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를 들은 후 이릉이 한 말은 실로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왜 자신이 대역부도죄를 뒤집어썼는지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혹시 이릉은 지금까지 전쟁의 역사와 제도로 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이것이 지나친 억측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이릉은 한 내지는 무제 개인에 대해 분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저주하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이릉의 비탄과 절망은 무제에 대한 분노라는 차원보다 더 크고 더 깊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이쯤에서 고개를 드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릉이 보낸 편지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한 통의 편지‘에는 무제의 가혹한 처사에 대한 이릉 자신의 원망과 분노가 토로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해 왔던 대역부도 혹은 족형 등의 언급은 전혀 없고 오히려 편지의 세계는 소설 이릉의 그것과 더 닮아 있는 듯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릉의 편지, 흉노 땅에 있는 이릉이 장안의 소무에게 보낸 편지는, 후세의 누군가가 이릉의 이름을 빌려 만든 가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