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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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오늘 난 툇마루에 앉아 있어.

형이 여기 없으니까 너무 그리워.

이맘때면 장난을 쳤던 게 생각나. 엄마는

우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지. "아이구, 얘들아…"


저녁 기도 전이면

늘 술래잡기를 했듯

지금은 내가 숨을 차례야. 형이 나를 찾지 못해야 하는데.

마루, 현관, 통로.

그다음에는 형이 숨고, 나는 형을 찾지 못해야 해.

그 술래잡기에서 우리가

울었던 게 생각이 나.


형! 8월 어느 날 밤,

형은 새벽녘에 숨었어.

그런데 웃으며 숨는 대신 시무룩했었지.

가버린 시절 그 오후의 형의 쌍둥이는

지금 형을 못 찾아 시무룩해졌어…

벌써 어둠이 영혼에 내리는걸.


형! 너무 늦게까지 숨어 있으면 안 돼.

알았지? 엄마가 걱정하실 수 있잖아.


「나의 형 미겔에게─그의 죽음에 부쳐」



(-)

너는 아까 다른 일 때문에 여기 왔었지.

그리고 지금은 가버렸구나. 이 구석에서

어느 날 밤, 네 곁에서, 

너의 부드러운 품안에서

도데의 콩트를 읽었지. 사랑이

있던 곳이야. 잊지 마.


지난 여름날들을 생각한다.

이 방, 저 방을 드나들며,

지쳐 있던 조그마하고 창백했던 너.


비 내리는 이 밤,

우리는 너무도 멀어져 있다. 갑자기 펄쩍…

문 두 짝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


「XV」 중에서



나만 여기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손으로 잡는 것에 익숙해진 오른손은 허공에서

세 번째 팔을 찾고 있습니다. 나의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온몸이 거의 불구인

한 인간을 응시하고 있을 그 팔을,


「XVII」 중에서



그러나 이 시에서 적었듯이,

우리 문제로 돌아오자,

인간이 잘못 태어났고,

잘못 살았고, 잘못 죽었고, 잘못 죽어가고 있는 걸

목도한다.

당연히 진실한 위선자는 절망하고,

창백한 사람은 (늘 창백했지만)

이유가 있어서 창백한 거고,

술 취한 사람은 인간의 피와 동물의 우유 사이에서

쓰러지고, 다 주고, 떠나는 걸 택한다.


「산새들의 반대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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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시선집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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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인사를 시키려고

당신을 처음 고향 마을에 데리고 간 날

밤의 마당에 서 있을 때

반딧불이 하나가

당신 이마에 날아와 앉았지


그때 나는 가난한 문학청년

나 자신도 이해 못할 난해한 시 몇 편과

머뭇거림과

그 반딧불이밖에는

줄 것이 없었지


너무나 아름답다고,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해 줘서

그것이 고마웠지

어머니는 햇감자밖에 내놓지 못했지만

반딧불이로 별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자란 고향에서는

반딧불이가 사람에게 날아와 앉곤 했지

그리고 당신 이마에도

그래서 지금 그 얼굴은 희미해도

그 이마만은

환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지 


_류시화_반딧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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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92호 - 2017.가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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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의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하고 지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종로의 다 쓰러져가는 퀴어 영화 전문 제작사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 파일 공유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검색창에 '잠든 근육청년 탐하기'를 쳐넣었다.

귀사의 701045번 게시글이 저희 제작사의 작품 <잠든 근육청년 탐하기>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어 삭제 요청드립니다.

해당 영화는 요즘 내가 담당하고 있는 작품이며 실은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정도의, 제목 그대로 훈훈하게 생긴 청년이 섹스를 하는 것이 전부인 동영상이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사용되었던 '잠든 근육청년 따먹기'라는 주제의식을 명확히 내포한 제목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반려로 인해 '잠든 근육청년 탐하기'로 수정되었고, 옆집 남자 같은 주연 배우의 수수한 외모 덕분인지 게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불법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종로의 사무실에 앉아 곰팡내를 맡으며 저작권을 침해한 파일을 적발해내는 일이 내 오후 일과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내가 이러려고 죽도록 공부하고 돈 벌어 영화과를 나왔나, 자괴감이 들었던 시절은 옛적에 지나가버렸고, 제때 월급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을 땐 내 나이 서른을 훌쩍 넘겨버린 뒤였다.


