혼자서 아둥바둥거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외로움은 늘 이유 없이 찾아오고 점점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조금씩 잊게 된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 368


그렇게 점점 내가 누군가의 자랑이라는 사실도 함께 잊힌다. 만약 지금 당신 앞에 아주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아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아무것도 없는 어둠뿐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꽃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눈을 뜨면 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밤하늘이 아무리 어두워도 달이 떠 있는 것처럼, 아무리 구름이 많이 껴도 그 뒤에 별이 가득 존재하는 것처럼, 삶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누군가의 자랑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견디기 힘든 일이 몰려왔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자신에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말자. 지지 말자. 나는 누군가의 자랑이다 - 370


에세이 베스트셀러 '당신이라는 자랑'을 쓴 저자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있어 자랑이다. 지금 당장의 모습이 못나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자랑일 테니, 그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라고, 그런 상대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내 자신이 나의 자랑이라고 계속해서 생각한다면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나만의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외 기억하고 싶은 구절 모음


그거 알아? 글을 쓸 때 상투적인 표현이 좋지 않다는 거? 누구나 다 이야기할 수 있는 말은 좋지 않아.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나오지 않거든. 만약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는데 그 사실을 첫눈에 반했다는 뻔한 말로 쓰면 진짜 그 감정을 느낀 사람만의 말이 안 나와.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서까지 들렸다고 표현하면 정말 그걸 겪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 되는 거지. 그 문장이 화려하든 화려하지 않든 말이야. 그날 네가 나에게 해준 행동이 그랬어.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거든. 백번 천번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내가 생활하면서 나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하는 게 말이야 - 63


종종 그런 질문을 나에게 한 적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꽃을 사러 두 시간이나 운전을 할 수 있었는지, 밤을 새워 일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 사람을 만나러 갔었는지, 졸릴 법도 한데 케이크를 들고 걷는 길이 왜 두근거렸는지, 아무리 묻고 또 물어도 대답은 하나였다.

좋아하기 때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렇다. 사랑하면 자꾸 무언가를 주고 싶어진다. 그 사람은 조금만 줘도 괜찮다고 말해도 자꾸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진다 - 98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가만히 바라보다 그런 생각을 했다. 비가 그치고 나면 이제 몹시 추워지겠구나. 생각해보면 항상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비가 내렸었다. 벚꽃 잎이 다 떨어지고 더워질 때도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옷을 두껍게 입어야 할 때도 어떤 신호처럼 비가 내리고는 했다.


그런 자연 현상은 마치 나에게 말을 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 네 삶에 비가 내린다면 그것도 아주 많이, 우산을 들어도 어깨가 젖고 어딘가로 향할 수 없을 정도로 퍼붓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너의 계절이 확연히 바뀌기 떄문이라고.


비가 그치고 났을 때만 볼 수 있는 하늘과 비가 그치고 났을 때만 바뀌는 계절을 한 아름 느끼게 해주려고 그렇게 비가 내리는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마냥 슬프거나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가 내린다는 건 계절이 바뀌는 신호니까 - 103


"표현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요?" 아무런 표현도 없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하던 사람과의 연애가 떠올라 겪하게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는 나도 내 생각을 말했다. 그렇죠? 표현하지 않는데 알아달라고 말하는 건 이기적인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는데요.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사람은 그래도 조금 나은 사람, 사랑한다고 표현도 잘하고 행동도 일치하는 사람은 좀 더 좋은 사람, 사랑한다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데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한결같다면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 121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한결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부럽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이 변한다고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니까. 전화하던 횟수가 줄어들고 답장을 하던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나를 만나던 시간을 다른 것들로 대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던 사람이 그 말보다 피곤하다는 말을 더 하는 것만큼 비극이 있을까,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것도 원래 그러지 않았던 사람이, 크나큰 욕심일지 모르겠으나 딱 체온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안 그래도 세상이 이렇게 숨 막히는데 사랑하는 사람한테까지 계산하고 배신하고 속이고 상처 줄 필요가 있을까, 너무 급한 마음으로 뜩버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방어기제를 드러내며 시작되는 것도 아닌, 그냥 체온처럼 한결같은 온도의 사랑, 그런 상을 꿈꾼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보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니까 - 122


