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 사랑에 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정현규 옮김 / 문학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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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문을 열어놓은 채 누워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물은 마치 나의 황량했던 나날들이 달아나듯이 멈추지 않는 동시에 한결같이 그리고 단조롭고도 무심하게 밤을 향해, 저 먼 곳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 모든 날들은 사실 값지고 잃어버려서는 안 될 가치 있는 날들일 수도 있었고 그래야 했음에도, 하루는 다른 하루와 똑같이 가치도 없고 추억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몇 주일 전부터 상황은 그와 같았고, 나는 언제 어떻게 사정이 달라질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스물세 살이었고, 별 볼일 없는 사무실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여기서 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작은 다락방을 세내고 최소한의 먹고 입는 것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었다. 저녁이나 밤, 이른 아침 시간 그리고 일요일이면 나는 내 조그만 방에 알을 품듯 앉아서 시간을 보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권의 책을 읽거나 때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어떤 발명에 대해 이리저리 골똘히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 발명이란 내가 이미 끝냈다고 믿었던 것이었지만 사실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다섯 번, 열 번, 스무 번 실패한 그런 발명이었다.……


_그 여름날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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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론 한길그레이트북스 32
마르셀 모스 지음, 이상률 옮김 / 한길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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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우'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특정한 물품(타옹가)을 갖고 있어 그것을 나에게 준다고 가정합시다. 또 당신이 그것을 일정한 대가도 받지 않고 나에게 준다고 합니사. 우리는 그것을 매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 물품을 제3자에게 주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 그는 나에게 '대가(utu)'로서 무엇인가를 주려고 마음먹고, 나에게 무엇인가(타옹가)를 선물합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주는 이 '타옹가'는 내가 당신한테서 받았으며 또 내가 그에게 넘겨준 '타옹가'의 영(하우)입니다. 나는 (당신한테서 온) '타옹가' 때문에 내가 받은 '타옹가'를 당신에게 돌려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로서는 그 '타옹가'가 '탑나는 것'(rawe)이든 '불쾌한 것'(kino)이든 간에 그것을 간직하는 것은 '옳지'(tika)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준 타옹가의 '하우'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이 두번째의 '타옹가'를 갖는다면, 나는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는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것이 '하우', 즉 개인 소유물의 '하우', 타옹가의 '하우', 숲의 '하우'입니다. (-)

 

 

 

  (-) 받거나 교환된 선물이 사람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 그것은 받은 물건이 생명이 없지(inetre) 않다는 것이다. 증여자가 내버린 경우에도 그 물건은 여전히 그에게 속한다. 그는 그것을 통해서, 마치 그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을 때 그것을 훔친 자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수익자(受益者)에게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타옹가'는 그 숲, 산지(産地)와 토지의 '하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실로 '그 토지 본래의 것'(native)이다. '하우'는 그것을 소지하는 자를 쫓아다닌다.

 

  (-) 하우는 그 탄생지, 숲과 씨족의 성소 그리고 그 소유자에게 돌아오려고 한다. '타옹가' 또는 그 '하우'ㅡ그 자체가 일종의 개체이다ㅡ는 일련의 사용자들이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향연, 축제 또는 선물을 통해서 그들의 고유재산 · '타옹가' · 소유물 · 노동 · 상품을 답례할 때까지 그들에게 달라 붙어 있지만, 일단 답례가 행해지면 이번에는 그 증여자가 마지막 수증자가 된 최초의 증여자에 대해서 권위와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사모아 섬과 뉴질랜드에서 부 · 공물(貢物) · 증여물(贈與物)의 의무적인 순환을 지배하는 주요 관념이다.

 

 

 

  (-) 마오리의 법에서 물건을 통해 만들어지는 법적 관계가 영들 사이의 유대라는 것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물건 자체가 영을 갖고 있으며, 또 영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물건을 주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주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 이러한 관념체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는 그의 본성 및 실체의 일부인 것을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또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받는 것은 그의 정신적인 본질, 즉 영혼의 일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

 

 

 

  (-) "개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논다. 네가 이 개라는 말을 언급하면,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는 바와 같이 귀중품들도 놀러 온다. 우리가 팔찌를 주면 목걸이가 오며, 그리고 그것들은 (킁킁거리며 냄새맡으면서 오는 개들처럼) 서로 만난다." (-) 즉 당사자들간에 있을 수 있는 증오도 바이구아의 고립도 주문에 의해 해소되며, 인간과 귀중품은 마치 개들이 놀고 있다가 사람 목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것처럼 모이는 것이다.