(-)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박감독. 박감독이 이등상 탄 거나 다름없어. 칸이었으면, 은곰상 받은 거야.

아, 네. (그건 베를린입니다만.) 감사합니다.

프로그래머 Q가 곰살맞은 말투로 덧붙였다.

김선생님 말씀이 맞으셔요. 우리 영화제가 돈이 없어서 그렇지, 진짜 여유만 됐으면 박감독님한테도 상 드렸을 거야. 나 박감독 영화 보다가 울었잖아.

예.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감독이 오감독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 오감독이 상 받을 만했어. 이번에 물건 하나 나왔지.

흉물도 물건이긴 하지. 당시 일등상을 받은 오감독의 영화는 정말 대참사나 다름없었다. 순진했던 남자가 우연히 동성애자를 만나 짐승 같은 섹스를 하게 된다. 이후 그는 정체성의 갈등에 시달리며, 상대에게 깊은 정을 주었지만 (당연히) 성적 대상으로서 이용당하기만 할 뿐이다. 결국 온전한 사랑을 하는 데 실패한 남자는 완벽히 타락해 술집에서 몸을 팔기 시작한다. 익명의 상대들과 짐승 같은 섹스를 이어가던 남자는, 뜬금없이 헤테로섹슈얼들에게 윤간까지 당하고, 결국엔 자살까지 하게 되는 (얼씨구) 감동의 대서사시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오감독이 이성애자라는 것을 백 퍼센트 확신하게 되었다. 이성애자 감독들이 그리는 동성애 섹스는 하나같이 엉덩이를 너무 과도하게 들썩거린다거나, 키스를 하는 건지 얼굴을 침으로 칠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지저분하게 핥아대는 등의 과장된 모습이기 마련이었다. 오감독의 영화가 딱 그랬다. 심지어는 주인공들이 섹스하다 울기까지 하네? 아니 남자랑 섹스하는 게 좋아서 욕먹어가며 동성애하는 건데 왜 울고불고 난리를 쳐대는 건지. 나는 오감독의 영화를 보고 그가 동성애자가 아님을 확신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성애 섹스 전력조차 의심하게 되었다. 그의 영화는 성소수자를 심하게 대상화하고 있었고, 80년대 퀴어 서사에나 적합한 신파 코드로 점철되어 있었다. (-)평론가 김은 심사평에서 오감독의 영화를 두고, 성적 소수자의 고통을 잘 형상화해 동성애를 보편적 사랑의 경지로 끌어올린 수작이라고 평했다. 그들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하는 보편적인 사랑이 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동성애자들이 뭐 얼마나 특별한 사랑을 하고 산다는 건지, 동성애자인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이성애자가 연루되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박감독 작품이 별로였다는 건 아냐. 근데 뭐랄까. 좀 현실적이지 못해.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일기나 다름없는데.)

아니 생각해봐. 주인공들이 너무 발랄해. 깊이가 없어.

깊이요?

응. 캐릭터들이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우기기는 하는데 가슴속에 우물이 없어. 그게 말이 안 돼.

무슨 (좆같은) 말씀이신지.

박감독 세대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느끼기에는 그렇게 별 고통 없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인물이 동성애자인 게 너무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진다고. 너무 나이브하지 않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소수자들이 왜 그런 말투를 쓰는 건지.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프로그래머 Q가 친절한 말투로 거들었다.

맞아요. 저도 같은 지점을 느꼈어요. 게다가 박감독님 작품의 모든 게이들이 섹스에 미쳐 사는 사람들처럼 보여요. 과잉 성애화가 돼 있달까?

이성애자들 바람피우는 영화 보고 과잉 성애화되어 있다고 하진 않잖아요?

평론가 김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박감독,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잘 들어봐. 박감독 영화는 사실 특별한 지점이 부족해. 퀴어 영화다운 그런 지점. 동성애자들에 대한 감독의 성찰이 부족하달까? 그냥 일반인들 연애 얘기랑 다른 지점이 없잖아. 젊은이들이 나와서 술 먹고 춤추고 성관계하는 게 전부인데.

