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론 한길그레이트북스 32
마르셀 모스 지음, 이상률 옮김 / 한길사 / 200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우'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특정한 물품(타옹가)을 갖고 있어 그것을 나에게 준다고 가정합시다. 또 당신이 그것을 일정한 대가도 받지 않고 나에게 준다고 합니사. 우리는 그것을 매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 물품을 제3자에게 주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 그는 나에게 '대가(utu)'로서 무엇인가를 주려고 마음먹고, 나에게 무엇인가(타옹가)를 선물합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주는 이 '타옹가'는 내가 당신한테서 받았으며 또 내가 그에게 넘겨준 '타옹가'의 영(하우)입니다. 나는 (당신한테서 온) '타옹가' 때문에 내가 받은 '타옹가'를 당신에게 돌려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로서는 그 '타옹가'가 '탑나는 것'(rawe)이든 '불쾌한 것'(kino)이든 간에 그것을 간직하는 것은 '옳지'(tika)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준 타옹가의 '하우'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이 두번째의 '타옹가'를 갖는다면, 나는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는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것이 '하우', 즉 개인 소유물의 '하우', 타옹가의 '하우', 숲의 '하우'입니다. (-)

 

 

 

  (-) 받거나 교환된 선물이 사람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 그것은 받은 물건이 생명이 없지(inetre) 않다는 것이다. 증여자가 내버린 경우에도 그 물건은 여전히 그에게 속한다. 그는 그것을 통해서, 마치 그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을 때 그것을 훔친 자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수익자(受益者)에게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타옹가'는 그 숲, 산지(産地)와 토지의 '하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실로 '그 토지 본래의 것'(native)이다. '하우'는 그것을 소지하는 자를 쫓아다닌다.

 

  (-) 하우는 그 탄생지, 숲과 씨족의 성소 그리고 그 소유자에게 돌아오려고 한다. '타옹가' 또는 그 '하우'ㅡ그 자체가 일종의 개체이다ㅡ는 일련의 사용자들이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향연, 축제 또는 선물을 통해서 그들의 고유재산 · '타옹가' · 소유물 · 노동 · 상품을 답례할 때까지 그들에게 달라 붙어 있지만, 일단 답례가 행해지면 이번에는 그 증여자가 마지막 수증자가 된 최초의 증여자에 대해서 권위와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사모아 섬과 뉴질랜드에서 부 · 공물(貢物) · 증여물(贈與物)의 의무적인 순환을 지배하는 주요 관념이다.

 

 

 

  (-) 마오리의 법에서 물건을 통해 만들어지는 법적 관계가 영들 사이의 유대라는 것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물건 자체가 영을 갖고 있으며, 또 영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물건을 주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주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 이러한 관념체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는 그의 본성 및 실체의 일부인 것을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또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받는 것은 그의 정신적인 본질, 즉 영혼의 일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

 

 

 

  (-) "개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논다. 네가 이 개라는 말을 언급하면,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는 바와 같이 귀중품들도 놀러 온다. 우리가 팔찌를 주면 목걸이가 오며, 그리고 그것들은 (킁킁거리며 냄새맡으면서 오는 개들처럼) 서로 만난다." (-) 즉 당사자들간에 있을 수 있는 증오도 바이구아의 고립도 주문에 의해 해소되며, 인간과 귀중품은 마치 개들이 놀고 있다가 사람 목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것처럼 모이는 것이다.

 

  또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은 여성의 상징인 팔찌(mwali)와 남성의 상징인 목걸이(soulava)의 결합의 그것인데, 그것들은 남자와 여자처럼 서로 잡아당긴다.

 

 

 

  바이구아의 최초 증여는 바가(vaga), 즉 '개시(開始)의 증여'(opening gift)라고 불린다. 그것은 거래를 시작하고 수증자에게 답례의 증여, 즉 요틸레(yotile)ㅡ말리노프스키는 이것을 '매듭을 짓는 증여'(clinching gift), 즉 거래에 빗장을 지르는 증여라고 훌륭하게 번역하고 있다ㅡ를 하도록 결정적으로 의무를 지운다. 이 요틸레의 다른 명칭은 쿠두(kudu)인데, 이것은 무는 이빨, 실제로는 끊고 잘라서 자유롭게 해주는 이빨이다. 요틸레는 의무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기대한다. 또한 그것은 바가와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이어야만 한다. 때로는 그것을 강제로 또는 불시에 받을 수도 있다. 요틸레가 기대만큼 답례되지 않은 경우에는 주술을 이용해서, 또는 적어도 욕설과 원한을 나타냄으로써 복수할 수도 있다.

 

  답례를 할 수 없을 때에는 부득이하게 '바시'(basi)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 바시는 단지 피부를 '찌를' 뿐이며 물지 못하는 이빨, 즉 거래를 완결하지 못하는 이빨이다. 이것은 일종의 임시적인 선물, 즉 연체이자 같은 것이다. (-)

 

 

 

  주어야 하는 의무는 포틀래치의 본질이다. 추장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자기 아들이나 사위 · 딸을 위해서 도는 죽은 자들을 위해서 포틀래치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추장은 그가 정령과 재산에 사로잡혀서 그것들의 비호를 받고 있으며, 또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도 재산이 그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에만 자기 부족과 마을, 즉 자기 가족에 대해서 권위를 간직하며, 아울러ㅡ종족 내에서나 밖에서나ㅡ추장들 사이에서 그의 지위를 유지한다. 또한 그는 재산을 소비하고 분배하여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꺾고 '그의 명성의 그림자'로 덮어버릴 때에만 그 재산을 증명할 수 있다.