 

  또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은 여성의 상징인 팔찌(mwali)와 남성의 상징인 목걸이(soulava)의 결합의 그것인데, 그것들은 남자와 여자처럼 서로 잡아당긴다.

 

 

 

  바이구아의 최초 증여는 바가(vaga), 즉 '개시(開始)의 증여'(opening gift)라고 불린다. 그것은 거래를 시작하고 수증자에게 답례의 증여, 즉 요틸레(yotile)ㅡ말리노프스키는 이것을 '매듭을 짓는 증여'(clinching gift), 즉 거래에 빗장을 지르는 증여라고 훌륭하게 번역하고 있다ㅡ를 하도록 결정적으로 의무를 지운다. 이 요틸레의 다른 명칭은 쿠두(kudu)인데, 이것은 무는 이빨, 실제로는 끊고 잘라서 자유롭게 해주는 이빨이다. 요틸레는 의무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기대한다. 또한 그것은 바가와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이어야만 한다. 때로는 그것을 강제로 또는 불시에 받을 수도 있다. 요틸레가 기대만큼 답례되지 않은 경우에는 주술을 이용해서, 또는 적어도 욕설과 원한을 나타냄으로써 복수할 수도 있다.

 

  답례를 할 수 없을 때에는 부득이하게 '바시'(basi)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 바시는 단지 피부를 '찌를' 뿐이며 물지 못하는 이빨, 즉 거래를 완결하지 못하는 이빨이다. 이것은 일종의 임시적인 선물, 즉 연체이자 같은 것이다. (-)

 

 

 

  주어야 하는 의무는 포틀래치의 본질이다. 추장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자기 아들이나 사위 · 딸을 위해서 도는 죽은 자들을 위해서 포틀래치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추장은 그가 정령과 재산에 사로잡혀서 그것들의 비호를 받고 있으며, 또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도 재산이 그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에만 자기 부족과 마을, 즉 자기 가족에 대해서 권위를 간직하며, 아울러ㅡ종족 내에서나 밖에서나ㅡ추장들 사이에서 그의 지위를 유지한다. 또한 그는 재산을 소비하고 분배하여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꺾고 '그의 명성의 그림자'로 덮어버릴 때에만 그 재산을 증명할 수 있다.

 

  콰키우틀족과 하이다 족의 귀족은 중국의 문인이나 관리와 완전히 똑같은 '체면'(face) 관념을 지니고 있다. 포틀래치를 주지 않은 신화상의 대(大)추장 가운데 한 사람에 대해서는 '썩은 얼굴'을 가졌다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중국에서보다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북서부 아메리카에서 위세를 잃어버리는 것은 바로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혼이란 진실로 '얼굴'이자 춤의 가면, 즉 정령을 구현하고 문장이나 토템을 지닐 권리이며, 아울러 이처럼 걸려 있는 인격(persona)이다. (-)

 

 

 

  물건은 유스타니아누스법과 현대의 법이 의미하는 생명 없는 존재가 아니다. 우선 물건은 가족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즉 로마의 가족(familia)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물건(res)도 포함한다. (-) 고대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파밀리아(familia)라는 말의 의미가 그 일부인 레스(res)를 나타내고, 심지어는 가족의 음식물과 생계수단까지도 가리킨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

 

 

 

  먼저 계약 당사자는 레우스(reus)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에게서 레스를 받은 자이며, 이러한 이유에서 그의 레우스가 된다. 다시 말하면 그는 물건 자체에 의해서, 즉 물건의 영혼에 의해서 다른 사람에게 구속받는 자가 된다. (-)

 

  (-) 단순히 물건을 갖는다는 사실만으로 수령자는 인도인(引渡人, tradens)에 대해서 준유죄[準有罪. 책임을 지는 자(damnatus)], 구속된 자(nexus), 동괴(銅塊)에 얽매인 자(ære obæratus), 정신적인 열등감, 도덕적인 불평등[주인(magister)과 종복(minister)의 관계]이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물건을 주면, 그 보답은 이 세상에서도 또 저 세상에서도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그 선물은 그것과 똑같은 것을 증여자에게 자동적으로 가져다 준다. 선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생하는 것이다. 저 세상에서 증여자는 더 늘어난 똑같은 것을 되찾는다. 음식물을 주면 이 세상에서는 그 음식물이 증여자에게 되돌아오는데, 그것은 또한 저 세상에서의 그의 음식물이기도 하며,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계속되는 윤회과정에서의 음식물도 된다.