그들이 하도 지점, 지점거려서 난 뭐 프랜차이즈 업체를 말하는 건 줄 알았다. 그는 나에게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끓어오르는 화를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잘 보셨네요. 저 그냥 젊은 사람이 술 먹고 섹스하는 영화 만들고 싶었어요.

그럴 거면 동성애자 영화를 찍는 이유가 뭔가? 유행이라서?

전 동성애 영화 찍은 게 아니고 그냥 연애하는 영화 만든 건데요.

이 친구 참. 소박하다고 해야 하나, 당돌하다고 해야 하나. 성적 소수자들을 너무 소모적으로 다루는군. 이런 식이면 당신 그냥 짝퉁 홍상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는 거야.

그의 논리에 따르면 영화 속에 퀴어를 등장시키려면 무조건 합당한, 그러니까 보통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지점'이 있어야 하는 거였다. (-)


(-)

이거 보세요, 박감독님. 김선생님은 지금 당신 영화가 너무 단순하고 쉽게 만들어졌다고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아시겠어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내가 영화 대충 만들었다고 말하는 거야?

대충까지는 모르겠고 쉽게 만든 건 맞지. 동성애자 캐릭터가 그렇게 발랄한 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의 문제를 받아들이는 게 어색한 것조차 모르잖아. 당신, 소재에 대해 제대로 고민한 게 맞긴 맞아?

그러는 오감독님이야말로 동성애가 뭔지 알기나 알고 하는 소리예요? 동성애자 한 번 본 적이라도 있어요?

있다마다요. 저는 이번 영화 만들려고 게이바에서 일도 하고, 자료 조사도 철저히 했어요. 그러다보니 알겠더군요. 그들이 얼마나 공허하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지. 매일 술을 마시고. 약에 취해 익명의 남자들과 섹스를 하고. 당신이 그런 속사정을 안다면 그렇게 쉽게 웃고 떠드는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겠죠.

닥치세요. 제발.

지금 뭐라고 했어.

닥치라고 씨발.

어디서 욕질이야. 어린놈의 새끼가.

(-)


이거 샤넬 거 맞죠.

음식점에 정적이 어렸다. 나는 재빨리 천장을 살폈다. 감시 카메라 두 대가 입구부터 우리의 테이블까지 사각지대 없이 샅샅이 비추고 있었다.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군. 나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다고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고, 왕샤도 누구보다도 결백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맞네. 샤넬 마이크. 견출지 떼는 거 다 봤어요. 이거 절도인 거 알죠?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전화를 걸었다.

사장 엄마. 우리 마이크 찾았다. 여기 비욘세야. 얼른 와.

낙타처럼 인위적인 속눈썹을 붙인 샤넬의 오너가 비욘세 순대국밥에 당도했다. 그녀는 우리가 허락한 적도 없는데 멋대로 우리의 테이블에 앉더니 물컵에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우리가 뭐라 할 틈도 없이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오늘 우리 애들한테 육십만원 날렸다고 했어. 마이크 두 개 값. 그래서 일찍 문 닫았잖아. 오늘 장사 공쳤구나. 접자. 근데 이게 웬일이야. 내 아들이 마이크를 찾았대잖아. 이 새벽에, 그것도 비욘세에서.


_박상영_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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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도스토예프스키키에르케고르니체카프카(교양선집8)
까치 / 198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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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동시대인들은 그들의 어두운 예감이 과장되어 있고, 믿을 수 없다거나, 아니면 너무 지나치게 환상적이라 하여 무시해 버렸다.

 

 

진리는 힘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왜냐하면 진리는 고통이며 진리 그 자체로서는 패배하기 마련이니까. 진리가 승리하게 된 연후에야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동조할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이 진리라는 이유 때문에? 그렇지는 않다. 만일 그 이유 때문이었다면 진리가 고통이었을 때에도 역시 그들은 동조했으리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진리에 잠재된 힘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동조하여 하나의 구체적인 힘이 된 연후에야 진리에 동조한다.

