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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평점 :
형! 오늘 난 툇마루에 앉아 있어.
형이 여기 없으니까 너무 그리워.
이맘때면 장난을 쳤던 게 생각나. 엄마는
우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지. "아이구, 얘들아…"
저녁 기도 전이면
늘 술래잡기를 했듯
지금은 내가 숨을 차례야. 형이 나를 찾지 못해야 하는데.
마루, 현관, 통로.
그다음에는 형이 숨고, 나는 형을 찾지 못해야 해.
그 술래잡기에서 우리가
울었던 게 생각이 나.
형! 8월 어느 날 밤,
형은 새벽녘에 숨었어.
그런데 웃으며 숨는 대신 시무룩했었지.
가버린 시절 그 오후의 형의 쌍둥이는
지금 형을 못 찾아 시무룩해졌어…
벌써 어둠이 영혼에 내리는걸.
형! 너무 늦게까지 숨어 있으면 안 돼.
알았지? 엄마가 걱정하실 수 있잖아.
「나의 형 미겔에게─그의 죽음에 부쳐」
(-)
너는 아까 다른 일 때문에 여기 왔었지.
그리고 지금은 가버렸구나. 이 구석에서
어느 날 밤, 네 곁에서,
너의 부드러운 품안에서
도데의 콩트를 읽었지. 사랑이
있던 곳이야. 잊지 마.
지난 여름날들을 생각한다.
이 방, 저 방을 드나들며,
지쳐 있던 조그마하고 창백했던 너.
비 내리는 이 밤,
우리는 너무도 멀어져 있다. 갑자기 펄쩍…
문 두 짝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
「XV」 중에서
나만 여기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손으로 잡는 것에 익숙해진 오른손은 허공에서
세 번째 팔을 찾고 있습니다. 나의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온몸이 거의 불구인
한 인간을 응시하고 있을 그 팔을,
「XVII」 중에서
그러나 이 시에서 적었듯이,
우리 문제로 돌아오자,
인간이 잘못 태어났고,
잘못 살았고, 잘못 죽었고, 잘못 죽어가고 있는 걸
목도한다.
당연히 진실한 위선자는 절망하고,
창백한 사람은 (늘 창백했지만)
이유가 있어서 창백한 거고,
술 취한 사람은 인간의 피와 동물의 우유 사이에서
쓰러지고, 다 주고, 떠나는 걸 택한다.
「산새들의 반대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