 

 

 

  나누어지는 것이 음식물의 성질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는 것은 '음식물의 본질을 죽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신에게서나 다른 사람에게서나 음식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

 

 

 

  그것을 모르면서 먹는 자는 음식물을 죽이는 것이며, 또한 섭취된 음식물에 의해서 죽는다.

 

 

 

  (-) 주어지거나 인도된 물건에 의해 표현되는 위험이 매우 오래된 게르만의 법과 언어에서보다 더 잘 느껴지는 곳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gift'라는 말의 이중적인 의미, 즉 이 말이 한편으로는 선물(don) 또 한편으로는 독(poison)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

 

 

 

  (-) 단호하게 말하면, 매우 큰 잉여물들은 축적된다. 그것들은 비교적 엄청난 사치를 동반하면서도 이익을 노리는 성질이 전혀 없는 순수한 낭비를 위해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환되는 것들 중에는 부의 징표, 즉 일종의 화폐도 있다. 그런데도 매우 부유한 이 경제조직 전체는 종교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즉 화폐는 여전히 주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며, 씨족이나 개인과 연결되어 있다. (-)

 

 

 

  화폐의 사용은 고찰해야 할 그밖의 문제들을 시사하고 있다. 트로브리안드 섬의 바이구아, 즉 팔찌와 목걸이는 북서부 아메리카 원주민의 동판이나 이로쿼이족(Iroquois)의 왐푼(wampun: 조가비 염주-옮긴이)과 마찬가지로 부(富)인 동시에 부의 표시이자 교환과 지불의 수단이며, 아울러 주어야 할, 게다가 파괴해야 할 물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의무를 지우는 담보물인데, 이 담보물은 그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

 

 

 

  (-) 포틀래치의 경우 오랫동안 모은 상당한 재화를 단번에 주거나 심지어는 파괴해버리는 소비의 순수하게 사치스러운 형태는 이 제도에 완전히 호화로운 지출과 유치한 낭비의 모습을 준다. (-)

 

  하지만 이 미치광이 같은 증여와 소비의 동기, 또는 이 미친 듯한 부(富)의 상실과 파괴의 동기는 특히 포틀래치 사회에서는 결코 무시무욕한 것이 아니다. 추장과 가신 사이, 가신과 그 추종자 사이에는 이러한 증여에 따라 위계서열이 확립된다. 준다는 것은 자기의 우월성, 즉 자기가 더 위대하고 높으며 주인(magister)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답례하지 않거나 더 많이 답례하지 않으면서 받는다는 것은 종속되는 것이고, 손님 또는 하인이 되는 것이며, 작아지는 것이고 더 낮은 지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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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 - 가브리엘 르페브르의 그림과 함께 읽는 시
자크 프레베르 지음, 가브리엘 르페브르 그림, 오생근 옮김 / 문학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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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열차는 굴러갈 수 없을지 모르지

그리고 풍경을 바라보지

보기 싫은 풍경이 나타나도

풍경이 아름다워지기를 기다리면 되겠지


절망의 세관원들이

내 가방을 찢어서 열어볼 수도 있겠지

내 몸을 여기저기 만지면서 나를 심문할 수도 있겠지

신고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사랑도 나처럼 여행 중이지

언젠가 그 사랑을 만날 수가 있겠지

사랑의 얼굴이란 보자마자

금방 알아볼 수 있는 법


_「마음의 소리─앙리 크롤라에게」中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릴 것

다음에는

새를 위해

어떤 예쁜 것

어떤 단순한 것

어떤 아름다운 것

어떤 유익한 것을…

그 다음에 그림을 나무에

정원에

작은 숲에

큰 숲에

걸어놓을 것

아무 말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나무 뒤에 숨어 있을 것

때로는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그런 결심을 하는 데

여러 해가 걸릴 수도 있으니까

실망하지 말고

기다릴 것

필요하다면 여러 해를 기다릴 것

새가 빨리 오거나 늦게 오거나

그림의 성공과는 무관하니까

새가 날아올 때

날아오면

아주 깊은 침묵을 지킬 것

새가 새장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릴 것

새가 들어간 다음에

조용히 붓으로 새장을 닫을 것

그리고 새의 어떤 깃털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모든 창살을 차례차례 지울 것