 

 

코펜하겐 거리의 개구장이들이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의 두 권짜리 저서의 제목을 흉내내어 "이것이냐 저것이냐"라고 외쳐대곤 하였다. (-) 풍자잡지 <해적선(The Corsair)>은 그에 대한 무자비한 비평을 싣는 데 그치지 않고 그를 모델로 하는 만화를 시리이즈로 계속하여 실었다. 거만을 떠는 곱사등이, 가냘픈 다리로 하늘의 별만 쳐다보는 공상가, (-)

키에르케고르에게 쏟아졌던 이러한 공격들은 스스로 만족을 느끼며 더 이상 알기를 원치 않던 중산층들이 키에르케고르라는 한 천재의 출현에 대해 보이게 된 반작용이기도 했다. 코펜하겐의 시민들에겐 이 도시의 태평무사한 풍토에서 이같은 특이한 인물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생각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궁극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아껴왔던 질서를 그가 위협하고 있다고 느꼈다. (-)

(-) 낯선 인물 키에르케고르가 (-)인정받지 못한 천재로서 쓰라린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죽음 얼마 전 쓴 다음 귀절은 예언이 담긴 올바른 말이었다. "내가 속속들이 알게 된 한 가지 일, 즉 인간 성격에 깃들인 바닥모를 결함. 그러나 슬프게도 내겐 약간의 진실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죽고 나면 그들이 모두 다 나를 칭송해 대어서 젊은이들은 내가 생전에 존경과 숭배를 받은 줄로 생각하리라. (-)"




"하인들"의 우화(-) 거기서 사람들은 왕이 될 것인가 왕의 하인이 될 것인가를 선택하게끔 되었다. 그들은 어린 아이 식으로-대심문관은 인간들을 무책임한 어린아이들이라고 한다-모두 하인(왕이 걸머질 책임감도, 도덕적인 지휘를 행사할 욕망도 없는)이 되고자 했다. 이제 세계는 상대방을 향해 무의미한 메시지만 소리쳐 외치는 하인배들로만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사태가 이러함을 깨닫고 있으나 그들이 행한 봉사 및 충성의 서약 때문에 자살(!)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어중이떠중이"는 내적인 자유 때문이 아니라 공포와 복종 때문에 도덕적으로 살기를 계속하게 된다. 그들의 메시지는 의미(혹은 도덕적 힘)가 없고, 모두가 불안이며 절망이다.


 

(-) 그들은 다시금 왕이 되기를 원해야 하고 하인이 되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갈리아니 신부가 데삐네 부인에게 말했듯이 결점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결점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고쳐지기를 바란다. 고친다는 것, 그것은 그의 열렬한 소원이며, 그의 『일기』 전편에 흐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지성의 온갖 노력은 인간 조건의 이율배반에서 빠져 나오려는 것이다. 신에 대한 두려움도 신앙심도 그에게 평화를 줄 수 없었던 것처럼, 말하자면 그가 노력에 대해서 말할 때, 금방 헛됨을 알아차리는 만큼 더욱더 절망적인 노력인 것이다.



(-) 자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마치 멜로 드라마에 있어서처럼,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생에 패배했다는 것, 혹은 인생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식으로 매일매일 빛이 없는 삶의 시간은 우리들을 싣고 간다. 그러나 그 시간을 싣고 가야만 할 그러한 순간은 늘 오는 것이다. '매일', '좀더 있으면', '네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 '네가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될 거야'하는 따위의 미래 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모순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죽는다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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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고 다녀와 - 켄 로치에게 활자에 잠긴 시
김현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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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키노>와의 인터뷰에서 켄 로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는 향수가 아니다. 역사는 왜 우리가 지금의 모습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우리가 현재의 상황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역사가 향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부르주아들에게 적합한 것이다. (-) 역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해준다. 역사를 탐구하여 민중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되돌려 주는 것은 감독의 책임 중 하나이다. 역사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민중의 과거에 대한 생각을 조절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들의 현재를 재조정할 수 있고, 현재를 조정하게 되면 결국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 나는 사랑이 끝끝내 이기는 영화에 더는 끌리지 않는다. 지금은 사랑이 끝끝내 이긴다고 해주는 영화에 더 혹한다. 비록 지더라도. 비록 지고 있는 동안에 중단될지라도. 마찬가지로 나는 선의가 이기는 영화보다는 선의가 이긴다고 해주는 영화가 더 좋다.