 

  콰키우틀족과 하이다 족의 귀족은 중국의 문인이나 관리와 완전히 똑같은 '체면'(face) 관념을 지니고 있다. 포틀래치를 주지 않은 신화상의 대(大)추장 가운데 한 사람에 대해서는 '썩은 얼굴'을 가졌다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중국에서보다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북서부 아메리카에서 위세를 잃어버리는 것은 바로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혼이란 진실로 '얼굴'이자 춤의 가면, 즉 정령을 구현하고 문장이나 토템을 지닐 권리이며, 아울러 이처럼 걸려 있는 인격(persona)이다. (-)

 

 

 

  물건은 유스타니아누스법과 현대의 법이 의미하는 생명 없는 존재가 아니다. 우선 물건은 가족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즉 로마의 가족(familia)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물건(res)도 포함한다. (-) 고대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파밀리아(familia)라는 말의 의미가 그 일부인 레스(res)를 나타내고, 심지어는 가족의 음식물과 생계수단까지도 가리킨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

 

 

 

  먼저 계약 당사자는 레우스(reus)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에게서 레스를 받은 자이며, 이러한 이유에서 그의 레우스가 된다. 다시 말하면 그는 물건 자체에 의해서, 즉 물건의 영혼에 의해서 다른 사람에게 구속받는 자가 된다. (-)

 

  (-) 단순히 물건을 갖는다는 사실만으로 수령자는 인도인(引渡人, tradens)에 대해서 준유죄[準有罪. 책임을 지는 자(damnatus)], 구속된 자(nexus), 동괴(銅塊)에 얽매인 자(ære obæratus), 정신적인 열등감, 도덕적인 불평등[주인(magister)과 종복(minister)의 관계]이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물건을 주면, 그 보답은 이 세상에서도 또 저 세상에서도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그 선물은 그것과 똑같은 것을 증여자에게 자동적으로 가져다 준다. 선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생하는 것이다. 저 세상에서 증여자는 더 늘어난 똑같은 것을 되찾는다. 음식물을 주면 이 세상에서는 그 음식물이 증여자에게 되돌아오는데, 그것은 또한 저 세상에서의 그의 음식물이기도 하며,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계속되는 윤회과정에서의 음식물도 된다.

 

 

 

  나누어지는 것이 음식물의 성질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는 것은 '음식물의 본질을 죽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신에게서나 다른 사람에게서나 음식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

 

 

 

  그것을 모르면서 먹는 자는 음식물을 죽이는 것이며, 또한 섭취된 음식물에 의해서 죽는다.

 

 

 

  (-) 주어지거나 인도된 물건에 의해 표현되는 위험이 매우 오래된 게르만의 법과 언어에서보다 더 잘 느껴지는 곳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gift'라는 말의 이중적인 의미, 즉 이 말이 한편으로는 선물(don) 또 한편으로는 독(poison)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

 

 

 

  (-) 단호하게 말하면, 매우 큰 잉여물들은 축적된다. 그것들은 비교적 엄청난 사치를 동반하면서도 이익을 노리는 성질이 전혀 없는 순수한 낭비를 위해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환되는 것들 중에는 부의 징표, 즉 일종의 화폐도 있다. 그런데도 매우 부유한 이 경제조직 전체는 종교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즉 화폐는 여전히 주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며, 씨족이나 개인과 연결되어 있다. (-)

 

 

 

  화폐의 사용은 고찰해야 할 그밖의 문제들을 시사하고 있다. 트로브리안드 섬의 바이구아, 즉 팔찌와 목걸이는 북서부 아메리카 원주민의 동판이나 이로쿼이족(Iroquois)의 왐푼(wampun: 조가비 염주-옮긴이)과 마찬가지로 부(富)인 동시에 부의 표시이자 교환과 지불의 수단이며, 아울러 주어야 할, 게다가 파괴해야 할 물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의무를 지우는 담보물인데, 이 담보물은 그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

 

 

 

  (-) 포틀래치의 경우 오랫동안 모은 상당한 재화를 단번에 주거나 심지어는 파괴해버리는 소비의 순수하게 사치스러운 형태는 이 제도에 완전히 호화로운 지출과 유치한 낭비의 모습을 준다. (-)

 

  하지만 이 미치광이 같은 증여와 소비의 동기, 또는 이 미친 듯한 부(富)의 상실과 파괴의 동기는 특히 포틀래치 사회에서는 결코 무시무욕한 것이 아니다. 추장과 가신 사이, 가신과 그 추종자 사이에는 이러한 증여에 따라 위계서열이 확립된다. 준다는 것은 자기의 우월성, 즉 자기가 더 위대하고 높으며 주인(magister)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답례하지 않거나 더 많이 답례하지 않으면서 받는다는 것은 종속되는 것이고, 손님 또는 하인이 되는 것이며, 작아지는 것이고 더 낮은 지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