그러고는 가장 아름다운 나뭇가지를 골라

나무의 초상을 그릴 것

푸른 잎새와 서늘한 바람을

여름의 더위 속에서 우는 풀벌레 소리를

햇빛의 가루를 그릴 것

그리고 새가 노래하기를 결심할 때까지 기다릴 것

새가 노래하지 않으면

그건 나쁜 징조

그림이 잘못된 징조

그러나 새가 노래하면 그건 좋은 징조

당신이 사인해도 좋다는 징조

그러면 당신은 아주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를 뽑아서

그림 한구석에 당신의 이름을 쓰면 된다


_「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하여」 전문




그는 머리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가슴으로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그렇다고 말하지만

선생님에게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선생님이 질문을 한다

온갖 질문이 쏟아졌지만

갑자기 그는 폭소를 터뜨린다

그러고는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숫자도 단어도

날짜도 이름도

문장도 질문의 함정도

교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등생 아이들의 야유를 받으면서도

온갖 색깔의 분필을 들고

불행의 검은색 칠판 위에

행복의 얼굴을 그린다.


_「열등생」 전문




둘에 둘은 넷

넷에 넷은 여덟

여덟에 여덟은 열여섯

다시 한 번! 선생님이 말한다

둘에 둘은 넷

넷에 넷은 여덟

여덟에 여덟은 열여섯

그런데 저기 하늘을 날아가는

금조琴鳥가 있다

아이는 새를 바라본다

아이는 새가 우는 소리를 듣는다

아이는 새를 부른다

나를 구해줘

나와 놀자

새야!

그러자 새가 내려와

아이와 함께 논다

둘에 둘은 넷…

다시 한 번! 선생님은 말하고

아이는 논다

새는 아이와 논다…

넷에 넷은 여덟

여덟에 여덟은 열여섯

그리고 열여섯 열여섯은 얼마지?

열여섯에 열여섯은 아무것도 되지 못해

서른둘은 절대로 아니야

어쨌든 그것들은 사라진다

아이는 책상 속에 새를 감춘다

모든 아이들은

새의 노래를 듣는다

모든 아이들은

새의 노래를 듣는다

모든 아이들은

음악을 듣는다

그러자 여덟에 여덟이 사라진다

넷에 넷, 둘에 둘도 가버린다

하나에 하나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하나에 하나도 같이 가버린다

종달새는 놀고

아이는 노래하고

선생님은 소리친다

바보짓은 이제 그만 해야지!

그러자 모든 아이들은

음악을 듣고

교실의 벽은

조용히 무너진다

유리창은 다시 모래가 되고

잉크는 다시 물이 되고

책상은 다시 나무가 되고

분필은 다시 절벽이 되고

펜대는 다시 새가 된다.


