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교양강의 - 사마천의 탁월한 통찰을 오늘의 시각으로 읽는다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1
한자오치 지음, 이인호 옮김 / 돌베개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진 제국 시황제가 천하일통을 이루기 전부터 한 제국 무제가 흉노를 친 후까지, 시대를 이끈 여러 인물을 평가함으로써 일찍이 그들을 이야기한 사마천과 『사기』를 다시 읽는다. 춘추 전국 시대를 거의 다루지 않아서 아쉽지만, 중국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중화사상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서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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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라는 책의 성격에 관해 주목해야 할 점이 네 가지 있습니다.

첫째, 『사기』는 중국 최고의 역사책입니다. 『사기』는 『좌전』左傳의 탁월한 서사 전통을 계승했습니다. 그러므로 반고는 『사기』를 평하여 "글은 직설적이고 기록은 자세하며, 헛되게 찬미하지 않고, 잘못을 숨기지 않았다"며 실록實錄이라 결론지었습니다. 당나라 역사학자 유지기劉知幾는 『사기』를 가리켜 사마천의 사학史學, 사재史才, 사식史識이 십분 발휘된 저술이라고 칭찬했고, 중국 현대 문학의 태두 노신魯迅은 "역사가의 절창"史家之絶唱이라 극찬했습니다.

둘째, 『사기』는 중국 최고의 문학서 중 하나입니다. 본격적인 인물 전기의 효시가 되었고, 후세의 산문이나 소설 그리고 전기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셋째, 『사기』는 백과사전처럼 그 이전의 문화를 집대성한 저작입니다. 『사기』는 문화의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중국 문화를 연구할 때 어느 분야를 전공하든 간에 『사기』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넷째, 『사기』는 사마천의 ‘일가지언‘一家之言, 말하자면 개인적인 저술입니다. 중화민국 초기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양계초梁啓超는 이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사기』를 저술한 최대 목적은 사마천이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나 사상을 밝히려는 데 있었다. 그런 의도는 순황荀況이 『순자』를 저술한 것이나 동중서가 『춘추번로』를 저술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마천은 다만 역사의 형식을 빌려서 발표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현대 역사의 개념으로 『사기』를 읽으면 『사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요컨대 사마천은 역사를 매개로 삼아 치국의 방략을 피력한 것입니다.

사마천은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사기』를 쓴 것이 아닙니다. 『사기』에는 사마천의 입장과 관점이 담겼으며 삶과 처세의 문제에서도 사마천의 견해와 개성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기』를 읽는다는 것은 사마천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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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항우는 실패했습니다만 실패했어도 성공한 인물로 다가옵니다. 비록 죽었지만 독자들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결국 유방은 승리했고 성공했지만 사마천의 인정과 존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마천은 위대한 역사가입니다. 비록 항우를 무척 동정하고 좋아했지만, 항우가 유방에 미치지 못한 점을 사실 그대로 기록해 항우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명백히 지적했습니다. 사마천은 유방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유방의 원대한 포부와 지략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사마천을 통해 항우가 결코 유방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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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사마천과 사기의 세계 -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사마천의 생각 읽기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이경덕 옮김 / 다른세상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이자 가장 빼어난 사서인 『사기』를 쓴 역사가 사마천이 품은 생각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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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스스로 공자의 제자임을 밝혔다. 사마천이 무제武帝의 강권정치 아래에서 흉노족과 싸워 패하고 항복한 이릉李陵을 구하기 위해 무제에게 간언한 것은 자유인이라는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무제에 대해 그 실정失政을 바로잡으려고 했다고 본다면 그것은 충의 행위이며, 만약 친구인 이릉을 불행에서 구하려고 했다고 본다면 그것은 신의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분석을 하면 사마천의 심정에 반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이때 보여준 사마천의 행동에 대해서는 무제나 이릉 등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사마천의 결단과 그 용기에 대해 칭찬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게 그런 결단을 내리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자유인으로서의 긍지였을 것이다.

열전 70권은 『사기』 속에서도 사마천이 특히 심혈을 기울여 쓴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사마천은 열전에서 오로지 도시국가를 기반으로 한 고대 시민사회 속에 교차하는 인간 군상을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공자의 제자였기 때문에 그가 서술하는 사람의 행위에는 늘 칭찬과 비판이 뒤따른다. 칭찬과 비판은 후세 유학자들이 가볍게 판단을 내리는 듯한 교과서적인 것이 아니다.

사마천이 모은 수많은 전대의 명사들 중에서 그가 어떤 인물을 가장 존경했는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자유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지지 않고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사람,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인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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