사랑을 잘한다는 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걸 뜻했다. 행복하기 위해서 시작하는 게 연애인데 그게 서로에게 상처로 변질되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나란히 걷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어느정도 희생과 포기는 필요하겠지만 맹몽적으로 한쪽이 다 맞춰주는 것도 건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나름대로 사랑을 잘하는 방법을 찾은 게 있다. 연애할 때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행동을 잘 관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에게 질문을 많이 하거나 사소한 것도 챙겨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제일 원하는 건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술자리에서도 연락이 잘 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연인도 술자리에서 연락이 잘 되길 바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너도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에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받고 싶은 사랑을 상대방에게 나도 모르게 주는 심리가 드러난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 148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이런 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람을 설득할 때 필요한 요소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다. 말이 좀 어렵지만 로고스는 말의 논리를 해당하고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태도를 뜻하고 파토스는 청중들의 심리를 뜻한다. 세 가지 다 맞아 떨어져야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설득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중요한 건 에토스다.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면 내 에토스가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것을 느끼는 시간이 길었으니 내 태도나 마음도 달라졌을 거라고. 아프지만 확실하게 내 영혼이 남들과 달라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나아지고는 했다.

영혼이 특별해지는 게 무슨 대수일까 싶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한 법이니까. 내면의 특별함은 언제나 외면으로 묻어나고 그 묻어난 외면은 삶의 여러 장면에서 빛을 본다고 생각한다. 창작을 하든 회사를 다니는 교육을 하든 몸을 쓰는 일을 하든 말이다.


만약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너무 매력적이거나 어디서 느껴본 적 없는 기운이 느껴진다면 세상 그 누구보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 역시 시간을 내 영혼이 특별해지고 있다는 한마디로 견디고 또 견뎠을지도 - 160


살다 보면 이렇게 어느 순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때가 있다. 눈을 떠보니 어느 순간 사랑을 하고 있었고 눈을 떠 보니 어느 순간 어른이 되어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나에게서 무언가가 멀어지고 있는, 나는 각도기 이론이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이론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각도기로 삶을 이야기한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내가 붙여버린 이름이다. 각도기에서 실제로 1도 차이는 정말 티끌처럼 작은 차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바로 앞에선 1도밖에 틀어져 있지 않던 것이 길게 이어지고 이어질수록 점점 차이가 심해지는 것이다.


언제부터 내 삶이 이렇게 달라졌을까 싶어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조금씩 내 삶의 각도를 벌려놓지 않았나 싶다. 당장 그때는 눈에 보이게 달라지는 게 없었지만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쓸모없게 느껴지지 않는다. 당장은 어떤 반응이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내 삶의 각도가 1도는 달라져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최대한 많은 것을 두드리고 많은 경험을 하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언제 내 삶이 달라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190


그런 날이 있잖아.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어딘가 고장 난 것 같은 기분. 이유는 딱히 모르겠는데 공허함만 가득한 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서 연락처를 훑어보는데 막상 전화 걸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지.


혹시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오늘 내 기분이 왜 그런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지도 몰라. 마음을 보여주는 일을 늘 어렵잖아. 우리, 우리만의 암호를 만들자. 비가 왔으면 좋겠다. 바다 보러 가고 싶다. 그런 말들을 정해놓는 거야.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던져진 기분이 들 때면 암호를 말하는 거지. 그럼 난 네가 지금 힘들다는 뜻으로 이해할게. 네가 나를 보고 싶어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할게. 별 보러 가고 싶다거나 산에 오르고 싶다는 말도 좋을 것 같아 - 209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 가까운 타인처럼 지내는 우리들, 함께 하는 사람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막상 떠올려보면 그 사람이 뭘 좋아했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죠.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적어보라며 종이를 하나 받는다면 생각보다 쓸 이야기가 많이 없을 거예요. 사랑한다면 많은 것을 물어봐야 합니다. 가까워진 사이가 더욱 가까워지는 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요. 사랑한다고 계속 느끼게 해주는 것도 질문뿐이니까요 - 213


누군가와 함께할 때 그 사람이 내가 찾던 좋은 사람인지 알 방법이 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어도 여전히 나다운지 내가 그 사람에게 하는 행동들이 내 마음에 드는지를 보는 것이다.


만약 할께할 때의 내 모습도 마음에 드는데 그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지거나 그 사람을 생각하기만 해도 힘이 난다면 그건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증거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니까 - 264


부모 자식 관계 - 서로 해준 게 없다고 이야기하고 서로 받은 기억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이 - 306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상처를 지워주는 건 할 수 없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것쯤은 할 수 있으니까. 슬퍼하지말라고 다그치는 게 아니라 상처를 매만져주겠다고 억지로 꺼내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 주는 것이다. 조금 더 어른이 된 입장에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네가 유독 저주받고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다 겪는 거라고, 과거의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나니 시간을 넘나드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지금의 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 327


사람에게 집이라는 공간이 꼭 필요한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나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모습으로 쉴 수 있는 공간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내 모습으로 쉴 수 있는 단 하나의 공간 -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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