나는 뽀뽀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혐오와 차별에 반대한다. 지금 이곳의 청소년 성소수자들도 비록 힘들겠지만, 결국엔 모두 다정한 입맞춤을 아는 얼굴로 스스로를 완성해 갈 것이다. 그렇게 선언하고 싶다. 그러니까 미래는 결국 뽀뽀하듯 오는 것.



시집 몇 권 읽는 일조차 쉽지 않은 때다. 그러나 여전히 쓰는 사람이 있고, 그러니 계속해서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읽는 사람만이 결국 문학의 증인이 될 수 있다. (-) 문학은 결국 읽은 사람에게만 물음을 남긴다. (-)



(-)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선한 의지가 담긴 영화를 보는 게 좋다. 가령, 작은 개를 구하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는 영화. 그런 영화 앞에서는 언제나 심신이 미약해져서 마침내 눈물을 흘리고 만다. 나이를 먹었나, 나이는 언제나 모두 먹고 있는데…

가끔 인간은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선한 의지를 배우게 되는 걸까 궁금해지곤 한다. 사랑이라고 하면 어딘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같고(사랑은 선한 의지의 산물이 아닐까). 부모나 가족으로부터라고 하면 불편하다.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되지 않기로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가족을 구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몇 해 전 나는 짧은 영화 한 편을 찍으며 비전문 배우 둘에게 남녀 주인공을 맡겼다. 조일영, 임수연 씨다.

<영화적인 삶 1/2>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괴작을 본 이는 많지 않으나 찍는 내내 나와 두 배우들은 이 영화로 칸에 간다는 '자기암시' 같은 다짐을 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나머지 이분의 일을 찍어서 <영화적인 삶>이 완성되기를, 그리하여 레드카펫에 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나는 농담한다. (-)



비전문 배우를 주로 선발해 영화를 찍는 켄 로치는 그 이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자신의 계급을 말하는 방식, 태도, 포크를 드는 방식을 통해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건 연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투리를 연기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뜨개질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온 세월호 유가족들의 뜨개 전시가 열렸다. 그날은 마침 단원고 2학년 6반 이영만 학생의 생일 모임이 예정된 날이기도 했다. 영만이의 생일은 2월 19일. 나는 영만이의 생일을 맞아 영만이의 목소리로 생일 시를 적었더랬다. 운명적이게도 내 호적상 생일은 2월 19일.

뜨개질은 성실한 행위이다. (-) 2년 반이 훌쩍 넘는 동안 유가족들이 직조해놓은 시간들은 다양했다. 컵 받침부터 방석, 목도리, 스웨터까지 가지각색의 시간 앞에서 죄송스럽게도 색이 참 곱구나, 라는 생각을 먼저 해버렸다.

(-) 어떤 마음이 유가족들의 두 손을 매주 움직이게 하였을까 감히 짐작해보고 싶었다. 그 두 손의 행위를 감히 성실한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전시장 한쪽에 적힌 "만지고 싶어 죽겠어"라는 글귀를 발견하고서야 나는 유가족들의 두 손이 먹고사는 일에 성실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하여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살아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영만이의 생일 모임은 담담했다.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의 생일 초에 무슨 염원을 담을 수 있을까… 분명히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사람들이 아마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생의 염원을 담아 촛불을 껐다. 영만이 엄마가 아직도 자다가 가슴이 턱 떨어진다는 말씀을 했고, 영만이가 살아생전 어떤 아이였는지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다. 미주알고주알이라는 말은 어딘가 가벼워 보이지만, 쓰고 싶다. 자식 자랑을 하는 엄마의 마음이란 그렇게 귀여운 것이니까.

영만이 엄마가 들려주는 영만이에 관한 이야기는 귀에 익었다. 생일 시를 쓰기 위해 영만이의 생활담을 전해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마치 영만이와 영만이의 엄마가 있던 공간에 같이 있었던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영만이에게 두부 심부름을 시키면, 이라고 영만이의 엄마가 운을 떼면 내가 뒤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만이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왔어요. 자랑하려고. 엄마한테. 자기가 이렇게 빨리 엄마가 사오라는 두부를 사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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