_「복습노트」 전문




차가운 길 돌바닥 위에 어느새 아침 우유병 내려놓는 소리가

온 동네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면

우유 배달하는 작은 자동차가 길 모퉁이를 돌아가기도 전에 우유병은 모두 사라지겠지

그리고 길은 다시 한적해지겠지

그러나 집집마다 부엌의 창들에서는

아주 젊은 목소리가 날아오르겠지

잘못 열어놓은 새장에서

슬픈 새가 기쁨에 넘쳐서 날아가듯이

가을은 겨울을 기다렸고

봄은 여름을 기다렸고

밤은 낮을 기다렸고

차茶는 우유를 기다렸고

사랑은 사랑을 기다렸고

나는 외로워서 울었지

한 번도 날아본 적 없는 새가 나무에 부딪쳐 숲의 언저리에서 죽어가듯이

푸르른 이른 아침의 짧은 빛 속에서

아주 순수한 목소리 하지만 어느새 쓸쓸해진 목소리

그 목소리도 사라지겠지


_「어느새 아침 우유병 내려놓는 소리가」 전문




서로 사랑하는 아이들이

밤의 문에 기대어 서서 입맞춤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분노를 돋우며

어둠 속에서 떨고 있는 것은

아이들의 그림자뿐이다

어른들의 분노 그들의 경멸 그들의 비웃음 그들의 시샘

서로 사랑하는 아이들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아이들은 밤보다 더 먼 곳에

햇빛보다 더 높은 곳에

첫사랑이 찬란하게 빛나는 다른 세계에 가 있다


_「서로 사랑하는 아이들」 전문



Les portes de la nuit | Marcel Carné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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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가정 폭력과 여성 인권
정희진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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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적이지만 익숙한 관계를 끝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그러한 관계가 구체적인 폭력으로 매개되어 있다면, 이때는 관계의 청산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탈출”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탈출”이 쉽지 않기에, 카프카의 말대로 새로운 인식이 시작된다는 첫번째 징표는 죽고 싶은 심정이다. 자기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제까지의 삶은 견딜 수 없어 보이고 다른 삶은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 여성학을 공부하는 즐거움 못지않게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여성의 삶을 “분석”하고 규명하는 것과 여성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사이에 어떤 불가피한 간극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때로 비참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

“아내 폭력”(아내에 대한 폭력)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문제 의식은, (-) 한국 사회의 “아내 폭력” 대처 방식이 인권과 성 평등gender equality 관점에서가 아니라 지나치게(가부장적인) 기존 가족 보호의 입장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
한국에서 “아내 폭력”이 처음 사회 문제로 제기된 것은 1983년 여성 폭력violence against women 추방을 운동 과제로 내세운 「여성의 전화」가 창립되면서부터다. 이후 쉼터(피난처) 마련 운동, 성폭력 특별법과 가정 폭력 방지법 제정 운동을 거쳐 “아내 폭력”은 여성 폭력의 대표적인 영역이 되었고, 1990년대 한국 여성 운동이 성 인지적 관점gender perspective을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
(-) 여성주의 관점에 입각한 몇몇 연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가족과 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가부장적 통념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이들은 가족을 사회 기본 단위 혹은 휴식처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가족 구성원 간에는 차이(사실은 “위계”)가 있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가해자의 폭력 행위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 이들은 “아내 폭력”을 “일탈”(비정상) 행위로 보면서 주로 폭력 가정의 인구학적 특성에 주목해 왔다. 즉 폭력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무엇인지 고찰하는데, 이때 주로 등장하는 상황들은 가해 남편의 의처증, 스트레스, 알코올, 열등감, 경제적 무능력, 분노 등이다. 하지만 이것은 폭력의 원인이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남편의 행위 자체가 폭력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한편, 폭력당한 아내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들은 오랜 폭력으로 인한 폭력의 결과(무기력, 보복의 두려움, 자아 의식 상실, 판단 능력 결여, 모순에 가득 찬 폭력 대처 기술 등 피해 여성의 상태)를 마치 폭력의 원인인 양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가정 폭력을 극소수 일탈 가정의 문제 혹은 개인 심리의 결과로 보는 관점은 상당히 뿌리 깊다. 가정 폭력이 가부장적 가족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모든 아내들이 다 맞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안 때리는 남편도 많고 안 맞는 아내도 있으므로, 그것은 결국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과 관련된 이슈는 언제나 사적인 문제로 취급되는 편견의 결과일 뿐이다. 예를 들어 전 국민의 1% 정도가 절도 피해를 입었다면 그 누구도 이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 절도범의 스트레스와 분노로 인한 문제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분석되고 국가 사회적 대책이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아내 폭력”은 거의 모든 통계에서 50% 이상이 경험하는데도 여전히 개인적인 일로 간주된다. 성폭력 등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일 경우 언제나 이와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
나는 “아내 폭력”에 대한 가족 유지적 접근이 과연 “아내 폭력” 문제의 대책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부정적이다. (-)
만일 어떤 사람이 가정이 아닌 길거리에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당했다면, 당연히 가해자를 처벌해야지 치료하거나 상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즉 “아내 폭력”이 전쟁, 고문, 조직 폭력 등 일반적인 폭력과 다른 것은 그것이 단지 “가정”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행사한다는 점이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은폐,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Copelon, 1994) 바로 이 부분을 지적, 비판하지 않는다면 “아내 폭력”을 근절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

