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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고 다녀와 - 켄 로치에게 ㅣ 활자에 잠긴 시
김현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7년 7월
평점 :
영화잡지 <키노>와의 인터뷰에서 켄 로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는 향수가 아니다. 역사는 왜 우리가 지금의 모습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우리가 현재의 상황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역사가 향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부르주아들에게 적합한 것이다. (-) 역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해준다. 역사를 탐구하여 민중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되돌려 주는 것은 감독의 책임 중 하나이다. 역사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민중의 과거에 대한 생각을 조절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들의 현재를 재조정할 수 있고, 현재를 조정하게 되면 결국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 나는 사랑이 끝끝내 이기는 영화에 더는 끌리지 않는다. 지금은 사랑이 끝끝내 이긴다고 해주는 영화에 더 혹한다. 비록 지더라도. 비록 지고 있는 동안에 중단될지라도. 마찬가지로 나는 선의가 이기는 영화보다는 선의가 이긴다고 해주는 영화가 더 좋다.
나는 뽀뽀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혐오와 차별에 반대한다. 지금 이곳의 청소년 성소수자들도 비록 힘들겠지만, 결국엔 모두 다정한 입맞춤을 아는 얼굴로 스스로를 완성해 갈 것이다. 그렇게 선언하고 싶다. 그러니까 미래는 결국 뽀뽀하듯 오는 것.
시집 몇 권 읽는 일조차 쉽지 않은 때다. 그러나 여전히 쓰는 사람이 있고, 그러니 계속해서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읽는 사람만이 결국 문학의 증인이 될 수 있다. (-) 문학은 결국 읽은 사람에게만 물음을 남긴다. (-)
(-)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선한 의지가 담긴 영화를 보는 게 좋다. 가령, 작은 개를 구하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는 영화. 그런 영화 앞에서는 언제나 심신이 미약해져서 마침내 눈물을 흘리고 만다. 나이를 먹었나, 나이는 언제나 모두 먹고 있는데…
가끔 인간은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선한 의지를 배우게 되는 걸까 궁금해지곤 한다. 사랑이라고 하면 어딘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같고(사랑은 선한 의지의 산물이 아닐까). 부모나 가족으로부터라고 하면 불편하다.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되지 않기로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가족을 구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몇 해 전 나는 짧은 영화 한 편을 찍으며 비전문 배우 둘에게 남녀 주인공을 맡겼다. 조일영, 임수연 씨다.
<영화적인 삶 1/2>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괴작을 본 이는 많지 않으나 찍는 내내 나와 두 배우들은 이 영화로 칸에 간다는 '자기암시' 같은 다짐을 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나머지 이분의 일을 찍어서 <영화적인 삶>이 완성되기를, 그리하여 레드카펫에 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나는 농담한다. (-)
비전문 배우를 주로 선발해 영화를 찍는 켄 로치는 그 이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자신의 계급을 말하는 방식, 태도, 포크를 드는 방식을 통해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건 연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투리를 연기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뜨개질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온 세월호 유가족들의 뜨개 전시가 열렸다. 그날은 마침 단원고 2학년 6반 이영만 학생의 생일 모임이 예정된 날이기도 했다. 영만이의 생일은 2월 19일. 나는 영만이의 생일을 맞아 영만이의 목소리로 생일 시를 적었더랬다. 운명적이게도 내 호적상 생일은 2월 19일.
뜨개질은 성실한 행위이다. (-) 2년 반이 훌쩍 넘는 동안 유가족들이 직조해놓은 시간들은 다양했다. 컵 받침부터 방석, 목도리, 스웨터까지 가지각색의 시간 앞에서 죄송스럽게도 색이 참 곱구나, 라는 생각을 먼저 해버렸다.
(-) 어떤 마음이 유가족들의 두 손을 매주 움직이게 하였을까 감히 짐작해보고 싶었다. 그 두 손의 행위를 감히 성실한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전시장 한쪽에 적힌 "만지고 싶어 죽겠어"라는 글귀를 발견하고서야 나는 유가족들의 두 손이 먹고사는 일에 성실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하여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살아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영만이의 생일 모임은 담담했다.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의 생일 초에 무슨 염원을 담을 수 있을까… 분명히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사람들이 아마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생의 염원을 담아 촛불을 껐다. 영만이 엄마가 아직도 자다가 가슴이 턱 떨어진다는 말씀을 했고, 영만이가 살아생전 어떤 아이였는지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다. 미주알고주알이라는 말은 어딘가 가벼워 보이지만, 쓰고 싶다. 자식 자랑을 하는 엄마의 마음이란 그렇게 귀여운 것이니까.
영만이 엄마가 들려주는 영만이에 관한 이야기는 귀에 익었다. 생일 시를 쓰기 위해 영만이의 생활담을 전해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마치 영만이와 영만이의 엄마가 있던 공간에 같이 있었던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영만이에게 두부 심부름을 시키면, 이라고 영만이의 엄마가 운을 떼면 내가 뒤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만이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왔어요. 자랑하려고. 엄마한테. 자기가 이렇게 빨리 엄마가 사오라는 두부를 사왔다고…