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혈마를 획득하고 이것으로 흉노군을 때려 눕히겠다고 만전을 기해 시작한 천한 2년의 총공격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무제와 한 제국에게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한은 10년 전의 전쟁에서 흉노를 궤멸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그 연장선에서 시작한 것이 이번의 전쟁이었다. 더욱이 이전에는 없었던 신무기까지 사용한 총공격이었으니 한은 반드시 승리해야 옳았다.

그러나 기대했던 전과를 올리지 못한 책임을 이광리와 공손오 두 사람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왜냐 하면 그들 두 사람이 꼭 이것이라고 할 만한 죄를 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제가 분통이 터져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그 순간에 이릉의 투항 소식이 전해진 것이었다.

투항한 이릉은, 이러한 조정이 울분을 터뜨릴 수 있는 속죄양이었다. 물론 사서에는 이에 대해 아무런 기록도 없다. 하지만 실상은 이러했으리라 추측된다.

그들이 이릉에게 화를 내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격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느낀 사람이 조정에도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이릉에게 비난이 집중되자 감히 이릉을 변호하고자 나섰다.

"이 장군은 부모에게는 효성스럽고 동료에게는 신의가 두터우며 언제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지니고 있는 품격으로 보건대 그는 정말이지 국사(國士)라고 할 만큼 훌륭한 무장입니다. 그러나 지금 무운이 여의치 않자 일신의 보전을 바라는 무리가 그의 작은 결점을 거론하며 온갖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이 장군은 고작 5천의 보병을 이끌고 고비 사막 깊숙한 곳까지 가서 수만의 적을 상대로 사투를 다하지 않았습니까. 과거의 명장들도 그에 미치지 못할 바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은 것은 틀림없이 공을 세워 설욕하려는 생각일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사람은 바로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었다. 그리고 이 발언이 화근이 되어 그는 감옥에 갇혔고 사형을 언도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저작하고 있던 『사기』의 완성을 위해 사마천은 죽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남자로서는 가장 치욕스런 형벌이라는 궁형(宮刑, 남녀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극형)을 사형 대신 선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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