시대와 지역, 종교, 인종, 계급, 교육 수준, 일부일처와 일부다처제를 막론하고 인류가 공통적으로 경험해 온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아내 폭력”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도 “아내 폭력”에 대해 언급한 기록들이 남아 있는데, 조선 후기 유학자였던 이덕무는 “남편과 시부모가 성질이 포악해서 때리고 구박하여 집에 못 있게 하더라도 친정에 돌아가는 것은 배반이 아니겠는가”라고 적고 있고(이덕무, 1744 ; 조주현, 2000 : 23에서 재인용) 조선 시대 여성들의 생활 지침서였던 내훈 2권 부부장에는 “남편을 아버지같이 섬길 것이나, 혹 그릇된 일을 간하였다가 매를 맞는 일 있더라도 노하기는커녕 전혀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한국 여성 개발원, 1990 : 37).
서양에서도 “아내 폭력”은 고대 바빌론 시대부터 현대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왔다(Stets, 1988 : 2-3). 로마 시대 남편들은 아내를 벌 주고 죽이고 마음대로 이혼할 수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사와 귀족들이 자기 농노를 때리듯이 “정기적으로” 아내를 구타하였고 당시 여성들이 산 채로 불태워진 이유는 “혼외의 아이를 낳았을 때, 자위했을 때, 아이를 돌보지 않았을 때, 남편에게 호통치거나 잔소리가 심할 때, (남편의 구타로 인한 것일지라도) 유산했을 때”였다(Davis, 1975 : 252-264). “아내 폭력”은 종교 교리, 법률 등으로 성문화成文化, 보장되었는데 그 내용은 주로 아내의 의무와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식사를 늦게 준비했거나 다른 남자와 말을 하는” 등 도리를 지키지 않은 아내를 남편은 언제든지 처벌할 수 있었다(Archer, 1994 : 312-313). 16세기 러시아에서는 남편이 언제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아내를 때릴 수 있는가를 명기한 가정 법령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현대 사회주의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 소련 타지크 공화국에서는 첫날밤 신부의 순결 검사 관습과 남편의 구타에 못 이겨 분신자살하는 여성들이 1년에 30-40명에 이르러 그들을 “살아 있는 등불”이라고 불렀다(하니 로젠버그, 1991 :53-55).(-) 19세기 영국의 관습법은 “엄지손가락 법칙”rule of thumb이라고 하여 매의 굵기가 남편의 엄지보다 크지만 않으면 아내 구타는 정당하다는 원칙을 발전시켰다. 영어의 대략적으로 잰다는 뜻의 “눈대중”rule of thumb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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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살해당한 여성의 약 42%는 이전 또는 현재의 파트너에 의해 죽은 것이다. 방글라데시, 브라질, 케냐, 태국은 50%를 육박하며 파키스탄에서는 전통적인 여성 억압 문화인 퍼다purdah의 영향으로 80% 정도의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학대받는다. 볼리비아 정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매해 10만 건 정도 행해지고 95%는 처벌되지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미국에서 아내 구타는 강간, 자동차 사고, 강도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외상의 이유이며 여성이 다치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이라고 여겨진다. (-)
지난 5년간 미국에서 “아내 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의 수는 베트남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의 수와 비슷하며 미국의 소아마비 환자 모금본부에 의하면 임신중 남편의 구타가 기형과 유아 사망의 주 원인이라고 보고하고 있다(피처드 겔즈, 1998 : 12-13)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내가 처음부터 가정 폭력, 아내 구타, “아내 폭력”이라는 용어를 혼용하고 있는 것과 아내 폭력을 “아내 폭력”이라고 표기하는 점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적잖이 있을 것 같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아내에 대한 폭력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용어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 가정 폭력domestic violence·가족 폭력family violence·아내 구타wife battering/beating·구타당하는 아내battered women/wives·학대당하는 아내·학대당하는 부인·매맞는 아내·아내 학대wife abuse·아내 폭행wife assault·부부 폭력marital/conjugal violence·배우자 학대spose-abuse·가부장적 테러리즘patriarchal terrorism 등이다.
기본적으로 용어의 선택과 사용은 매우 정치적인 행위이다. “아내 폭력”을 어떤 용어로 표현할 것인가는 곧 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낸다. 가정 폭력은 그동안 가정에서 연장자 남성에 의해 교육의 차원에서 당연히 행해졌던 관습을 폭력으로 정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 대중적인 설득력이 있다. (-)가부장제 사회의 “안식처로서의 가족” 관념에 빛추어 볼 때 “가정”과 “폭력”은, 병렬될 수 없는 일종의 이문 융합으로서 그 자체로 정치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가정 폭력은 아동 학대, 노인 학대 등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폭력을 포괄하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고, “아내 폭력”을 성 중립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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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학대는 구타보다는 광범위하지만 다소 심리적, 성적 학대에 치중하는 듯한 어감을 준다. 아내 구타는 여성 운동 진영을 비롯하여 그간 한국 사회에서 비교적 널리 사용되어 왔지만 “구타”는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

