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은 스스로 공자의 제자임을 밝혔다. 사마천이 무제武帝의 강권정치 아래에서 흉노족과 싸워 패하고 항복한 이릉李陵을 구하기 위해 무제에게 간언한 것은 자유인이라는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무제에 대해 그 실정失政을 바로잡으려고 했다고 본다면 그것은 충의 행위이며, 만약 친구인 이릉을 불행에서 구하려고 했다고 본다면 그것은 신의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분석을 하면 사마천의 심정에 반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이때 보여준 사마천의 행동에 대해서는 무제나 이릉 등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사마천의 결단과 그 용기에 대해 칭찬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게 그런 결단을 내리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자유인으로서의 긍지였을 것이다.

열전 70권은 『사기』 속에서도 사마천이 특히 심혈을 기울여 쓴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사마천은 열전에서 오로지 도시국가를 기반으로 한 고대 시민사회 속에 교차하는 인간 군상을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공자의 제자였기 때문에 그가 서술하는 사람의 행위에는 늘 칭찬과 비판이 뒤따른다. 칭찬과 비판은 후세 유학자들이 가볍게 판단을 내리는 듯한 교과서적인 것이 아니다.

사마천이 모은 수많은 전대의 명사들 중에서 그가 어떤 인물을 가장 존경했는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자유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지지 않고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사람,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인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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