남편은 만날 “나는 목을 조른 것이지 때린 것이 아니다. 내가 언제 너 팔뚝 같은 데 때렸냐? 너는 때리는 게 뭔지 모른다. 내가 때리면 그때 너는 최소 사망이다. 이건 안 때린 거다” 그러면서 자기는 때린 적이 없대요(35세, 주부, 고졸 여성).

“구타하다”를 뜻하는 영어의 “batter”는 격렬하게 연타당한다는 의미로 구타당한 상태battered는 두들겨 맞아 찢어진 상태를 가리킨다. 이처럼 구타는 물리적 폭력, 혹은 때리는 행위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목을 조른 것이지 때린 것이 아니”라는 가해자의 주장 앞에서 피해 여성은 대응할 논리를 찾지 못한다. 1990년대 초 성폭력 특별법 제정 운동 당시 아내 구타가 성폭력이냐 아니냐의 논쟁 역시 구타가 가지는 표현 상의 한계에 기인한 바 크다.
부부 관계에서 신체적 폭력이 없는 언어적, 정신적 폭력은 발생할 수 있어도 언어적 폭력이 없는 신체적 폭력은 없다. 이 글의 증언자들은 특히 남편의 언어 폭력에 대한 고통을 호소했다. 언어 폭력은 육체적 폭력만큼 아내를 절망케 하는데, 대체로 여성의 성sexuality과 관련된 것이 많고 매우 여성 혐오적이다. (-)

구타를 하는데 그 다음에 꼭 아이를 데리고 가출을 해요. 아이가 이제 3개월인데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추운데(아이가 얇은 옷을 입은 상태) 우유도 안 주고 차 같은 데 방치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미치는 거지요. 핸드폰도 꺼놓고 연락이 안 되니까. 남편이 때려서 두 번 유산했고 이 애는 (구타로) 7개월 때 양수가 터져 1킬로그램으로 출산했어요. 3개월 간 인큐베이터에 있던 애예요(31세, 사무직, 대졸 여성).

이처럼 “아내 폭력”은 강간, 성적 학대, 의처증, 남편의 경제적 통제 혹은 무능력, 집요한 협박, 알코올 남용, 시집 갈등, 유기적 성격의 외도, 폭언, 잠을 재우지 않음 등 언어적, 심리적, 육체적, 경제적, 성적, 정서적 폭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구타”나 “매”는 여성의 폭력 경험을 협소한 의미로 축소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행동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적 폭력과 같은 “사소한” 폭력은 폭력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곧 폭력을 일상화, 정상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여성의 경험에 근거하여 폭력의 개념을 폭넓게 정의한다는 의미에서 아내에 대한 폭력, 즉 “아내 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_정희진_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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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양장) - 시공을 초월한 인간관계론의 성전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6
범립본 원저,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무용지용無用之用이란 말이 있다. 세속적인 안목으로는 별로 쓰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도리어 큰 쓰임이 있다는 뜻이다. 『장자』 「인간세人間世」 편에서 장자는 다음과 같은 우화를 들었다. "산에 있는 나무는 사람들에게 쓰이기 때문에 잘려 제 몸에 화를 미치고, 등불은 밝기 때문에 불타는 몸이 된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베이고, 옻나무는 그 칠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잘리고 찍힌다. 사람들은 모두 유용有用의 용用만 알 뿐 무용無用의 용用을 알려 하지 않으니 한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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